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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노원구에서 '찾아가는 복지' 배워라

[현장] 노원구, '통장 복지', '생명지킴이' 사업 성과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이하 송파 사건)을 접한 비통함이 가시기도 전에 경기도 동두천, 광주 등에서 빈곤 자살로 보이는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혹자는 '베르테르 효과'라고도 하지만 송파 사건으로 빈곤 자살이 다시 주목을 받는 것일 뿐, 이와 유사한 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송파 사건에서 숨진 세 모녀가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신청자에게만 혜택이 미치는 복지 전달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4일 국무회의에서 "앞으로는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를 더욱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지시한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를 제한적이나마 시도하고 있는 자치단체가 있다. 서울 노원구는 각 동사무소의 통장들을 '복지 도우미'로 조직해 활용하고 있다.

물론 세 모녀가 사회보장서비스를 신청했더라도 적절한 복지 혜택을 받았을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기본소득 등 복지 제도의 근본적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다만 노원구의 사례는 당장 적용 가능한 사례라는 판단에 현장을 직접 찾아가봤다. 편집자

▲ 마을을 구석구석 살피고 있는 오선희 통장. ⓒ김하영

4일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상계5동 제2통장 오선희(52) 씨가 한 다세대 건물의 계단을 오르면서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저 통장이예요. 집에 계시죠? 지금 올라가니까 문 좀 열어 주세요."

초인종이 고장 났나? 굳이 전화를 거는 이유가 궁금했다.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인데 귀가 어두우셔서 초인종을 눌러도 잘 못 들으세요. 그래서 집에 방문할 때는 먼저 전화를 드려요. 전화벨 소리를 엄청 크게 해놓고 계셔서 전화벨 소리는 들으시거든요."

문이 열리자 지팡이를 짚으신 할머니 한 분이 반갑게 오 통장을 맞이했다.

오 통장은 "별 일 없으셨죠?"라고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인사를 건네고는 집 안 곳곳을 둘러봤다. 방 한 칸 작은 거실 하나에 주방이 붙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주방 쪽으로 가더니 기자와 동행한 구청 직원에게 들으라는 듯이 "이쪽은 냉기가 도네. 거실 쪽은 집수리단이 와서 고쳐줬는데"라고 한 마디 던진다. 노원구에서 시행 중인 노후주택 에너지 효율화 사업으로 집 일부는 단열 수리를 했는데,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 통장은 "보일러는 언제 바꿔주나"라고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집수리는 오 통장이 신청해서 받게 된 것이라고.

오 통장이 기자와 함께 방문한 가구는 83세의 할머니 홀로 사는 집이었다. 작은 다세대 주택이지만 집이 할머니 소유여서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얻지 못했다. 자식들은 멀리 살고 있고 '먹고 사는 게 힘들어' 자주 찾아뵙지는 못 한다고. 이른바 차상위 계층이다. 할머니는 그래도 "집이라도 있으니까 이렇게나마 살지. 집 없었으면 월세에 관리비를 어떻게 감당했겠어. 월세 올려달라는 소리 안 들으니 고맙지"라고 말했다.

작은 소파에 할머니와 함께 나란히 앉은 오 통장은 할머니의 두 다리를 무릎에 얹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다리가 편찮으셔서 오래 앉아 있지 못 하세요. 이렇게 주물러 드려야 돼요. 그러면서 이런 저런 얘기도 하면서 놀다 가요. 엄마 같죠."

"얼마나 잘 하는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라고 입이 마르게 오 통장을 칭찬하는 할머니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할머니 다리에서 손이 떠나지 않았다. 오 통장은 상계5동에서 24년을 산 토박이라고 한다.

▲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오선희 통장. ⓒ김하영

"지금은 안 하지만 제가 이 동네에서 24년 살면서 방앗간을 하면서 계란 장사를 했거든요. 그러니 동네 사람들 사는 사정이야 훤하죠. 그러다 보니 예전부터 통장을 맡아 달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장사 때문에 바빠서 못 했어요. 이름만 올리면 된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럴 수 있나요.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그러다가 장사 그만 두면서 작년 9월부터 통장을 맡았어요."

