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의 기자회견을 끝으로 11일간 진행된 중국의 최대정치행사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마무리됐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기관이지만, 중국의 정치제도 특성상 사법, 행정 등 국가의 모든 기관보다 우위에 있는 중국의 최고권력기관이다.
그런 만큼 1년에 한 번 개최되는 양회, 특히 전인대에서 무엇이 논의되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중국의 지난 1년과 앞으로의 1년을 살펴보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 준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다방면에서 중국과 점점 더 깊은 관계를 맺어가는 우리에게 중국의 양회는 그래서 더 중요하다.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은 자체적으로 이번 양회에 대해 토론한 내용을 정리하여 독자들과 공유한다.
적정한 주행속도는 7.5%
경제는 달리는 자전거와 같다. 달리던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해야 하며, 너무 급하게 페달을 밟아도 급격히 체력이 고갈되어 장거리 주행이 힘들다. 그럼 중국 경제에 있어 그 적정 속도는 어느 정도일까? 리커창 총리는 이번 양회기간에 7.5% 전후를 제시했다. 중국 경제라는 자전거에 있어 7.5%가 가장 적절한 주행(경제성장) 속도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적정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적정한 체온과 활동력을 보장하기 위해 두꺼운 옷은 벗어 놓아야 하고, 부족한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스포츠음료도 준비해 놓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행 전 자전거 자체에 대한 안전 점검은 필수적이다. 중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이번 양회에서는 적정한 주행 속도를 위한 필수 사항으로 ‘개혁’이 강조됐다. 그야말로 이번 양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의 장, 합의의 장이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지도층의 개혁의지 확고
정치개혁의 초점은 ‘관료 부패척결’
한 나라의 각 분야에서 전면적인 개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가 선두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중국과 같이 정치가 각 방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에서는 정치적 의지가 개혁의 관건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이번 양회에서 중국의 정치 분야에서는 어떤 개혁 논의가 있었을까?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중국을 이끌고 있는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개혁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习近平) 중국공산당(이하 중공)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작년 11월 개최된 3중전회에서 신설된 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全面深化改革领导小组)의 조장을 맡아 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데, 최고 지도자가 나선 만큼 개혁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또한 이번 전인대 정부업무보고 자리에서 리커창 총리가 ‘개혁’이라는 단어를 무려 77번이나 사용했던 것도 최고 정치 지도층의 개혁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둘째, 주요 정치 지도자들이 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방점은 역시 경제, 사회 등 민생 분야에 있다는 점이다. 리커창 총리가 업무보고 자리에서 "개혁은 올해 정부 업무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경제체제 개혁을 중점으로 상황을 구분하고 분야별로 개혁을 추진하며...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고 개혁의 이익을 더욱더 만들어내야 한다“고 한 대목에서도 개혁의 방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중공중앙 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밑에는 6개의 전문소조(경제체제와 생태문명체제개혁 소조, 민주법제영역개혁 소조, 문화체제개혁 소조, 사회체제개혁 소조, 당의 건설제도개혁 소조, 기율검사체제개혁 소조)가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도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워 개혁을 추진하는 소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아직까지 중국에서는 ‘정치개혁’이 전면에 나오고 있지는 않다.
셋째, 비록 정치개혁을 전면적인 구호로 내세우며 개혁을 추진하지는 않지만 분명 정치개혁은 이뤄지고 있으며 그 초점은 ‘관료 부패척결’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 분야의 개혁은 인민검찰원 및 당의 규율검사위원회를 주축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번 최고인민검찰원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이미 성부(省部)급 고위관료 8명이 낙마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로 봤을 때 이번 양회기간에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지만 조만간 매머드급 정치인인 전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용캉(周永康)에 대한 검열결과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저우용캉에 대한 처분 결과는 그야말로 중국의 정치개혁, 특히 그 초점인 ‘관료 부패척결’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되지 않을까 전망된다.
간정방권(简政放权)으로 정부 개혁
내수시장과 직결되는 민생분야 발전을 강조
그렇다면 ‘개혁’의 핵심 분야인 경제부문에서는 이번 양회기간 동안 어떤 내용들이 논의됐을까? 중국 정부는 이번 정부업무보고에서 양적 GDP 성장률이 아닌 질적 GDP 성장률 달성을 위한 경제발전과 개혁에 대해 방향을 제시했다. 전체적으로 거시경제 지표의 소폭 조정 및 구조조정, 개혁 추진이 올해 경제업무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올해 GDP 성장 목표율을 작년과 동일한 7.5%로 설정함으로써 경제의 안정적 성장에 대한 의욕을 내비쳤다. 비록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중국 경제가 하락할 것이라는 부담 또한 없지는 않지만, 일자리 확보나 인플레이션 통제, 안정적 통화정책 및 적극적 재정정책 등 거시조절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개혁은 올해 정부업무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이를 위해 이번 양회기간에는 정부와 기업의 기구를 간소화하고 권한을 하부 기관에 이양하는 ‘간정방권’(简政放权)이 강조됐다. 또한 재정과 조세체계, 금융, 국유기업 등의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개혁도 언급됐는데, 특히 금융의 경우 환율변동구간 확대, 이자율 시장화, 예금보험제도, 민영은행 등에 대한 개혁이 빠른 시일 내에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재정과 조세의 경우에는 예산제도 완비, 증치세(부가가치세) 시범 확대, 소비세, 자원세 등이 추진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국유기업은 혼합소유제로 개혁의 방향이 가닥을 잡았다.
