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박근혜 대통령은 확실히 '뭘 좀 아신다' 싶습니다. 규제개혁 끝장 토론회를 개최하는 모습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특히나 규제개혁을 추진했던 이전의 정권들과 달리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면서 기업인과 관료와 지식인만이 아닌 돼지갈비집 사장 등 자영업자들도 함께 토론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특히 그랬습니다. '아래로부터의 규제개혁'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토론회를 주재하며 규제개혁이라는 선명하고도 굵직한 아젠다를 국정과제로 제시함으로써, 통합과정에서 내부 논란에 허덕이며 별다른 아젠다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 야권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국민들의 관심을 끌면서 정국과 공론장을 주도해가는 방법을 잘 안다고나 할까요.
앞선 정권들의 같은 시기 지지율에 비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요. 불편해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정말 대통령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앞으로도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유지는 물론, 지방선거에서도 여당의 승리 가능성이 더 높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집니다.
토론회 하나 한다고 규제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된다고 하더라도 규제개혁이 정말 경기부양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자영업자의 형편이 나아질지도, 일자리가 창출될지도 의문입니다. 결국은 재벌들을 위한 규제개혁으로 혹은 전면적 민영화로 가기 위한 포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는 규제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관료와 공무원 군기 잡기'를 위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적자생존(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엄한 대통령'이 무서워 열심히 대통령 말을 수첩에 받아 적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뭘 하려 하는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관료와 공무원들을 창조경제를 위한 규제개혁의 길로 나서도록 압박하려는 것이지요.
박 대통령이 모두발언에서 창조경제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공무원들의 적극적 태도를 꼽으며, 인사 및 승진 등과 관련한 공무원 평가시스템을 전면 손질하겠다고 말한 것을 볼 때 그러합니다. 이런 점에서도 이번 기조발언은 경제주체들은 물론, 하루하루 삶을 연명하기가 힘든 서민들의 귀에도 쏙 들어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겠습니다.
관료와 공무원들이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경기부양과 민생개선을 위한 개혁에 대해 관심을 갖기는 더욱 쉽지 않습니다. 재벌을 제외한 기업인이나 자영업자, 서민들과 달리 국가의 경제 상황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가하고 있으니까요. 많은 대학생들이 희망직업 1위로 공무원을 꼽으며, 멋없게 도서관에 들어앉아 공무원 시험 준비로 젊음을 -불태우기는커녕- 물 먹이는 이유입니다.
관료와 공무원들은 뭔가 변화를 추구하는 대통령과 정권이 들어서면 '거꾸로 달아도 시계는 간다'면서 세월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제3의 길'을 주창해 유명세를 탔던 안소니 기든스를 포함한 국내외 많은 학자들이 '민주주의를 민주화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관료와 공무원 개혁을 제기하는 이유입니다.
신마르크스주의 '국가' 이론가로 유명한 플란챠스가 말한 것처럼 -칭찬하기 위해 말한 것은 아니지만- 애국심을 갖고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순수한' 관료와 공무원도 있기는 할 것입니다. 찰머스 존슨과 피터 에반스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국가와 경제성장의 관계에 주목하고 '발전국가'와 '장착된 자율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를 국가의 최고 목표로 경제발전을 설정하고, 사회적 자원을 권력자의 사익 추구가 아닌 경제발전에 동원할 수 있었던 국가의 역량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국가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고등교육을 받은 유능한 관료와 공무원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경제발전이라는 과업에 복무하도록 이끌었던 박정희 정권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그 시기 관료와 공무원들이 애국심을 갖고 있었고 유능했다고?'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독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너무 성내지 마십시오. 존슨과 에반스가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교'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독립국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들 나라 중에서 대한민국은 아주 드물게 경제성장에 성공한 나라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박정희 정권이 아니라,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감수한 민중의 희생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산업역군'들 때문에 성공한 것이지요. 그래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의 공적을 기리려면 그들을 기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노동자들이 영국의 역사를 만든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시장지배원리가 철저한 영국, 그것도 데이비드 캐머런의 보수당 정권마저도 노동계급의 공적을 인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도 보수든 진보든 그런 인식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012년도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그 해, 5.16쿠데타에 대한 역사 평가로 정국이 뜨거웠던 여름 한 신문 칼럼(<경향신문> 2012년 8월 8일 자)을 통해 산업역군을 기리는 존중의 자리를 만들라는 주문을 정치권에 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 관점에서 볼 때, 박정희 정권은 대부분의 신생독립국들에 비해(그것이 냉전 시기의 지정학적 위치에 힘입은 것이라고 해도) 덜 사익 추구적이었으며, 더 유능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일지는 몰라도 신생독립국들 중에서 민주주의를 하면서 경제성장에 성공한 나라는 전무합니다. 독재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경험적으로 신생독립국가들 중에서 경제성장은 독재국가와 친화성이 더 높습니다. 국민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불가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또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개명하자는 좀 이상한 사람들처럼 개인을 우상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가난 극복의 열망을 박정희라고 이름 짓고 외치고 있을 따름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거대 세력으로 성장한 것이 바로 관료와 공무원입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그들입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이들이 다 알고 있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관료와 공무원에게 포획된 채, 그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갔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관료와 공무원을 개혁으로 이끌어 내거나 몰고 갈 설득력 있는 비전도 목표도 전략도, 리더십도, 정치력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주니어 보드' '30만 양병설' 등을 주창하며 개혁적 관료와 공무원 대오를 형성하겠다고 했으나,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어떨까요? 관료와 공무원 개혁에 성공할까요? 일단 이번 규제개혁 토론회를 통해 관료와 공무원 개혁이라는 아젠다를 키우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규제개혁도 그렇지만, 관료와 공무원 개혁이 정말 경제 살리기와 민생 살리기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야권 역시 규제개혁과 관료 -공무원 개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 선점해버렸지만, 정권교체를 이룰 수권정당을 만들기 위해 통합했다면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묘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정강정책 논란을 벌이려면 그런 문제를 갖고 벌여야 합니다. '6.15와 10.4 정신을 정강정책에 넣느냐 안 넣느냐' '기초단위 정당공천제 폐지를 고수하느냐 하지 않느냐' 등과 같은 '지금 시급한 민생 문제'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문제로 논란할 때가 아닙니다. 통합 작업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저걸 정치라고 하나' 싶습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자신이 가장 먼저 나서서 망쳐버리는 어리석은 자들'의 바보짓을 보는 것 같습니다. 통합선언 이후 그래도 잘한 것이라며 지켜보자고, 정강정책 논란과 지분 나누기 논란은 통합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옹호했던 필자가 보기에도 그러니, 야권 혹은 통합에 비판적인 국민들이 보기에는 어떻겠습니까.
야권은 정치 어찌할지 모르겠다 싶으면, 박근혜 대통령에게라도 배워야 합니다. 국민의 실생활과 관련해,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길과 답을 제시하는 '비전의 정치' 말입니다. 설사 그것이 올바르거나 맞거나 좋은 길이 아닐지라도 국민들이 답을 듣고 싶어 하는 문제, 답을 듣고 싶어 할 때, 답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합은 지방선거는 물론, 향후 정국에서 오히려 야권의 패배와 장기침체의 요인으로 작용할지도 모릅니다. 어찌 그리 서둘 일과 서두르지 말아야 할 일, 자기들끼리 싸울 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지. 정말 철 좀 들고 분별력을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