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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푸세' 아니었다면 엉터리 안전조치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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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푸세' 아니었다면 엉터리 안전조치 막을 수 있었다

[복지국가SOCIETY] 국민의 안전과 행복, 복지국가가 답이다

지난 4월 16일 침몰한 '세월호'의 선장은 월급이 270만 원에 불과한 1년 단위의 비정규직이었다. 이 사실을 접한 대다수 국민들은 무척이나 놀랐을 것이다. 세월호의 항해사 등 선박직원 15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9명이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었고, 이들의 월급은 평균 170만-200만 원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직무가 고도의 기술과 높은 사명감을 요구하는 전문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객선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 청해진해운은 고용 관련 비용을 줄임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려 했던 것이다.
청해진해운은 18년이나 된 노후한 배를 일본에서 수입했다. 수입한 직후 개조 작업을 통해 승객을 더 태울 수 있도록 증축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사고의 원인은 충분히 내장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안전을 위한 일상적인 조치와 감독은 더욱 더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청해진해운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서슴지 않았다. 적정 화물량의 3배나 과적했고, 화물 컨테이너와 차량들을 제대로 결박하지도 않았다. 수입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노후 선박은 이미 여러 곳에서 오작동을 일으킬 개연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선사 측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정작,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이 모든 부조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장만능의 이익 추구라는 추악한 모습을 차례로 드러내고 있다.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선박은 급속하게 침몰했고, 안전 및 구호 장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선박뿐만 아니라 선박을 운항하고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선박직원들은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이렇게 되도록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다시, 국가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 4월 23일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 내 체육관에 세월호 침몰 참사로 숨진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교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프레시안(최형락)

인간의 '자연 상태'
케냐의 국립공원에는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동물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 사자나 치타가 사슴 등의 초식동물들을 사냥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야생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 육식동물의 사냥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기능이 있는 건강한 초식동물을 사냥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병이 들었거나 어리고 취약한 개체들만 사냥의 표적이 된다. 그래서 야생에서 살아가는 초식동물들은 젊고 건강한 개체들만 살아남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육식동물인 사자나 치타 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위풍당당했던 사자도 늙고 병이 들거나 다리를 다치면 맥없이 죽고 만다. 동종의 동물들 사이에서도 지배적 위치에 있는 자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나 등 뒤를 물어뜯는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먹고자 하는 욕망과 살고자 하는 욕망이 지배하는 법칙이다. 대자연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은 이런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모습을 '자연 상태'라고 표현한다면 누구나 흔쾌히 동의하게 될 것이다.
▲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사회 계약을 체결하고 근대국가를 세웠다. ⓒcommons.wikimedia.org
그런데 인간의 세상은 어떠한가? 케냐 국립공원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들처럼, 만약 우리 인간도 자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연 상태'에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실제로, 중세시대의 장원경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체제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자리를 잡기 전인 16-17세기 유럽의 인간 사회가 이렇게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년)는 당대 인간의 이런 상태를 '자연 상태'에 비유했고, 그는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는 자연이 우리 인류를 육체적·정신적 능력 면에서 평등하게 창조했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욕망과 정염은 결코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는 케냐 국립공원에 사는 육식동물인 사자의 식욕이 죄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욕망과 정염을 앞세운 인간들은 서로의 능력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상대방이 언제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충만해 있다. 이런 불신은 충돌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국 전쟁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근대인들이 비명횡사의 위험과 불안에서 벗어나 안전과 행복을 구하기 위해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상태인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래서 토마스 홉스는 근대인들이 '사회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을 지닌 근대국가를 건설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바로 이 국가가 보통 사람들의 삶이 폭력적인 죽음으로 단절될 가능성을 압도적인 힘으로 배제함으로써 국민 모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사회 상태'이다. 이렇게 해서 사회계약론에 입각한 근대국가가 등장했다.
국가의 역할
사회계약론에 의한 근대국가는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한 자유권을 누리도록 보장하는 데 매진했다. 근대국가는 사회구성원 누구나 누구로부터라도 부당하게 해침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신체의 자유'를 포함하여 사회적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계약의 법률적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계약의 자유'를 보장했고, 무엇보다도 '사유재산권'의 보호를 국가의 사명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근대국가는 18세기에 이르러 유럽에서 시민권의 첫 번째 요소인 '자유권(공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국가의 역할을 자유권(사유재산권, 계약의 자유 등)의 보장 중심으로 제한하였던 근대국가는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함께 그것의 한계와 폐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가의 역할을 자유권과 자유방임적 시장을 지키는 '작은 정부' 노선의 야경국가로 제한함으로써 빚어진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한계는 경제의 양극화와 빈곤의 심화였다. 작은 정부의 재정적 무능으로 인해 공공재는 늘 부족하였고, 노동자와 서민 등 보통사람들은 절대적·상대적 빈곤으로 고통 받으며 경제·사회적으로 완전히 소외되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자유방임 자본주의는 엄청난 수준으로 생산력의 향상을 이루어냈다. 그럼에도 이런 인류의 성과 대부분은 자본가들에게 돌아갔고 노동자와 서민들의 삶은 형편없이 열악했다. 보통 사람들이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경제·사회적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뿐이었다. 이런 게임의 룰을 법률을 통해 제도적으로 정하는 곳이 바로 '정치'라는 사실을 인식한 노동자들이 참정권을 요구했다. 이것이 바로 시민권의 두 번째 요소인 '정치권(참정권)'이다. 이것은 주로 19세기에 발달한 것으로 1918년에 이르러서야 남성 투표권이 완전하게 보장되었다.
복지국가가 중요한 이유
20세기의 전반기에 이르러서, '정치권(참정권)'의 제도화를 통해 기성 정치세력이던 보수 정당과 자유주의 정당은 노동자와 서민들의 표를 의식해서 각종 법률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를 단계적으로 확충했다. 또,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노동자 정당이 의회에 진출함으로써 노동자와 서민들의 삶의 조건이 과거보다 점차 향상되었다. 자유권과 정치권이 어우러져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으며, 그 덕분에 노동자와 서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복지의 제도화가 단계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경제를 움직이는 기본적인 원리는 여전히 자유방임 자본주의였다. 그래서 당시의 자유권과 정치권은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만 작동했고, 이것이 당시 국가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1929년 대공황이 발생했다. 당시 미국의 후버 대통령은 자유시장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장의 자기 조정' 능력을 믿고 있었다. 자유방임의 원칙에 따라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금기였다. 그러나 1933년 취임한 루즈벨트는 국가의 시장 개입을 시작했고, 이런 흐름은 스웨덴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감지되었다.

