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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타쿠', 한국 '오덕' 저리 가라! 중국 '수집가' 납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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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본 '오타쿠', 한국 '오덕' 저리 가라! 중국 '수집가' 납신다

['증서'의 대가] 쉬산빈의 <결혼을 허하노니 마오쩌둥을 외워라>

완물상지(玩物喪志)란 말이 있다. 좋아하는 어떤 사물에 빠져 뜻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완물상지하면 떠오는 인물이 있다. 바로 북송시대의 유명한 서예가이자 화가인 미불(米芾)이다. 그는 돌을 사랑하는 정도가 지나쳐 거의 광인의 수준에 도달했다. 지방의 관리를 하면서 영벽(靈璧)이라는 신기한 돌을 수집하는데 정신이 팔려 본래 업무를 제쳐두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추하게 생긴 돌에다가 형이라고 부르며 절을 하기도 했으니 그가 얼마나 돌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돌 뿐만이 아니라 글씨도 좋아했다. 하루는 동진시기의 서예가 왕헌지(왕희지의 아들)의 행서첩을 소장하게 된 미불의 한 친구가 미불을 집으로 초대해 같이 감상하기로 했다. 미불은 왕헌지의 자유롭고 호방한 글씨를 보는 순간 그 글씨가 탐이 나서 꾀를 썼다. 미불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술을 연거푸 몇 잔 들이키더니 친구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괴로워서 살 수가 없으니 굴원을 따라 강에 뛰어 들어 자결해야겠네. 자네와 이제는 마지막일세."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불의 돌발적 행동에 놀란 친구가 황급히 그를 붙잡아 자리에 앉히고 그 연유를 묻자 미불이 대답했다. "이제까지 나는 많은 명작을 소장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단 한 점도 이 작품에 비할 수 없으니 더 이상 세상을 살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친구는 왕헌지의 행서첩을 미불에게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

도학자의 기준으로 보면 이런 미불은 확실히 완물상지한 인물이다. 다른 한편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미불의 경우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뜻을 상실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벽(癖)이 없는 사람은 깊은 정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귈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 <결혼을 허하노니 마오쩌둥을 외워라 - 생활문서로 보는 중국백년>(쉬산빈 지음, 이영수 옮김, 정은문고 펴냄). ⓒ정은문고
이 책 <결혼을 허하노니 마오쩌둥을 외워라>(이영수 옮김, 정은문고 펴냄)를 읽다보니 저자 쉬산빈(許善斌) 선생이 옛 "종이쪼가리"들과 얼마나 깊은 정을 나누었는지 절절히 느껴진다. 여기서 옛"종이쪼가리"란 각종 증명서나 면허증, 초청장, 표 등을 말한다. 이런 것들에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종이쪼가리에 불과하지만 그에게는 첫사랑 연인이 남긴 사랑의 징표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문적인 역사학자도 아닌 그가 2006년에 쓴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어떻게 "생애 말년 10여 년을 이런 증서들을 수집하느라 돈과 정신력과 체력을 모두 다 소비"할 수 있었겠는가. "완물(玩物)"도 이런 "완물"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모은 증서에 해설을 덧붙인 책을 남기고 몇 년 전에 고인이 되었으니 "노년이 장차 이르는 것도 모르고" 옛 문서를 음미하는 즐거움에 빠졌다고는 할 수 있어도 "상지(喪志)"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그는 이번에 번역된 이 책 이외에도 3권의 책을 더 남겼다.

산둥성의 한 작은 지방의 문화관의 간부였던 그가 1974년에 작은 언론사에 근무하게 되면서 베이징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그리고 판자위엔(潘家園)이라는 곳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 곳은 우리로 치면 황학동의 벼룩시장이나 인사동 같은 곳이지만 중국 최대의 중고시장이니 규모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1992년부터 형성된 곳으로 옛 물건이나 골동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성지와 같이 황홀한 곳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새벽부터 문을 여는데 나도 두 번 가본 일이 있다. 관심이 가는 것 중에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것은 눈에 차지 않고, 사고 싶은 것은 대개가 너무 비쌌다. 더구나 흥정 실력도 없으니 물건만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하다가 돌아왔지만 엄청난 규모의 시장에 있는 신기한 물건을 구경하느라 정신없이 거닐었던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

