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인 돈 받아드립니다.”
거뭇거뭇 수염을 기른 청년이 흥신소에서나 내걸 법한 문구를 태연하게 쓰더니, 그 밑에 친절하게 전화번호까지 적어준다. 책에 저자 사인을 요구했다 갑작스레 당한 봉변(?)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이게 바로 청년유니온다운 재기발랄함이리라. 길에서 만났다면 그저 유쾌한 스물네 살로 생각했을 평범한 청년. 그가 바로 지난 2월 청년유니온 3기 지도부 선거에서 위원장으로 당선된 김민수 씨다.
3월 13일, ‘청년유니온’이 4주년을 맞았다. 한국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은 2010년 설립 이래, 피자 배달 30분제 폐지, 편의점 최저임금 위반 실태 고발, 커피체인점 아르바이트 주휴수당 지급, 미용실 스태프·학원 강사 근로조건 조사 등 각종 사업을 추진하며 청년의 노동권을 대변해왔다. 구직자, 실업자 등 법적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이 있다는 이유로 전국 단위 노조 설립 신고서를 다섯 차례 반려 당했지만, 마침내 지난해 4월 정식 법내 노조가 됐다. 전국에 8개 지부와 5개 지역 모임을 둔 청년유니온은 현재 조합원 1000명 돌파를 코 앞에 두고 있다.
설립 초기 조합원으로 참여해 2기 기획팀장을 거쳐 3기 위원장이 된 김민수 씨는, 지난 4년간 청년유니온의 성장과 함께 했고 그 과정에서 리더로 성장한 대표적인 ‘청년유니온 사람’이다.
아직도 “젊은 것이 어쩌다 노동조합을…”이란 말을 적잖이 듣는다는 김민수 위원장을, 정치발전소 청년 계절학기 <리얼소셜>을 통해 만났다. 그가 생각하는 청년 문제와 노동조합, 그리고 청년유니온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았다.
- 청년고용 문제가 어느 정도 심각한가. 정부가 발표하는 실업률을 보면 체감하기 힘들다.
경제성장률이 완화되고 전체실업률은 낮아지는데, 20대 실업률은 그대로다. 정부 발표 수치 8%에는 구직을 포기한 사람이 포함되지 않는다. 스펙 쌓고 있는 취업준비자까지 포함하면 20% 정도는 될 것이다. 실업률로 따지면 수치가 낮아 보이지만, 고용률로 보면 청년실업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2004년부터는 20대보다 60대의 고용률이 더 높다.
- “왜 다들 대기업만 가려 하냐, 젊은 것들이 눈만 높다”고 비판을 많이 한다.
‘눈높이론’에 함정이 있다. 정말 눈이 높은 건 기업들이다. ‘경력직’ 신입사원을 원한다. 능력은 넘치는데 월급은 조금 받겠다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고용인데, 큰 기업들이 고용을 하지 않는다. 1993년 13.6%였던 대기업 고용률이 2009년 6.1%로 떨어졌다. 경제력 집중과 고용 비중이 비례하지 않는 것이다.
청년일자리 문제를 요약하면, 대학졸업 빚이 삼천, 회장님은 채용 안 해, 눈 낮춰서 중소기업, 2년 뒤에 계약 만료, 다시 더 나쁜 일자리로, 이것이 현실이다. 청년들은 끊임없이 구직과 취업 상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청년을 위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생각하게 된 것이다.
- 지난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을 두고 “노조에 대한 인식 전환의 큰 전기”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사회에서는 ‘노동’과 ‘노동조합’에 대한 거부감과 편견이 적지 않다. 특히 자신을 ‘노동자’로 자각하지 않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노동조합 운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하다.
역사적으로 이런 집단적 경험이 누적되는 것은 중요하다 생각한다. ‘노동’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하지만,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나. 청년유니온 활동을 통해 “이런 단체가 있었네.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노조 효능감’을 심어줄 수 있다면, 노동과 노동조합에 대한 긍정적인 집단적 경험이 될 수 있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당신은 주휴수당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당신은 노동자입니다.”를 먼저 설득시켜야 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한계라고 생각진 않는다. 3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이 보인다. 이것을 처리하는 데만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 조합원 교육에서 “노동조합은 유니세프와 다르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청년유니온은 보통 노동조합과도 조금 다른 것 같다.
기부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대가 없이 돈을 내는 것이지만, 청년유니온에 조합비를 납부하는 것은 조직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생긴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유니온 활동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조합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정부분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본래 노동조합은 그렇다. 전두환 정부 시절 산별노조 체제가 해체되면서 사회적 기능이 약화됐고, 기업별 노조는 제도 내에서 성과를 내려다보니 조합원만 대변하는 이익단체처럼 여겨지게 됐을 뿐이다.
이런 인식 틀에서 보면 청년유니온은 노동운동과 시민사회 사이 어디쯤에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설명하기 어렵지만, 달리 보면 가능성의 영역이다. 3기 지도부를 준비하면서, 청년유니온의 이런 특징을 ‘사회적 노동조합’이라 이름 붙였다. 조합원을 대변할 뿐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하는, 노조를 뛰어넘는 노동운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기존 노조에 젊은 층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청년유니온은 성장세다.
전통적 노조의 평균연령 상승과 청년유니온의 조합원 증가가 오버랩 되는 면이 있다. 기존 노조도 재생산에 대한 고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유니온에 보이는 미온적 태도나 “우리가 했으면 더 잘 하는데.”라는 식의 자세는, 같이 노동운동을 하는 동지들끼리의 예의가 아니다.
