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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여권 도장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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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여권 도장을 찍다

[정여울의 '마음이 머무는 곳'] 베를린 DDR 박물관

2013년 베를린 포츠담 광장에서 나는 무척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베를린 장벽의 일부를 떼어 내서 거리 한 복판에 세워두고, 동독 군인의 복장을 한 남성이 여행자들에게 웬 도장을 쾅쾅 찍어주며 유쾌하게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군인 복장을 한 남자가 들고 있던 물건은 이제는 사라진 나라 동독의 여권 도장이었다. 여행자들은 여권에 도장 하나를 더 찍는 즐거움에 미소를 짓지만, 알고 보니 돈을 내야 하는 것이었다. 비행기도 타지 않고, 국경도 넘지 않고, 여권 스탬프를 하나 더 찍는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최근 동독을 향한 향수가 일종의 문화상품이 되어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이 또한 그 일환이 아닌가 싶었다. 독일 사람들의 향수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여행자들이 겪어보지도 않은 낯선 나라 동독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은 참 신기한 현상이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 또한 가보지도 못한 나라, 겪어보지도 못한 동독이 왠지 그립고 아련하다. 그리움이란 도대체 어떤 감정이길래, '나의 그리움'도 아닌 타인의 그리움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 동독 군인 복장을 한 남성이 여행자들의 여권에 사라진 동독의 스탬프를 찍어주고 있다. 진짜 여권에 가짜 도장을 찍는 기이한 퍼포먼스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나도 잠깐 얼이 빠져서 그 코믹한 열광의 행렬에 참여할 뻔 했다. ⓒ이승원

▲ DDR박물관 전경. 사라진 동독의 추억을 자극하는 물건들로 가득한 역사박물관이다. 동독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고, 동독을 역사책에서 배운 신세대들에게는 신기한 문물로 가득한 이색 테마파크로 다가온다. ⓒ이승원

사라진 동독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오스탤지어(ostalgia)'라는 신조어로 부를 정도로, 동독에 대한 그리움은 일종의 집단적인 향수이자 명실상부한 문화상품이 되었다. 사라진 동독을 향한 만가 같은 영화 <굿바이 레닌>을 봤을 때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 영화에서 동독은 안타깝지만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그려졌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버린 기막힌 상황에 처한 어머니를 위해, 아들은 동독이라는 나라가 아직 건재한 것처럼 일상의 모든 것을 꾸며냈다. 엄마가 좋아하는 동독산 통조림을 구하러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고, 레닌 동상이 무참히 철거되는 모습을 엄마가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안간힘 쓰는 아들의 모습은 눈물겨우면서도 유머러스했다.

투병 끝에 끝내 세상을 떠난 엄마의 유해를 '통일된 독일'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로켓으로 만들어 우주로 쏘아 올리는 장면은 의미심장했다. 열렬한 공산당원이었던 엄마의 역사적 신념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독일'에 발 디딜 곳이 없는 것일까. 엄마의 유해를 우주로 쏘아올리는 퍼포먼스는 '동독이여, 이제 역사 속으로, 아니 지구 바깥으로 사라져버려라'라는 냉혹한 작별인사처럼 보였다. 당시 <굿바이 레닌>은 독일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나는 그 영화가 못내 불편했다. '사라진 나라와 이별하는 방식'이 어떻게 그렇게 산뜻하고 어여쁠 수 있는가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무언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이, 어떤 나라가 사라진다는 것이, 어떻게 그토록 간단할 수 있겠는가.

▲ 구 동독시절의 재봉틀과 전화. 어쩌면 우리네 옛 시절을 떠올려도 비슷한 풍경으로 기억되는 이런 소품들이 ‘우리의 역사’뿐 아니라 ‘그들의 역사’까지 그리워하게 하는 힘을 지닌 것이 아닐까. ⓒ이승원

▲ LP 디스크를 재생하는 턴테이블과 동독 시절의 생활용품들. ‘낡았다’는 느낌보다는 ‘정겹다’는 느낌을 더 많이 주는 이 오래된 물건들 덕분에, 사라진 동독은 단지 정치나 역사의 대상이 아니라 오늘날의 문화와 예술에까지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이승원

이제 그렇게 세련되고 쿨하게 지구 밖으로 멀리 떠나 보내버렸던 동독에 대해 사람들은 다시금 뒤늦은 향수를 느낀다. 역사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청산될 수 없다는 것을, 아무리 실패한 체제라 하더라도 간단히 지워버릴 수만은 없는 문제라는 것을, 독일 사람들은 물론 동독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실감하게 된 것은 아닐까. 동독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사라진 동독을 부활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라져버린 기억 속에도 우리가 배울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집단적 문화현상으로 보인다.

