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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9번 이사한 이 남자 "서울에서 안 태어난 게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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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9번 이사한 이 남자 "서울에서 안 태어난 게 죄?"

[정치발전소의 리얼소셜] 민달팽이 유니온 권지웅 대표

새 학기 개강을 앞두고 대학가에 '방 찾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세는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월세는 학생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들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독립된 공간을 포기하고 동거를 감행하거나 지하·옥탑·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공간으로 숨어든다. 그도 어려우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고, 아니면 떠돌이 대학생이 된다.

40대 가장(家長)의 재태크 아이템으로만 여겨지던 '집'을 청년의 문제로 끌어온 단체가 있다. 20대가 주축이 되어, 청년주거권 보장과 주거불평등 완화를 위해 활동하는 '민달팽이 유니온'이다.

달팽이는 집을 등에 업고 태어난다. 집이 없는 달팽이는 민달팽이라 부른다. '민달팽이 유니온'은 주거여건이 불확실한 청년 세대의 모습이 마치 민달팽이 같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올해로 활동 4년 차를 맞는 민달팽이 유니온은 지난 6일 정식으로 비영리단체 등록을 마쳤다. 정치발전소에서 열린 청년 계절학기 <리얼소셜>을 통해, 그간 단체를 이끌어온 권지웅 대표를 만났다. 27살 청년이 바라본 동세대의 주거 문제와 이를 돌파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민달팽이 유니온의 활동을 들어보았다.

▲ 권지웅 '민달팽이 유니온' 대표. ⓒ민달팽이 유니온

- '집'이라고 하면 보통 40대 가장의 관심사고, 대학생과는 먼 주제 같다. 어떻게 20대가 주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대학 입학하면서 서울에 왔다. 1학년 때 기숙사, 2학년 때는 잠만 자는 방, 2학년 2학기에 하숙집에 들어갔다. 후배 집에 얹혀살거나 기숙사 사감처럼 지내기도 했다. 지금은 투룸에서 친구 4명과 같이 산다. 이런 식으로 7년간 9번 이사했다. 독립하면 멋있겠다 싶어, 2학년부터 부모님께 돈을 안 받겠다고 선언했다. 이공계 장학금으로 등록금은 해결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만 벌면 된다 싶었다. '학교-아르바이트'만 반복하며 옷 한 벌 못 사 입고 살았지만 늘 돈이 부족했다. 그때는 '주거비' 때문이라는 걸 몰랐다.

단과대 학생회와 총학생회에서 활동하며 살펴보니, 문제가 등록금만은 아니었다. 나처럼 지방 출신이거나 통학이 불가능한 곳에서 온 친구 대부분은 주거비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월세 40만 원에 공과금 더하면 한 달에 50만 원이 생짜로 나간다. 화장실 한 칸 얻기 위해 10만 원, 창문 하나 얻기 위해 5만 원을 더 내야 한다. 이건 너무 과하지 않나 싶었다. '지방에서 태어난 게 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 지금 대학생들은 도대체 어떤 곳에서 살고 있나?

대학생들의 주거 수준이 양극화되고 있다. 어떤 친구는 첨단 보안 설비에 대리석으로 장식된, 명품 이름의 건물에 산다. 반면 잠만 자는 방에 사는 친구도 있다. 정 안 되면 고시원에 간다. 2평도 안 되는 공간에 절반이 침대다. 그 위에 책상이 있고, 화장실은 공용으로 쓴다. 우리끼리는 창문 없는 고시원을 "관(棺)에 들어가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몇 년 사이 주거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도시형생활주택 건설 활성화 정책으로 신규 주택이 적잖게 공급됐지만, 건설사는 박리다매보다 비싼 집을 짓는 전략을 택했다. 결국 형편이 되는 학생만 더 좋은 집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더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밀려나게 된다.

우리가 발표한 <청년 주거빈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20~34세 인구의 14.7%, 139만 명의 청년이 지하나 옥탑방, 최저주거기준(1인 가구 기준 14제곱미터) 미달 주택 등에 살고 있다. 수도권 특히 서울은 그 비율이 훨씬 높아서, 서울에 사는 1인 가구 청년의 36%가 주거빈곤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20년 사이 전국 가구의 주거빈곤률은 현저히 낮아졌지만, 서울 1인 가구 청년의 주거빈곤률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2012년 말 기준, 수도권 원룸 공실률이 50%에 달한다. 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거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청년들은 취약한 주거환경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서울의 평균 전셋값은 대졸 신입사원 초봉 3352만 원(2010년 기준)의 325%나 된다. 돈 많은 부모를 두지 않는 이상, 평범한 청년이 감당할 수 있는 주거비용이 아닌 것이다.

▲ 전국 가구와 서울 1인 청년가구의 주거빈곤률. ⓒ민달팽이 유니온

- 청년을 비롯해 주거약자들이 주로 사는 고시원의 평당 임대료가 타워팰리스보다 비싸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한 적이 있던데.