오 통장의 상계5동 제2통에는 350가구가 있다고 한다. 그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32가구. 오 통장은 '신문에 난 이야기'를 꺼냈다.

"각 가정을 다 방문하려고 하고 동네 미용실에도 어려운 사람들 있으면 나한테 알려 달라고는 하는데 진짜 없는 사람들은 말을 잘 안 해요. 문도 잘 안 열어 주고. 특히 젊은 사람들은 더 그래요. 학교 급식 선별적으로 할 때도 그랬잖아요. 진짜 어려운 집 아이들은 급식 신청하기 창피하다고 굶었잖아요. 어중간한 집 애들만 신청하고. 저도 젊을 때 어렵게 살아봐서 그 심정 잘 알죠."

오 통장은 즉석에서 구청 직원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저번에 신문에서 보니까 은평구에는 '희망복지우체통'이라는 게 있는데 평이 아주 좋데요. 자기 어려운 사정을 남 앞에서 얘기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나 이웃의 딱한 사정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주소와 사연을 적어 넣으면 구청에서 정기적으로 수거해서 사연을 본 뒤 도와준 데요. 그런 게 우리 동에도 있으면 창피해서 말 못 하는 사람들 한 명이라도 더 발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좀 생겼으면 좋겠어요."

오 통장은 한 가지 요구 사항을 덧붙였다.

"웃음치료 교육을 꼭 받고 싶어요. 할머니들이나 마을 가정을 방문할 때 어디서 보고 들은 재밌는 얘기 하나라도 더 해드리고 싶은데 마음만 앞서지 방법을 모르겠어요. 보면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분들이 많거든요."

오 통장은 얼마 전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홀로 사는 할머니 댁에 쓰레기봉투를 갖다 드리러 갔는데, 문을 두드려도 안 나오시는 거예요. 집에 계신지 안 계신지 대충 알거든요.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계속 부르면서 문을 두드렸더니 나와서 '그냥 문 앞에 두고 가지 왜 귀찮게 그러느냐'고 타박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할머니가 펑펑 우셨는지 눈이 퉁퉁 부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짜고짜 들어가서 할머니랑 이야기를 했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얼마 전 사위가 버스 회사에 취직이 돼서 수급권을 박탈당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래 살아 뭐하겠냐'면서 죽으려고 소주를 2병이나 드셨데요. 마침 딸이 전화를 걸어 죽지 못하셨다고. 이런 일 보면 참 속상하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방법도 별로 없고."

▲ '복지도우미' 문패가 달려 있는 오선희 통장의 집. ⓒ김하영
오 통장은 동네의 복지 수요를 파악해 동사무소에 보고를 하는 일종의 '심부름꾼'이다. 그래서 어려운 사정을 봐도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아무런 약속을 할 수 없는 점이 답답하다고 한다. 그래도 통장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도 많다고.

"겨울에 눈이 오면 동사무소에서 염화칼슘을 받아서 골목길에 뿌리는데, 할머니들이 내 뒤로 졸졸 따라 오시는 거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 줄 아세요? 호호호."

오 통장과의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 누군가 문을 쿵쿵쿵 거세게 두드렸다. 도시락 배달이었다.

"이게 적십자에서 나눠주는 도시락이에요. 할머니가 다리가 불편하셔서 콩나물 한 다발 제대로 장을 못 보세요. 그래서 동사무소 가서 얘기했더니, 동사무소에서 적십자와 연결해 주셨어요. 일주일에 두 번 오는데 이게 복지관 도시락보다 반찬이 실해요.(웃음)"

도시락을 받고 또 다시 연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한 뒤 거리로 나왔다. 오 팀장과 작별 인사를 했다.

