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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조화' 챙기는 교육부, '127분간' 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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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조화' 챙기는 교육부, '127분간' 뭐했나

[세월호 범죄 3대 미스테리 ①] 교육 당국의 어이 없는 초기 대응

대형 사고는 어느 나라나 있을 수 있다. 여객선 침몰 사고 자체가 '후진국형 사고' 내지는 '어이 없는 일'은 아니다. 지난 주 스페인에서도 30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선에서 화재가 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침몰 사고 자체가 아니다. 왜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사고가 ‘생환자 0명’인 대형 참사로 귀결됐는가이다.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세월호와 같은 대형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보름이 지나면서 "인재(人災)에서 시작해 관재(官災)로 끝난" 비극이라는 것이 분명해 지고 있다. 더 나아가 302명이 사망·실종한 이번 사건은 재난이 아니라 명백한 '범죄'다. 편집자

4월 16일 오전 8시 10분경,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주자치경찰단 순경 김 모 씨였다. 그는 단원고로부터 의뢰를 받아 수학여행단 버스 운전자에 대한 음주 감지 및 안전 교육을 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세월호를 타고 이동 중인 단원고 수학여행단과 연락이 닿지 않자 학교에 전화, 인솔교사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 뒤 끊었다. 그로부터 42분이 지난 후 단원고 2학년 최 모 군은 전남소방본부에 세월호 침몰 사실을 알렸다.

"배가 침몰하고 있어요. 제주도로 가고 있어요."

심각한 사태라고 판단한 소방본부가 해경과 연결해 3자 통화를 하는 상황에서 해경은 소방본부가 '학생'이라고 거듭 밝혔는데도 최 군에게 "위도와 경도를 말하라"고 채근했다. 무려 4분 동안.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302명이 사망·실종됐다. 아이들이 가라앉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10시 17분. 침몰하는 세월호에 탄 학생의 마지막 카톡(카카오톡) 메시지에 찍힌 시각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고 학생이 신고한 8시 10분부터 계산해도 최소한 127분의 시간이 있었다. 아이들은 물론 상당수 어른, 교사들 역시 가라앉는 배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듣고만 있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애타는 심정으로 실종자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선박, 항공 사고는 없고 '버스 사고' 매뉴얼만 잔뜩

지난해 7월 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사설 해병대 캠프에 간 고교생 5명이 파도에 휩쓸려 실종된 사고 이후 교육부는 지난 2월 '수학여행, 수련활동 등 현장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했다.

이 자료에는 선박, 항공기 탑승 후 비상시 행동 요령이 빠져 있었다. 그간 정부가 만들어온 안전 대책이라는 것은 대부분 차량 사고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안전=차량' 사고의 도식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수학여행을 가는 해당 지역의 경찰서에 버스 운전자 음주 측정 등을 의뢰하는 등, 차량 사고 안전 예방과 관련된 매뉴얼이 담겨 있다. 이 자료에는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자주 밟는다거나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거나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세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였다. 역설적으로 이 매뉴얼은 선박 여행, 항공 여행 등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오히려 단원고 측이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띈다. "수학여행에 참여하는 인원을 4학급 또는 150명 내외"로 권고하고 있지만, 단원고는 학생 325명(10개 반)을 한꺼번에 이동시켰다. 물론 단원고 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규모 학생 이동에 대해 경기교육청과 교육부는 "매뉴얼을 지키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매뉴얼은 있지만, 매뉴얼이 지켜지는지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이 매뉴얼이 문제가 되자 뒤늦게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1일 국회 교문위에서 "(매뉴얼에) 선박항공기 탑승 후 비상시 행동 요령을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7000톤 가까운 배가 침몰하겠느냐"는 식의, '설마'하는 생각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학교, 교육 당국은 제주도 내에서 움직이는 버스 이동 등에만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수학여행 시 버스 사고가 가장 빈번하다는 데에만 몰두한 결과다. 심지어 단원고는 사전 답사 과정에서 세월호를 탑승해보지도 않았다. 항공편으로 수학여행 현장 답사만 진행했다.


