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바로 보기)에서 GM이 통상임금 관련 항목을 놓고, 어떤 때는 비용 처리하고 어떤 때엔 환입 조치함으로써 회계장부상 흑자 및 적자 폭을 조절하는 과정을 살펴봤다. 뭐 말이 좋아 '조절'이지, 구체적인 지점까지 파고들어 가면 '조작 의혹' 내지 '세금 포탈 의혹'이 제기될 만한 영역이다.
그런데 글로벌 GM이 이렇게 하건 저렇게 하건 회계기준은 아무런 제재를 취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도 기준에 맞고, 저렇게 해도 기준에 맞다고 해석을 내려버린다. 도대체 무슨 기준이 이 따위인가? 그렇다. 기업회계 기준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기업에 유리한 방식으로 짜여 있다. 이러니 <인사이드 경제>가 회계까지 대표적인 거짓말 영역에 포함시키려는 것이다.
흑자 기업을 적자로 둔갑시킨 통상임금
영업이익은 지난 2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함으로써 연간 영업이익 흑자 달성이 기대되었으나, 4/4분기 환율의 급락 및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에 따른 재무적 영향에 따라 연간 8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건 또 어디 얘기일까? 지난 2월 20일, 쌍용자동차가 2013년 실적을 발표한 보도자료 내용의 일부다. 뭐, 이제 아예 노골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통상임금 관련 항목을 비용 처리함으로써, 흑자 달성이 기대되던 기업이 영업손실을 낸 기업으로 둔갑했다고 말이다.
작년에 쌍용차가 분기별로 실적을 발표한 내용을 보면, 1분기에 180억 원의 영업적자가 난 것을 제외하면 2분기 37억 원과 3분기 7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등 사실상 흑자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종적으로 8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하니, 이를 통해 4분기 실적을 역산해보면 4분기에는 47억 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토대로 작년 쌍용차의 분기별 실적을 표로 한번 나타내봤다.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 2분기에 흑자로 전환했을 때, 쌍용차는 대대적으로 흑자 전환 사실을 홍보한 바 있다. 그런데 4분기에는 환율 급락과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 효과에도 불구하고 2분기보다 많은 47억의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역시 대대적인 홍보용 소재가 될 텐데, 오히려 4분기 실적이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고 연간 89억의 적자를 냈다는 결과만 내보낸 것이다.
엄살도 이 정도면 금메달 급
그렇다면 대체 통상임금 대비 충당금으로 얼마를 쌓아놓은 것일까? 영업실적 발표 보도자료에는 구체적인 금액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다행히 최근 제네바 모터쇼가 열리면서 완성차 업체들에 대한 활발한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그중 쌍용차 관련 기사들에 구체적인 액수가 나오고 있다.
"쌍용차는 이미 지난해 통상임금 증가를 대비한 충당금으로 150억 원을 책정하면서 8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통상임금 이슈로 인해 흑자 달성이 한 해 늦춰진 것이다." (<머니투데이> 3월 6일자, 쌍용차, "통상임금 등으로 예산안 재검토")
헉~! 무려 150억 원? 다시 한 번 <인사이드 경제>의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그럼 만약 통상임금 대비 충당금을 적용하지 않았다면 회계장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4분기 실적에 150억 원을 더하여 분기별 실적표를 다시 한 번 만들어봤다.
위 표에 드러나듯이 만일 통상임금 항목이 없었다면, 작년 쌍용차 실적은 61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게 된다. 게다가 4분기에만 무려 197억 원의 영업이익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낸 것이 된다. 분기별 실적만으로 보자면, 쌍용차 역사상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기록이 아닌가!
실적과 관련해 기업이 엄살을 떠는 게 기본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엄살은 거의 금메달 급이다. 현금 지출이 발생한 것도 아니다. '나중에 줘야 될지도 모를 돈' 명목으로 쌓아두는 것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만져보지도 못한 현금인데, 쌍용차는 통상임금을 핑계로 적자를 만들어 법인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면제받는다. 실제 지출한 돈이 아니라 충당금 명목으로 쌓아놓는 돈이기 때문에, 150억 원의 현금 유동성까지 덤으로 챙긴다.
