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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공무원의 고백 "세 모녀 죽음, 못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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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사회복지공무원의 고백 "세 모녀 죽음, 못 막는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각지대 발굴단, 예전부터 있던 사람들"

지난 2월 26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가난으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세 모녀가 끝내 죽음으로서 가난을 종결지었다. 자신들의 마지막 선택 앞에서 그들은 오히려 산 자들에게 사과를 남겼다.

사각지대 발굴단, 예전부터 있었던 사람들

세 모녀의 비극 이후, 보건복지부 및 각 지자체는 황급히 사각지대 발굴 계획을 발표했다. '읍·면·동 중심의 사각지대 발굴단을 결성하여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대상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겠다'고 했다. '사각지대 발굴단'은 통장, 반장, 주민자치위원, 직능단체 회원, 각 기관의 자원봉사자, 노인돌보미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사각지대 발굴단'이라 명명하고, 우리 동네 사각지대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찾아내는 역할을 부여했다.

사각지대 발굴단이 결성되기 이전에 이들은 사각지대 발굴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을까? 아니다. 이들은 늘 지역사회 안에서 힘겹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 읍·면·동 주민센터에 '우리 동네에 이렇게 어려운 사람이 있으니, 한 번 확인해주었으면 한다'고 말씀해주시던 분들이다. 즉, 사각지대 발굴단은 이제까지 존재하던 단체(사람)에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붙여준 또 하나의 이름일 뿐이다.

특별조사, 일제조사, 전수조사…반복되는 조사들

겨울은 가난한 이들에게 매우 힘든 계절이다. 읍·면·동 주민센터는 매년 12월부터 2월까지, 추운 겨울 동안 '어려운 이웃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도움을 주라'고 당부받을 뿐 아니라, '따뜻한 겨울나기'라는 이름의 대대적 후원 활동을 경쟁적으로 벌인다. 이건 호들갑스럽게 '사각지대 발굴단'을 만들기 이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이름만 짓지 않았다 뿐, 매년 겨울 사각지대에 있는 주민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라는 공문은 위로부터 시달되어 왔다.

사실, 읍·면·동 주민센터의 사회복지 공무원은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나 계절에 상관없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지역의 저소득층을 발굴하고 상담하고 지원한다. 원래 사회복지 공무원의 본연의 업무가 그런 것이다. 어느 날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본연의 업무를 강조하는 지금의 상황은 어찌 보면 사회복지 공무원이 본연의 업무에 매진할 수 없는 현재의 구조를 드러내 준다.

▲ 2013년 3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사회복지사 자살 방지 및 인권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사회 복지 전담 공무원 고(故) 이민재, 고(故) 강민경, 고(故) 안광남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사회복지사 근조'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추모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복지 공무원의 가중되는 업무

사각지대 발굴은 매우 중요하다.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각지대 발굴단이 적극적으로 활동해 대상자를 접수했다면, 그다음 일은 어떻게 진행될까?

이때부터 사회복지 공무원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발굴된 대상자를 찾아가서 상담하고 실제 상황은 어떤지, 가장 필요한 서비스는 무엇인지 살피고 적절한 자원을 연계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 긴급복지제도는 물론이고, 대상자가 서울시 거주자일 경우 서울형 기초보장제나 희망온돌 등의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접수가 끝나면, 다음은 구청(시청) 해당 부서로 이관된다. 여기서 법적 지원 기준의 적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공적자산(금융재산 포함) 조회가 이루어지고, 자산조회 결과를 토대로 구청(시청) 사회복지 공무원이 대상자 방문 상담을 통해 사실 조사 확인 후 최종적으로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요약하면, 발굴 이후는 모든 일이 오롯이 사회복지 공무원의 몫이다. '적극 발굴'은 '적극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적극 지원'이 가능해지려면 '적극 상담'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적극 상담'은 지식과 환경(구조와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의 발굴 및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 업무를 수행하는 사회복지 공무원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대대적으로 강조한 '적극' 발굴 기간에 사회복지 공무원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매년 상・하반기에 걸쳐 두 번 시행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소득・재산 확인조사 업무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게다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부양의무자 중 금융정보제공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기존에 등록되지 않은 수백 건에 대한 금융정보제공동의서 제출 요구까지 수행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각지대 발굴 기간에도 기존 업무뿐 아니라, 새로운 업무마저 요구된다. 한편에선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수급자 및 부양의무자의 철저한 자산조사를 위한 금융정보제공동의서 제출 요구와 확인 조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주민센터 사회복지 공무원은 딱 1명