"오후 4시에는 구청에 생명지킴이 교육을 받으러 갑니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2010년 취임하면서 복지 전달 체계 개편을 위해 '통·반 설치 조례'를 개정해 통장의 임무에 "마을공동체 형성을 위한 보건·복지 도우미 역할 수행"이라는 조항을 추가했다. 이른바 '통장 복지'다. 통장 집 현관에는 '복지 도우미'라는 문패를 달았고, 통장들이 통 내 가정을 방문하며 복지 제도 홍보는 물론 복지 수요를 파악해 동사무소에 알리는 역할을 맡겼다. 구청 중심의 수동적 복지 행정을 통장 중심의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로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생명지킴이' 역할도 부여해 독거 노인 등 자살 고위험군 주민들을 면담하고 파악해 이들이 상담과 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 노원구청 직원들의 옷에 달려 있는 '자살예방' 배지. ⓒ김하영
시행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자살예방사업을 위해 통장들이 '마음 건강 평가'(우울증 테스트)를 하자 "왜 통장이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느냐"고 화를 내는 주민들도 있었고, 통장의 업무가 늘어난 데 따른 불만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된다. 통장의 복지 서비스 발굴 사례는 2012년 1899건에서 2013년 3476건으로 늘어났고, 2010년 28명(인구 10만 명당) 수준이던 자살률도 2012년 22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남아 있다. 통장 수당이 24만 원인데 복지 업무 추가로 받는 활동비는 1만 원에 불과하다. 노원구에만 682명의 통장이 있는데 모든 통장이 오선희 통장처럼 봉사정신이 투철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상당수의 자살이 빈곤에 의한 자살인 상황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사각지대가 많이 남아 있다.

노원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나는 '노원교육복지재단'이다. 재단은 복지 사각지대 주민 지원 역할을 하고 있다. 5일 구청에서 만난 김성환 구청장은 "재단에 매월 들어오는 월 1000원 이상의 후원금이 매달 2500만 원, 연간 8억 원 정도 되는데 그 돈은 인건비 등으로 쓰지 않고 모두 사업비로 쓴다"며 "동이나 구에서 해결되지 않는 사안은 교육복지재단이 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김 구청장은 또한 최저임금 인상 등 기본적인 근로소득 보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38% 수준에서 60%까지 빨리 끌어 올리는 것이 시급하고,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직업 재훈련과 실업수당 대폭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원구는 기초단체 최초로 구청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했으며, '생활임금제'를 도입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구청 내 청소, 경비, 주차 등의 일을 하는 직원들의 임금을 일반 노동자 평균임금의 58%로 책정했다.

▲ 김성환 노원구청장(사진제공=노원구청)
또한 비효율적인 복지전달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 유관기관과의 협업도 필요하다.

김 구청장은 "서울북부고용노동청이 관할하는 지역에 200만 명이 살지만, 복지 담당 직원은 2명에 불과하다. 대규모 산업단지에서는 적은 인력으로도 사업체들을 관리·감독할 수 있지만 노원구처럼 음식점, 상점, 숙박업 등 영세 사업장이 많은 곳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노원구 사업체의 특징은 구청이 제일 잘 알기 때문에 북부고용노동청과 협약해 영세사업장 4대 보험 확대 사업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김 구청장은 "노동과 복지를 통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살예방사업을 벌이는 등 자살 문제에 관심이 많은 김 구청장은 이와 관련한 시급한 또 하나의 과제로 의료 보장성 강화를 꼽았다. 그는 "급여 항목에 포함된 진료비는 300만 원이 상한이지만 비급여 항목이 너무 넓다"며 "암 등 중병에 걸린 어르신들은 수천 만 원에 이르는 치료비 때문에 자식 집까지 날릴까 걱정돼 '내가 죽어야지'라고 마음을 먹는다. 이 문제부터 빨리 해결이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 구청장은 마을 공동체 복원의 중요성도 덧붙였다. 그는 "자살률에 관한 자료를 보면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트의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11명 수준인데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6명이 채 되지 않는다"며 "언뜻 보면 경제력이 더 좋고 복지가 잘 돼 있는 북유럽의 자살률이 낮아야 할 것 같은데 남유럽이 자살률이 낮다"고 했다.

김 구청장은 이어 "남유럽이 자살률이 낮은 이유는 가톨릭 공동체가 잘 발달돼 있어서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복지 제도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마을 공동체 복원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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