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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투신을 우리는 지켜봐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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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투신을 우리는 지켜봐야 하는 것인가

[기고] 경찰의 손길을 피할 수 없을 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

미친 여자였을까. 미친 여자였다. 그렇게 위로했다. 그러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여자의 죽음이다. 여자는 세느강에서 투신자살했다. 시인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에 따르면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 위로 여자는 뛰어내렸다. 클레망스는 그걸 목격했고 그걸 외면했다.

엄청 잘나가던 변호사로서 늘 정직하게 살아왔으나 그건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온 자기기만이었다. 여자의 죽음과 관련하여 정신적 살인자임을 자인한 클레망스는 통각의 아픔 속에서 독주를 부었다. <전락>에서 알베르 까뮈는 여자의 자살동기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실존의 고뇌를 기록하기엔 투신자살의 ‘목격’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의 자살동기를 나는 안다. 실존의 고뇌가 없는 무척 저급한 시선도 괜찮다면 여자의 자살동기는 다음과 같다. 서대문경찰서 경비과장에 의해 여자는 죽음에 이르렀다. 물론 그는, 난 빠리 근처에 가본 적도 없는데 생사람 잡지 말라고 항변할 게 분명하다. 그건 메타포가 없는 그의 매우 질 낮은 이해력 탓이다. 서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은 내 수준보다 더 이하의 이해력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자가 민생을 책임진 경비과장이라니!

여자는 분명 그가 죽였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 거창하게 사회적 타살 운운하지만 여기선 여자의 죽음에 개입한 그에게만 집중하자. 여자는 한때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분더바'라는 카페를 운영했다. 여자는 2013년 1월 20일, 1,2층 단독주택을 얻어 리모델링한 뒤 '분더바' 영업을 시작했다. 월세 400만 원을 내면서 유지하기 힘들자, 여자는 살던 집을 빼 2층으로 옮긴 뒤 1층만으로 카페 영업을 계속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1억 투자한 가게, 8개월 만에 나가라니…)

▲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여성 ©김민 사진작가

영업을 시작한 지 7개월이 되었을 때 '분더바'는 월세를 두 달 밀렸다. 여자는 건물주인 대영주택 회장 '조oo'을 찾아가 카페를 내놓겠다고 사정했다. 건물주 '조oo'은 여자에게 그렇게 하라고 답했다. 그러나 뒷구멍으로는 잽싸게 명도소송을 진행했다. 월세 2개월 밀리면 명도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는 법을 악용해 여자를 내쫓을 수작이었다.

'분더바'로 돌아와 양수인을 찾던 여자는 얼마 뒤 '분더바' 명도소송 관련 내용증명을 받았다. 여자는 건물주 조oo에게 속은 걸 알고 달려갔다. 카페를 양수인 나타나면 넘길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명도소송이 웬 말이냐고 따졌다. 건물주 조oo은 양수인 나타나면 팔고 나가도록 해줄 테니 염려 말라고 안심시켰다. 명도소송에 대해선 법적 대응 같은 걸 굳이 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건물주 말에 의하면 명도소송은 양수인이 혹 안 나타날 경우를 대비한 요식행위라는 거였다.

여자는 건물주의 말씀만 믿고 더욱 열심히 양수인을 찾아 나섰다. 드디어 양수인을 찾았다. 건물주에게 그 기쁨을 전하자 건물주는 표변했다. 건물주의 마흔 살 아들이 건물을 쓰기로 했으니 양도·양수할 수 없다는 거였다. 여자는 땅을 치며 후회했으나 그때는 이미 명도소송이 끝난 상태였다.

여자는 지난 3월 17일 1,2층 건물에서 쫓겨났다. 살림집이었던 2층의 살림살이까지 모두 빼앗겼다. 딸내미 유치원 때 사진집은 물론, 숟가락 젓가락까지 모두 빼앗겼다. 희한하게 가장 비싼 집기였던 대리석과 파티션은 그냥 두었다. 여자를 알거지로 내쫓으면서도 건물주는 그 두 가지가 탐났던 모양이다.

여자는 쫓겨난 '분더바' 앞에 텐트를 쳤다. 그건 농성장이 아니라 여자에겐 최후의 보루였다. 그러나 다음날 서대문구청에서 텐트를 북북 찢어 걷어갔다. 텐트를 빼앗긴 여자는 3월 21일 저녁, 아예 쫓겨난 ’분더바‘ 안으로 들어가 하룻밤 묵었다. 이튿날 서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은 70명이 넘는 의경들을 끌고 와 텅 빈 '분더바' 안에서 여자를 건조물무단침입죄로 체포 연행해갔다. 여자는 곧 풀려났다. '분더바' 앞으로 돌아온 여자는 서대문구청에 항의하여 새로 장만하게 된 텐트를 이번엔 '분더바' 대문께에 쳤다.

그러나 그는 여자를 그냥 두지 않았다. 3월 25일 아침 8시쯤 무려 4대의 경찰차에 경찰을 태우고 다시 나타났다. 여자는 다시 끌려갔다. 이건 농성장이 아니라 몸을 누일 공간일 뿐이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듣는 마음, 그는 욕망에 사로잡혔기에 지혜가 전혀 없었다. 마침 안타까운 처지를 공분한 사람들이 찾아와 그에게 항의했다. 그는 항의하는 이들까지 공무집행방해혐의로 연행했다. 모두 11명이었다. 연행과정에서 경찰은 항의하는 사람의 안경을 부러뜨렸다. 수갑을 채웠고, 심장마비를 일으킨 자를 쓰러뜨렸다.

3월 26일 수요일, 쫓겨난 '분더바' 앞으로 여자는 다시 돌아왔다. 다시 텐트를 쳐야 한다. 그래야 잠을 자고, 밥을 해먹고, 피를 토할 심정을 알릴 수 있다. 그러나 서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은 경찰차 4대를 끌고 와 또다시 여자를 가로막고 있다. 기어이 미라보 다리 위로 여자를 몰아세울 태세다. 그건 누가 봐도 건물주 조oo의 재산권을 지나치게 보호해주려는 과잉충성이다. 성찰은 인간의 것이지만 모든 인간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조oo과 경비과장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저 탐욕에 눈먼 비굴도 마다하지 않는 비참한 자존감이여!

여자는 시방 미라보 다리 위에 서 있다.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 위로 몸을 던질 것만 같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온 비겁한 나는 처음엔 쭈뼛쭈뼛 여자의 앞을 막아섰다. 두리반 철거농성 때의 내 아내를 떠올리는 순간 난 타인의 시선 밖에 놓이게 됐다. 여자의 투신자살을 종용하는 서대문경찰서 경비과장으로부터 여자를 살려내야겠다. 건물주 조oo의 탐욕으로부터 여자를 살려내야겠다.

©김민 사진작가

©김민 사진작가

©김민 사진작가

©김민 사진작가

©김민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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