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의 인권문제에 관해 주목할 만한 소식이 둘 보도되었다. 하나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이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1년 전인 제22차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에 근거해 설치되었는데, 식량권, 고문 및 비인도적 처우, 표현의 자유, 생명권 등 9개 영역에 걸친 인권침해, 특히 반인도적 범죄 및 관련 책임자 조사를 임무로 한다.
조사위원회는 지난 1년 동안 탈북자들을 상대로 인권침해 사례를 수집해 371면에 달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통해 북한에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존재함을 확인하는 한편 수령(首領)을 포함한 북한정권의 형사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고, 국제사회는 북한 주민을 반인도적 범죄로부터 보호할 책임(R2P)이 있다는 결론을 냈다. 이어 북한, 중국, 한국, 그리고 국제사회에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조치를 권고했다. 특히 북한정부를 향해서는 정치범수용소 폐쇄, 사형제 폐지, 언론·사상·종교의 자유 보장, 출신성분에 의한 차별과 주민감시 폐지, 식량권 보장 등을 권고했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주목하는 국제사회
위 보고서에서 주목되는 것이 R2P인데, R2P는 특정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화적·비평화적 관여를 옹호하는 인도주의적 개입의 다른 이름으로서 국제사회의 '책임'을 강조한다. 가다피(M. Gaddafi)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리비아 사태에 관한 '국제사회'의 개입이 R2P론으로 합리화된 바 있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가 언급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수사 및 기소권을 가진 국제형사재판소(ICC)는 해당 국가가 관련 로마협정 가입국이 아닌 경우(북한은 미가입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개입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 외교부가 이 보고서 발표 직후 북한인권 문제의 ICC 회부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북한도 예상대로 이 보고서를 "모략의 날조품" "미국의 추악한 적대행위의 산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북한인권 문제가 국제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고서에 남북대화, 정전체제의 평화적 전환, 인도적 지원의 정치적 이용 중단 등이 언급된 것은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북한인권 문제는 최근 국내에서도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위 COI 보고서와 함께 북한인권법 제정을 둘러싼 논의가 촉매 역할을 했다.
한국의 인권 실상은 어떠한가
두 번째 주목할 만한 소식은 한국의 인권문제와 관련한 것으로, 세계적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가 취임 1주년을 맞이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낸 일이다. 쌀릴 셰티(Salil Shetty) 사무총장은 이 서한에서 사형제도, 결사의 자유, 이주노동자, 국가보안법,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무기수출, 밀양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주민 배제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10가지 인권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국제인권 기준에서 볼 때 한국의 인권상황도 우려스럽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인권상황은 1987년 이후 자유권 분야에서 크게 신장된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 복지정책이 초당적 관심사로 떠올랐으나 박근혜 정부 들어 용두사미가 되었다. 또한 셰티 총장의 서한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철도노동자, 공무원노조, 교직원노조 등 노동자의 정당한 활동이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행정부의 자의적 판단 등으로 탄압받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도 마찬가지다. 최근 서울 송파구의 한 지하 셋방에서 60대 초반의 어머니가 30대의 두 딸과 함께 목숨을 끊은 사건을 포함한 잇따른 자살은 한국의 취약한 복지 현실을 말해준다.
기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이 '독립적 국가인권기구'의 현주소이다. 뿐만 아니라 의사표현의 자유에 이념적 딱지가 붙고, 국민의 참정권이 국가기관의 선거부정으로 침해받고 있다. 노동자는 물론 정당(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마저 '종북(從北)'으로 몰리는 현실이 오늘 대한민국이다. 염전노예 사건의 충격은 성(性)착취와 노동탄압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인권은 절대적인 것이다. 그래서 유엔에서 남북의 인권문제도 다뤄지고 그에 대해 상호 건설적인 비판과 권고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권은 누구에게 뽐내고 누구를 비난하는 수단으로 삼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성찰하고 격려할 거울이자 손잡고 끊임없이 노력해가야 할 목표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북한인권법' 제정 논의는 인권을 타자화하는 일방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분단체제를 해체하는 '코리아 인권'으로
위에서 보듯이 남북의 인권현실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인권이 특정 정치체제와 친화력이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가설이다. 다만 인권은 모든 체제의 한계를 설정해주는 준거 기능을 한다. 남북한의 인권현실을 한눈으로 봐도 남북이 인권협력에 나설 수 있는 분야들이 있다. 사형제 폐지, 노동권 보호, 무기수출 금지, 상대를 적대시하는 법령 개폐 등을 꼽을 수 있다.
분단체제의 구성 부분인 남과 북이 온전한 체제일 리 없다. 인권을 체제경쟁 수단으로 삼아온 것이 그 증좌이다. 남북 각각의 인권개선은 상대를 인정하고 공존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북의 '반(反)공화국 모략'이나 남의 '종북몰이'는 상대를 끌어들여 반인권적인 자신을 스스로 폭로하는 처사에 다름 아니다. 근본적으로 남북의 인권을 별개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필자가 '코리아 인권'을 제기하는 이유이다.(졸고 ‘진보진영은 북한인권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창작과비평> 2014년 봄호 참고. 전문 보기)
코리아 인권의 주체는 남북의 정부와 시민이다. 그 범위는 남북의 인권개선은 물론 남북 간의 인도적 문제 해결과 한반도 모든 거주민의 평화권과 행복추구권도 포함한다. 코리아 인권은 분단체제하에서 남북이 인권개선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소극적 차원과 인권 친화적인 통일 한반도를 향해 분단체제를 해체하는 적극적 차원을 아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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