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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환자 0명…'해경 해체론'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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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환자 0명…'해경 해체론' 자초했다

[세월호 범죄 3대 미스테리 ③]해경의 유착 의혹

세월호가 침몰된 경위가 어떠하든, 세월호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여객선이다. 게다가 사고 현장은 연안 앞바다였다. 탑승객들 대부분이 "동요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에 순순히 따르고, 선원들이 먼저 탈출해버린 뒤에도 수백명의 단원고 학생들이 "설마 구조되지 못하고 죽기야 하겠어"라는 심정으로 구조당국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이유다.

상황을 돌이켜보면, 1차적인 구조 책임이 있는 해경이 기존에 구축했다는 시스템과 매뉴얼만 지켰어도 '생환자 0명'이 아니라, 사고 당일 '전원구조' 또는 그에 가까운 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16일 오전 9시 30분쯤 세월호가 좌현 쪽으로 반쯤 침몰한 사고 현장은 TV로 전국에 생중계될 정도여서 '구조 활동'이 즉각 활발하게 펼쳐질 것으로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두 시간 쯤 지난 뒤 '전원구조'라는 소식이 전파됐고, 오후에는 '구조인원 368명'이라는 중앙재난대책본부의 공식 발표까지 나왔다. 일각에서는 "당연히 모두 구조되는 게 정상이지, 뭐 지방선거 앞두고 정권 업적으로 삼아 홍보라도 할 태세"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해경, 구조활동의 기본도 안지켰다

그런데 해상 사고 대책을 전담하는 해경은 예산만 축내는 조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비상 사태를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 목포 해경 소속 당직함은 출동 준비에만 22분을 소요하고, 사고 현장에 도착하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
사고 현장에서 해경이 하는 구조 활동은 바다에 뛰어든 탑승객들을 건져 올리는 일 뿐이었다. 매뉴얼은 선내 수색이 기본으로 되어 있다. 제일 먼저 사고 현장에 도착한 해경은 선내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구명벌 하나만 펼치는 데 온힘을 쏟았다. 그런 행동을 고스란히 담은 동영상을 지켜본 모든 국민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며 탄식할 뿐이었다. 동영상에 찍힌 해경의 행동은 해경 조직 전체가 적극적인 인명 구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배가 완전히 뒤집히기 직전까지 배에 남아 학생 수십 명을 구해낸 김홍경 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해경이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하더라"면서 "직무유기가 아니냐"고 분통을 떠뜨렸다. 구조활동 중에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틈틈히 찍은 것도 해경이 일각일초의 구조 지원이 시급한 시각에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알리는 목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말 규명되어야 할 의혹은 해경과 민간업체와의 유착설이다. 해경은 인명 구조 전문업체도 아닌 '언딘 머린 인더스트리'라는 민간구난업체를 위해 해군의 최정예 구조요원들의 투입까지 막았다. 해군의 공식 발표다.
언딘이 어떤 업체이기에 해경이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을까? 의혹의 근거가 있기는 한 것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믿기 어려운 사실들이 전해지고 있다.

우선 언딘이 현장에 출동한 단계부터 해경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불거지고 있다. 당초 알려지기로는 세월호 소속사인 청해진해운과 언딘의 계약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경이 언딘을 동원하도록 개입한 정황이 짙어지고 있다. 이미 청해진해운이 다른 업체를 사고 현장에 출동해달라고 요청해 가고 있었는데 중도에 계약을 파기했고, 그 이유가 해경이 언딘으로 교체하도록 개입했다는 것이다. 청해진 해운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 이전에 '언딘'이라는 업체가 있는지도 몰랐다는 진술도 하고 있다. 이 의혹이 사실이면 정말 충격적이다.

언딘이라는 민간업체와 명색이 공권력인 해경 조직이 직접 유착관계를 맺을 리는 없을 것이다. 중간 매개체가 있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중간매개체로 주목받은 곳이 바로 '한국해양구조협회'다.

▲세월호 사고의 핵심은 '생환자 0명'이라는 진기록을 남긴 '몰살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부패. 무능 조직이라는 질타를 받고 있는 '해경'이 있다. ⓒ연합뉴스


민간업체 실적이 인명구조보다 우선?

한국해양구조협회는 조선사와 해운사, 민간 구난업체 등이 속한 법정 단체로 2012년 설립됐다. 언딘도 회원사다. 특히 김윤상 언딘 대표와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 김용환 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 등이 부총재직을 맡고 있다. 협회에는 해경 출신(경감급) 6명도 재취업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언딘의 지분 중 정부 관련 단체의 몫이 29.92%나 된다. 이명박 정부 때 특허청과 정책금융공사 등이 조성한 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은 것이다.

해경은 구조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해양수산부 요청으로 현장에 도착한 대형바지선도 온갖 이유를 들어 막아섰다. 해경은 뒤늦게 언딘이 소유한 바지선이 오자 곧바로 투입하도록 허용했다.