▲ 교육부의 수학여행 안전 매뉴얼. 불필요할 만큼 차량 사고에 대한 안전 대책만 빼곡히 들어차 있다. ⓒ프레시안

현장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소극적이었던 교육 당국

경기도교육청이 작성한 사고일지 등을 종합해보면, 교육 당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왕좌왕했다. 선박 여행에 대한 특성조차 파악하지 못한데다, 세월호 침몰 현장의 교사들과 긴밀한 소통도 없었다. 안전 문제는 현장의 문제다. 전문가들을 동원해 실질적 현장 지휘를 해야 했지만, 교육 당국의 행보에 그런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현장에 있던 단원고 교감은 교장에게 16일 오전 8시 50분경, "배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상황 보고를 했다. 9시 16분경에는 배가 15도 정도 기울었다는 내용을 재차 보고했다. 이후 9시 30분, 단원고는 경기도교육청에 사고 사실을 보고하게 된다.

경기도교육청은 최초 침몰 신고 후 50분 가량이 지난 9시 40분경 교육부에 상황을 비로소 알렸다. 그리고 대책반을 구성했다. 9시 55분에는 "침몰 50%, 구조 120명"이라는 상황 보고만 받았다. 10시 20분경에는 수학여행 담당 부서인 교수학습지원과와 사고 대책반을 연계시켰다. 10시 20분은 학생의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가 기록된 시점에서 3분이 지난 후다.

교육부도 마찬가지다.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은 "교육부는 방송을 통해 사고 상황을 알았다고 한다. 다른 부처보다 대책반도 늦게 구성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경기도교육청은 이날 오전 11시 6분 "단원고 학생 324명 전원 무사히 구조 완료 되었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기자들과 학부모에 돌렸다. 11시 8분에는 "단원고 해경 구조 현황"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돌렸다. 이 같은 잘못된 정보의 '소스'는 어디일까. 현재 감사원은 이 문자 메시지의 '진원'에 대해 감사에 착수했다.

철저히 진상을 파악해야 할 초기의 어이 없는 대처는 현장 피해자들과 가장 가까이 있던 교육 당국의 무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50년 전 수심 2미터의 비극, 그리고 세월호의 비극

교육부가 마련한 매뉴얼은 학생들과 교사들을 위한 것이다. 서 장관은 "우리 사회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낮고, 필요한 안전 교육이 부실하다"며 "(안전 교육은) 여러 계기를 통해 강화돼 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안전교육이 전혀 안 된 것은 아니지만 미흡한 것은 사실이어서 대폭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 장관의 인식 수준이다. 그러나 사고 발생 직후 교육 당국의 대응을 보면 안전 교육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이 1일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상황보고서’를 보면, 교육 관료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보고서에는 지난 4월 27일자로 '임시분향소 VIP 조화 관리상태 지속적으로 확인'이라고 적혀 있다. 여전히 100명이 넘은 학생들이 실종 상태인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조화 관리를 지시하고 있는 게 교육 당국이다.

지난 1963년 안양의 흥안초등학교 학생 38명, 부모 11명 등 49명이 남한강 조포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뒤집혀 사망했다. 당시 아이들은 소풍을 가고 있던 중이었다. 정원 70명인 나룻배에 150여 명이 타고 가다가 난 참사였다. 이 사고가 파장을 일으켰던 이유는 당시 수심이 2미터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대낮에 수심 2미터의 얕은 물 속에서 어른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아이들은 스러져갔다.

당시에도 나루터 주변에 안전 요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학여행 안전 매뉴얼이 이슈로 떠올랐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50여 년 전 상황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 "수학여행을 안 보내는 것"이 대응책으로 제시되는 수준이다. 국회 교문위 소속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수학여행 시 안전 전문가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등, '현장' 중심적 안전 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수학여행 '최저가 낙찰제', 경비 절감이 최대 목표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 경주 미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에 이어 세월호 참사까지. 왜 학생들의 단체 여행에서 대형 사고가 잇따르는 걸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학생들의 단체 여행이 대체로 경비를 최대로 줄인 '싸구려 여행 상품'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정부 방침에 따라 가격이 낮은 여행 상품을 고르는 '최저가 입찰 제도'를 따른다. 교통 경비, 식사도 가장 저렴한 쪽으로 책정되다 보니, '안전'은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없다. 학생들 지도에도 자격 있는 청소년 지도자나 관련 전문가가 아닌 '알바생'이 동원된다. 따라서 사고가 발생해도 '안전 요원'이 선제적인 판단을 내려 조치를 취하는 게 아니라, 사고 피해자 중 한명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최저가 입찰 제도'를 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잦은 수학여행 관련 비리다. 지난 2010년 수학여행 관련 비리로 전·현직 교장 157명이 무더기 적발됐다. 이를 계기로 2010년 '수학여행서비스 국가표준(KS)'이 제정·고시 됐지만, 교육부는 4년간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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