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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해법, 여기서 구하라!

[프레시안 books]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의 <끝나지 않은 혁명>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출산율이 지속되고 노인인구의 정치적 성향이 선거의 방향을 가르게 된 한국사회는 그 어떤 '선진국'보다도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징후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말까지 '적게 낳아 잘 기르자'고 가르쳤던 국가가 어느 날 갑자기 '한국은 저출산이 문제'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지 10여 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저출산을 걱정하는지는 알 수 없다. 정부도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화기본계획'을 세우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 왔지만,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초혼연령은 더 늦춰지고 출산율은 쉽사리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1인가구가 늘어난다는 보도만 미디어를 채우고 있다.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년유니온,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등 복지시민단체는 지난 4월 13일 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공원에서 노인 만민공동회를 열고 하위 70%에게 기초연금 20만 원을 먼저 지급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분명 저출산 고령화 사회 속에서 살고 있으며 이미 관련된 징후들을 목격하고 있다. 최근 대학가를 뒤흔들고 있는 대학구조조정이 한 예이다. 입학 정원보다 진학 희망자가 적어서 대학의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 상황은 앞으로 대학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도 교사를 더 충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리며 산부인과가 문을 닫기 시작한 지도 꽤 되었다. 반면 2008년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신청자가 정부 예상치를 훨씬 웃돌아 재원 부족 사태에 직면하기도 했고, '기초노령연금'은 정권의 운명을 가를 정도로 중요한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 <끝나지 않은 혁명>(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 지음, 주은선·김영미 옮김, 나눔의집 펴냄). ⓒ나눔의집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주위를 둘러싸고 포위해오는 적들처럼, 스멀스멀 스며들어 마침내 배를 기울게 만드는 물살처럼, 경제위기와 사회정책의 실패 및 불평등의 확대에 대처하려는 개인들의 인구학적 선택이 가져온 저출산 고령화 사회는 '한국'호(號)의 속도를 늦추고 항로를 이탈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위기 상황이지만, 한국호의 선장은 해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아니 해법을 찾으려는 진지한 고민도 보여주지 않는다.

복지국가체제론으로 잘 알려진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이 이 책 <끝나지 않은 혁명(The Incomplete Revolution)>(주은선·김영미 옮김, 나눔의집 펴냄)에서 풀고자 하는 수수께끼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해법이다. 그리고 다각적인 지적 탐구의 결과 그가 제시하는 답안은 '성 역할의 혁명', 즉 성평등의 철저한 실천을 통한 사회의 근본적인 전환(transformation)이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산업화 시대의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양육자'의 모델은 이제 더 이상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게 못하게 되었다. 그가 보기에 남성 생계부양자 가족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비전형 가족'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지금은 오히려 주류가 되고 있다. 북유럽을 비롯한 많은 서구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성과 나란히 노동시장에 나가며 평생 일한다. 맞벌이부부가 지배적인 가족형태가 되어 온 것이다.

에스핑-안데르센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맞벌이가족은 외벌이가족에 비해 소득수준이 높기 때문에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할 경우 가족간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사회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학력 여성들은 동질혼―사회적 배경과 계층, 교육수준이 유사한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관습―의 경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고학력 고소득 남성을 선택하기 쉬우며, 이런 부부는 저학력 저소득 부부에 비해 더 높은 소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외벌이가족이나 한부모가족, 독신가구에 비해서도 훨씬 더 높은 소득을 갖게 되며, 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시킬 수 있다.

이런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는 무엇일까? 에스핑-안데르센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는 아동의 빈곤이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는 아동의 교육과 발달에 대한 투자의 격차를 가져오고 그것은 결국 아동에게 주어지는 기회구조의 불평등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불평등의 연쇄가 다다를 종착점은 사회적 대물림이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는가 하는 사실이 인간의 일생을 좌우하는 가장 큰 구속 요인이며, 이러한 사회적 대물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현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에스핑-안데르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대물림 현상의 인과관계 메커니즘을 밝히고 있다. '돈', '시간', '학습문화'가 주요한 요인이며 특히 미취학 아동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 아동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부모의 문화자본과 학습 환경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동의 지적 발달 수준을 다르게 만들어 성인이 된 후 사회경제적 지위의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고학력 고소득의 맞벌이가족은 이런 불평등 피라미드의 상층에 있는 데 비해, 실직자가족이나 한부모가족, 이민자가족은 피라미드의 하단에 있고 아동의 삶의 기회도 제약된다. 에스핑-안데르센은 이처럼 '부모가 복권인 사회'는 공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지식경제 사회에서 구성원의 지적 역량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 지난 2010년 '세계 여성의 날' 102주년을 맞아 열린 여성 노동자 대회. ⓒ프레시안(여정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에스핑-안데르센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여성들을 일하게 하라. 그들이 원하는 수준의 소득을 갖게 하라. 노동력 문제가 해결되고 가족간 소득 격차가 축소될 것이다. 대신 국가는 아동의 양육과 교육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시도하라. 부모들이 자유롭게 아이를 낳고 경제력 차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의 부정적 효과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인돌봄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가라. 세대간 통합과 사회적 안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의 처방은 실효성이 있는 것일까? 이 점이야말로 그가 <끝나지 않은 혁명>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바이기도 한데, 이미 그의 주장을 현실화시켜온 스웨덴 등 노르딕 국가와 미국과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자유주의 레짐의 국가들,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 등 조합주의 레짐의 국가들이 직면해 온 상황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그는 노르딕 국가들이 선택한 전략의 현실적 효력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언급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는 미명 아래 낙태를 금지함으로써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부정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정부가 사용하는 정책의 이름은 '출산장려정책'이다. 실제로는 출산장려를 위한 통제정책이겠지만, '아이를 낳을 것인가? 몇 명이나 낳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부모가 될 권리와 관련된 인권의 문제이다. 국가가 강제하고 억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산지원정책'이 맞는 이름이다.)

▲ 지난 2009년 성신여대에서 열린 '행복한 출산, 부강한 미래' 특강에서 학생들이 '출산 서약' 내용을 담은 '행복 선언서'를 흔들어 보이고 있다. ⓒ성신여자대학교

여성의 노동시장 지위는?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한국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 성공여부도 지켜봐야겠지만,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제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때문에 한국사회는 여전히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당분간 그 위기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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