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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은 대한민국의 '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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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은 대한민국의 '적'인가?

[프레시안 books] 김동춘의 <전쟁정치>

어느새 한 달. 세월호 침몰 사고 후 야속하게 흐른 시간이다. 그 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슬픔에 잠긴 이들을 더 분노케 하는 일도 많았다. 국가, 지배 세력과 극단적인 정부 지지 세력 일부가 유족, 그리고 그와 함께 아파하는 많은 국민에게 취한 태도도 그중 하나다.

대통령은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조차 쉽사리 들려주지 않았다. 대통령의 입인 청와대 대변인은 "순수 유가족" 운운하며, 슬퍼하는 이들을 '순수'와 '불순'으로 갈랐다. 여당 의원들과 그 주변에서도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쏟아졌다. 정부 비판 여론을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행태로 매도하고(한기호), '세월호 선동꾼'이라는 거짓 주장을 퍼뜨렸다(권은희). 정몽준 의원 아들의 '국민 미개' 주장과 이를 감싼 정 의원 부인의 발언도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냈다.

"사건만 나면 우선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한다"며 국민을 타박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80명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고 강변한 해양 경찰 간부 등도 마찬가지다. "시체 장사", '세월호 추모 집회 일당 6만 원',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생난리" 등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부끄러움 없이 내놓은 친정부·극우 인사들도 이 대열에서 빼놓을 수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운동에 왔던 세월호 유족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경찰들. ⓒ프레시안(최형락)

참사를 예방하고 생명을 구하는 데는 지극히 무능한 국가 권력이, 유족을 감시하고 슬퍼하는 국민들을 옥죄는 데는 기민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지지부진한 구조 작업에 항의하며 행진하는 유족을 가로막고 채증까지 했다. 항의 행진 후에는 진도에 배치한 정보 담당 경찰을 두 배가량으로 늘렸다. 견디다 못해 청와대로 가려던 유족들도 가로막혔다. 애타는 유족들을 문전박대한 대통령은 참사 후 "사회 불안이나 분열"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공표했다. (☞ 기사 바로 가기 : "유족들 '문전박대'…朴대통령, 아직도 모른다") 그리고 경찰은 이제 노란 리본을 단 시민을 불심 검문해 가방까지 뒤지고 있다.

세월호 유족, 그리고 함께 아파하는 국민들이 저들의 눈에는 '사회 불안 조장 세력', '대한민국의 적'으로 비치는 것일까? 아픔에 공감하기보다는 피해자 가슴에 거듭 대못을 박는 국가, 잘못을 인정하고 성찰하기는커녕 정당한 문제 제기에 색깔론 공세를 펴는 지배 계급과 그 추종자들. 안타깝게도,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반공주의를 앞세워 자국민을 '적'과 '우리'로 가르고, 적으로 간주한 국민에게 학살·고문 같은 만행을 저지른 국가 권력.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되풀이된 모습이다. 그런 국가 폭력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물론 엄청난 희생을 치른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신적인 존재로 행세하던 박정희 같은 1인 독재자 집권기는 극복했다. 그러나 신으로 군림하던 국가 권력의 존재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꿨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 제기하는 국민을 적으로 규정하던 때의 모습은 세월호 유족, 그리고 슬픔을 나누는 국민들을 향한 지배 계급과 그 추종자들의 태도에서도 묻어난다.

국민을 '적'과 '우리'로 가른 전쟁정치

▲ <전쟁 정치>(김동춘 지음, 길 펴냄). ⓒ길
여전히 진행형인 국가 폭력 문제를 짚은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쓴 <전쟁정치 : 한국 정치의 메커니즘과 국가 폭력>(길 펴냄, 이하 <전쟁정치>)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상임위원으로 4년간 일한 후 대학에 복귀한 김 교수가 지난해 11월에 낸 책이다.

<전쟁정치>는 "정치가들이 제대로 입법하려 하지 않고, 검사들이 전혀 기소할 생각도 하지 않고, 언론도 주목하지 않는 과거와 현재의 국가 범죄, 국가 기관의 범죄와 공권력 남용에 대한 일종의 고발장"(9쪽)이다. 김 교수는 전쟁정치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교전 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부 반체제 세력의 도전을 이유로 국내 정치가 전쟁 수행의 모델이나 원리에 입각해서 진행될 때, 정치·사회 갈등이 폭력화되거나 지배 질서 유지를 위해 '적과 우리'의 원칙과 담론이 사용되어 적으로 지목된 집단의 존재와 활동의 기반을 완전히 없애려 할 때, 국가 권력 행사에 대한 저항, 정당 간의 갈등이 비정규 전쟁과 같은 양상으로 벌어지게 된다. 이 경우 내전과 치열한 정치 갈등은 거의 구별할 수 없고, 사회 전 영역이나 집단에 전쟁의 논리가 일반화된다. 국가 내부의 노동·빈민 세력, 비판적 지식인까지도 내전 중의 절대적 적처럼 취급되고, 이들을 제압하여 무력화하는 일이 국가의 일차적 활동 목표로 거론되는데, 나는 국가의 이러한 정치적 실천을 '전쟁정치'라 불렀다." (170쪽)

김 교수는 한국에서 자행된 온갖 국가 폭력을 전쟁정치의 틀로 분석한다. 수십만 명을 죽인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고문으로 조작한 각종 간첩 사건들, 1960년 4월혁명과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민간인 사냥 등 현대사에 관심을 둔 독자라면 한 번씩은 접해봤을 사례들이 <전쟁정치>에 가득 담겨 있다. "국가 폭력의 백화점"(73쪽)이라는 규정이 조금도 과하지 않은 한국 아니던가.