특별한 문화유산이나 엄청난 볼거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DDR박물관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DDR 박물관은 예상을 뛰어넘는 인파로 북적였다. 나는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을 조용히 보내고 싶어서 이곳을 찾았는데, 엄청난 인파에 무척 당황했다. 관광객들보다도 독일 현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사람들은 동독 시절의 낡은 전화기를 귀에 대고 당시의 방송을 들어보기도 하고, 나체 해수욕장에서 비치발리볼을 하는 사람들의 벌거벗은 미니어처를 보며 미소 짓기도 한다. 오래된 카메라나 타자기, 우표나 엽서, 동독 시절에 유행했던 옷들과 브로치와 훈장들까지, 한 마디로 '동독의 모든 것'이 담뿍 담긴 그곳에서 사람들은 편안히 '역사'라는 이름의 거대한 연극을 관람하는 것 같았다. 당시 동독의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볼 수도 있으며, 책이나 엽서 등 인쇄매체를 열람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옛 동독의 가정식이나 별미를 그대로 따라 만들 수 있는 요리책까지 있었다.

▲ 동독 시절의 문물들을 구경하고 감상하며 옛 시절의 노스탤지아를 느껴보는 사람들. 기성세대에게 동독이 애증과 노스탤지어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신세대들에게는 새롭게 배우고 익혀야 할 역사의 대상이자 직접 경험해볼 수 없는 희미한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승원

나는 DDR박물관에서 사라진 동독의 타자기를 본뜬 냉장고 자석과 동독 식 빈티지 자동차 모형을 샀다. '내가 왜 이러지?'하는 감정으로 불쑥 샀던 것은 동독의 여권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 엽서였다. 이곳에 왔다는 기억만으로 마치 사라진 나라, 동독에 한 번 다녀온 듯한 느낌을 지니고 싶었나보다. 동독에서 생산되던 각종 공산품, 예컨대 화장품이나 비누, 통조림, 과자, 껌 등을 보니 파주 헤이리에 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절 먹었던 과자, 껌, 캬라멜, 그리고 음식인지 장난감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알록달록한 불량식품들까지. 그때 그 시절의 물건들을 보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추억하는 버릇은 그들이나 우리나 비슷한 것 같았다.

DDR박물관은 이제는 사라져 다시는 똑같이 재현할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의 박물관이었다. 그리움의 힘은 이토록 드세고 질기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움의 힘이 세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그리움의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다.

노스탤지어라는 단어는 노스토스(nostos : 집, 고향)와 앨지아(algia : 고통, 아픔)의 합성어였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생기는 그리움과 슬픔의 감정, 노스탤지어는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문명의 발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더 깊이 인간의 마음속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의 문화학자 스베틀라나 보임은 노스토스, 즉 장소에 집중하는 노스탤지아와 앨지아, 즉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집중하는 노스탤지아는 무척 다른 것이라고 했다. 사라진 장소를 기리며 각종 기념물을 만들어내는 노스탤지아는 결국 편협한 민족주의와 보수주의로 흐르게 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 그리움이라는 감정, 상실감 자체에 집중하는 노스탤지아는 그 아픔을 서러워하면서도 결국엔 그 아픔을 향유하는 측면이 있다.

옥스퍼드 영영 사전에서 노스탤지어(nostalgia)를 찾아보니 이 감정은 단지 슬픔만이 아니다.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릴 때 느끼는 슬픔과 기쁨이 섞인 미묘한 감정, 그것이 바로 노스탤지어다. 기쁨과 슬픔, 그리움과 회한이 겹쳐 정해진 빛깔을 찾을 수 없는 모호한 감정, 그것이 바로 노스탤지어의 복잡한 무늬다.

나는 정해진 장소로 귀환하는 노스탤지어보다는 끊임없이 그리움의 무늬를 되돌아보는 성찰적 노스탤지어가 좋다. 그리워서 고향으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이 아직 우리 곁에 또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여전히 느끼고 과거를 존중하며 곱씹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리 아픈 시간도, 아무리 좋았던 그 시절도, 말끔하게 지워져 사라져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되새기고, 그 과거의 기억을 현재와 미래를 더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삶의 에너지로 바꾸고 싶다. 그리움은 아픔이지만 그 안에 묘한 중독성이 있어 그리움 자체를 즐기게 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노스탤지어는 본래 아픈 것이지만 그 아픔에서 창조적인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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