서울과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서울의 경우 주민센터는 행정민원팀과 주민생활지원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주민생활지원팀이 사회복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팀 구성은 팀장 1명, 직원 1~2명이다 (직원의 숫자는 서울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음). 주민생활지원팀은 사회복지 업무를 수행하지만, 팀장은 일반 행정직이 대부분이며 팀원 중 1명은 일반 행정직, 1명은 사회복지직 공무원이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읍면동 주민센터에 사회복지직 공무원 1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그 1명이 사회복지라는 이름이 붙은 많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정부는 맞춤형 복지실현을 위한 복지전달체계 개선 대책을 마련하여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사회복지 담당공무원 7000명을 확충하겠다고 했으나, 이 인원은 지난 10년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복지 업무를 수행하기에도 부족하다. 또한,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새롭게 배치되면, 기존에 있던 인력을 빼내는 행태들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어, 결과적으로 인력이 늘어나지 않은 곳도 많다. 일례로 S시의 경우, 신규 사회복지직 4명을 충원하면서 기존에 복지 업무를 담당하던 행정직 4명에게 비복지 업무를 담당하게 하여 사회복지 인력의 실질적인 증원은 없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충원된 복지 인력에 대해 복지 업무 이외의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으로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만 발표한다. 실제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운용에 대한 점검 체계가 없어, 현장에서는 업무량의 변화나 근무 조건의 개선 정도를 느끼기 어려운데 말이다.

▲ 2013년 3월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연 '사회복지 범정부 정책 및 담당 공무원 노동 조건 개선 요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뒤로는 '근무하기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연합뉴스

사회복지 상담 업무, 제대로 할 수 없다

2012년 4월부터 정부는 시·군·구에 희망복지지원단을 운영했다. 휴먼서비스 욕구 증대에 대응하는 공공복지 전달체계 개편이 명분이었다. 희망복지지원단은 복합적 욕구를 가진 대상자에게 통합사례관리를 제공하고, 지역 내 자원 및 방문형 서비스 사업 등을 총괄 관리함으로써 지역 단위 통합서비스 제공의 중추적 구실을 하는 전담조직이다.

희망복지 지원단 운영 이후 읍·면·동 사회복지 공무원에게는 초기 상담이 매우 강조되었다.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초기 상담을 꼼꼼히 시행하여 대상자의 생활 실태와 어려움을 최대한 파악하고 사회복지 통합관리망에 상세히 기록하며, 통합사례관리가 필요한 대상자를 희망복지지원단에 의뢰한다. 읍·면·동이라는 행정업무 중심의 환경에서 상담, 사회복지 서비스 연계 등 휴먼서비스 제공을 요구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읍·면·동 주민센터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1명이다. 직원 중 절반은 '사회복지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힘든 업무라 절대 맡아서는 안 되는 일'로 인식하고 있다. 나머지 절반은 '사회복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밀가루나 쌀, 돈을 나눠주는 일로, 나도 한때 해본 다 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자는 젊은 층, 후자는 관리자(팀장, 동장)로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의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상담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주민센터를 방문해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사방이 뚫린 책상, 끊임없이 울리는 민원 창구 벨 소리, 연달아 걸려오는 전화, 큰 소리 지르는 악성 민원들로 종일 정신이 없다. 이 북새통 속에서 상담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상담은 등본이나 초본 등 민원서류를 발급받으면서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는 것과 같은 일로 여겨진다. 그래서 민원 처리 창구 한편에 은행처럼 칸막이만 설치하여 복지상담 창구로 이용하면 사생활이 충분히 보호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창구는 상담 내용이 옆 사람에게 모두 들릴 뿐 아니라, 심지어 진지한 상담 내용을 옆 창구의 사람이 듣고 상담 도중에 끼어드는 무례한 일도 벌어진다.

