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또 대형참사가 일어났습니다. 16일 아침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을 태운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에서 침몰해 수백 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라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대형 참사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근본 원인은 무엇입니까?
⇨ 후진국형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사회시스템 자체가 ‘후진국형’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대다수 언론은 이번에도 모든 책임을 승무원들과 선박회사에 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요. 그들의 책임 또한 매우 크지만, 그와 같은 표피적인 접근으로는 앞으로 계속 일어나게 될 후진국형 대형참사를 막아낼 수 없을 겁니다.
2. 앞으로 계속 후진국형 대형참사가 일어날 것이라 했는데요. 그렇게 보는 근거가 있나요?
⇨ 대형참사의 근본 원인을 찾지 않고 땜질 분석, 땜질 처방만을 남발하면 앞으로도 계속 후진국형 대형참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동안 언론들은 대형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그 원인을 안전 불감증에서 찾았는데요. 안전 불감증이 만연하게 된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습니다. 안전 불감증이 만연하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솜방망이 처벌’입니다. 그럼 솜방망이 처벌이 만연하게 된 근본 원인은 또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 기득권층들과 그들의 비호를 받고 있는 기업들이 그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정부와 정치권의 기득권층들은 안전을 경시하는 기업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나요?
⇨ 우리나라 기업들이 유난히 안전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안전을 중시하는 것보다 경시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큰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공사를 하는 어느 기업이 있다고 합시다. 이 기업이 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추면 20억 원의 비용이 들고, 근로자 산업재해 사고가 나면 5억 원의 보상 비용이 들며, 정부 단속에 적발되면 500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합시다. 이윤 극대화를 가장 큰 목표로 하는 기업체들은 이런 경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2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하고자 하는 강한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안전을 경시할 경우의 예상 비용이 안전을 중시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크도록 법규를 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기득권층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이 간절히 지켜주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4.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OECD 최악이라는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겠지요?
⇨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09년에 발표한 보고서, ‘OECD 국가의 산업재해 및 사회․경제활동 지표변화에 관한 비교연구’에 따르면 2006년 우리나라 근로자 10만명당 사망자 수는 21명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OECD 회원국 평균은 4.5명이었고 중위값이 3.6명이었는데요. 이들 수치에 비춰 보면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OECD 회원국 평균보다 4.7배 많았고, 중위값보다 5.8배 많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많은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기득권층들이 지나치게 기업 편향적인 정책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정부와 정치권의 기득권층들이 기업 편향적인 정책을 남발하는 이유가 뭔가요?
⇨ 사회과학자들은 후진국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연고주의’를 지목합니다.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을 중시하고, 연고를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며, 그 파벌의 힘이 정치권력을 좌우하는 퇴행적인 사회시스템이 후진국 사회의 대표적인 특징인데요.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 사회시스템이 이런 후진국형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어떤 기업이 큰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능력있는 인재를 채용하기보다는 혈연, 지연, 학연이 튼튼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합니다. 기업들이 능력과 무관하게 세칭 명문대 출신들을 채용해서 그들의 혈연, 지연, 학연을 활용하면, 그들이 든든한 방패가 되고 떡고물 쟁탈전의 전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대기업들은 ‘연고 구축’에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하고, 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이 정부와 정치권의 권력층이 되도록 또 많은 에너지를 투입합니다. 대기업들이 이와 같은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한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정부와 정치권의 기득권층들이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하수인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기업의 이윤을 더 중시하는 법규 시스템을 만들게 됩니다.
6. 정치인들 중에는 소수지만 개혁적인 사람들도 있지 않나요?
⇨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대한민국을 전일적으로 지배할 수 없기 때문에 소수지만 개혁적인 정치인들이 출현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습니다. 대기업들이 대한민국 지식인 사회를 80~90% 이상 장악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언론의 상층부를 포함, 대학과 국책연구소, 그리고 민간연구소 대부분도 대기업들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대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대한민국 지식인 사회를 80~90% 이상 장악한 사회에서 소수의 개혁적인 정치인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7. 다른 나라들은 기업들의 대형 사고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 미국을 보면 대형 사고를 유발한 기업 CEO들에게는 ‘사회적 매장’에 가까운 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회계부정을 저지른 기업 엔론의 전 CEO는 종신형에 가까운 2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싱가포르에서도 고위 공무원이나 공기업 종사자가 부정비리를 저지른 경우 ‘사회적 매장’에 가까운 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 양국의 공통된 특징은 사회 지도층에 대한 처벌 수위가 서민들보다 더 높다는 것인데요. 그것은 이들의 부정비리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서민들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 풍토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 천민자본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고위험 고수익, 저위험 저수익 원칙이 관철되지 않는 자본주의’는 썩어 있는 자본주의입니다.
