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이면 분단된 지 70년이 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도 1년이 되었다. 지난 1년 동안 정부는 남북 간의 불신 심화 및 한반도 안보위기 고조, 특히 북한의 3차 핵실험, 한미 합동군사훈련 등에 대한 강경 대응에 대해 단호하면서도 안정되게 관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원칙과 안보 중심의 대처에 치중하다 보니 남북관계 개선 및 진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했다. 대화와 협력보다는 대북억지력을 바탕으로 하는 안보 담론이 주를 이루는 상황이었다. 지난 1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대북정책 원칙의 선언과 이의 대내외 지지 확보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구체적 추진계획과 로드맵이 명백히 제시되어 본격적인 가동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전 정부가 추진한 대북정책의 장점들을 수용한 통합적 접근을 모색하여 남북관계에 있어 ‘신뢰’와 ‘균형’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대북정책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그동안 비정상적이었던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대북정책의 목표로 설정했다. 그러나 지난해 남북장관급회담 개최 및 이산가족 상봉 협의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오랜 기간 남북 간 대화․교류가 중단돼 상호 불신과 대립이 심화된 상황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제대로 가동·추진되지 못했다.
특히, 북한은 2012년 말부터 2013년 전반기까지 장거리 로켓 발사 및 제3차 핵실험을 비롯하여, 전시상황 돌입, 남북직통전화 단절,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남북관계는 사실상 단절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남북관계 정상화 차원에서 북한과의 끈질긴 협상을 통해 남북 간 신뢰구축 및 교류 협력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개성공단을 발전적으로 정상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함으로써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도 하였다.
최근 진행된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남북한 사이에 신뢰를 구축해가는 ‘과정(process)’은 접근방법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즉, 한반도 안보 상황과 장기간 대화·교류의 부진으로 신뢰 조성의 토대가 미흡한 상태에서 원칙에 입각한 안보 중심의 대처만으로는 남북관계 정상화와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남북관계의 정체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추진 동력과 진정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정상화 및 발전에 있어 우리의 주도권이 상실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갖게 된다.
최근 동북아 정세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공세적인 대외정책, 그리고 미국과의 경쟁·협력 및 전략적 이해로 인한 동북아의 안보구도가 한반도 정세와 연동하여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면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동아시아 회귀 정책과 중국의 지역 내 위상 강화 및 미국과의 주도권 확보 경쟁, 일본의 극단적인 보수 우경화, 중·일간 영토 문제 및 군사력 강화 등으로 한반도 주변이 매우 불안정하다. 게다가 북한의 경제난 지속 및 체제 유동성 증가에 따른 정세의 불확실성은 남북관계 발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남북관계 정상화 및 발전을 통한 한반도 긴장완화는 강대국의 한반도 개입을 차단할 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도 매우 긴요한 과제이다. 남북관계 정상화와 북한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유연 또는 강경 조치로는 진정한 남북관계 진전을 가져올 수 없다. 특히, ‘5・24조치’와 관련하여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 남북관계를 변화시킬 수 없다. 물론 굳건한 신뢰도 조성하기 어렵다. 남북 간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협력을 통해 구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본질적인 쟁점들이 단계적으로 해소될 때 남북관계 정상화 및 진전이 가능할 것이다.
동시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남북한뿐 아니라 주변국이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을 우리가 주도적·능동적으로 마련하고, 주변국이 여기에 협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북한의 상황 변화, 국제정세, 북한 핵문제 등과 같은 한반도 문제에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점에서 다원적·복합적 성격에 맞는 포괄적·종합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남북관계는 안보문제일 뿐 아니라 경제문제인 동시에 국내문제이면서 국제문제로서 복잡·다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떠한 방법으로 북한에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신뢰’는 한 두 번의 만남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기적인 비전과 긴 호흡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즉, 신뢰 형성은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신뢰프로세스’는 남북관계가 좋을 때에만 가능한 정책이 아니다. 남북관계가 나쁜 상황에서도 대북 억지와 함께 가능한 신뢰조성 조치를 병행해 균형을 이뤄야 한다. 어려움이 있어도 중단하지 않고 지속할 때, 상대에 대한 진정성과 신뢰가 생기는 것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원칙과 비전을 갖고 일시적 또는 특정상황에 흔들림 없이 일관성을 갖고 정책을 추진할 때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위해서 우선 남북한 사이의 대화와 협력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이뤄진 남북 고위급 접촉은 양측이 서로의 진의를 확인하기에 매우 의미 있는 자리였다. 우리는 청와대, 통일부, 국방부 관계자로 대표단을 꾸렸고, 북한은 국방위 및 통일전선부 관계자가 접촉에 나섰다. 대표단 구성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남북 간의 현안을 비롯해 북한 핵문제, 평화정착 문제 등 본질 문제까지도 실질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대화 채널로 평가된다.
고위급 접촉에서 한미 합동군사연습과 별개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진행하기로 하는 한편 상호 비방·중상을 중단하기로 한 것은 좋은 출발이다. 남북한이 고위급 접촉을 통해 오랫동안 경색국면에 머물렀던 남북관계에 새로운 물꼬를 튼 것이다. 이제는 남북한 사이의 주요 현안을 실질적으로 논의·해결하는 방향으로 대화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및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등의 인도적 문제뿐 아니라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농·축산 및 산림협력 등 민간급 교류 협력 문제를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남북한 사이의 민간급 교류 협력에서, 당국 간 교류 협력으로 확대해 나가기 위한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통일은 대박’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 간 교류 협력으로의 확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는 청와대보다는 남북관계의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중심이 되어 대화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향후 개최될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는 남북관계가 새롭게 지향해야 할 방향과 틀을 만들고, 이의 연속선상에서 통일부가 중심이 되는 해당 실무회담에서 구체적 이행을 추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남북관계 발전 및 한반도 평화정착의 틀’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물론 남북관계 정상화 및 개선·발전은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본질적인 쟁점이 단계적으로 해소돼야 가능한 것이다. 즉, 남북 간 현안은 그 문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근본문제와 함께 논의될 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남북 간의 갈등과 불신을 해소하는 근본적 접근이 병행 추진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등 본질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만 의미 있는 남북관계 개선·발전 및 상호 신뢰구축이 가능하다. 남북 간 불신과 대립의 원인이 됐던 현안들에 대해 진지한 협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문제 등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 사이에 비핵화 회담 및 군사회담 등을 개최해 문제 해결에 주력해야 하는 것이다.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미․중이 한반도에 개입할 개연성이 커지고, 우리의 의사를 반영하기 어렵게 된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핵문제 해결과 평화 정착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고 관련국들을 설득하는 등 협상을 위한 선도적 역할과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DMZ세계평화공원 조성’도 정치·군사적 신뢰구축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안이다. 즉, 평화체제에 대한 구체적 조치와의 연계 없이는 진전이 쉽지 않은 것이다.
북한은 체제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경제난 등 당면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 및 대외관계의 안정과 협력이 매우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전략적으로 대응한다면 남북관계 진전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방법을 찾아내 정책 수단화해야 할 것이다. 즉, 북한이 변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긍정적 방향으로 선회해 선순환 관계 구축에 나서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분단 70년, 이제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의 전기를 마련해 통일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본질문제 논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 상당한 시간도 소요될 것이다. 핵문제와 연계돼 많은 도전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정책의 일관성·유연성을 갖고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균형과 실용의 조화 속에서 실질을 추구해가야 한다. 늦기 전에, 상황이 더 어려워지기 전에 서둘러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4년 3·4월호(제27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박근혜 정부 1년, 외교·안보·대북정책 평가'입니다.* 원제 :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남북관계: 평가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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