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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 이탈' 대통령, '찌라시' 김무성…비정상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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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체 이탈' 대통령, '찌라시' 김무성…비정상 판친다"

[인터뷰]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이 말하는 '강기훈 무죄, 그 후' <2>

프레시안 : 1991년 사건이 터지고 1992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내리기까지 법원이 보인 모습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다.

안병욱 : (검찰 등의 주장과 달리) 너무나 명백한 반대 증거들이 나옴에도 (당시) 법원이 꼼짝도 못했다. 선량한 민주 시민 강기훈 편을 들 것인가, 거대 조직인 검찰 편을 들어줄 것인가 하는 데서 법원이 굉장히 기회주의적인 속성을 갖고 (상황을) 보다가 검찰 편을 들어준 것이다. 강기훈에게는 민주 시민을 대표한다는 측면이 있었는데, 법원은 그 점을 따지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힘에 기회주의적으로 굴복했다. 1심, 2심, 대법원까지 모두 그랬다. 최고의 판단력을 필요로 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는 가장 추악한 기회주의자였다는 것이 한국 법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프레시안 : 진실화해위의 판단은 달랐다.

안병욱 : 진실화해위는 누구 눈치를 볼 일도 없고 바로 이런 부분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자료를 검토해 '너무나 명확하게 이건 조작됐다. 강기훈은 정권이 만든 억울한 희생양이다. 재심을 하고 명예 회복을 위한 상당한 조치를 취하라', 이런 권고를 한 게 2007년 11월이다.

그간 간첩 등으로 조작돼 피해를 본 여러 사람이 과거사위의 결정에 따라 법원에 가면 대부분 쉽게 재심이 받아들여졌다. 재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없다. 그리고 재판이 끝난 것 가운데 지금까지 무죄 판결을 받지 않은 게 없다. 관계했던 사람으로서 거기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강기훈 사건이 어떻게 될 건가 하는 것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측면이 있었다. 100% 다 진실화해위 결정에 따라 무죄 판결이 났고, (진실화해위가 다룬 사건 중)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으로 제일 중요하면서도 어떻게 될 건지 궁금했던 것이 강기훈 사건이다. 이것 또한 이번에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물론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이 남아 있긴 하지만.

프레시안 : 진실화해위의 권고 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재심 권고 후 법원에서 재심 선고를 하기까지 무려 7번이나 해가 바뀌었다.

안병욱 : 재심 권고 후 (이 사건이 다시) 법원에 갔는데, 법원에서 쉽게 재심 결정을 못 내렸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심 결정을 내린 게 2009년 9월이다. (재심 권고 후) 1년 반 넘게 걸렸다.

그건, 모르긴 하지만 검찰청이 (유서 대필 사건을) 자기들 조직의 명예가 걸린 사건으로 여기는 것과 관련 있다고 본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공안 조작 사건 중) 국정원, 경찰, 보안사 같은 데서 조사해 (검찰로) 온 경우 검찰은 그런 조작의 하나의 기관에 불과했지만, 강기훈 사건은 그렇지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검찰이 기획, 연출, 실행했다. 더욱이 1987년 이후 (벌어진) 사건이다. 무력을 앞세운 군사 정권의 압박에 굴복해서 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1987년 이후 형식적으로는 국민의 선거에 의해 정권이 형성돼 있던 시기이고, 1990년대는 동서 냉전 체제도 무너지던 때였다. 옛날처럼 간첩 혹은 공안 사건을 조작해야 정권이 유지되는 사회에서 벗어나던 시기에 검찰이 만들어낸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후안무치하고 파렴치한 행위다.

검찰로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끝까지 밀고 나가자'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사력을 다해, 막무가내로 진실화해위 결정을 폄하했다. 검찰 측이 고등법원에 낸 의견서를 보면, 심지어 '진실화해위는 일종의 임의적 기구에 불과하다. 이런 수사 같은 것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폄훼까지 하면서 버텼다.

강기훈 무죄, 그 후

<1> "반성 없는 검찰, 마피아와 다를 게 없다"

재심 권고에서 선고까지 왜 7년이나 걸렸나

프레시안 :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심 결정을 한 후에도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고 대법원으로 사건을 가져갔다.

