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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에게 맡긴 나라, '세월호 참사'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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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관료에게 맡긴 나라, '세월호 참사' 반복된다

[국가 기본의 재구축을 위하여 <4>] 정치권이 해경과 다름을 입증하고자 한다면


관료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나라

관료, 그들에게 장관이란 그저 찰나의 권력욕에 취한 부나방일 뿐이고 대통령은 기껏 '청와대 5년 하숙생'이다. 국회의원도 '4년 계약직'으로서 국회 관료의 '검토'를 받으며 행정부 일개 부처인 법제처 '유권해석'을 금과옥조로 모신다. 이 나라의 명실상부한 주인은 관료이다. 
 
적지 않은 정치인들은 관료들의 도움을 받아 지역구를 챙기면서 "만약 우리 헌신적이고 유능한 공무원이 없었다면 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기나 하겠는가!"며 찬탄하였고, 또 적지 않은 학자들이 관료들에게 프로젝트를 구걸하고자 곡학아세의 궤변을 나열하였다. 돈독하기 그지없는 재벌과의 유착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간 '대한민국호'는 치열한 민주화 투쟁으로써 마침내 독재를 물리치고 6.29라는 절반의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다. 하지만 정작 그 민주주의와 자유화의 많은 과실은 관료 조직에게 돌아갔다. 관료 조직은 자유화를 이용하여 자신들에 대한 견제와 규제는 폐기하는 대신 국민에 대해서만 규제를 적용하면서 조직을 살찌우고 권한을 급속하게 강화해왔다. 그리고 국민의 공복인 관료는 국민 위에 완벽하게 군림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국리민복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권력 쟁탈과 전리품의 자리와 이권 욕심 챙기기에만 급급했던 정치권 다수의 방조 및 적극적 협력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 역시 정치권과의 직간접적인 줄대기 구도 속에서 큰 정치 이슈에만 매달리고 한탕주의와 건수주의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 나라는 명실상부 아전이 상전으로 된 나라가 되었다.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 때보다 더 나쁘다
 
실로 반근착절(盤根錯節), 뿌리가 뒤엉키고 마디가 엉클어져 참으로 처리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우리 사회는 이순신 장군 시절보다 못하다. 당시에는 그래도 조그마한 자율성이 존재하여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관료 조직의 특징인 혼연일체의 무능과 부패 구조 속에서 만약 어느 뜻 있는 공무원이 거북선을 만든다고 하면 당장 징계 파면감이다. 이제 누가 있어 이 나라를 지킨다는 말인가!    
 
그러나 본분을 잊은 조직은 반드시 부패하는 법. 인명구조에는 철저히 무능하면서도 오직 영역 싸움으로 시종일관했던, 수영도 못하는 '무늬만' 해경인 모습에서, 오로지 자신들 '행정관료 조직'의 안전만을 도모했던 안전행정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책임과 본분은 잊고 완장을 차고서 권세만 행세하려는, 아전이 상전으로 된 관료들의 추한 민낯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고 학비전액을 지원 받으면서 국내 대학에서 손쉽게 박사학위를 따내며, 국민의 혈세로 미국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딴다. 그들이 자랑하는 화려한 스펙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또 관료 사회에는 수많은 '인공위성'이 떠다니고 있다. 기관끼리의 파견 형식으로 공무원 정원에도 포함되지 않고 편법으로 고위 관료직을 늘리는 수법으로서 동시에 이러한 관계를 통하여 '관료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이를테면, 국방대학 파견이 대표적이다. 거의 관련도 없는 국회도서관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관료 조직에서 파견된다. 퇴직 관료의 재취업 중 국방부 출신이 가장 많은 이유도 이러한 '파견 네트워크'과 무관치 않다. 

이렇게 관료들은 유일한 룰(Rule) 제정자이자 유일한 운용자이다. 관료 조직에 대한 통제 장치의 철저한 붕괴 속에서 국가 조직을 완벽하게 장악한 이들의 거침없고 끊임없는 자기세포의 증식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 사회 도처에서 암세포가 자라나고 있다. 이 환부를 도려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사망할 수밖에 없다. 

무능 부패한 관료에게 이렇게 국가 조직을 계속 독점하게 해서는 안 된다. 심각한 오늘의 왜곡과 부조리를 더 이상 젊은 세대와 후손에게 물려줘서는 안 된다. 

