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참사를 막으려면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요. 근본 원인과 대책에 관심을 가진 언론이 드문 것 같습니다.
⇒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은 한 달 전까지 정부와 일부 정치인들, 그리고 보수언론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쳐댔던 ‘무차별적인 규제완화’입니다. 그리고 규제완화와 ‘부실 감독’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따라서 대형 참사를 막으려면 규제개혁에 대한 정부와 정치인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는 이들도 기업들의 사리사욕을 보호하기 위해 생명, 안전, 환경, 노동, 인권과 같은 소중한 가치를 희생하는 천박한 수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 관리를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는 법규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래야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참사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2.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정치권이 부랴부랴 ‘해사안전감독관제’를 도입했다고 합니다. 이 제도는 실효성이 있을까요?
⇒ 실효성이 거의 없을 겁니다. ‘해사안전감독관제’는 해수부가 필요한 경우에 공무원 중 일부에게 해사안전감독관이란 감투를 씌워 현장에 투입한다는 것인데요. 정부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이 법안을 보면 말미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등을 해사안전감독관으로 정하도록 하(고), 기존업무에 임무를 정하여 조직과 인력을 활용하므로 추가적인 소요비용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됨.” 결국 이 제도는 해수부 공무원에 해사안전감독관이란 명찰만 붙여서 필요한 경우에 현장에 투입한다는 것으로 현행 제도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3. 솜방망이 처벌이 존재하는 한 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 현행법은 기업들이 민간의 안전관리 대행업체를 동원해서 허위 안전진단서를 제출해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만 부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은 기업들의 안전불감증을 유도합니다. 세월호와 같은 대형 여객선의 경우 연간 안전관리 비용이 1억원 이상 소요될 수 있는데요. 위반 시 벌금이 1000만원 이하이고, 정부가 적발을 거의 하지 않는다면 이런 처벌조항은 기업들에게 아무런 경각심도 주지 못합니다.
4. 우리나라의 경제사범 처벌 법규에는 유난히도 솜방망이가 많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 대한민국이 건국한지 69년이 되었는데요. 그 동안 민주적 정통성이 취약한 정부가 많았습니다. 해방 후 이승만은 김구 세력을 몰아내고 친일파들과 함께 미국의 힘을 배경으로 집권했는데요. 이 정부의 민주적 정통성은 매우 취약했습니다. 또 군부는 1961년 쿠데타 이후 30여 년간 집권했는데요. 이들 정부의 민주적 정통성도 역시 매우 취약했습니다. 이와 같이 민주적 정통성이 취약한 정부는 재벌 등 경제권력에 많이 의존하게 되는데요. 정경유착을 하지 않으면 정권 유지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한민국 건국 후 69년 대부분은 정경유착의 역사였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데요. 정경유착은 필연적으로 경제사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수반합니다. 세월호 참사도 경제사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악폐가 초래한 참사다, 이렇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5.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최근 모 방송사 토론에서 만난 보수진영의 모 교수는 경제사범에 대한 벌금을 ‘매출액에 비례’하도록 부과하자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 주장만큼은 매우 반가웠습니다. 핀란드에서도 음주 운전으로 적발된 경우 한 달 월급을 벌금으로 내게 하고 있는데요. 이와 같은 ‘매출액 비례형 벌금’, ‘소득비례형 벌금’이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선진국형 벌과금제도입니다.
6. 매출액에 비례한 벌금을 부과하려 할 경우 삼성전자가 현대자동차 같은 거대기업들이 강하게 반발할 것 같은데요.
⇒ 매출액에 비례한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률적으로 매출액에 비례한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매출액 규모에 따라 적용 비율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저는 후자가 적절하다고 봅니다. 거대기업이 사소한 실수로 지나치게 과다한 벌금을 부과받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규모에 따라 적용 비율을 달리하더라도 매출액에 비례한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모든 기업에게 단일한 금액의 벌금을 부과하다는 현행 제도보다는 백 배, 천 배 이상 실효성이 있습니다.
7.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경제사범에 대한 솜방이 처벌이 존재하는 한,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대형 참사가 조만간 또다시 일어날 것이라 보는 건가요?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언컨대, 세월호 참사는 경제사범에 대한 솜방이 처벌이 초래한, ‘예정된 인재(人災)’였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이 참사로 희생된 어린 학생들에게 깊이 사죄해야 합니다.
8. 일각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애도 분위기 때문에 소비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 소비 둔화 현상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일부 보수언론의 호들갑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닙니다.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대형 참사 이후 애도 분위기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습니다. 일례로 삼풍백화점 참사는 1995년 6월 29일 일어났는데요. 통계청에 따르면 당시 소매판매액 변화율이 6월에 2.5%, 7월에 2.3%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참사가 소매판매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림] 소매판매액지수 전월 대비 변화율(단위 : %)
(자료) : 통계청
9. 천안함 참사 직후에는 어떠했나요?
⇒ 천안함 참사는 2010년 3월 26일 일어났는데요. 당시 소매판매액 변화율이 3월에 -1%, 4월에 0.2%로 나타났습니다. 이 지표 또한 참사가 소매판매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림] 소매판매액지수 전월 대비 변화율(단위 : %)
(자료) : 통계청
10. 지난 6일에는 OECD가 각국의 경제전망을 발표했는데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을 상향했다고 하지요?
