밀양 주민들도 만민공동회를 위해 버스를 탄다. 4개 움막 농성장에서 길게는 8개월째, 짧게는 4개월째 먹고 자며 기약없는 행정대집행을 기다리는 노인들도 움막을 나와 버스에 오른다. 세월호는 밀양 어르신들의 가슴에 특별히 깊고 굵은 상처의 선을 그었다. 그들은 세월호를 보면서 그동안 겪었던 모멸과 수치의 시간을 한순간으로 압축시켜 수백명의 생때 같은 목숨을 온 나라가 지켜보는 앞에서 수장시켜버렸을 때, 경악했다. 어르신들은 ‘우리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였다.
지난 5월 3일, 밀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4개 움막 농성장에서 어르신들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촛불을 들었다. ‘나를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추모곡 <천개의 바람>을 부를 때 몇몇은 벌써 울먹이기 시작했고, ‘등대지기’를 부를 때는 모두가 울었다. 자신들의 처지가 세월호의 영상에 투사되었을 것이다. 우리 또한 국가가 버린 사람들이 아닌가. 지금 우리도 뒤집힌 세월호에 갇힌 목숨들이 아닌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맹골수도라 불리우던 바다, 온 나라가 카메라를 켜고 서서히 기울어 잠겨 들어가는 세월호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동안, 객실에서 구명조끼를 동여맨 채 가만히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등대는 없었고, 등대지기는 이미 탈출해 버렸다. 국가는 그들을 죽였다. 그러나 국가는 자신들이 벌인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체 내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잔뜩 찡그린 채 남 얘기하듯 ‘살인 행위’가 어쩌고 사나운 소리만 주절대던 대통령이 있었다. 팔걸이 의자에 앉아 계란 없는 컵라면을 먹으며 의전을 누리던 교육부 장관이 있었다. 그것은 밀양 어르신들이 지난 10년간 매일처럼 대면해야 했던 국가권력의 민낯이었다.
부패와 떠넘기기가 서로를 옭아맨 사슬이 있었다. 수명 넘긴 배를 고쳐 다시 쓸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그로 인한 사고의 개연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고는 자신이 아니라 구조하는 사람들의 몫이었고, 관리감독의 책임을 맡은 자들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 담당자들은 현장의 판단과 지시를 떠넘겼다. 그리하여 판단과 지시는 위로 위로 올라가는데, 맨꼭대기에 있는 자들은 아래로 아래로 책임을 떠넘겼다. 관리감독은 자신들의 먹이사슬 안에서 모든 것을 용인했지만, 자신들에게 사고 수습의 책임은 없었으므로 사고의 개연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에 정직했고, 그래서 부패했다. 그들은 만들어진 틀 안에서 해오던 익숙한 방식대로 모든 것을 떠넘겼다. 결과는 대참사였다. 인민들은 등대를 세워놓고 그들에게 등대지기의 소임을 맡겼으나, 등대는 이미 박살나 있었고, 등대지기는 제일 먼저 탈출했다.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신새벽에 무릎걸음으로 산에 올라 송전탑 공사 인부들과 맞선 채 하나 둘 깨어나는 시내의 불빛을 바라보던 밀양의 어르신들이 던져야 했던 질문이었다. 74세 노인 두 사람이 목숨을 끊었고,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병원으로 실려가고 유형무형의 폭력으로 신경줄을 닳아내는 고통으로 신음했지만, 이 사태의 최고 책임자들 누구 하나 머리 조아려 사죄하지 않았다. 금전을 통한 회유와 겁박으로 그들 70~80년 생애의 가장 중요한 울타리가 되었던 마을 공동체가 박살이 났지만,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한 곳에 핵발전소를 왕창 짓고, 거기서 생산된 전력을 미리 그어놓은 선을 따라 송전탑 꽂아서 보내는 일, 거기서 생겨날 이익을 나눠가지는 일 외에 그들이 관심 있는 것은 따로 없었다. 누가 죽든지 말든지, 마을 공동체가 박살이 나든지 말든지, 그들이 교살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든, 그들을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 아버지의 주름진 인생이든, 누천년 내려온 오래된 삶의 방식이든, 그들은 아무것도 챙기지 않는다.
그래서 밀양 어르신들은 5월 18일 청와대로 간다. 그들은 알고 있다. 이 나라는 무수한 세월호로 꽉 차 있음을, 등대는 박살나 있으며, 등대지기는 모두 등대를 박살내고 이 고통의 바다를 가장 먼저 떠났음을. 그들은 알고 있다. 남은 자들 스스로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안타까운 첫 걸음을 내딛기 위해 밀양 어르신들도 청와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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