8. 지난 2월에 일어났던 경주리조트 참사 때도 대다수 언론들은 문제의 근본원인을 찾기보다는 모든 책임을 개별 기업에 전가하기에 바빴지요?
⇨ 대다수 언론사 상층부가 그렇게 하는 것이 기득권층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대형참사 원인을 개별기업 부주의로 돌리고, 근본적인 대책은 고민도 하지 않고 또 있다 하더라도 서둘러 땅에 묻어버리는 겁니다. 이번에도 대다수 언론들은 대형참사 원인을 개별기업 부주의로 돌리려 하고 있는데요. 그와 같은 표피적인 인식은 또 다른 대형참사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9.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사고를 막으려면 어떤 방식의 근본대책을 세워야 합니까?
⇨ 먼저 기업들로 하여금 국민 안전에 관한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게 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 승무원들의 안전사고 대처 능력이 바닥에 추락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황당한 일이 왜 일어났을까요?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기업들의 사소한 이익을 더 챙겨주려는 기득권층들의 노력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겁니다. 즉 ‘기업들이 승무원들의 안전사고 대처 능력을 키우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덜어 주려는 기득권층의 노력이 대형 참사를 낳은 겁니다.
10. 대다수 언론들은 새월호의 소유주인 청해진해운이 법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 이번 참사가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 당연히 업체가 법규를 제대로 준수했으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그와 같은 주장은 하나마나한 주장입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원인 분석을 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솜방망이 처벌이 수반되는 법규는 별다른 실효성이 없습니다. 또 참사가 터질 때마다 사안별로 보완하는 법규 또한 앞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질 대규모 참사를 막아내지 못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일어날 대규모 참사를 막으려면, 안전에 관한 법규 전체를 모두 검토해야 하고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해야 하며 처벌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 수 있고, 또 대형참사를 근본적으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11. ‘행정규제기본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의 목적과 내용이 규제완화 일변도로 되어 있어서 제대로 된 규제개혁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규제는 특정한 공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법령, 조례, 규칙 등의 규정 사항을 말합니다. 따라서 좋은 규제는 더욱 강화해야 하고 나쁜 규제는 축소하거나 철폐해야 합니다. 그런데 행정규제기본법 제1조(목적)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법은 행정규제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여 불필요한 행정규제를 폐지하고 비효율적인 행정규제의 신설을 억제함으로써 사회·경제활동의 자율과 창의를 촉진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경쟁력이 지속적으로 향상되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처음부터 이 법은 규제완화만을 전제하고 만든 매우 편향적인 법입니다. 이와 같은 편향적인 법으로는 제대로 된 규제개혁을 할 수 없습니다.
12. 최근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기업들의 사소한 이익을 더 챙겨주기 위한 규제완화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 현 정부의 청개구리 행태는 단연 올림픽 금메달감입니다. 지난해 9월과 10월, 금융감독 부실로 동양그룹 사태가 터지자, 정부는 그 책임을 모두 동양그룹에 전가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태 직후 2~3개월 동안 금융산업 규제완화와 철도산업 규제완화, 그리고 의료산업 규제완화를 동시다발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또 올해 1월과 2월 역시 정부의 감독 부실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지고, 경주 리조트 참사가 터지자, 이번에도 역시 그 책임을 모두 개별기업에 전가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태 직후 1~2개월 동안 규제가 “암덩어리”이자 “쳐부술 원수”라며 규제완화에 올인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어떤 행태를 보일까요? 또 어느 지하에서 대규모 규제완화를 준비하고 있을까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13.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있을 수 없는 사고 아닌가요?
⇨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 기득권층의 탐욕이 낳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혹은 살인 미수’입니다. 정부가 대형선박에 대한 관리감독만 제대로 했더라도, 또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으로 하여금 이윤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더 중시하도록 유도하는 법규만 만들었어도, 이번 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기득권층의 탐욕으로 인해 꽃다운 나이의 고교생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기득권층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반성을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개별기업만의 탓이라 생각하고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후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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