이렇게 경제 분야에서 개혁이 전면적으로 진행될수록 경제 구조조정 역시 지속가능한 발전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공급과잉 산업에 대해서는 환경보호, 에너지 소모, 기술 등 기준을 강화하고, 신흥산업에 있어서는 혁신플랫폼 구축을 통한 신세대 이동통신, 집적회로 등 방면의 선진화를 통해 미래 산업으로 발전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서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수출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이번 양회에서도 내수 시장과 직결되는 민생 분야의 발전이 특히 강조됐다. 그 예로 노후대비·건강·관광·문화 등 서비스업 발전과 정보소비촉진, 인적 도시화 등을 통한 국내 소비확대를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우리 기업으로서는 이러한 분야에 주목하여 중국 시장 진출을 노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률 개혁으로 민생을 개선
식품안전에 관한 법률정비 강화, 우리 수출기업 만반의 준비를
과거에도 중국에서는 개혁, 혁명의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은 과거와 차별화된 부분이 있다. 단순히 정치적 의지만으로 개혁이 급격히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법에 근거해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에서 ‘법치(法治)’가 강조되고 있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이번 양회기간 진행된 6개의 주요 업무보고 중 최고인민법원 업무보고와 최고인민검찰원 업무보고 내용에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일 진행된 최고인민법원 업무보고를 보면, 지난해 유해·유독 식품의 생산 및 판매에 관한 식품안전 범죄 처리 건수가 2082건으로 전년대비 84.2%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횡령, 뇌물 수수, 직권 남용 등으로 처벌받은 국가 공무원은 3만 1000명에 달했는데, 여기에는 보시라이(薄熙来)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와 류즈쥔(刘志軍) 전 철도부장의 뇌물수수·직권남용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 사법 당국이 지난 한 해 식품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 및 공무원 부패에 대해 얼마만큼 강도 높게 사정을 벌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민생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최고인민법원의 주요 심리 사안으로는 ▲농촌토지경영권거래 ▲의료 ▲식품위생 ▲사회보장 ▲환경보호 등 5가지 사항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이와 관련한 법정 다툼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올해는 보다 엄중한 법의 잣대를 가지고 관련 사항을 처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법률 개혁을 통해 민생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한편 전인대 상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는 다음의 7가지 법률 제정 및 개정 사안이 눈길을 끌었다. ▲대중이 행정소송을 통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도록 행정소송법을 처음으로 전면 개정하기로 했고 ▲정부의 무분별한 재정 낭비를 관리 감독하기 위해 20년 만에 처음으로 예산법을 개정하며 ▲가장 엄격한 제도로 오염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관련 환경보호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또한 ▲생산 단계의 안전성 유지를 위해 안전생산법이 12년 만에 처음으로 개정될 예정이며 ▲생산 공장의 화재 및 대형 폭발사고를 막기 위해 위법행위에 대한 강력한 법적 제재를 마련하기로 했고 ▲식품안전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식품안전법을 개정하며 ▲식량 안전 문제 해결을 위해 식량법을 제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봤을 때, 얼마 전 국내 유명 라면 제조사의 제품이 중국에서 식품 수입 기준치 미달로 전량 폐기된 사례가 있는데, 이러한 일이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우리 기업으로서는 중국의 식품안전 강화 추세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한국 의식해 서법(書法)의 유네스코 등재 서두를 듯
중국의 굴기는 자연히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있는데, 이러한 심리가 이번 양회기간에도 표출됐다. 물질, 비물질문화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화유산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해외에 건립한 공자학원을 포함한 중국문화센터가 커다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하며, 투자를 늘려 해외 중국문화센터 건립을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은 문화이며 중국문화는 ‘무연(无烟)’산업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세계 문화시장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 공세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또한 주변국 중 특히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의식해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안건이 제기됐다. 단오와 같이 과거 한국과 중국이 공유했던 문화를 한국이 세계 비물질문화유산(UNESCO)에 등재했던 것에 대해 중국인들은 한국의 중국문화 침탈이라고 여겨왔다. 이런 여론이 이번 양회에서 심도 있게 거론되어 향후 한중간의 또 다른 역사분쟁으로 불거질까 우려된다.
특히 이번 양회 기간에는 서법(書法, 중국식 서예)과 한자에 대한 논의가 주목을 받았다. 한국이 서예를 세계 비물질문화유산(UNESCO)에 등재할 것이라는 소식을 근거로 중국 문화부는 중국 서법의 유네스코 등재 전문가팀을 구성하여 하루빨리 등재해야 함을 건의하기도 했다.
그 밖에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가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을 증명이라도 하듯, 중국의 정치서열 6위인 왕치산(王岐山)이 ‘별그대’를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이번 양회의 핵심은 개혁이었고, 이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전 분야에 걸쳐 논의됐다. 리커창 총리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다시 돌아오는 법은 없다. 끝을 보기로 했으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은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혁에 대한 지도층의 이런 의지와 계획에 공감을 한 것일까? 전인대 대표들은 정부 업무보고를 비롯한 6개의 주요 업무보고에 대해 최근 들어 가장 적은 반대표를 던져 신뢰를 표시했다. 예를 들어, 정부업무보고에 대한 반대표는 2010년 36표, 2011년 47표, 2012년 90표, 2013년 101표로 꾸준히 증가해 왔으나 올해 2014년에도 15표로 급감했다. 올 한해 개혁이 과연 제대로 진행될 것인가? 내년 양회 때 던져질 반대표의 숫자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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