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을 강행하려는 의협과 이를 막으려는 정부 간의 대립이 치열했다. 정부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3월 10일 월요일, 하루 동안의 의사 파업은 단행됐다. 이후에도 양측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다면 후속 파업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왜 의사들은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의사 파업의 찬반 유무를 떠나 정치경제학적 측면에서 이번 의사 파업의 원인을 더 깊게 다루어 보고자 한다.
지난 10년간 의료 서비스 공급 시스템의 변동
2000년 의약분업 사태를 겪으면서 병원에 근무하던 의사들의 동네 의원 개원 러시가 일어났다. 의약분업에 따른 환자 수의 급증과 대폭 인상된 의료 수가가 주된 원인이었다. 이에 반해, 병원들은 경제적 침체와 더불어 어려움에 직면했다. 병원들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했고, 정부는 전문병원 지정 등을 통해 병원이 살아남을 활로를 열어 주었다.
장기요양보험제도의 도입으로 요양병원들이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이렇게 병원 중심으로 정책 환경이 변한 것이 동네 의원들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수혜는 모든 병원이 아니라 대형 병원에만 집중되었다. 이는 단지 의료 수가 인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의료 서비스 공급 시스템의 문제였다. 따라서 필자는 이번 의사 파업의 실질적 이유가 "수가 인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일부의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2002년과 2012년 10년간에 걸쳐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병상 수가 대폭 확대되었다. 더불어 대형 병원의 외래 기능 역시 대폭 확장되었고, 이에 반해 의원의 외래 기능은 오히려 축소되었다. "만들어진 병상은 반드시 채워지기 마련이다"라는 보건경제학의 유명한 명제가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결과, 의원의 건강보험 진료비 점유율은 2002년 31%에서 2012년 22%로 급감하였다. 이렇듯 의원들의 위기감이 팽배한 가운데, 지난 시기 정부가 발표한 의료 정책들은 대부분 병원의 영리성 추구를 겨냥한 것들이었고, 의료 서비스 공급 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일차 의료' 기관인 의원들에 대한 정책들은 거의 없었다. 지난 대선 시기 일차의료특별위원회 등을 가동하자는 목소리도 나왔으나 아직까지 별 진전은 없다.
의료 민영화의 다른 이름들
의료 민영화 또는 의료 영리화는 지난 의약분업 사태 이후 한국 의료 시스템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던 정책 기조였다. 물론, 이러한 표현이 주는 국민의 정서적 부담감 때문에 이와 관련된 정부의 정책들은 다른 이름으로 포장되어 왔었다. 노무현 정부의 의료 서비스 산업화, 이명박 정부의 의료 서비스 선진화 등이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의료 투자 활성화 대책의 핵심은 의료 법인의 부대사업 목적 (영리) 자법인 설립 허용, 의료 법인 간 합병 허용 및 법인 약국 허용, 유헬스(U-health) 활성화(원격 환자 진료와 연관) 등으로 역시 의료의 영리성 추구가 주된 목표임을 알 수 있다.
현 정부의 의료 투자 활성화 대책은 한마디로 국민건강보험체계 내에서 의료 기관들이 알아서 생존방식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런 정글 방식의 적자생존에서는 당연히 강한 자만 살아남고 약한 자는 잡아먹히기 마련이다. 또 강한 자는 강한 자끼리, 약한 자는 약한 자끼리 서로 살아남겠다고 아우성을 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현 정부에서는 이를 통해 의료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한다. 의료 서비스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하며, 일자리 창출은 의료 기관 본연의 목적인 환자 진료에 필요한 인력 등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환자들에게 좋은 의료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의료 시스템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 건강 향상에 있지, 배부른 의료 자본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개인 의료 자본과 병원 자본 간의 경쟁과 갈등 조장
이번 의사 파업이 전개되는 양상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실현에 반대하는 의사 파업과는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병원과 의원 모두 반대했지만, 이번 파업에 대해서는 의원과 병원의 입장에 큰 차이가 있다. 의료계의 소자본인 개원 의사들은 파업에 적극적인 반면, 병원협회를 중심으로 하는 병원 자본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정부에 우호적이다. 이는 이번 정부의 정책이 병원에 유리한 방식으로 입안되었음을 의미한다.
성장 동력을 찾으려면 영세 개인 자본인 동네 의원보다는 병원 자본을 주요 표적으로 삼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투자 활성화는 필연적으로 의원과 병원 간의 갈등을 촉발하며, 오히려 의료 생태계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이윤 중심 의료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
이번 의사 파업의 명분은 정부의 의료 영리화 정책에 대한 반대이다. 한때 의료계는 정부의동 의료 민영화 또는 의료 영리화 정책들에 대해 찬성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료 영리화가 의사 파업 강행의 대의명분으로 부상하였다. 실제로 과거 의협은 의료 영리화의 핵심 정책인 영리법인 병원의 도입,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건강보험을 대체하는 민간 의료보험 도입 등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이들 정책들은 정부나 공적보험자의 간섭과 통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의료계의 마음을 일부 대변해 주는 정책이기도 했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박근혜 정부의 의료 영리화 정책은 과거의 의료 민영화 또는 의료 영리화 정책들의 내용과 다르다. 정부나 공적보험자의 규제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 틀의 변화 없이 시스템 내부적으로 영리성의 추구를 확대·강화하였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는 대처 정부 시절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 :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가 경험하였던 내부 시장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내부 시장 정책은 NHS의 기본 틀은 유지한 채 내부적으로 의료 기관들 간의 경쟁을 촉발함으로써 효율성과 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부 시장의 정책적 효과는 미흡하거나 실패했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원격 의료 허용 등을 통한 의원과 병원 간의 경쟁, 의료 법인의 영리 자법인 설립 허용 및 의료 법인 간의 합병 허용 등과 같은 병원과 병원 간의 경쟁을 촉발함으로써 의료 시스템 내부의 이윤 창출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대처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되는 이유이다.
기존의 의료 영리화 정책은 의료 시스템의 틀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반면,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의료 시스템의 틀은 유지한 채 내부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므로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의료계로서는 더 위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내부 시장 정책은 불가역적이고 확대·강화되는 속성이 있으므로 궁극적으로는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요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특히, 약육강식의 의료 시스템에서는 대자본의 침투가 더욱 쉬워진다. 그리고 대자본의 요구가 쉽게 수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자본은 의료 자본만이 의료의 주인인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므로 자신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요구할 것이다. 그 길을 투자 활성화 정책들이 터주는 것이다.
공공성 확대하고 일차 의료 강화해야
의료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무엇보다도 '일차 의료'가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일차 의료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2, 3차 의료로 해결하면 당연히 불필요한 지출이 늘어나 국가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지 못하다. 지금처럼 의사는 환자를 많이 보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환자들은 대형 병원을 더 선호하는 상황에서는 국가 의료 시스템이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일차 의료가 내용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의사를 만나더라도 별로 만족스럽지 않고, 약만 타러 가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의사를 만나지 않고 편하게 원격 진료로 약 처방 받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의사를 만나는 것이 화상으로 원격 진료를 받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그러한 '의사-환자'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일차 의료 강화 방안을 내놓아야 바람직하다.
아무리 의료 관련 정보가 넘쳐나고, 소비자 운동이 활성화되더라도 환자는 결국 의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이라면 좋은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그러한 환경은 '의료 투자 활성화'가 아니라 '의료 보장성'의 강화를 통한 공공성 확대와 일차 의료의 내용적 강화를 통해 조성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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