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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으로 거세하게 만든 사회 다시 맞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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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으로 거세하게 만든 사회 다시 맞을 건가

[편집국에서] '애절양'을 떠올리게 만드는 21세기 한국

1803년 전라도 강진. 한 여성이 손에 뭔가를 들고 관가에 가서 울부짖었다. 손에 들린 것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피맺힌 호소에 귀 기울이는 관리는 없었다.

몸을 푼 지 며칠 안 된 여성이었다. 채 회복되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관가를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든 건 사람 잡는 정치였다. 태어난 지 사흘밖에 안 된 핏덩이를 군적(군인 명부)에 올려놓고 소를 뺏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정치였다. 죽은 사람까지 군적에 올려 세금을 뜯어가던 시절, 갓난아이는 저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농민에게 소는 가축 그 이상의 존재다. 그런 소마저 강탈당한 사내는 절망했다. 그리고 제 손으로 거세했다. '이 물건 때문에 아이가 생겨 이런 재앙을 맞는구나.' 관가를 찾아 피눈물을 쏟은 여성은 이 사내의 아내였다. 여성의 손에 들린 건 얼마 전까지 남편 몸의 일부이던 그것이었다.

미쳐버린 세상의 서글픈 풍경이었다.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가혹한 정치가 토해낸 참혹한 현실이었다. 한 선비의 귀에 이 이야기가 들어갔다. 선비는 이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시를 남겼다. 개혁을 꿈꾸다 쫓겨나 귀양살이 중이던 이 선비가 다산 정약용이다. '애절양(哀絶陽)'은 그렇게 탄생했다.

처음엔 자신을 벴지만 다음에 벤 건 썩어빠진 체제였다

2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애절양'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읽을수록 서늘함을 더 느낀다. 힘없는 이를 짓누르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백성 노릇을 하기가 참 힘든 세상이라는 점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부자는 못 되더라도 가족과 단란하게 지내는 소박한 행복조차 적잖은 이들에게 먼 이야기 아닌가.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세 모녀 사건'에서도 이는 잘 드러났다. 한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특정 지역, 특수한 가정의 문제만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세 모녀'들이 방방곡곡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애절양' 부부의 비극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세 모녀'들이 마주친 상황 역시 이 시대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가난이 죽을죄가 되는 나라, 힘없는 이들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어려운 사회다. 이를 보여주는 지표는 차고 넘친다. 세계 최고 수준인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에서도 이는 단적으로 드러난다. '가혹한 세금 때문에 스스로 거세하는 일은 없지 않은가'라며 자기 위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상황을 점점 나쁘게 만드는 요소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불안정 노동자를 늘려 힘없는 사람들을 벼랑 아래로 떠미는 것, '부자 감세' 같은 것들을 통해 양극화와 빈부 격차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 등이 삶을 위협하고 있다. 많은 이들도 이걸 알고 있다.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무엇이 자신의 목줄을 죄는지는 본능적인 삶의 감각으로 느끼기 마련이다.

▲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는 메모와 함께 남긴 현금 봉투. ⓒ서울지방경찰청

문제는 여기부터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위정자들 스스로 경계하고 또 경계할 것을 주문하는 건 어떨까? 조선의 선비들 중 그래도 양심의 소리를 따르려는 이들은 그렇게 했다. 지배층이 탐욕을 절제하지 않으면 사회가 폭발할 수 있다는 신호도 보냈다. 정약용도 그중 하나였다. 부자에게 세금을 걷지 않고 힘없는 이들에게만 세금이 몰리는 현실을 비판하고, 백성을 상대로 노략질하는 데만 정신이 팔리면 "남쪽에 우환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지배층이 귀를 닫아버리면, 이 방법은 힘을 받지 못한다. 19세기 조선 지배층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지난 대선의 주요 화두였던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 문제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약속은 짓밟혔고,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리고 낡은 재벌 위주 경제가 다시 전면에 나섰다. 정부에서 어떤 미사여구를 들이댄다고 해도 덮을 수 없는 진실이다.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라며 대통령이 규제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 것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쓸데없는 규제"라는 한정은 공염불에 그치고, 반드시 필요한 규제도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에 필요한 규제도 희생양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는 시쳇말로 혁명을 하자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두 과제가 대선의 화두가 됐던 건, 곳곳에서 아프다는 비명이 들리는 상황을 방치했다가는 사회가 터져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과 관련 있다. 일부 지배층마저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를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날 세계사에서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 세력이 거세게 일어나자, 자본주의 지배층이 혁명을 막고자 불가피하게 체제를 일부 수정해야 했던 상황과 닮은 구석이 있다.

그러나 한국 지배층은 대선 후 그 정도 과제마저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케케묵은 색깔론 카드를 심심찮게 꺼내들며, 뻔뻔하고 근시안적이고 퇴행하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자인했다.

힘을 보여주지 않으면 지배층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소연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경계할 것을 위정자에게 경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백성이든 국민이든 움직이지 않는데도 알아서 척척 해주는 지배층을 만나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운 법이다. 역사가 전하는 엄중한 교훈이다.

'애절양'의 참혹함에도 꿈쩍하지 않던 지배층은 백성이 뭉쳐 힘을 보여주고 나서야 움직였다. 1860년대 민란, 1894년 갑오농민전쟁으로 백성이 들고일어났을 때 그랬다. 견디다 못한 백성이 처음에 베는 건 자신이지만 다음에 베는 건 썩어빠진 체제라는 무서운 사실을 느낀 후에야 지배층은 굼뜨게라도 움직였다. 한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문제투성이 자본주의를 수정하게 만든 건 지배자들의 선한 마음이 아니라 노동 운동을 비롯한 사회 운동의 힘이었다.

이에 비춰보면,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 과제가 지지부진한 건 아래로부터 이를 추진할 조직과 세력을 충분히 형성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내키지 않더라도 지배층이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을 국민이 보여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떨쳐 일어난 19세기 조선의 선조들, 그리고 자본주의에 맞섰던 세계의 이웃들에게 배울 때다. 조직하고 토론하고 연대해야 자신도, 세상도 바뀐다. 혼자 힘들어하거나 푸념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손을 맞잡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세 모녀 사건'에 안타까워하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복지 국가 운동을 꾸준히 해온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 괜찮은 단체에 가입도 하고, 그들과 교류하며 힘을 실어주는 것은 물론 자기 고민의 폭도 넓히자는 말이다. 복지 국가에 딴죽을 거는 세력을 분명히 기억하고 그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불안정 노동, 최저 임금, 생태 위기 등 국민들이 매일 피부로 느끼는 문제를 푸는 것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언론 문제도 그렇다. 왜곡을 일삼는 곳과 힘들어도 정론의 길을 가려는 곳을 구분하고, 전자는 끊고 후자를 키워야 한다. 그래야 언론도 살고 국민도 산다. 정치라고 다를까? 겉만 번지르르만 '새 정치' 말잔치에 혹했다가 또 마음 다치는 것보다는 쓸모 있는 대안 정당을 위한 씨를 뿌리는 것이 필요하다.

더디더라도 그래야 길이 열린다. 그것이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를 제대로 실천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다른 길을 열어가지 않으면 '애절양'을 떠올리게 하는 '세 모녀 사건' 같은 비극은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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