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역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녹산노동자 '희망찾기', 반월시화공단노동자 권리찾기 모임 '월담', 성서공단 노동조합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녹산공단, 반월시화공단, 성서공단의 네 개 공단에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3717명 노동자의 임금 실태와 임금 요구안을 조사했다. 이 조사를 통해서 무려 42.9%의 공단 노동자가 저임금을 받는다는 사실과 낮은 시간당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해야 생활할 수 있는 현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노동자 요구에 근거하여 임금 인상 요구안을 마련하고 한국경영자총협회에 요구안을 전달하였다. 공단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안의 의미, 그리고 왜 공단 노동자들이 저임금일 수밖에 없는지, 대안은 무엇인지를 함께 이야기하고자 <프레시안>과 함께 5회에 걸쳐 기획 연재를 진행한다. <편집자>
최저임금 인상에 노동자 요구 반영하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이 저임금 굴레에 갇혀 있는 데는 정부 책임이 크다.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임금이 낮아지는 구조 속에서 일하는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이거나 최저임금을 간신히 웃도는 수준이다. 문제는 2014년 기준 최저임금이 5210원으로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임금을 받고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이번에 진행한 4개 공단 임금 실태조사에서 최저임금이 형편없이 낮다는 응답비율은 94.6%나 됐다. 추가 소득이 필요하다고 호소한 비율은 58.4%로 과반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최저임금이 너무 낮고 그에 따라 공단 노동자의 임금도 지나치게 낮으며, 이는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라고 보기 어렵다는 '항변'을 강하게 담고 있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 구조에는 저임금 노동자의 요구가 반영될 통로가 없다. 노동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이 각각 요구안을 내면, 공익 위원들이 적정 수준에서 조율하는 방식이다. 최저임금에 물가 인상률도 반영한다고 하지만 이는 매우 형식적인 과정에 불과하다. 결국 최저임금은 항상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책정됐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잔업과 특근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는 주당 51.9시간, 최저임금을 간신히 웃도는 임금을 받은 노동자들은 주당 47.8시간 일하고 있었다.
이번 4개 공단의 실태 조사에서는 최저임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직접 물었다. 공단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희망 최저임금은 6966원(월 145만3000원)으로 너무나 소박했다. 우리나라 평균인 3인 가구 기준으로 법원에서 책정하는 최저 생계비가 2013년 기준 189만 원이다. 희망 최저임금은 따라서 사실 매우 적은 금액이다. 이러한 결과에는 이 정도가 되지 않으면 생계가 불가능하며, 적어도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임금은 당연하게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2015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는 당연하게 저임금 노동자들의 요구가 담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까지처럼 노동자들의 삶과 생계를 고려하지 않은 최저임금이 결정된다면,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저임금을 유지하는 정부 정책
정부의 임금 정책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여러 가지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간주하고 임금을 낮추는 정책들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자신을 방어할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은 임금 하락을 막아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난 이후 고용노동부는 앞장서서 ‘노사지도지침’을 발표했다.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 상여금은 정기적으로 지급하더라도 고정성이 없어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골자다. 이러한 지도지침은 기본적으로 사용자에게 유리한 것이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지침에 발표된 이후 공단 사업주들은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방법으로 재직자들에게는 정기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하거나, 상여금을 줄이고 임금 체계를 포괄임금제로 바꾸는 등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는 노동자들의 초과근로수당이 낮아지는 것이다. (☞ 관련 기사 보기 : <"어느날 갑자기 월급 깎였다…통상임금 때문에">, <"노동부, 월급 깎는 방법 사장들에게 알려주나">)
정부는 공단 노동자들에 대한 중간착취도 눈감고 있다. 공단 노동자들은 파견으로 일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지난해 5월부터 한 달간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에 응한 총 623명 중 파견업체 노동자는 37.9%, 용역업체 노동자는 36.9%였다. 응답자 중 75%가 간접고용 노동자였던 것이다.
