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가 지난 2008년 미국 대통령에 처음 당선했을 때 한국인들은 대단히 열광했다. 같은 해에 당선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보다 훨씬 인기가 높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바마가 걸어온 길이 고난을 겪고 극복한 한국인들의 운명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식민지 지배와 분단-전쟁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괄목할만한 민주공화국을 일궈낸 한국인들의 간절한 소망을 도와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 소망은 분명했다. 조지 부시 전임 미 대통령 임기 내내 지지부진했던 남북관계를 진전시켜달라는 것이었다. 비록 다루기 까다로운 북한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북핵문제와 씨름해보자는 것이었다. 북한을 직접 방문까지 하려 했던 같은 당(민주당)의 전임 클린턴 대통령의 신념을 이어받은 오바마 대통령이었기에 그런 기대를 걸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기대는 어긋났다. 오바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문제에 매달려 동아시아와 한반도 문제에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북한 핵무기 및 미사일의 보유량 비축과 고도화가 불길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6자회담은 개최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무시당한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이어갔고 한반도 위기는 일본의 재무장-극우정권의 등장의 구실로 이용되었다. 2011년에 천명된 오바마의 ‘아시아중시정책’(Pivot to Asia)은 중동으로부터 철수하는 미 군사력을 아시아에 재배치하려는 전략이고 경제-군사 강국으로 등장하는 중국을 가두려는(hedging) 정책이다. 그 군사전략의 현장 맞춤형이 일본의 재무장이고 미-일-한 군사안보동맹이다.
비록 중국이 아직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고 사회체제가 서방과는 다르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고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있는 이상 다른 이념체제이기 때문에 적대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중국에 적대하는 이유는 중국이 시장경제를 통해 경제-군사 강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견제-억압하려는데 있다. 미국의 중국봉쇄전략에 냉전 시대의 동맹국들인 일본과 한국을 군사안보동맹으로 다시 결속하려는 데 무리가 따르고 있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직 과거사왜곡 문제와 영토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비록 분단되어 있었지만 1990년 이후 탈냉전 시대에 분단국의 불리한 조건을 가장 유리하게 활용, 단시일 안에 세계 유수의 교역국으로 성장했다.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동유럽 등 이전의 사회주의 국가들에 진출하여 시장경제의 전도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 한국이 미-일-한 군사안보동맹의 진영에 묶여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세력과 절연을 강요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대륙과 해양에 걸쳐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을 다시 빼앗기고 지난 4반세기 동안 쌓아온 무역중계항의 위치를 상실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인에게는 1910년의 일제의 식민지배 강요, 1945년의 분단 강요를 상기시키는 사례와 다름없는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4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현 정부와 여야 그리고 시민사회는 한국의 국익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이번 회담의 의제(Agenda)와 가이드라인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1. 한국은 북한의 남침을 막는 데 버팀목이 되어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족하다. (중국 등) 더 이상의 적대세력을 상정하는 군사안보동맹에는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
2. 일본이 영토적 야심을 버리지 않고 과거사를 왜곡하며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상, 일본과의 모든 군사적 협력은 배격해야 한다.
3. 우리 동맹국 군대인 미군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는 어떤 형태의 군사조치에도 반대해야 한다.
4. 북한의 핵과 미사일 보유량 비축과 고도화를 저지하기 위해 6자회담을 시급히 재개해야 한다.
5. 전시작전통제권은 2015년에 정상적으로 이양되어야 한다. 한국군이 작전통제권을 보유할 때라야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실질적으로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재개해야 한다. 감사원의 감사가 필요하다.
7. 남북대화는 정상화되어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 그리고 이산가족상봉은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그를 위해 5.24 대북봉쇄조치는 단계적으로 풀려야 한다.
8. 중국-러시아의 합작사업인 산둥 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에 한국은 하루빨리 중국 측과 참여문제를 협의해야 한다. 5월 중-러 정상회담 이전에 참여문제가 결정될 필요가 있다.
9. 시베리아 횡단철도(TSR)과 한반도 종단철도(TKR)의 연결, 블라디보스토크-원산-속초 가스파이프라인의 DMZ 통과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10. 이상과 같은 한국정부의 입장을 오바마 미국 대통령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정부와도 선별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는 동맹관계를 이어갈 뿐 아니라 새로운 친구 중국과도 선린우호 관계를 맺어간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한국은 급속한 통일을 성취하려는 욕구가 한반도를 둘러싼 이웃 나라들의 불안과 경쟁을 유발할 우려가 큰 만큼 남북 평화공존과 동아시아 평화경제공동체(경제연합)를 추구해나갈 것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동아시아 순방이, 특히 한국방문이 동아시아인들과 한반도 주민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선사하는 여행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군사력 위주의 군사동맹보다는 평화, 인권, 민주주의, 시장교역 등 미국의 전통적 가치들에 기초해야 이 지역과 오랜 선린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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