시민이 직접 나서 관료를 통제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번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가 그간 축적시켜왔던 왜곡과 무능 그리고 부패가 초래했다는 점에서 어느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토록 어이없고 한심한 사회로 전락되었다는 점을 몰랐다면 그 무관심과 개념 없음이 비판받아야 할 것이고, 만약 알고 있으면서도 개선을 위한 아무런 실천도 없었다면 임무 방기와 비겁함이 비판받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붕괴되어버린 관료 조직에 대한 통제 장치를 갖추는 일이다. 관료 개혁을 약속하는 대통령의 입에서 '보직관리'라는 말이 나올 때 이미 관료 개혁이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용어는 관료들이 잘 쓰는 '그들만의 용어'로서 그것을 대통령이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관료들의 논리에 이미 포획되어 있음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할 일과 할 말이 있으며, 9급 공무원은 9급 공무원의 일이 따로 있다. 
 
관료 개혁은 기술적인 개선 차원이 아니라 원칙과 기본을 바꾸는 것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관료들이 자동적으로 승진하여 독점하고 있는 3급 이상 고위직을 완전 개방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에서도 국장급 이상의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공무원 임용방식은 다원화되어야 하고 독점적 진입장벽을 무너뜨려 외부에서 언제든 진입이 보장되어야 한다. 
 
관료들이 싫어하는 것은 감사와 민원이다. 감사원 강화와 함께 국회 이전을 고려해야 하며, 특히 내부 직원들이 서로 순환하면서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운용되고 있는 관료 사회의 감사 시스템은 외부 인사가 담당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회 조직은 미국의 경우처럼 의장과 여야 원내대표의 공동 협의로 감사관을 임명하는 방식(미국 의회 의사규칙 RuleⅡ 제6조)이 바람직하다. 

한편 미국은 경찰에 대한 시민감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미국에서 경찰권의 남용을 통제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여 경찰에 대한 민원의 독립적 심사, 정책 검토와 제언, 민원조사의 감시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제도를 전체 공직 사회에 확대시켜 주인인 시민이 직접 나서 공복인 공무원을 실질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혁명이 발생하지 않는 한, 관료 집단을 관리하는 윗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정치권이다. 만약 정치권이 관료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고 오히려 스스로 그들과 돈독한 동맹세력이 되는 현재의 모습을 거부하면서 자신들의 본연의 모습을 갖춘다면 관료들이 전횡하고 발호할 수 있는 공간은 신속하게 협소해질 것이다. 물론 1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지만, 오늘의 관료 집단의 무능과 부패는 여야를 떠나 전체 정치권의 책임이다. 관료 집단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개혁은커녕 오히려 그 힘이 더욱 강화 확대되었다. 
 
그러나 무능 부패한 관료집단으로 인하여 국가와 국민의 안위와 생명이 위태로운 지금도 정치권이 오로지 당리당략과 눈앞의 선거에만 매달려 입신양명에만 골몰한다면, 참으로 의지도 능력도 그리고 존재 이유도 없었던 해경과 과연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이제 정치권은 해경과 자신들이 과연 무엇이 다른가를 증명할 때다. 그것은 국민의 편에 서서 폭주하는 관료조직에 대한 브레이크 통제 장치를 만들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전국적으로 시민들의 자원봉사와 조문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이번 참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인명 구조도 민간인 승객과 어민 그리고 민간 잠수사가 주로 수행하였다. '빌 공(空)' 자 공무원이 되어버린 관료 조직에게 이 나라를 송두리째 맡기기엔 이 나라와 국민이 너무도 위험하다. 
 
만약 정치권이 관료 개혁을 위한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최소한 시민들에게 그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무능부패 공직자의 소환파면 제도를 비롯하여 관료조직에 대한 시민감시제도, 경찰 및 검찰 수장에 대한 주민 직접 선출제도 도입, 국회에 청원실 설치 운영 등 시민들이 진정한 나라의 주인으로서 직접 관료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의 원천인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고 참여시키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며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지켜갈 수 있는 방어책이다. 또한 관과 민의 본말 전도된 갑을 관계를 정상화하고 사회의 기본과 원칙을 세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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