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영한 SBS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 그대)가 중국에서 또다시 한류의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방송국에서는 서로 ‘별 그대’의 주인공인 김수현을 모셔가려고 하였고, ‘최강대뇌’라는 중국 프로그램이 출연료 5억 원을 투자해 김수현을 섭외해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고 한다. 지난 3월 1일, 이런 기현상이 신기해 보였는지, 저 멀리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에서도 1면에 중국의 ‘별 그대’ 열풍을 전면 소개·분석하였다. 이중 기사에서 인용한 한 중국 고위 간부의 말이 인상적이다.
“이건 단순한 한류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문화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것이다.(It is more than just a Korean soap opera. It hurts our culture dignity.)”
역사극이라면 주관적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중국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꽃미남 외계인이 나오는 픽션 드라마 ‘별 그대’에 대체 뭐가 있길래 중국 문화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하는 걸까?
‘별 그대’의 중국 열풍을 소개했던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에는 또 다른 중국 문화에 대한 위협(?)의 예로 2008년 드림웍스에서 제작해 대히트를 쳤던 영화 <쿵푸 팬더>를 소개하였다. 뚱뚱한 팬더가 쿵푸를 배우며 영웅이 된다는 내용의 이 영화가 문제가 된 이유는 중국이 아닌 미국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팬더와 쿵푸는 중국의 상징인데, 이것을 외국에서 만들고 또 그것으로 히트를 쳤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 것이다.
‘별 그대’가 위협으로 인식되는 원인도 마찬가지이다. 즉, ‘별 그대’ 안에서도 ‘중국적 전통’이 다수 등장하는데, 외국인들에게 이것이 마치 한국 자체의 고유한 문화인 듯 인식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중국은 이것을 한국을 포함한 외국의 중국 ‘문화 침탈’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 중국, 그리고 시련
중국의 찬란했던 문화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이는 없을 것이다. 중국은 중국인들 말마따나 ‘상하오천년(上下五千年)’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 그 속에서 탄생한 종이·나침반·화약·인쇄술의 4대 발명 등은 중국인들의 자랑이자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문화는 물이 흐르듯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고 했던가? 과거 우리를 포함한 중국의 주변국들은 문화 선진국이었던 중국에서 많은 문물을 받아들여, 각자 자신의 상황과 현실에 맞게 변형·발전해나갔다. 많은 한국인들이 인정하긴 싫어하지만, 우리의 전통 중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완벽하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자국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선진문물을 배웠다는 것, 오히려 시대를 앞서나간 것이 아닌가?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처하며,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중국. 하지만, 19세기부터 시작된 서양 열강과 일제의 침략으로 중국은 반식민 상태에 빠진다. 신해혁명의 성공으로 잠시나마 중국 내부의 단결이 보이는 듯하더니 본격적으로 시작한 일제의 침략, 거기에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라는 중국 내부의 분열까지. 결국 일제의 패망과 공산당의 승리로 한 세기가량의 외세 침략과 내분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 긴 시간 동안 벌어진 외세에 의한 유린은 ‘천조(天朝)’의 자존심을 땅에 떨어뜨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다시 발생한 문화대혁명과 같은 과격한 사건은 중국 전통문화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러한 시련에 대한 보상심리랄까? 경제성장으로 '난포(暖飽, 의식(衣食))'문제가 해결되자, 현대 중국인들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찬란했던 역사에 진한 향수를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에 G2로의 급부상으로 높아진 자신감과 함께 다시금 찬란한 역사의 재현을 꿈꾸는 중국이기에, 역사에 대한 자부심은 갈수록 높아만 가고 있다.
중화주의의 ‘한자 문화권’ VS. 화합공존의 ‘동아시아 문화권’
하지만, 문제는 중국인들의 이런 자부심이 도를 지나친다는 데 있다. 중국의 지나친 우월주의를 우리는 소위 ‘중화주의(中華主義)’라 한다. 현재 중국의 이 중화주의가 갈수록 심해져 주변국과 많은 마찰을 겪고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과거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문명을 이룩했고, 주변국들은 그 선진문물을 수용했다. 그러나 이 사실에서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모든 문화와 역사는 중국에서’라고 주장하는 중화주의는 너무 위험하고, 자아도취적인 생각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양회(兩會)’에서도 고위급 간부들이 “한국이 서예를 UNESCO에 등재하기 전에 우리가 선수 쳐야 한다!”라고 말하거나, 고구려는 중국 땅이라고 우기는 등,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중국의 과격한 민족주의인 중화주의이다. 이 중화주의는 비단 한국과 중국 사이만 아니라, 중국과 인접한 나라와도 많은 갈등을 겪고 있으며, 갈수록 심해지고 그 해결점 역시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이라는 역사 용어가 있다. 이는 일본의 역사학자 니시지마 사다오(西嶋定生)가 주장한 말로 한자·율령·불교·유가, 이 네 가지를 문화의 주요 특징으로 삼는 문화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그 주변국, 즉 한국, 일본, 베트남 등을 이 문화권의 구성원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 용어는 동아시아 문화의 주원류가 중국에서 비롯함을 설명하면서, 과도하게 일방적인 중국의 창조와 주변국의 수용만을 강조하는 단점이 존재한다. 단순하게 중국인들이 베풀어주었던 은혜에 의해 공유할 수 있었다는 데에서 중화주의가 강하게 느껴진다.
중화주의적 성격이 강한 ‘한자문화권’보다는 우리의 문화권을 ‘동아시아문화권’이라는 말로 표현했으면 한다. 이질적인 문화들이 만났을 때 문화는 결코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융합하여 더욱 발전한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문화라고 해서 절대 일방적으로 선진문화에 의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과거 중국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가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선진문화가 들어왔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던 우리의 문화가 그대로 중국문화에 흡수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문화는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서로 융합·발전하면서 독특하고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창출해냈다. 중국을 주로 하지만, 동아시아 각국의 새롭게 변형된 문화들이 모이고 형태를 이룬 것, 이것이 바로 우리 동아시아만의 문화권이다.
이미 G2의 일원이 되어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충천하는 거룡 (巨龍) 중국, 분명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중국의 비상에 주변국들은 축하보다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주변국의 걱정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앞서 얘기한 중화주의 역시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 것이니, 건들지 마라!’라는 좁디좁은 민족주의보다는 과거 자신들의 뛰어난 문화가 주변국에 퍼져 현재 그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중국은 그들의 문화를 우리에게 적합한 형태로 융․복합한 우리를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과거 그들이 추구했던 ‘세계의 중심’이라는 대국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우리 역시 동아시아문화권의 형성에서 중국의 무시무시한 문화 창조력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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