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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현상', 이 거대한 뒷북을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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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현상', 이 거대한 뒷북을 어찌할까

[정희준의 어퍼컷] 희생양 찾기 그리고 면죄부 주기

IMF를 겪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국난극복의 힘을 불어넣어 잔다르크에 비유되던 박세리. 그는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던 박찬호와 함께 국가적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그런데 1999년 초 미국의 골프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선수생활의 편의를 위해 미국 영주권을 취득할 의사가 없는지를 묻자 당시 영어도 짧던 그는 별 고민 없이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이 ‘의례적’인 발언이 한국에 알려지면서 여론이 폭발했다. 당시 우리는 박세리를 ‘매국노,’ ‘양키의 딸’이라 몰아붙이고 저주까지 퍼부으며 단번에 나락으로 내동이쳤다. 이 난리에 삼성전자도 기겁을 해 이미 찍어 놓은 미방영분까지 포함해 박세리가 출연한 모든 광고를 폐기처분해야 했다.

한국사회에서 귀화는 '시민권 취득'이나 '국적 변경'과 같이 가치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사실 이제까지 귀화라는 단어는 대부분 재일동포와 연결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호주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시민권 땄다”라거나 “국적 변경했다”고 표현하지 “귀화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결국 귀화라는 단어에는 일본에서의 차별에 맞서 한국 국적을 지켜낼 것이냐는 민족의 요구와 자존심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귀화에는 ‘배신’의 의미가 강하게 배어있다.

빅토르 안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소치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남자 쇼트트랙은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지만 자신은 금메달 셋에 동메달 하나를 가져가 이를 러시아에 바쳤다. 러시아는 이방인의 나라일 뿐 아니라 우리의 분단현실에서 적성국에 가까운 나라다. 게다가 그의 러시아 시민권 취득을 우리는 단도직입, 귀화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는 그를 비난하지도, 저주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국인의 우수성을 입증한 한국인의 피, 용서 받는다

▲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팀의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이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미터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러시아 국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빅토르 안은 박세리 뿐 아니라 추성훈과 비교해도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재일교포4세였지만 한국국적으로 포기하지 않아 일본의 유도 국가대표가 될 수 없어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선택했던 추성훈. 한국말도 못하던 그는 1998년 한국생활을 시작해 결국 81kg급 최고수로 성장했지만 주요 대회마다 판정시비 끝에 탈락하게 된다. 유도계를 쥐락펴락 하던 용인대 파벌 때문이었다. 결국 2001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아예 일본으로 귀화해버린 그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일본 대표가 되어 돌아와 한국선수를 결승에서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때 스포츠조선의 1면 톱기사 제목은 “조국을 메쳤다”였다.

그런데 극적인 반전이 벌어졌다. 조국을 메친 ‘쪽바리’가 돼버린 추성훈의 귀화 배경이 용인대 파벌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에서 그를 다시 보게 됐고 곧 스타가 된다. 게다가 마침 이종격투기 선수로 변신해 서구와 일본의 간판선수들과 격투를 벌이고 승리를 거두자 한국에서 그야말로 벼락스타가 됐다. 4대에 걸쳐 한국국적을 지키고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에는 무시당하다가 일본 국적으로 바꾸고 나서 유명해지자 한국에서 대접을 받게 된 이 아이러니.

추성훈 못지않은 반전과 아이러니를 우리에게 선사한 인물이 연이어 등장했다. 미국 미식축구 NFL에서 뛰던 한국계 미국인 하인즈 워드. 2006년 그가 소속팀 피츠버그 스틸러스를 수퍼볼 챔피언에 올려놓으며 MVP상마저 거머쥐자 한국에서 난리가 났다. 한국에서 그는 원래 ‘튀기’였다. 우리가 혼혈인들을, 특히 수많은 흑인 혼혈인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우리는 그들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또 부모를 탓하며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지내야 했다.

미국에서 한국 부모들로부터도 “쟤랑 놀지 말아라”는 차별을 당했던 하인즈 워드가 결국 미국에서 동화와도 같은 대성공을 거두고 고국을 방문하자 우리는 거국적인 국빈대접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는 과거의 ‘튀기’ 워드가 아니라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에서 한국인의 우수성을 증명한 ‘한국인의 피’ 워드였다. 그런데 이제까지 ‘개무시’ 하던 혼혈인을 갑자기 환대하려니 창피한 줄은 알았나 보다. 갑자기 우리가 혼혈인들에게 무심했었다며 요란하기 이를 데 없는 국가적 반성에 나서고 나아가 혼혈인들을 위한 정책까지 급조해 마구 집어 내던지기 시작했다. 당시의 거국적 반성은 확실히 낯부끄러웠다. 그런 우리를 워드는 과연 용서했을까.

