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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전력 없이 살 수는 없을까?

[초록發光] 밀양을 위한 에너지 협동조합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성, 핵폐기물 처리와 핵발전소의 영구적 폐기를 생각하면, 지금의 핵발전소 중심의 대규모 중앙 집중식 전력 시스템은 안전하지도, 깨끗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뿐만 아니라 일방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소비하는 이 시스템을 위해 발전소 주변과 수많은 송전탑 주변 주민에게 끊임없는 희생이 강요되고 있는 것도 밀양을 통해 새삼 느끼게 된다.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기후 변화와 같은 지구적 환경 문제 그리고 후쿠시마로 인해 다시금 깨닫게 된 핵발전소의 위험까지 덧붙여지면서 더 청정한 에너지원을 사용하면서도 안전하고 민주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비록 작은 움직임이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스스로 에너지 소비자이자 공급자가 되는 태양광 중심의 에너지 협동조합도 늘어나고 있고, 에너지 교육이나 에너지 효율 문제에 관심을 가진 협동조합도 생겨나는 추세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활동들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걸음마 수준이기 때문에 재생 가능 에너지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이미 핵발전소 전기에 대부분 의존하는 도시민의 협동조합이 단순히 재생 가능 에너지를 통한 전력 공급에 참여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조금 더 지금의 전력 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은 없을까?

지난 2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핵발전소 부지와 송전탑 인근 지역을 둘러보고 왔다.

"앞으로 핵발전소든 핵 폐기장이든 짓는다면 다 여기에 유치해야 됩니다." 

자신의 집이 핵발전소 코앞에 위치해 있고 아침마다 해를 보듯 핵발전소를 보며 집을 나선다는 한 어르신이 이야기했다. 핵발전소가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다. 핵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핵 마피아이기 때문도 아니다.

"굶어죽나 발전소 때문에 죽나 죽는 건 매한가지니까요."

이어지는 어르신의 체념 섞인 말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또 다른 어르신은 "우리는 지금 좀 더 살아보자고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권을 이야기하는 겁니다"라며 절박한 상황을 이야기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밀양에서 두 분의 어르신이 스스로의 목숨 바쳐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도 "우리는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중앙 집중식 에너지 시스템은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대의를 명분으로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무시해 왔다. 대규모 중앙 집중식 에너지 시스템이 한국 사회에 고착되었고 대부분의 국민들도 익숙해졌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식탁을 걱정하며 일본산 먹을거리 수입을 막도록 정부를 압박하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의 생명권을 이야기하거나 우라늄 수입을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진 않는다. 너무 먼 이야기이기 때문이거나 관심이 없거나 혹은 당장 내 가정의 전기료가 올라가게 된다는, 전력 대란이 올 것이라는 정부의 협박에 의해서거나, 어찌 되었든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모두가 일부의 희생에 대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용인하고 있다.

이처럼 중앙 집중식 에너지 시스템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시스템으로 인해 생명권 전체가 위협을 받고 있는 지역과 암묵적으로 지금의 시스템을 지지하는 이들 간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그 둘 사이에는 늘 정부와 한국전력이 존재한다. 그러니 서울에서 에너지 협동조합에 참여한다고 한들 한국전력의 전기를 사용하고 한국전력에 전기를 파는 지금의 활동 영역에서 조합원들이 에너지 시스템의 암묵적 지지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긴 어렵다고 본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발 더 나간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협동조합'을 제안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밀양이 되길 바란다.

지금의 밀양 투쟁은 송전탑이 세워지느냐 아니냐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하지만 지금의 수많은 투쟁이 그러했듯 프레임이 좁아질수록 투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줄어들고, 힘이 빠지고 빠르게 잊힌다.

송전탑 하나로 시작된 문제는 지금의 에너지 시스템이 민주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대규모 핵발전소를 중심으로 한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가, 재생 가능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분산형으로 전환할 것인가, 재생 가능 에너지 중심의 전환 사회로 인해 새로운 경제 발전은 가능할 것인가 등, 더 많은 의제로 확장될 수 있고, 그렇게 되도록 주변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탈핵버스와 같은 투쟁을 지지하는 활동과 더불어 지금의 에너지 시스템을 부정하고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을 실험하고 확장 시킬 전국 단위에 조합원을 둔 에너지 협동조합의 창립을 제안하고 싶다.

지금의 에너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에 의해 강제 수탈 되었지만 막상 그 에너지 시스템에 조금도 의지하지 않는 마을, 한국전력의 송전탑이 세워졌지만 한국전력의 전기를 하나도 쓰지 않는 마을, 도시의 에너지보다 더 청정한 에너지를 사용하면서도 민주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가진 마을, 자신이 사용하는 전기의 주인이기에 '갑'도 '을'도 없는 마을, 그 마을을 밀양에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찾지 않는 핵발전소 앞의 홍보관에 대적할 만한 '멍청이들의 에너지' 체험관도 지으면 좋겠다. 765킬로볼트 송전탑을 실제로 보고 위압감을 느낄 수 있는, 용감한 이들을 위해 펜션도 만들어서 송전탑과 하룻밤이라는 으스스한 경험도 해 볼 수 있겠다.

지난 2003년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반대했던 부안의 경우도 이후 대안 에너지에 대한 논의의 장으로 부상했었다. 지역 농민과 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유채 재배를 통해 농기계 연료를 전환하기 위해 시도를 하고 '석유 없이 농사짓기'라는 엄청난 일에 도전장을 내민 사례가 있었다. 비록 이후 그것이 온전히 지역 주민과 일부 시민사회 단체의 일로 남겨지면서 현재는 힘이 많이 빠진 상태이지만, 우리 사회에 충분히 의미 있는 활동이었고 그러한 일련의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생태와 환경에 대한 인식 수준은 매우 높아졌다.

어쩌면 지금 제안하고 싶은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제2의 부안일 수도 있다. 다만, 부안이 핵폐기물 처리장 반대를 통해 지역의 승리를 얻어 낸 반면 밀양은 아직 상처가 깊고, 그것을 목도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 모델을 만들어내기 더 좋은 조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도전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한해 수십억 원을 홍보에 쏟아 붇는 원자력문화재단의 힘에 자본으로 이길 수는 없다. 대신 협동조합을 통해 사람의 힘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밀양의 송전탑 싸움이 봄을 맞아 더 치열해 질 것으로 보인다. 그 치열한 싸움이 주민의 승리로 끝나기를 누구보다 바라지만 현실에서 힘들지 않겠는가 하는 어두운 생각도 해본다. 밀양 어르신의 말이 떠오른다.

"혹여 송전탑이 세워져도 우리가 똘똘 뭉쳐 온 힘 다해 싸웠다면 절대 우리는 이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야!"

이 싸움이 밀양의 싸움으로, 송전탑의 싸움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그리고 지금껏 힘겹게 투쟁해 온 지역민들이 진정한 승리자로 설 수 있도록 밀양을 대안 에너지 시스템 모델로 만드는 '에너지 민주주의 협동조합'의 설립을 제안한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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