물론 주민센터 한편에 상담실이 있다. 하지만 상담자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구조이며 비상벨이나 CCTV가 없고, 심지어 창고나 동장실로 쓰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자의 사생활 보호와 상담의 질을 고려하여 창고 같은 상담실이라도 이용하고 나면, '일 안 하고 어디 갔느냐'는 원성을 듣기가 일쑤다.

사례 관리: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욕구가 있는 대상자와 가족의 사회적 기능 회복을 위해 서비스운영체계를 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체계적 사정과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여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통합적 실천 방법


1961년 복지행정체계가 지금까지 그대로


보건복지부는 올해도 어김없이 읍·면·동 사회복지 업무안내 책자를 배부했다. 그 책은 우리나라 17개 부처 292개 복지사업의 핵심적 복지전달체계 역할을 담당하는 지자체에서 '복지 깔때기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적는다. 업무는 늘어났지만, 인력이나 조직, 근무여건 개선이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복지 깔때기 현상은 결과적으로 일선 복지담당 공무원들의 업무 부담을 증가시키므로, 늘어난 사업에 적합한 국민 맞춤형 복지전달체계를 구축하고 읍·면·동 복지기능을 보강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프레시안
현재 공공복지 전달체계는 1961년 제정된 생활보호법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반 행정기관인 읍·면·동사무소가 주민에게 공적인 현금 급여를 전달하는 것이 골자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복지 공무원 1인은 수백 명의 기초생활수급자 및 저소득층의 관리는 물론이거니와 찾아가는 복지, 맞춤형 서비스, 거기에 사례 관리까지 요구받고 있다. 사실상 사회복지 공무원이 더는 업무를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번 세 모녀의 비극을 접하며, 나는 1년 전 비극적 선택을 했던 나의 동료들이 떠올랐다. 두 비극적 상황은 우리나라 공공복지 전달체계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저소득층의 비극적 일이 생길 때마다 벌어지는 전수조사, 특별조사라는 이름의 각종 조사는 늘 있었고, 그 이후에도 비극적인 일들이 되풀이되어왔다.

제도의 개선과 전달체계의 개편 없이 이루어지는 특별 조사만으로는 그 어떤 변화도 이루어내기 힘들 것이다. 사각지대 발굴단의 노력으로 대상자를 발굴했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부양의무자 등 엄격한 기준을 가진 제도로는 지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읍·면·동 주민센터에 수퍼바이저(사회복지적 관점에서 대상자에게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는 선임자)도 없이 홀로 근무하며 복지라는 이름의 많은 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복지 공무원이 대상자에게 찾아가는 복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 전달체계 개편해야

우리나라 복지 예산이 100조 원을 넘었다. 그러나 늘어난 복지 예산을 수행하기 위한 인력과 구조는 너무도 미비하다. 이것은 국민에게 질 낮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사회복지 공무원에게는 반복적 소진을 가져온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죽음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각지대 발견을 위한 특별조사를 해야 하고, 사회복지 제도를 현실적으로 개선하면서 전달체계도 시급히 개편해야 한다.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찾아가는 복지,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도록 사회복지 인력을 늘려야 한다. 이와 더불어 관련 업무를 수행할 독립된 조직(전달체계)을 만들어야 한다. 시군구 단위에 보건소 형태의 독립적인 사회복지센터를 설치해야 한다.

끝으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척박한 공공복지 전달체계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애써온 수많은 선후배님께 경의를 표하며, 작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동료들의 명복을 빈다.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번 칼럼을 들으세요. (☞ 바로 가기 : http://mywelfare.or.kr/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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