늘렸다 줄였다…적자와 흑자 폭 조절에도 동원되는 통상임금
작년 갑을오토텍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에 대해, 한국GM과 쌍용자동차의 움직임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한국GM은 2012년에 충당금으로 쌓아놓은 통상임금 소송 금액에 대해 '환입' 조치를 한 반면, 쌍용자동차는 정반대로 충당금으로 쌓는 조치를 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회계를 감시·감독해야 할 당국은 '이래도 합법, 저래도 합법'이라며 좌시하고 있을 뿐이다. 최소한 한국GM이 환입 조치를 했으면, 그 이전 해에 통상임금 충당금 적립 때문에 적자가 났던 부분은 원인무효가 되므로, 면제되었던 법인세를 추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그런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니 쌍용차가 또다시 한국GM의 전례를 따라 멀쩡한 흑자 기업을 적자로 둔갑시켜 세금을 면제받게 되었다. 게다가 한국GM처럼 언젠가 또다시 환입 조치를 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
더 중요한 사실은 충당한 금액 규모가 얼마인지, 그리고 그 금액이 나오는 계산법이 무엇인지 전혀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쌍용자동차의 경우 통상임금 대비 충당금이 매년 달라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유일 쌍용차 사장은 4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2014 제네바모터쇼'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서 "통상임금으로 인해 올해 추가되는 예산이 870억 원가량"이라며 예산안을 재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인건비로 3400억 원이 소요된 것을 감안하면 25.6%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 사장은 "내년부터는 계산 방법이 조금 달라 추가되는 금액이 670억 원 정도로 줄 예정"이라며 "임금 인상률로 환산하면 17~18%에 달한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3월 6일자, 쌍용차, "통상임금 등으로 예산안 재검토")
위 기사에 따르면 작년에는 150억 원, 올해엔 870억 원, 내년엔 또 계산 방법이 달라져 670억 원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금액이 나오는지, 그리고 애초 계산법은 무엇인데 또 어떻게 달라진다는 것인지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하니 회계장부에 통상임금 대비 충당금으로 1억 원을 잡을 수도, 1000억 원을 잡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얼마나 편리한 도깨비 방망이인가? 회계 수치를 조작하고 싶으면 통상임금 문제를 활용하면 되니까 말이다!
특히 통상임금에 의한 평균 16%의 임금 인상 효과에 따른 올해 약 750억 원(추정치)에 이르는 추가 부담액 발생으로 회사가 받는 재무적 압박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 문구는 쌍용자동차 사측이 공장 노동자들 상대로 발간하는 '참여와 역할'의 2월 12일자 유인물에 "재무적 위협 요인들로 회사 기반 흔들"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의 일부이다. 여기에는 또 통상임금 추가 부담액을 750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수치는 또 뭐란 말인가?
150억 원? 870억 원? 670억 원? 750억 원? 실제로 노동자들에게는 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으면서, 자기들 멋대로 필요에 따라 적자 폭과 흑자 폭을 조절하고 회계 수치를 마음대로 변경한다. 국세청도, 금융위원회도, 이 금액을 어떻게 책정하건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계산법도 공개하지 않는 저 회계장부를, 도대체 우리가 믿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러니 <인사이드 경제>는 목 놓아 외친다. 대기업의 회계는 모조리 사기 아니냐고 말이다! 이런 비난이 억울하다면, 어디 한번 대기업들은 회계장부와 함께 원장을 공개해 보시든지~!
조직 노동자,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모든 것을 걸 때다
자본의 거짓말 회계를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도, 이를 추동할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노동자들이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상황이 이쯤 되었으면 이제 민주 노조 운동 내부에서도 통상임금과 관련한 평가와 성찰이 있어야 할 때가 아닐까?
대기업 노조 조합원들의 소송 중심으로 만들어온 통상임금 이슈가 남긴 성과가 과연 무엇일까? <인사이드 경제>가 너무 과민한 탓일지 모르나, 소송 중심의 통상임금 이슈가 남긴 부정적 결과들이 벌써 수북이 쌓여가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조합과 임단협이라는 무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송이라는 길을 갔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까지 족히 4~5년은 걸리는 그 기간 동안, 자본가들은 법관들에게 '경제가 어렵다, 기업 못해먹겠다'는 설득을 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민법에서도 찬밥 취급을 받는 '신의칙'이, 민법과 그 원리를 달리하는 노동법에 등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이는 통상임금 문제에서 노조에 불리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일부 대법관들이 제조해낸 논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대법원이 한번 판례로 세운 이상, 다른 노사 관계 사안에서도 노동자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때 '신의칙'을 동원할 수 있는 선례가 되어 버렸다.
