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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에서는 정당공천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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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에서는 정당공천이 필요 없다

[박동천 칼럼] 기초공천 소모전, 정당개혁의 발판이 되려면

기초 자치단체 선거 무공천을 둘러싼 작은 소동이 일단락되었다. 이 소동을 통해 한국의 개혁 세력은 스스로 얼마나 무능한지를 보여줬다. “공천권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 자체는 올바른 것이었지만, 무공천이 해법일 수는 없다는 진실을 처음부터 외면한 데서 무능력이 시작되었다.

선거 민주주의는 복수 정당제 없이는 생각할 수조차 없고, 후보를 내지 않는 정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정당의 공천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면 기초 선거만이 아니라 광역 선거, 나아가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에서도 정당 공천을 하지 말자고 주장했어야 했다. 나머지 선거에서는 모두 정당 공천을 당연시하면서 공연히 기초 선거에서만 공천을 금지하자는 소리는 기초 의원들을 을로 보는 갑의 전횡에 불과했다.

공천제도의 개혁은 기초 선거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광역 선거, 국회 선거, 대통령 선거에서도 모두 필요하다. 기초 단위에서 유권자 및 당원들의 의사를 어떻게 수렴하느냐는 문제는 광역 선거와 국회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 및 당원들의 의사를 어떻게 수렴하느냐는 문제와 똑같은 문제다. 본선에서든 예선에서든 선거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결국 기초 단위에서 참정권을 행사하는 유권자와 당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천 제도가 문제라면 제도를 고쳐야지 기초 선거 무공천이 답일 수 없다”는 주장이 처음부터 옳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어쨌든 이제라도 옳은 목소리를 듣고 따르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과연 가능한 선택지가 둘뿐이었을까? 전국적으로 기초 선거에서 공천을 하든지 아니면 전국적으로 공천을 안 하는 두 개의 대안밖에 없는 것일까? 

누구나 다 아는 현실을 감안하면, 호남과 영남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천을 하든 말든 선거 결과에 큰 차이가 없다. 호남의 경우, 공천을 하게 되면 본선의 의미가 사실상 없어질 뿐이다. 공천을 안 했을 때 본선에서 경쟁할 후보들이 공천을 하게 되면 당내 경선에서 경쟁하는 사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천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명색이 정치학 교수라는 나 자신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할 의욕이 상당히 사라지고 말았다. 

영남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이유로 공천이 별 의미가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간판을 거는 것이 당선 가능성을 오히려 낮출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남 지역에서 새누리당의 독식에 도전하려는 후보로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간판보다는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서는 편을 선호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런 판국에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천을 강행하게 된다면 새누리당에게 반대하는 후보군의 분열만을 부추길 뿐이다.

그러므로 선거 전략상으로만 보더라도, 영호남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천을 할 필요가 없다. 나아가 당면한 선거에 임하는 전략과 별도로 정당 구조의 개혁이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도, 영호남에서는 공천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지방정치의 예속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은 풀뿌리 조직의 활성화밖에 없다. 호남에서 공천을 하지 않는다면, 각 후보들이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조직화해서 선거에 임하려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론 국회의원을 비롯한 실력자들의 도움을 구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어쨌든 선거의 결과는 유권자들을 남보다 많이 동원할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될 것이다. 이 과정이 바로 풀뿌리 정치의 활성화에 해당하는 것이다. 

영남의 경우에도 이유는 다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가 된다. 어차피 당의 간판이 당선 가능성을 특별히 높이지 못하기 때문에, 후보들은 각자 최선을 다해서 지지표를 결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와중에서 자연스럽게 연대가 이뤄질 수도 있다. 중앙의 지시나 전략이 아니라 행위자 각자의 동기와 실력에 따라 후보자가 정해진다는 말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란 이처럼 공천권을 시민들이 가지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뜬금없이 일어난 무공천 논란은 한국 정치에서 자주 나타나는 가짜 의제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이런 가짜 의제라도 일단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다음에는 보다 현명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길이 항상 있다. 지금이라도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제주에서는 공천을 하되 영호남에서는 공천을 안 하는 길이 그나마 현명한 길이다. 이 길이 바람직하다는 정도까지는 대다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을 쉽게 이해하고도 채택하지 못한다면 이 당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한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로 남게 될 것이다.

얘기를 꺼낸 김에 한 마디를 덧붙여야겠다. 차제에 공천 여부를 중앙당에서 결정하지 않고, 각 선거구의 당조직더러 결정하라고 위임할 수만 있다면, 한국 정당 구조의 개혁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기초 의원 선거는 기초 의원 선거구 별로 공천 여부를 결정하고, 기초 단체장 선거는 단체장 선거구 별로 공천 여부를 결정하게끔 위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각 선거구 별로 공천 여부를 둘러싸고 상당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조직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이 와중에서 탈당하는 사람도 생기겠지만, 그 역시 정확히 현재 이 당이 보유하고 있는 지지 세력의 실상에 해당할 따름이다.

한국민주당이 이승만과 결별한 이래,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 등을 제외하고) 민주 두 글자를 당명에 붙인 정당들은 기득권의 독재에 항거하는 표를 받아먹고 생명을 부지해왔다. 그러면서도 기득권의 2중대 역할에 안주하느라 민중의 분개를 조직화하는 데에는 소극적으로 임해 왔다. 그 결과가 지금처럼 지리멸렬한 상태로 이어졌다. 지금이라도 이 당이 새누리당이 대변하는 기득권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의 세력을 규합하려면 뿌리에서 올라오는 생명력을 결집해야 한다. 

이번에 벌어진 소동은 가짜 의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소모전이었지만, 동시에 정당 개혁을 향해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바로 지금, 공천 여부에서부터 후보자 결정에 이르기까지 선거와 관련된 모든 결정을 해당 선거구의 당조직에게 일임할 수만 있다면, 당장 2016년과 2017년의 선거에서 대안 정당으로서 크게 달라진 역량을 보여줄 수가 있을 것이다. 수권 능력이란 바로 이와 같은 진짜 의제를 공론장에 제시할 때에만 생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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