▲ <뉴스와이(Y)> 보도 화면 갈무리.

이후, 케인스(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1936년)와 베버리지(사회보험 및 관련서비스, 1942년) 등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과 스웨덴 등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첫 번째 단계였던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단계의 자본주의인 '복지국가' 자본주의 시대를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던 복지국가는 모든 인간의 문명화된 삶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권'을 제도적으로 확립했다.
20세기 중반부터 확립되기 시작한 사회권은 그 나라가 '복지국가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관건적인 것으로, 자유권과 정치권에 이은 시민권의 세 번째 요소이다. 사회권을 보장하기 위해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경제가 초래하는 '불평등의 수정'을 요구받았다. 전후 복지국가 시대를 맞아 국가의 역할이 매우 커지게 된 것이다. 토마스 홉스의 근대국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상태인 '자연 상태'에서 일상적으로 겪고 있던 비명횡사의 위험과 불안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줌으로써, 국민들이 안전과 행복을 추구할 '자유권'을 보장하는 데 머물렀다.
하지만 근대국가의 '자유권'과 이후에 확보된 '정치권'만으로는 노동자와 보통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을 제대로 보장할 수 없었다. 모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경제와 사회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서 온 국민의 '사회권'을 올바르게 보장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해야만 한다. 결국, 사회권이야말로 복지국가의 핵심적 토대라고 할 수 있다. 또, 복지국가를 통해 사회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면 국민적 '참여'의 활성화를 통해 자유권과 참정권을 토대로 구축된 절차적 민주주의가 더욱 강화된다.
복지국가가 답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정치적 민주주의 수준을 폄훼하거나 비하하는 언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누가 아무리 해치려고 해도, 우리나라의 정치적 민주주의(자유권+정치권)는 이미 견고하게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참여'의 부족이다. 특히, 저소득 노동자와 소외된 계층의 정치적 '참여' 부족은 심각한 문제이자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민주주의 또는 경제사회적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사회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결국, 사회권의 획기적 강화는 '참여'의 실질적 보장을 통해 정치적 민주주의를 보다 튼튼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의 우리나라는 시장국가에 가깝다고 본다. 자유권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도화된 절차적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의 논리를 우리사회의 지배적 담론으로 고착시켜 버렸다. 2010년 봄 이후,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이 정치사회적으로 확산되었고, 정치권에서 앞 다투어 복지국가 담론과 정책을 수용하였음에도, 여전히 우리사회는 시장만능의 상태에 머물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집권 5년 동안 시장만능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세계적 추세를 역행하면서 시장국가를 더욱 강화해버렸다.

▲ 박근혜 대통령.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정부도 '한국형 복지국가'라는 자신의 대선 공약을 정면으로 뒤집으면서 원래의 "줄·푸·세" 노선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시장의 자유'만을 강조하며 규제의 완화와 철폐를 연일 외치고 있다. 사회권을 포함한 시민권을 보다 완전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경제·사회적 규제를 강화해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복지국가이다. 지금 박 대통령이 가는 길은 복지국가가 아니라 시장국가이다. 근대국가 이래로 국가의 역할과 성격이 계속 진화하고 발전해왔던 바, 지금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국가는 사회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복지국가'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이명박 정부를 포함한 지난 수년 동안 시장국가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경주하면서 복지국가의 길을 제대로 걸어왔다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먼저, 노동권을 포함한 경제 분야의 규제와 감독의 강화로 인해 월 270만 원짜리 비정규직 선장과 월 170만 원짜리 비정규직 선박직원들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8년이나 된 노후 선박이 수입되고 증축되는 일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선박 검사와 안전 조치가 엉터리로 진행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토마스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에 근접한 세상,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상태에서 살고 있다. 돈을 위해, 이기기 위해, 우리는 지금도 분주하게 서두르고 있다. 이런 시장만능의 경쟁에서 패배하면 삶 자체가 나락으로 떨어진다. 세상의 작동 룰을 바꾸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을 바꾸면 된다. 국가가 복지국가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도록 '정치'가 법률을 만듦으로써 이를 강제하고 보장해야 한다. 사회권이 잘 보장된 유럽 선진 복지국가들은 다당제의 합의제 민주주의라는 '정치'를 통해 달성된 것이다. 시장국가 대한민국을 복지국가로 개조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온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제대로 보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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