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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못 하는 게 청년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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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못 하는 게 청년 잘못인가?

[복지국가SOCIETY] 불공정 경쟁, 이건 아니다

얼마 전에 흥미로운 국제 비교 통계를 하나 봤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아니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이었다. 여기에 대해 매우 공정하다고 생각하면 1점, 매우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면 5점까지 '5점 척도'로 답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평균 3.3점이 나왔다. 13개 비교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이 4.3점 정도로 높은 국가들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병에 걸렸을 때 '돈 있으면 살고 돈 없으면 죽는다'는 처절한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인 것 같아서 마음이 착잡했다.

경쟁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

이것은 '경쟁'을 단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뭔가 바람직한 것으로까지 여기는 태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기업이 '글로벌 시대 무한 경쟁'이라고 핏대를 올리면, 노동권도 내려놓고 인권도 내려놓고 다들 협조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된다.

경쟁이 문제가 될 때는 판정 기준이 불공정하다고 여겨질 때뿐이다. 모든 자원이나 기회를 배분하는 방식이 오직 경쟁을 통해서 뽑은 승자에게 상을 수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를 들어보기 어렵다.

날 때부터 타고난 머리가 다르고 부모의 뒷바라지가 다른 상황에서 그 어떤 경쟁도 100% 공정할 수는 없지만, 공정성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먼저 우리가 무엇을 걸고 경쟁하고 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이 말해 주는 것이 무언가? 우리는 목숨을 걸고 경쟁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걸고 경쟁하고 있는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굶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교육받을 기회는 똑같이 누려야 한다.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런 당연한 생각들을 점점 잊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돈으로 사고팔아서는 안 되는 것은 사랑만이 아니다. 제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수준은 시장(market)에서 빼내어 연대와 공공성의 영역에 두어야 하지 않겠나? 명품 가방을 들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야 경쟁 승리자들의 차지가 되어도 좋겠지만 말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젊은이들이 경쟁의 가치와 시장 원리를 기성세대보다도 더 강하게 내면화하는 현실이다. 어려서부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인지, 자신들이 나누어 먹을 파이가 날마다 쪼그라들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제 밥그릇 못 챙긴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정부가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고 물량 공세를 폈지만, 작년 한 해의 성적표는 제자리걸음 수준이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청년층 고용률은 떨어진 반면 50~60대 고용률이 증가해서 그저 전년도 수준을 유지했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이라는 요즘 20대의 고용률은 56.8%이다. 그런데 이 통계수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알바'까지 모두 합친 숫자이다.

'경쟁'을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이 중요하다

기성세대들이 20대였을 당시의 고용률이 80%대였던 걸 생각하면 요즘 청년들이 취업 못 하는 것이 어떻게 자신들의 탓이겠는가? 재학생 비율이 높아져서 고용률이 떨어졌다는 반론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공부하느라고 취업 못 하는 것이겠는가? 취업을 못 해서 공부를 더 하는 것이겠는가?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으니 좀 더 열심히 준비하라는 신호를 끝없이 보내는 것은 누구인가?

'20 대 80'의 시대, 일자리가 많지 않으니 모두 취업할 수는 없다는 걸 수용한다고 치자. 하지만 과거보다 생산력이 떨어져서 먹을 것이 없어졌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리라. 누구든지 원한다면 살 만한 환경의 임대 주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아프면 돈 걱정 없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녀에게는 교육 기회를 공평하게 주어 빈곤을 대물림할 염려가 없어야 한다. 이런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는 한에서만 우리는 경쟁이라는 자원 배분의 규칙을 수용할 수 있다. 목숨을 건 '헝거 게임'을 하라는데, 이건 아니다.

▲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시위.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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