서울의 대학가 원룸과 아파트 8곳, 타워팰리스의 임대료를 조사했다. 3.3제곱미터당 평균 임대료를 비교해보면, 원룸은 약 10만9000원, 아파트는 약 4만6000원, 타워팰리스는 11만8000원 수준이었다. 대학가 원룸과 타워팰리스의 면적당 월 임대료 차가 1만 원도 되지 않는 것이다. 고시원과 비교하니 연전 현상이 나타났다. 고시원의 3.3제곱미터당 월세가 타워팰리스보다 비쌌다. 방이 좁은데다 보증금을 안 받는 대신 월세를 높게 책정하는 특성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작고 열악한 집에 사는 것인데 오히려 면적당 임대료를 더 비싸게 치러야 한다면, 뭔가 부조리한 것 아닌가?

- 이런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최근 몇 년 사이 정부나 관계 기관에서 관련 정책과 지원제도를 내놓기도 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시도는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정책 설계가 세심하지 못하거나 근본적 문제는 다루지 않는 면이 있다. 대학생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목돈 없는 청년을 지원한다는 좋은 취지였지만 오히려 전셋값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임대인이 "어차피 7000만 원까지 지원 받을 수 있으니 전세금을 7000만 원으로 하자"고 요구하면, 세입자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주변 시세가 다시 7000만 원에 형성된다. 과거에는 신촌에서 3500만 원짜리 전세를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쉽지 않다. 전월세 상한제 없이 시장에 현금만 투입하니, 대출 지원을 못 받는 친구들에겐 더욱 높은 장벽이 생긴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부동산 소유자의 재산권 보호를 중심으로 정책이 시행된다는 점이다. 세입자들이 아우성치니 '서브로 좀 도와주자' 이런 건 장기적인 정책설계가 아니다.

- 그래서 직접 집을 짓겠다고 나선 것인가?

누구나 예상 가능했던 주민 반대를 이유로 정부가 '행복주택'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정책 추진 의지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정부에만 청년주거 문제를 맡길 수 없다.

젊은 층의 월세를 모아 공동주택을 만드는 사회적 집짓기를 추진해, 올해 안에 제1호 주택을 착공하려 한다. 주택청약을 든다 생각하고, 주택협동조합에 출자하면 된다. 실입주 혜택을 받는 청년 수는 많지 않겠지만, 1호 주택은 민간 건설사와 정부만이 주택 공급과 가격 결정의 주체였던 기존 틀을 깨는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다. 사회적주택 2호는 국고의 빗장을 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정부와 관계기관에서도 관련 정책 검토와 법률 마련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

- '공인중개사'도 직접 양성한다고?

집 짓고 임대료 낮추는 건 시간이 걸린다. 당장은 지금 환경에서 집을 잘 구할 수 있도록 세입자 편에서 도와줄 비영리 대안공인중계를 고민하고 있다. 월급을 민달팽이 유니온에서 받는 착한공인중개사가 조합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법정공인수수료를 다 받지 않고, 가입 기간이 오래되면 중계료가 없어지기도 하는 식이다. 연세대 총학생회와 손잡고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청년주거상담사 양성 교육을 시작해 1월 말 30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누구에게나 주거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룸메이트 교육도 시작한다. 함께 살기 위해 알아야 할 공동체의 개념, 갈등조정 방법 등을 교육하고, 이수한 사람끼리 룸메이트를 매칭해주는 최소한의 안심망을 만들려고 한다.

- 마치 커플매니저 같다. 집도 짓고 중개도 하고 룸메이트 매칭까지, 전형적인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 아닌가?

그런가? (웃음) 생협과 착한공인중개 사업을 하려는데 "우리는 뭐 먹고 사냐!"고 항의하는 공인중개사도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건축이나 리모델링, 공인중개에서 모두 비슷한 문제가 있어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나 싶다.

-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다양한 방법으로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지만, 매번 경제적 이익이 걸린 당사자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청년'이라는 특정 세대의 주거권을 주장하면서, 세대 간 갈등도 피할 수 없을듯하다.

청년 주거 문제를 얘기하면 선배 세대의 첫 반응은 보통 이렇다. "우리 때도 그랬어!" 저도 이해한다. 구로공단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 기사를 보면, 방 한 칸에 서너 명이 살았다고 한다. 그때에 비하면 객관적으로 주거환경이 좋아졌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분들의 그런 희생과 노력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적 삶이 나아졌고, 이제는 그 기준 위에서 지금의 문제를 봐야한다. 어려웠던 시절의 기준이 지금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냐 반문하면 "그렇지는 않다. 사실은 나도 우리 아이가 그런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다.

세대갈등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라 생각한다. 하나는 노동시장, 즉 청년고용을 늘릴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집' 문제다. 갈등이 더 부각되는 건 후자일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은 기업 대 개인 간 갈등의 양상을 띠지만, 집은 다수의 기성세대와 다수의 청년세대 간 갈등이기 때문이다. 함께 공감하며 풀어나가야 할 일이라 생각하지만, 언젠가 한 번쯤 큰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미 그런 조짐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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