통탄스러운 점은 해군 특수요원 투입이나 해양수산부 요청으로 현장에 도착한 대형바지선도 모두 사고 해역 물살이 가장 느린 시간에 이뤄질 수 있었는데 해경이 이를 막아 '골든 타임'을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민간업체를 해난구호에 투입하는 이른바 '해난구조의 민영화'를 단행한 결과가 이렇게 해경과 민간업체의 유착으로 이어지고, 결국 해경의 존재 이유가 무너져 버렸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경의 무능력을 2012년 8월 전면 개정된 수난구호법에 규정된 "수난구호 협력기관 및 수난구호 민간단체와 협조체제를 구축"하라는 조항 탓으로만 돌리기도 힘들다.

예산 부족하다며 '골프장' 건설에 145억

해경은 늘 예산이 부족해서 자체적으로 구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호소해왔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해상 훈련을 줄이고 구조장비를 구입하지 못했다는 해경이 '해경 전용 골프장'을 건설하는 데 예산 145억 원을 책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진후 정의당 세월호 대책위원장이 공개한 2010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기름값이 부족해 해상 훈련을 줄이고 순항 경비 비용을 줄여온" 해경은 여수 해양경찰교육원에 145억 원을 들여 골프장을 지었다.

정 의원은 "더 황당한 것은 2006년 해경이 '함포사격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지 확대를 요청해놓고, 정작 함포사격장 대신 골프장을 지은 것"이라고 밝혔다.

해경은 지난 2006년 3월 해경교육원 개별 이전 유치설명회에서 "함포사격장 등의 설치가 필요하다"며 당초 50만 평이었던 부지를 2007년 4월 70만 평으로 확대 요구했다. 하지만 정작 2010년 4월 기본 설계에서 함포사격장은 '지하 시뮬레이션 사격장'으로 대체됐고, 골프장이 생겼다.
해경 내부에 세월호 침몰 사고를 일으키고 탑승객 구조도 이상할 정도로 등한시한 세월호 선원들과 세월호 소속사인 청해진해운을 비호하는 세력도 있다는 의혹도 규명되어야 한다.

세월호 침몰 사고 초기 수사를 맡은 이용욱 전 해경 정보수사국장은 91년부터 7년 동안 세모그룹에서 일하고 10년 넘게 구원파 신도였던 사실이 드러났다. 자신이 '세모 장학생'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하며 "학비 지원을 받은 적도 없다"고 반박해 왔으나 결국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다. 해상범죄와 치안을 총지휘하는 정보수사국장으로서 청해진 해운과 관련된 사건에서 그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정황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씨는 지난 97년 대한조선학회에 제출한 논문에는 "세모의 지원에 의해 수행됐다"고 명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논문은 같은 해 부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을 축약한 것이다. 또한 그해 이용욱 씨는 박사학위만으로 곧바로 해경 경정에 특채된 전력도 구원파의 인사청탁 로비가 작용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당시 '조선공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연구경력 5년 이상'이라는 자격 요건에 미달했는데도 전격 채용됐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만으로 5급 사무관급인 경정으로 특채된 사례는 96년 이후 이 씨가 유일하다.

피의자를 수사관 집에서 묵게 한 해경

해경이 세월호 수사에 소극적이라는 의혹이 무성해지는 정황은 또 있다. 해경이 사고 초기 검경합동수사본부가 가동하기 전 목포해경은 피의자 신분이었던 선장 이준석 씨를 수사관이 데려가 집에서 재웠다.

선원들은 목포해경 인근 모텔에 방 5개를 잡아줘 함께 묵게 했다. 선원들이 "입을 맞출 기회를 줬다"는 의혹을 해경이 자초한 것이다.

18일부터 가동한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조사 결과 이들이 사고 초기 한 목소리로 진술한 "승객들에게 배에서 탈출하라"고 알렸다거나 "승객 구호조치를 했다", "선내 방송이 불가능했다"는 말은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해경은 선장과 선원이 본사인 청해진해운과 통화를 했는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7차례나 통화한 사실을 밝혀낸 것도 합수부이다. 선장과 선원을 피해자처럼 다루면서, 선장을 담당 경찰관 아파트에 재우는 등 편의까지 제공한 것은 더 가관이다.

당시 해경에서 세월호 사건을 총지휘했던 이용욱 정보수사국장이 비호세력이라는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해양경찰청은 1996년 경찰청에서 독립한 이후 청장은 이른바 '육지경찰(육경)'이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해경 출신으로 사상 두 번째로 청장에 오른 김석균 현 청장도 '육경'과 다른 전문성이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김 청장도 행시 출신으로 경비함정 경험은 거의 없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경은 겉만 독립한 '부패·무능 조직'이라는 오명을 면치 못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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