⇒ OECD가 지난해 11월과 지난 6일 발표한 올해 경제전망을 비교해 보면 세계경제 성장률을 3.6%에서 3.4%로 하향조정했습니다. OECD 회원국들 평균 성장률도 2.3%에서 2.2%로 하향조정했고, 미국의 성장률도 2.9%에서 2.6%로 하향조정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성장률은 3.8%에서 4.0%로 상향조정했는데요. 나쁜 소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11. 일각에서는 OECD가 경제성장률은 상향했지만,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을 3.5%에서 2.6%로 하향조정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지난해 11월 OECD가 올해 우리나라 민간소비 증가율을 3.5%로 전망했는데요. 그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최근 몇 년간의 추세로 볼 때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3%를 넘어서기 어려웠습니다. OECD가 6일 우리나라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을 3.5%에서 2.6%로 하향조정한 것은, 소비위축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기보다는 잘못된 추정 수치를 조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12. OECD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을 상향 조정한 이유가 뭘까요?
⇒ 최근 대외변수가 상당히 호전되고 있습니다. 첫째,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했던 남유럽 국가들이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 여파로 지난 1분기 EU에 대한 우리나라 수출이 16.2%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총수출이 2.1% 증가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 실적은 상당히 높은 것입니다. 둘째, 지난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영향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나타냈던 신흥국들도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역시 그 여파로 지난 1분기 ASEAN에 대한 우리나라 수출이 10% 증가했는데요. 이 실적도 상당히 높은 것입니다. 셋째, 미국 경기도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2009년 10월 10%까지 치솟았던 미국 실업률은 최근 6.7%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림] 미국 실업률(단위 : %)
(자료) : 한국은행
13. 그러나 중국과 일본 경제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 OECD가 지난해 11월과 지난 6일 발표한 올해 경제전망을 비교해 보면 중국의 성장률을 8.2%에서 7.4%로 하향조정했고, 일본은 1.5%에서 1.2%로 하향조정했습니다. 2013년 중국 성장률이 7.7%였다는 점에 비춰보면 7.4%도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은 아닙니다. 그러나 OECD가 같은 기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을 2.9%에서 3.4%로 올렸다는 점에 비춰볼 때, 중국경제에 대한 OECD의 전망은 밝지 않다고 봐야 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소비세 증세가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4월부터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3% 포인트 상향했는데요. 일본의 청장년층 지갑이 심각할 정도로 가벼운 상황에서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소비세 증세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14. 일본 정부가 심각한 수준의 국가부채를 일부나마 줄이기 위해 소비세를 인상한다고 하는데요. 일본경제가 어쩌다 저 지경이 된 겁니까?
⇒ 1980년대 이후 일본이 부유층 편향적이고 대기업 편향적인 레이거노믹스를 미국보다 더 강하게 추진한 결과입니다.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은 ‘규제완화와 부자감세’인데요. 일본 정부는 1980년대에는 금융규제완화로 부동산 거품을 키웠고, 1990년대에는 부자감세로 국가재정을 빚더미로 몰아넣었습니다. 1990년과 2011년 사이 일본의 GDP 대비 소득세 비율은 8.1%에서 5.3%로 낮아졌고, 법인세 비율은 6.5%에서 3.4%로 낮아졌습니다.
15. 같은 기간 일본 정부의 복지지출은 상당히 많이 늘었지요?
⇒ 1990년과 2010년 사이 일본의 GDP 대비 복지지출 비율은 11.1%에서 22.3%로 높아졌습니다. 22.3%는 OECD 평균(22.1%) 수준입니다. 지난 20여 년간 일본 정부가 복지지출을 확대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지 확대와 함께 추진된 부자감세는 일본경제에 치명적인 독약이 되고 말았습니다.
16. 중국 경제가 연착륙을 할 것인지 경착륙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관심이 높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중국 변수를 제외한다면 대외변수 중에서 악재보다는 호재가 많은 상황이군요?
⇒ 현 시점에서는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17. 세월호 참사 이후 애도 분위기 때문에 소비가 위축된다며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는데요. 그 내용은 어떤 겁니까?
⇒ 정부의 경기부양책 내용은 크게 네 가지인데요. 첫째, 8조 7000억원 가량의 예산을 2분기에 조기 집행하기로 했습니다. 둘째, 소비위축이 우려되는 업종에 500억원 규모의 저리융자 지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셋째, 소비위축이 우려되는 지역의 조세납부 시기를 연장해 주기로 했습니다. 넷째, 전남에 20억원, 경기도에 25억원의 특별교부세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애도 분위기 때문에 소비가 위축된다며 떠드는 정부의 호들갑에 비해서는 경기부양책이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18. 안전행정부가 매년 교부하는 특별교부세가 1조원 이상 되지 않나요?
⇒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특별교부세 총액은 1조 3149억원이었습니다. 현행법규는 이중 50%를 재난 및 안전관리에 쓰도록 하고 있는데요. 1조 3149억원의 50%면 6574억원입니다. 황당한 것은 정부가 애도 분위기 때문에 소비가 위축된다며 호들갑을 떨면서도, 전남과 경기도에 겨우 45억원의 특별교부세만 내려보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45억원은 재난 및 안전관리에 쓰여지는 특별교부세 6500억원 중 0.7%에 해당합니다. 어이없는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 소비 위축된다며 호들갑 떨면서 병아리 눈물만큼 지원한다는 것이군요.
⇒ 결국 정부와 여당의 관심사는 세월호 참사로 다소간 소비가 위축되어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세월호 참사로 급락하고 있는 자신들의 지지율이었던 겁니다.
20.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와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는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 인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국민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겁니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 한 달 전까지 정부와 여당 정치인들, 그리고 보수언론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쳐댔던 ‘무차별적인 규제완화’라는 것입니다. 또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 대기업들의 사리사욕을 보호하기 위해 기득권층들이 묵인, 조장하고 있는 ‘경제사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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