파견이 확대되면 자연히 중간착취가 일상화되고, 동시에 임금도 낮아진다. 원청업체 입장에서 보면, 쉽게 노동자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파견회사를 활용하는 것이며, 원·하청 연쇄 고리의 최말단에 있는 사업주는 임금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파견 노동자를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보기 : 매일 아침 벌어지는 기괴한 '인간 경매', "이름도 몰라요")
공단 내 파견은 보통 제조업체에 노동자들을 파견하는 것으로서 불법 파견일 가능성이 높다. (현행 파견법은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에 파견 노동자를 쓰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다만 일시·간헐적 사유가 있을 때에만 3개월(1회 연장 가능) 파견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편집자>)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간접고용을 없애려기 보다는 ‘고용서비스 활성화 법안’ 등을 만드는 등 오히려 간접고용을 활성화하려고 한다.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생계를 보전하기 때문에 잔업과 특근이 많은 사업장으로 자주 이동한다. 그러다 보니 파견업체 등 고용을 중개해주는 업체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렇게 고용을 중개해주는 업체들이 만연함에 따라 여전히 저임금 구조가 유지되는 상황에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공적 고용 서비스를 줄이고, 민간 고용 서비스를 활성화하려고 하는 정부 정책이 간접고용을 확대하고 저임금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생활임금 요구는 전 세계적인 추세
저임금은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한다. 저임금으로 인해 공단 노동자들은 긴 시간 일해야 하고, 가족과 함께 지낼 수도 없고, 문화 생활을 누릴 수도 없다. 재작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발표한 ‘공단실태 조사결과’를 보면 일을 마친 후에 피로와 함께 심신이 녹초가 됨을 느끼는 경우가 응답자의 42.5%에 달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서 무리하게 잔업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도 잔업·특근으로 생계를 보전하지 않도록 임금이 인상되어야 한다.
이제는 ‘안정적으로 생활할 만한 임금’을 요구해야 한다.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로, 대체로 법정 최저임금을 인상하자는 요구로 나타난다.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는 최저임금을 7.25달러에서 10.10달러(약 1만600원)으로 인상하는 법안이 지난 7일 통과됐다. 코네티컷 주에 이어서 두 번째다. 이에 따라 빈곤선 노동자들의 10%가 빈곤에서 벗어날 것을 기대한다고 한다. 이러한 성과 역시 미국 내 생활임금 쟁취 운동이 지속한 결과다.
전미서비스노조(SEIU)와 지역 사회운동은 ‘좋은 일자리 캠페인’을 통해서 소득 불평등과 정부 역할을 제기하며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올리자는 운동을 벌여왔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최저임금 주민 발의안이 통과되는 지역들이 생겨났다. 뉴저지주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8.25달러로 인상하고 인플레이션에 연동하는 주민 발의안을 61%의 찬성으로 승인했고, 워싱턴주 시택시 등에서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는 안이 통과되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치솟는 물가와 그에 따른 고통으로 최저임금 인상 요구가 높아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해 11월 약 300만 명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50%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벌였다. 9월 말에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5만 명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6일간 파업을 진행, 그 중 1만 명은 고속도로를 점거하며 강력한 투쟁을 벌였다.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에서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임금 인상을 이루는 데 주요한역할을 했다.
물론 이런 최저임금 인상 투쟁은 기업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캄보디아 정부는 최저임금을 100달러로 올릴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시위를 유혈 진압하고 이에 더해 기업들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100여 명에 대한 해고 등 강경 대응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짓밟고 있다. 이런 탄압이 약진통상 등의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노동자들의 삶보다는 기업 이윤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한국 기업의 행태가 캄보디아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인상하기 위한 세계 각국 노동자들의 요구는 더는 멈출 수 없으며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조직되어야 생활임금 권리 찾을 수 있다
최저임금은 단지 최저임금일 뿐이다.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임금의 최저선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고착시키는 구조를 없애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높이려면 우선 공단 노동자들이 조직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뭉치고 요구하지 않으면 공단 노동자 임금은 법정 최저임금 수준에 고착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공단 노동자들이 조직된다 함은 개별 사업장별로 노조를 만들고 개별 사업주를 대상으로 임금 인상 투쟁을 하는 모양은 아니다. 원·하청 구조의 말단에 위치한 중소·영세 사업주들은 노조를 만들면 폐업을 하거나 기업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따라서 가능한 한 기업을 상대로가 아니라 공단 사용자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섭을 성사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단 노동자 전체가 집단 조직화 되어야 한다.
공단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조직되면 더 나아가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도 노동 조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요구할 수 있다. 산업단지관리공단을 상대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는 업체에 불이익을 주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이 단지 임금으로만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즉 다양한 수준의 복지, 보육 서비스, 교육, 문화 등을 지자체에 요구할 수도 있다. 부당하게 중간착취를 하는 불법 파견을 없애고 공공 고용 서비스 기관을 확충하라고 정부에 요구할 수도 있다.
공단 노동자들은 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공단 어디나 다 저임금이고, 기업 형편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임금 인상보다는 장시간 노동에 더 기댄다. 파견업체를 통해 이 기업 저 기업으로 이동해 다니는 노동자들로서는 누구를 향해 자신의 노동조건을 높이라고 요구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저임금을 강제하는 구조는 대단히 복잡해 개개인이 대응하기 또한 어렵다.
그러나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살 수는 없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생활할 만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 저임금을 만드는 구조는 복잡하고 노동자들은 아직 뭉치지 못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이 조직되기 시작한다면 저임금의 굴레를 벗고, 생활임금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
□ [저임금 공단의 오늘]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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