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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옆 한국, 미래에 핵구름만큼 큰 후회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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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옆 한국, 미래에 핵구름만큼 큰 후회 않으려면

[이렇게 읽었다] 3.11 3년, <핵폭발 그후로도 오랫동안>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신의 불'을 훔친 이후 지금까지 핵폭발은 모두 2116 차례 있었다. 이 가운데 2111번은 미국, 소련(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이 지상, 지하, 수중, 대기권 등에서 벌인 핵실험이었다. 두 차례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주민 수십만 명의 목숨을 집어삼키며 만들어낸 버섯구름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세 차례는 미국 스리마일, 소련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로 이어진 핵발전소의 폭발이었다.

핵폭발의 영향은 한없이 크고 끝없이 길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단 두발의 핵폭탄은 약 20만 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가면서 폭심지 반경 수십 킬로미터를 평평하게 만들어버렸다. 부상자의 상당수는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고 그 고통은 2세, 3세로 이어지고 있다. 1954년 3월 1일 태평양 비키니 섬에서 실시된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은 높이 80킬로미터, 넓이 150킬로미터의 거대한 구름을 만들어냈다. 이 구름은 아름답던 섬을 송두리째 집어삼키고 지구촌 곳곳에 '죽음의 재'를 뿌렸다.

그런데 핵 '무기'의 폭발만 무시무시한 게 아니다. 핵 '발전소'의 폭발은 보다 은밀하게 죽음의 문을 두드려온다. 핵무기 폭발이 수반하는 엄청난 크기의 버섯구름과 초고온, 그리고 A급 태풍을 능가하는 폭풍은 없지만, 핵발전소의 폭발이 품어내는 방사능의 양은 핵무기보다 수백 수천 배가 많다. 가령 체르노빌 발전소는 폭발 시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2600개에 달하는 방사능 물질을 품고 있었다. 2011년 3월에 터진 후쿠시마 원전은 사고 발생 한 달 동안 체르노빌 사고 때의 20%에 달하는 방사능 물질을 뿜어냈다. 그리고 두 발전소의 폭발은 과거지사가 아니라 그 끝을 알 수 없는 현재진행형이다.

핵발전소 폭발의 은밀성을 잘 보여주는 통계 수치가 있다. 체르노빌 사고에 의한 사망자는 추정 기관에 따라 4000명에서 100만 명까지 무려 250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4000명이라는 숫자는 주로 원전 종사자와 사고 발생 인근지역 주민, 그리고 사고 수습에 투입된 사람들 가운데 죽은 사람을 통계로 잡은 것이다. 반면 100만 명이라는 숫자는 사고 이후 급증한 암환자까지 고려한 것이다. 암환자를 체르노빌 사고의 희생자로 분류하는 것이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반론은 사고 피해가 가장 컸던 벨라루스의 암 발생율을 비교해보면 무색해진다. '이전'에는 10만 명당 82명이었던 반면에 '이후'에는 10만 명당 6000명으로 치솟았다.

41년이 지난 후

▲ <핵폭발 그후로도 오랫동안>(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김희상 옮김, 평사리 펴냄). ⓒ평사리
청소년 소설로 국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는 구드룬 파우제방은 후쿠시마 참사 이후 <핵폭발 그후로도 오랫동안>(김희상 옮김, 평사리 펴냄)을 써내려갔다. 전작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최혜란 그림, 함미라 옮김, 보물창고 펴냄)이 사고 직후의 참상을 다루었다면, 이번 작품은 핵폭발 41년 후를 다룬 미래소설이다. 독일이 핵발전소 가동을 완전 중단키로 한 2022년을 2년 앞둔 시점에 발생한 원전 폭발로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16세 소녀의 눈높이에서 서술해간다.

여주인공 비다(Vida)는 남미 칠레에서 견학 온 학생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학생들의 질문에 친절하고 담담하게 답변한다. 어린 소녀에게 '이전'은 할머니로부터 전해 듣는 부럽기만 한 과거이고, '이후'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우울하고 음산한 교실에서 매일매일 접하는 현실이자 끝을 알 수 없는 미래이다.

그러면서 남미에서 온 친구들에게 말한다. "이후라는 말은 병을 뜻해." 병든 어머니, 각종 질병으로 죽어간 친구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학교 게시판, 암 투병으로 결석이 잦은 교실 친구들의 모습이 일상이 되어버린 비다에게 핵폭발 이후는 곧 병마로 각인된다.

비다의 소망은 "하늘도 땅도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곳으로" 아주 멀리 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이전과 이후를 이야기하며 죽음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바로 그런 곳으로 말이야." 그러나 비다는 멀리 갈 수 없다고 한다.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소파에만 누워있는 엄마를 차마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조상들을 원망한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혹은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가 일찍부터 원자력 산업에 좀 더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면 사정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좀 더 꼼꼼히 따졌더라면, 더욱 책임감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거의 강 건너 불 보듯 했대. 그냥 지금 나만 잘 살면 그만이다 하고 말이야. 우리 같은 손자, 손녀가 겪을 수도 있는 어려움은 생각도 하지 않은 거야."


그러나 비다는 원망만 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 당시에 살았다고 해서 크게 달려졌을까?"라고 반문하면서, "(핵폭발을 전후해 태어난) 부모님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완전히 포기했다는 점"을 안타까워한다. 그리곤 "나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아. 기다릴 거야"라고 다짐한다. 뭘 기다리겠다는 건지는 자신도 모르지만, "목표가 없는 인생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칠레에서 온 남학생과 함께 자신의 꿈을 키워간다. 기자가 되어 어른들이 물려준 희망을 빼앗긴 세계를 널리 알리고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비다의 꿈을 들은 그녀의 엄마도 쇠사슬처럼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소파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엄마를 부축하고 밖으로 나온 비다는 희망을 외친다.


"봐, 하늘이 온통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 찼어!"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려면


이 책은 있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 되는 상황을 다룬 소설이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체르노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후쿠시마와 그 인근 주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자 곧 닥칠 미래이다. 핵발전소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 벌어질 수 있고, 그래서 '원전 르네상스'에 취해있는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면 파우제방은 왜 이토록 불편한 책을 쓴 것일까? 그녀의 말이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쉽고 재미있는' 소설들만 어린 독자들에게 선물하고 싶지 않다. 세상은 '거룩하고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착한 일이 언제나 보상을 받는 게 아니며, 나쁜 짓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처벌을 받는 게 아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가 결국에는 해피엔드로 끝나는 게 아니다. 청소년 독자들이 많은 생각과 함께 격렬한, 심지어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요구하는 주제들을 접했으면 하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 책은 어른부터 읽어야 한다.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과 희망을 빼앗지 않으려면 말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배우는 게 없구나"라고 탄식하면서 이 책을 쓴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나를 향한 다짐이자 많은 어른들의 동참을 위한 호소이기도 하다.


"비록 내 힘이 크지는 않았지만 원자력의 저 무시무시한 위험을 막으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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