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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조선, 어쩌면 명성황후가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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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종과 조선, 어쩌면 명성황후가 죽였다

[낮은 한의학] 고종의 건강학 ③

조선 왕의 건강을 살펴보는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학교 교수)의 '낮은 한의학' 연재가 매주 수요일 계속됩니다.

이상곤 원장이 조선 왕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당시 왕들의 모습이 오늘날 현대인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왕들은 산해진미를 섭취하였지만 격무와 스트레스, 만성 운동 부족 등으로 건강 상태는 엉망이었습니다. 이 원장은 "왜 왕처럼 살면 죽는지를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현대인의 바람직한 건강 관리법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연재의 주인공은 고종입니다. 조선의 사실상 마지막 왕 고종은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 흥선대원군 또 명성황후의 영향력 속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인물이었죠. 나중에는 외세와 조선 내부의 기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결국 나라를 잃습니다.

이런 고종이 불면증을 앓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는 현대인과 너무나 흡사했던 고종의 몸 상태는 어땠을까요? <편집자>


고종 독살설이 끊이지 않은 이유는 고종의 건강 상태 탓이다. 사실 고종은 큰 질병을 앓은 기록이 별로 없다.

연령별로 요약해보면 16세 되던 해에 살쩍(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 귀밑 부분에 종기가 나자 당귀고라는 고약을 붙여 나았다. 33세 때 겨울에 세자와 함께 잠깐 감기를 앓았고, 34세엔 중전과 함께 감기를 앓았다. 39세에도 여름 감기와 체증을 앓았는데, 이때부터 소화기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고종이 가장 많이 호소한 증상은 소화기 질환이었다.

47세에도 담체(담(痰)이 몰려 한곳에 뭉친 것. 또는 그로 인해 생긴 병) 증상을 앓는데, 담체란 소화기가 약해지면서 위장에 불순물이 생겨 쉽게 체증을 앓거나 두통, 어지러움을 느끼고 관절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이론엔 오장육부가 중심이라는 한의학적 사유가 근거가 된다. 한의학적 사유의 핵심은 내면의 질서다. 외면적 형태나 구조가 아닌 내면의 질서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살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연필심과 다이아몬드는 흑연을 기본 소재로 삼지만, 단지 그 소재의 내면 질서가 다르기 때문에 연필심과 다이아몬드로 나눠진다고 파악한다.

한의학의 사유를 좀 더 살펴보자. 봄의 질서는 간, 여름의 질서는 심장, 가을의 질서는 폐, 겨울의 질서는 신장이다. 사계절은 시계와 같다. 시계를 3, 6, 9, 12로 나누면 사계절의 질서는 일목요연하게 시계를 채운다. 그러면 소화기는 무엇일까. 시계의 바닥판이다. 만물이 땅에서 나와 땅으로 돌아가듯 사계절은 모두 땅 위에서 펼쳐지는 가면에 불과한 것이다.

한의학은 사물을 움직이는 힘은 시계의 바닥판 속 축이라고 보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소화기, 즉 토(土)로 추상한다. 소화기에 생기는 불순 대사물인 담은 머리에선 어지러움을, 관절에선 관절염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축이 멈추는 건 체증이다. 팽이가 돌다 멈추려면 좌우로 비틀거리는 상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체증은 축선이 멈추는 상태로 여겨져 비틀거리다 실신하게 되는 것이다.

고종은 55세 무렵엔 바로 이런 소화기의 질환이 오래돼서 위장에 노폐물이 쌓이는 담증(痰症)을 호소한다. 담이 결리는 증후와 가슴에 담이 차서 괴롭고 호흡이 순조롭지 못한 증상으로 괴로워한다. 태의원 도제조 이근명은 고종에게 통순산을 복용하게 한 후 효험이 어떤지 묻는다. 고종의 답변은 이렇다.

"처음에는 가슴에 담이 차서 괴롭고 호흡이 고르지 못하더니 지금은 차도가 있다. 허리와 옆구리가 아직 결리는데 상부에 겉으로 나타나는 증세가 있다."

통순산은 영위반혼탕이란 처방의 다른 이름이다. 이 처방의 효험에 대해 <동의보감>은 이렇게 설명한다.

"담이 가슴, 등, 머리, 겨드랑이, 옆구리, 허리, 허벅다리, 손발로 돌아다니다가 머물게 되면 단단하게 붓고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이런 여러 가지 담증을 잘 낫게 한다."