삼성과 LG 등 지불 능력이 있는 무노조 내지 협조적 노조 사업장에서 오히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조치를 먼저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민주 노조의 영향력을 무력화하려는 의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지불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중소기업에서는 통상임금 이슈로 인한 임금 상승 요인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벌써부터 상여금을 아예 없애거나 시급을 삭감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오히려 통상임금 문제를 회계 수치 조절의 수단으로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다. 멀쩡한 흑자 기업을 적자로 만들고, 적자 폭과 흑자 폭을 마음대로 조정하기 위해 '통상임금 대비 충당금' 액수도 제멋대로 책정한다. 노동자들에게 지급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으면서 말이다.
<인사이드 경제>가 이 대목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간단하다. 통상임금 문제를 소송을 통해 이슈화한 당사자는 조직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민주 노조가 들어서 있는 대기업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과연 10%에 달하는 조직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이슈화가, 90%에 달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어떤 긍정적 역할을 했는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응시하지 못한다면 '1500만 노동자의 대표체'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0퍼센트의 권리를 찾는 과정에, 물론 전혀 뜻하지 않은 결과이며 자본의 탄압이 초래한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90%의 권리가 삭감된다면 그게 과연 '계급의 대표'가 할 일일까?
소송조차 할 수 없는 미조직 노동자들을 고려하면, 조직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소송이 승소한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는 '불평등의 심화'가 나타난다. 억울하면 미조직 노동자도 소송하면 되지 않겠냐고? 조직 노동자들의 승리를 통해 미조직 노동자들도 자신감을 찾지 않겠냐고?
그래서 자본가들이 바로 그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난리를 친 것 아닌가. 대법원 판례를 바꿔버리고, 정부의 정책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조직 노동자들의 소송 승소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따라서 이 부문에서 미조직 노동자들이 희망과 전망을 찾을 수 없도록 고리를 끊어버린 것이다.
조직 노동자가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나서는 건 '자신을 돕는 일'
<인사이드 경제>는 통상임금과 관련한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도, 조직 노동자들이 지금 집중해야 할 전술은 소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미조직 노동자들과 손을 잡기 위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라는 이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통상임금 문제도 풀린다고 확신한다.
만약 소송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미조직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소송을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조직 노동자들은 통상임금 문제를 풀기 위해 노동조합과 임단협이라는 무기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무기조차 없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경우, 통상임금을 제대로 받아내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 바로 소송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다른 수단들을 갖고 있는 조직 노동자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되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소송을 돕는 게 '계급의 대표'다운 행동 아닐까?
결과적으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 투쟁에 나서는 것이나, 미조직 노동자들의 소송을 지원하는 일 모두, 조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통상임금 문제 해결에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다시 말해 이건 '남을 돕는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돕는 일'이라는 것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투쟁에 나섬으로써 조직 노동자들은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아울러 그 결과로 실제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된다면? 조직 노동자의 말단에 있는 신입사원 초임이 최저임금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신입사원 초임도 따라서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상위층의 임금도 올라가게 되어 있다.
자본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본가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6월에 결정되는 최저임금 인상 폭이 5퍼센트로 결정된다면, 그 5퍼센트의 임금 인상은 조직 노동자들 입장에서 '떼어 놓은 당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직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나서는 것은 '자신을 돕는 일'이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소송을 돕는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소송을 두고 대법관들이 설마 경제가 결단이 나느니, 기업이 어렵다느니 등의 논리를 동원할 수 있을까?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해서까지 그런 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과하다는 사실을 법원 역시 잘 알고 있다. '신의칙'을 적용하더라도 자본가에게 의무를 부과해야지 노동자들에게 부과하진 않을 것이다.
이 사업이 성공한다면 미조직 노동자 부문부터 통상임금 제대로 받기가 시작되어 조직 노동자와 임금 격차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정반대로 조직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상승효과를 일으킨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토대 위에서 전개되는 조직 노동자들의 임금 투쟁은 사회적인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옛말에도 이르지 않았던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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