기존 노조에도 청년이 없지 않다. 서비스연맹 화장품노조나 보건의료노조 간호사분들은 대부분 30대다. 이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면서, 젊은 사람들이 노동조합으로 유입될 동기를 마련해줘야 한다.
- 일본 청년유니온을 벤치마킹해 만들었는데, 이제는 한국이 더 잘 되고 있다. 비결은 뭘까?
일본은 조합원이 문제를 들고 오면 도와주는 식으로, 개별 사업장의 사안을 다룬다. 반면 한국의 청년유니온은 업종이나 산업 전체로 확대해 다룬다. 특정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생이 주휴수당을 못 받은 것이 포착되면, 대형 커피숍 체인 전체를 대상으로 현황을 조사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구성원이 느끼는 활력, 성취감 등이 크다.
사회적 특성도 있다. 개인주의와 침체된 지역조직의 분위기를 빼고는 일본 청년유니온의 어려움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언론 지형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에서 이슈를 띄우면 전국적 의제가 된다. 지나친 중앙 집중화가 한국사회의 문제라고 지적되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도움이 된 측면이 있다.
피자 배달, 커피숍 아르바이트 등은 저학력 노동자 중심의 사업장이라는 측면에서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와는 별도로, 초창기부터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훨씬 더 어려운데 이들을 위한 사업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미 현장으로 흩어져버린 청년들을 어디 가서 어떻게 만나느냐가 문제였다. 당위성은 있는데 방법론이 없었다.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 지난 2월 설립된 ‘청소년유니온’이다.
청소년유니온은 고교 현장실습에서 사고를 당하고, 아르바이트에서 임금을 떼이는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출된 청소년의 문제를 나누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출범했다. 특히 곧 취업 나갈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사회 진출 직전 단계의 청소년이 미리 청소년유니온을 만나게 되면, 어느 산업, 어떤 사업장에서 일을 하게 되더라도 어려움이 생겼을 때 우리를 떠올리고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겠나.
- 활동가가 보람을 느낄 때는, 원하는 이슈를 정치적 의제화해 결과를 끌어냈을 때가 아닐까? 청년유니온은 정치와 어떤 관계인가. 보통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은 ‘정치’라는 단어와 연결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한다. 그들이 하는 일 자체가 다분히 정치적이고, 또 정치와 연관되지 않고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도 말이다.
청년고용할당제 입법, 법내 노조가 되기 위한 행정소송, 미용업계에 대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요청 등이 모두 국회의원과의 협력을 통해 정치적으로 해결한 사안들이다. 청년유니온 구성원들은 다른 조직에 비해 “가능하다면 정치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다.
- 정치 얘기를 한 김에 생각난 것이 있다. 일부 대학 학생자치기구 선거에서 NL, PD도 아니고 ‘청년유니온 계열’이라는 분류가 등장했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계열’이라면 청년유니온에서 후보를 공천하고 선거를 지휘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저희는 한 것이 없다.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출마해 당선된 것이다. 대체로 청년유니온 활동에 앞서 이미 학생회 경험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이다. 그런데 이것을 언론이 ‘청년유니온 계열’로 해석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벌써 그런 존재가 되었나?”하고 웃어넘겼다.
언젠가는 청년유니온에서의 경험을 발판삼아 대학이든 지역사회에서든 자신의 활동 공간에서 출마해 뜻을 펼쳐보겠다는 조합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조직이 처음 생길 때는 자신의 활동 기반을 가진, 이미 성장한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네트워크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 충성도와 소속감을 가진 그 조직 사람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청년유니온은 이행기를 잘 극복한 것 같다. 김민수 위원장 같은 청유 사람을 키워냈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특별한 시스템이 있나?
우리는 ‘청년유니온 팜(farm)’이라 부른다. 정형화되어 있지 않을 뿐, 안에서 사람을 키우는 방식이 있다. 사업의 영역이 넓고 일의 기승전결을 다 다뤄볼 수 있기 때문에 성장의 기회 또한 열려있다.
물론 조직이 5년차에 접어드니 관료제와 아나키즘 사이의 긴장도 있다. 저는 시스템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시스템화 되면 자율성과 도전적 접근이 어려워지고, 인력은 언제든 대체 가능해지며 개인 고유의 특별함을 발휘하지 못하는 문제점도 있을 수 있다. 컨베이어벨트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청년유니온의 독자적인 교육과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정답은 없는 것 같다.
- 리더의 유형에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특정 시점에 그 조직에 주어진 과업에 따라 이를 성취하기 위한 리더의 조건도 분명 다를 것이다. 지금 청년유니온과 김민수 위원장에게 주어진 과업은 무엇일까?
조직의 안정화와 법내 노조로서의 체계 정비 등은 기본적인 과제다. 그 외에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두 개의 큰 과업이 있다.
하나는 교섭, 청년들이 자기 실력으로 사업주와의 교섭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이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 둘째는 재생산,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외부 수혈하는 식으로는 조직의 독특한 에센스를 지켜갈 수 없다. 나는 2010년 20살에 들어와서 “꼬마 너도 한 번 해봐라”하며 청년유니온에서 길러진 사람이다. 지금 들어오는 20살, 21살 후배들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내가 청년유니온에서 받았던 혜택을 이 친구들도 받을 수 있어야, 4기, 5기도 지속될 수 있다.
끝으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는 중앙에서만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각 조합원들이 자기 삶의 터전에서 의제를 발굴하고 해결해낼 수 있도록 자생력이 더욱 커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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