있을 수 없는 일이 그토록 많이 벌어졌지만, 가해자가 단죄되고 최고 권력자가 책임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피해자가 2차·3차 가해를 당하며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분단, 전쟁, 학살을 거치며 형성된 '전쟁정치'는 그런 세월이 거듭될수록 더 강하게 한국 사회에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인들은 다음과 같은 현실을 마주쳐야 하는 처지다.

"그(김근태)를 직접 고문한 이근안은 목사가 되었고, 고문을 지시한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단장 정형근은 국회의원 3선을 거쳐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그를 기소한 김원치 주임 검사는 이후 변호사 개업을 했다가 사망했고, 김경한 검사는 이명박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되었으며, 고문 사실을 무시하고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서성 판사는 1994년 대법원 판사가 되었다.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최고 책임자 전두환과 그의 자녀들은 아마 수천억의 돈을 숨겨둔 채 천수를 누리고 있다." (62쪽)

▲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고문 사건을 다룬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1985>(2012). ⓒ아우라픽처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은 게 김근태뿐일까. 그렇지 않다. 다른 숱한 국가 폭력 사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옛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국가 권력, 제대로 된 진실 규명도 처벌도 없는 사회가 빚은 문제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인 사찰을 자행한 이명박 정권 총리실, 대선 개입 등 갖은 불법을 저지르며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뒤흔들고도 멀쩡한 국정원, 반성은 고사하고 끝까지 강기훈을 물고 늘어지는 검찰 등은 전쟁정치의 또 다른 산물이다. (☞ 기사 바로 가기 : "주인 무는 국정원·검찰…사랑의 매가 답이다")

이렇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는 이어져 있다. 그간 극우 반공 세력이 과거사 진실 규명 움직임에 경기를 일으키며 '과거는 그만 이야기하고 미래를 보자'는 식으로 강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들(혹은 그 조상)의 알량한 '명예'가 훼손되는 게 싫다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 이 사회를 맘대로 쥐고 흔드는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역사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가해자는 떵떵거리고 힘없는 다수 국민은 2등 신민처럼 굽실거리며 짓밟히는 사회에서 앞으로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고 책임자를 단죄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만연한 전쟁정치의 논리와 세월호에 '순수' 잣대 들이대는 정권

전쟁정치는 국가 권력과 국민의 관계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도 전쟁정치에서 자유롭지 않다.

"과거의 계엄은 전쟁 위기에 발동되었지만 오늘날 계엄은 1997년 IMF 구제 금융과 같은 경제 위기에, 그리고 만성적으로 발동된다.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의 위기에 놓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대자본이 운영하는 대형 슈퍼마켓(SSM)에 의해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몰리는 영세 자영업자에게도 일상 자체가 계엄이다." (168쪽)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10여 년 동안에 약간 진전된 자유 법치의 정신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의해 빛이 바랬다. 치안·안보 국가의 시대는 경제 제일주의를 모토로 하는 기업 국가, 기업 사회로 대체되었는데, 그 기업 국가는 사실 과거의 치안·안보 국가가 보여주었던 모습들, 정부 시책에 대한 일사불란한 충성의 요구, 관료 조직의 상명하복 절대시, 정부 비판 차단, 저항하는 노동자나 철거민에 대한 가혹한 탄압 등 전쟁정치를 그대로 내장하고 있다." (318쪽)

▲ 용역회사 컨택터스 홈페이지. ⓒ컨택터스

2009년 연이어 터진 용산 참사와 쌍용자동차 문제, 2012년 용역 회사 컨택터스 측의 무차별 폭력 사태가 벌어진 안산 SJM 문제 등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또한 재해로 분류되는 사안에서도 전쟁정치는 작동한다.

"(2007년에 터진) 태안 기름 유출 사고는 분명 선박 충돌로 인한 '인재'이며 따라서 사건을 유발한 측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책임 주체가 막강한 변호인단을 동원한 세계적 기업인 삼성이고, 국민의 대표로서 국가는 민사 소송이 오래 끄는 동안 생존 기반이 파괴된 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갖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가는 구경꾼이었으며, 거대 기업의 막강한 힘이 작용하는 동안 주민들은 경제적·정신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모든 국가 폭력의 피해자 가족들이 절규하는 것처럼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는 사실이 여기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130만 명의 자원 봉사자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책임지는 주체는 아무도 없다." (121∼122쪽)

세월호 유족, 그리고 그 슬픔을 함께하려는 국민들에게 순수와 불순의 잣대를 들이대고 "사회 불안이나 분열"을 거론하는 오늘날 한국의 국가 권력은 이러한 전쟁정치에서 과연 자유로운가? 세월호 참사를 부른 위험한 규제 완화를 밀어붙인 최고 권력자보다 청해진해운과 구원파, '해피아' 문제를 집중 부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고 책임자를 제대로 단죄하지 않았기에 더욱 강화된 전쟁정치와 이런 현실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 기사 바로 가기 : "4대강에서 세월호까지…MB는 성역인가")

김 교수의 책들을 그간 쭉 살펴본 사람이라면 <전쟁정치> 이야기는 그리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 교수가 제기한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고 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전쟁정치>는 차분히 살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정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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