그가 판자위엔을 드나들면서 옛 증서들에 주목하게 된 것은 애초에 무슨 고상한 목적 때문이 아니었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와중에서 너도 나도 돈을 벌기 위해 장사에 뛰어들던 시절, 마침 옛 물건을 수장하는 붐이 불기 시작할 때 그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투기적 목적으로 옛 물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결국 비교적 값도 저렴하고 다른 사람이 주목하지 않는 증서를 모아 수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세상 일이 간혹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듯이 돈이 될 만한 '물건'을 구해 생활이 풍요로워지기는커녕 옛 "종이쪼가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 그는 생애 말년의 10여년의 시간과 퇴직 연금 중에 20여만 원(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000여만 원)이라는 거금을 바치게 된다. 가난한 지식인의 변변치 않은 살림에서 퇴직 연금을 쪼개 한 장 한 장 흥정해가면서 저 증서들을 구했을 정경을 상상하니 책 속의 사진들이 애틋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해서 구한 증서가 도합 3000여 장. 그 중에 300여 장을 골라 그것을 혼인증서와 이혼증서, 졸업증서, 교사 자격증, 기녀 계약서, 전족과 아편 관련 증서, 복권, 입장권, 초청장, 교통 관련 증서, 통신표로 분류하고 거기에 간략한 해설을 덧붙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다만 우리 말 번역본은 원서의 이런 분류와 순서를 무시하고, 청말에서 민국에 걸친 시기와 중화인민공화국 시기로 크게 대별해서 각 시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붙인 연후에 각 시기별로 재편집하는 방식을 취했다. 중국의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한국의 일반 독자를 위한 출판사의 "배려"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원래의 방식이 더 일목요연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일이 대조해보지는 않았으나 읽다가 걸리는 부분을 대조해보니 번역을 생략하거나 충실하지 않은 부분이 꽤 있었다. 번역자가 그랬는지 출판사에서 손을 댄 것인지는 알 길을 없지만 아무런 언급이 없이 그렇게 한 것은 아무튼 정직한 태도는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한 증서들은 어떻게 보면 보잘 것 없는 작은 증서나 표에 불과하지만 거대하고 도도한 역사가 남긴 생활의 생생한 흔적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중에서 몇 개만을 언급하자면 먼저 청말 광서 34년(1908년)에 산시사범학당에서 발행한 졸업증서(44쪽)를 들고 싶다. 과거제를 폐지하고 서양의 근대적 학제를 도입한 이후 세워진 사범학당은 졸업하면 초등학교의 선생님이 될 수 있는 학교였으므로 지금으로 치면 교육대학 같은 곳이겠다.

이채로운 것은 졸업증서가 신문을 펼친 것처럼 크고 학생기록부처럼 성적도 적혀 있다는 점이다. 서양의 근대적 학제를 도입했지만 졸업장에서만은 "중국적 특색"이 넘치고 있다. 이 증서는 당시 100여 장이 인쇄되었지만 현재 네 장만 남아 있다고 하니 귀중한 자료다. 작가인 쉬산빈 선생이 가장 좋아했다는 문서이기도 하다.

▲ 산시사범학당 졸업증서 ⓒ정은문고

다음으로 140년 전의 혼인증서의 겉장이다.(86쪽) 하늘이 이어준 인연이라는 뜻의 천작지합(天作之合)이라는 글자를 반쪽씩 찍어 신랑 신부가 각자 보관한 것이다. 오늘날 어떤 결혼서약서보다 운치가 있고 정감이 넘친다. 과거의 문화가 현재의 문화보다 늘상 낙후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 이 작은 혼인증서의 겉장이 시각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 140년 전의 혼인증서의 겉장. ⓒ정은문고

루쉰의 모친 부고장도 관심이 간다.(102쪽) 이 책에서는 루쉰의 부인 난에 정신적 동반자이자 실질적 부인이었던 쉬팡핑(許廣平)이 아니라 본처인 주안(朱安)이 적혀 있이 적혀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지만 나는 자식의 성명 배치에 동생인 저우쭤런(周作人)이 형인 저우수런(周樹人, 루쉰의 본명)의 앞에 적혀 있다는 점이 눈에 걸렸다. 당시 루쉰은 비록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모친의 부고장을 쓸 때 동생의 이름을 형보다 앞에 배치하는 것이 과연 예법에 맞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생전에 절교한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 루쉰 모친의 부고장. ⓒ정은문고

마지막으로 이혼증서(294족)와 결혼회복증(296쪽) 같은 증서도 매우 재미있다. 이런 증서도 있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무튼 이런 증서는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결혼을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이혼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남녀평등이 비교적 잘 실현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한다.

▲ 이혼증서. ⓒ정은문고
▲ 결혼회복증. ⓒ정은문고

쉬산빈은 다른 글에서 "수장가(收藏家)는 역사학자를 도울 책임이 있다. … 역사의 증거를 발굴하는 것은 단지 역사를 전공하는 '정규군'에만 의지해서는 안 되고 수장을 하는 '유격대'와 서로 협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수장가는 사회의 각 구석에 편재해있어서 '정규군'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자신의 수장 작업의 의미를 피력한 적이 있다. 이 책은 '정규군'의 작업이 아니어서 중량감은 떨어지지만 그들이 관심이 없거나 발견하지 못한 과거 '역사'의 진면목을 소소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우연한 산책을 즐기듯이 이 책을 펼친다면 중국 근현대의 살아있는 미시사와 마주하는 의외의 만남을 기대해도 좋다. 이는 모두 작가 쉬산빈 선생의 '완물'했지만 '상지'하지 않은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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