▲ 드라마 <명성황후>의 명성황후(이미연). 고종은 흥선대원군, 명성황후 그리고 제국 열강의 압박에서 단 한 번도 자유롭지 못했다. ⓒKBS

조선의 왕들과 친족들이 내의원이란 기관을 통해 건강 관리를 해왔다면, 고종은 태의원을 통해 건강을 관리했다. 사실 격변기를 통해 이름만 바뀌었을 뿐 직제상의 차이점은 크지 않다. 남아 있는 자료는 광무 2년 음력 1월 1일부터 12월 29일까지의 1년간의 기록이다. 그날그날 태의원에서 있었던 문안과 오고간 대화 내용, 전의들의 입진, 처방 내용 등을 기록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앞에서 언급한 체증인 담체, 어지러움인 현훈, 체증으로 인한 설사인 체설의 증상들이 기록돼 있다.

대부분의 치료는 약물 처방만 있을 뿐 침구 치료에 대한 부분은 찾을 수 없다. 처방한 약물도 소화기 질환에 쓰는 보약이 대부분이다. 인삼이 든 삼출건비탕, 이공산, 가미군자탕 등의 처방이다. 모두 소화기가 허약하면서 소화력이 떨어진 경우에 쓰는 보약 계통의 약물이다.

<태의원일기>엔 왕의 일상과 관련한 건강 관리법이 나온다. 왕의 일상은 공적 업무 외에도 잦은 국가제례를 주관하는 까다롭고 힘든 것이다. 특히 날씨가 가을로 접어드는 시점에서는 직접 제사에 참여하지 말 것을 건의한다. 기록에 따르면 제사가 9월 2회, 10월 4회, 11월 3회, 12월 3회에 걸쳐 연속으로 겹치면서 친행하지 말 것을 건의한다.

한의학의 기본적인 건강 관리 요점은 예방 의학적 측면에 있다. 이 점에서 눈에 띄는 건 인삼속미음이란 처방으로 미리 체력을 비축한다는 점이다. 보통 인삼과 좁쌀을 물과 함께 끓여 체로 걸러낸 것으로 죽보다 묽은 유동식이다.

좁쌀은 신기(腎氣)를 보하는 음식이다. 조(粟)는 서쪽에서 온 곡식이란 뜻이다. 사실 음양으로 나눌 때 꽃봉오리를 예로 들면 쉽다. 햇볕이 들면 활짝 꽃을 피우고 저녁이 되면 수축한다. 이렇게 수축하고 줄어드는 상태를 음이라 하는데, 가장 수축한 상태를 음이 가장 세게 응축된 상태로 보는 것이다.

좁쌀은 오곡 가운데 가장 작고 단단하기 때문에 가장 음적인 곡식으로 음의 상징인 신장을 돕는 건 당연하다. 인삼은 뜨거운 양을 상징하므로 찬 성질의 좁쌀과 서로 궁합이 맞다. <동의보감>은 좁쌀의 효능에 대해 비위 속 열을 없애고 기를 보하며 오줌을 잘 나가게 한다고 적었다.

<태의원일기> 1898년 8월 15일 기록은 속미음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에 경효전(명성황후)의 3주제를 받들어 모시기가 멀지 않았으므로 임금이 드실 인삼 2돈을 넣은 속미음과 명헌태후전이 드실 인삼 2돈을 넣은 속미음, 태자궁과 태자비궁이 복용할 인삼 2돈을 넣은 속미음을 18일부터 20일까지 한 첩씩 총 세 첩 달여 드리도록 들어가 아뢰었다."

속미음을 만들 때 감독자의 직책을 기록해 책임 소재를 파악한 걸 보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잘 알 수 있다.

고종은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 수 없었다. 즉위 시부터 10년간은 흥선대원군의 섭정 아래 왕으로 살았고, 이후론 명성황후의 입김 아래에서 민 씨 척족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청,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지만 자신이 주체가 되어 조선을 이끌어본 적도, 저항해본 적도 없었다.

건강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종은 명성황후의 테러를 당할지 모른다는 트라우마에 이끌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면서 조선의 아침을 열 기회를 놓쳤다. 갑작스럽게 뇌일혈로 죽는 순간까지 그는 자신의 생활방식에 이입된 타인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했다. 어쩌면 조선의 슬픔은 바로 여기서 잉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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