빅토르 안, 희생자인가 배신자인가

먼저 빅토르 안은 말 한 번 잘 못 했다가 광고가 다 끊겨버린 박세리에게 미안해야 하고 추성훈, 하인즈 워드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이들 덕분에 이제까지 고집스럽게 강고했던 한국의 배타적 순혈주의나 국적변경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부분 유연해진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궁금증은 남는다. 빅토르 안은 귀화했을 뿐 아니라 어쩌면 한국 것이었을 올림픽 메달들을 러시아에 갖다 바쳤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파벌 때문에 귀화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귀화한 이유는 첫째, 후배들과의 경쟁이 버거워서, 둘째, 설사 대표팀에 선발되더라도 코치진이나 후배들과 원만하게 지내기 어려워서, 셋째, 러시아가 너무 좋은 조건을 내걸어서였다. 결국 자신에게 부귀영화를 안겨준 조국을 등지고 귀화한 이유는 자신의 성공을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한국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안현수 현상’까지 초래하게 된 배경과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다 이번 동계올림픽이 ‘안현수 올림픽’이 되었을까. 우리는 이제 ‘귀화’에 관대해진 것인가. 우리는 앞으로 제2, 제3의 빅토르 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확실히 우리는 유연해졌다. 그러나 우리가 안현수의 ‘배신’을 용서하고 그의 배신으로 인해 ‘도둑맞은 금메달들’에 관대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엔 우리의 자발적 합리화와 이에 따르는 집단 만족이 작동한 듯하다. 생각해보자. 우선 그가 만약 일본에 귀화해 금메달을 따 일본에 바쳤다면 우리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꽤 안전한(?) 나라다.

일단 러시아는 현존하는 수퍼파워이고 백인국가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제까지 쇼트트랙에서 올림픽 메달을 딴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 과거 외국으로부터 원조만 받던 대한민국이 이제 서양 강대국에 (운동선수를 보내) 원조를 하고 그 나라가 이제까지 한 번도 구경 못했다는 쇼트트랙 금메달을 선사한다. 러시아가 열광한다. 서양 백인국가에서 한국인의 우수성이 입증된다. 그렇다면 용서할 수 있다.

금메달 빼앗기고 희생양 찾아 분풀이한 것

그럼에도 궁금증이 남는다. 빅토르 안이 우리에게 민족적(?) 뿌듯함을 안겨줬을 수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시끄러울 일은 아니었다. 분명 우리는 메달을 날려버린 것이고 러시아만 좋은 일 아니었나. ‘안현수 현상’의 증폭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소치올림픽 당시 몇 언론은 우리가 금메달 강박에서 벗어났다고 썼는데 정반대였다. 금메달이 나오지 않으니까 여론을 달래고 우리의 이목을 올림픽에 계속 붙들어두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우리의 금메달 집착은 변함이 없었고 바로 그 집착이 ‘안현수 현상’의 폭발을 가져온 것이다.

대회 초반인 2월 10일 빅토르 안이 동메달을 땄을 때만 해도 국내 반응은 별로 유별날 것이 없었다. 일부 대견해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응원도 겉으로 드러내는 데에는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상화 외엔 금메달이 유력시 됐던 모태범, 이승훈이 모두 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하루걸러 금메달 소식을 전했어야 할 쇼트트랙은 일주일이 되도록 메달도 따지 못하자 현장의 기자들도 뉴스를 찾아나서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빅토르 안의 문제가 체육계의 파벌주의와 줄 세우기, 심판 부정 때문 아니냐고 지적하자 그때부터 언론은 빙상연맹을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틀 후 빅토르 안이 8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며 러시아 최초의 쇼트트랙 금메달을 선사하자 러시아인들은 열광했고, 한국인들은 분풀이로 빙상연맹을 사정없이 난도질 하고 두들겼다. 결국 따지고 보면 빅토르 안 현상의 폭발은 금메달을 빼앗긴 분풀이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빅토르 안의 귀화 원인이 파벌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빙상연맹이나 쇼트트랙인들은 입도 뻥긋 할 수 없었고 사정을 아는 기자들조차 아무도 먼저 기사를 쓰지 못했다. 빅토르 안의 아버지가 ‘막’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이를 제지하거나 검증하지 못했다. 종합해보면 뉴스거리를 찾아 나선 언론에게 딱 걸린 먹잇감이 빙상연맹이었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빅토르 안이 금메달을 따자 여론이 터져버렸고 여론은 금메달 빼앗긴 분풀이를 빙상연맹을 두들겨 패는 것으로 해소한 것이다. ‘희생양 찾기’였고 ‘마녀사냥’이었다.

이 거대한 뒷북을 어찌할 것인가

빅토르 안은 우리가 앞으로도 많이 보게 될 국제이주노동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가시지 않은 금메달 지상주의와 한국선수단의 부진이 서로 충돌하며 만들어낸 긴장 관계 속에 빅토르 안이 던진 충격파는 전혀 새로운 경험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우선 우리로 하여금 집단적 합리화와 집단 만족을 통해 귀화에 대한 전향적 변화를 이끌어 냈다. 다른 한편 부인할 수 없는 내적 갈등의 해소를 위해 결국 집단적으로 희생양을 찾아 나서 분풀이 하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추성훈의 경우는 용인대 파벌을, 하인즈 워드는 우리의 혼혈인 푸대접을 뒤늦게 비난하고 호들갑스럽게 반성하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 것처럼 안현수 귀화도 빙상연맹을 묵사발 내며 이제까지의 무관심에 면죄부를 주려한다. 쇼트트랙의 폭력과 파벌문제는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기사에서 이미 다루었던 문제들이다. 이제까지 별 관심도 없다가 올림픽 때가 돼서야 금메달 날려버리고서야 ‘근절하자,’ ‘처벌하자,’ ‘없애버려라’ 외치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이 거대한 뒷북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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