안병욱 : 나는 이 사건에 여러 계기가 있지만, 무죄를 받아내는 과정에서 결정적 분수령은 서울고등법원의 이강원 판사가 재심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본다. 이강원 판사의 재심 결정문을 보면, 이분이 중간에서 얼마나 고심을 했는가가 잘 나타난다. 강기훈 사건에 대해 거의 역사적 판결을 내린 정도의 심혈을 기울인 재심 결정문이다.

그것에 대해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1991년도의 사고방식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또 보였다. (상고한 때가) 2009년이니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검찰은 그동안 하나도 성장하지 못한 거다. 거기에 더해 '진실화해위는 임의 기구로서 이런 부분에 대해 권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구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나왔다). 진실화해위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제정한) 법에 의해 만들어진 기구다. 진실화해위가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가 검찰이 그동안 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정당한 법 기구로서 역할을 했다면 왜 진실화해위가 만들어졌겠나. 그런데도 (검찰은) 반성을 하기는커녕 거꾸로 엉뚱한 떼를 썼다.

프레시안 : 대법원이 이 사건의 재심 개시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리기까지 다시 3년 넘게 걸린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안병욱 : 고등법원에서 재심 결정을 내리기까지 1년 반 넘게 걸렸는데, 대법원이 2012년 10월까지 3년 넘게 (재심 결정을 내리지 않고) 갖고 있었다. 난 이게 대법원의 속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등법원에서 이강원 판사가 검토할 것 다 검토해서 장장 100여 쪽에 달하는 재심 결정문을 썼다. 일반 사람 같으면 한나절이면 그걸 읽고 (재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거다. (대법원에서) 더는 검토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대법원이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재심을 하자는 것이었다. '검찰의 주장과 그 반대 주장에 나름대로 합리적 이유가 있으니 법원에서 한번 결정하자', 그거였다. 그러니까 '합리적 의심이 들면 재심해라' 하면 될 텐데 (대법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린 건 대선 직전이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대법원 심기를 건드려 재판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지만,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선거 직전에 재심 결정을 내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난 그런 사법부에서 이강원 판사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권기훈 판사가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우리로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두 재판부로선 내부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었겠는가 하는 걸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이강원 판사의 재심 결정문이나 재심 재판부의 판결문을 보면, 현 한국 사법부의 판결문으로선 거의 완전하다. 난 그렇게 평가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판결문을 쓴다고 하면 그건 별도의 얘기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사법부 체제 내에서 고심 어린, 그리고 거의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검찰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 결정문이자 판결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 사법부에서 두 재판부가 돋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2월 13일 재심 선고 공판 후 밖으로 나서는 강기훈 씨. ⓒ연합뉴스

"사과는 김기춘 등 관련자들과 대통령·대법원장이 해야"

프레시안 : 강기훈은 무죄 선고 후 "'재판부가 유감의 표시도 하지 않는군요'라는 게 첫 생각"이라고 말했다. 23년간 사법부가 이 사건에서 행한 역할에 대한 반성이 없음을 아쉬워하는 이야기였다.

안병욱 : 강기훈 씨에 대한 사과는 대통령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1991년 이 사건 자체가) 청와대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김기설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열린 관계 기관 대책 회의를 주재한 건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연이은 분신의 배후를 수사한다'는 결정을 내린 회의였다. <편집자>)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고법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조목조목, 강기훈 씨가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유서는 김기설 씨가 직접 썼을 것이라는 취지로 판결한 것은 재판부의 굉장한 의지라고 생각한다. (재판부는 김기설이 유서를 직접 작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편집자>) '유서는 강기훈이 쓴 게 아니다'라는 선에서 어떤 면에서는 검찰의 체면을 생각해줄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그걸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충분히 했다고 본다.

그동안 재판부가 반성해야 할 일을 워낙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판결 외적인 부분으로 사과를 했는데, 강기훈 씨에게 사과하는 것이 판결에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동안 이 사건을 끝까지 가져오게 한 책임자로서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강기훈 씨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측면에선 (고등법원) 재판부가 그 점을 아껴놓은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무죄 판결 후 관련자들의 사과와 반성, 조작 진상 규명 및 책임 추궁으로 나아가야 할 터인데 아직 멀어 보인다. 사건 관계자의 상당수가 출세 가도를 달리고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주위에 모인 것도 한국 사회의 오늘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안병욱 : 양심을 판 대가가 한국 사회에서는 출세와 권력이고, (그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회가 된 것이다. 양심을 팔면 본인의 파멸로 이어진다는 교훈이 살아 있다면 사람들이 어떤 유혹을 받았을 때 양심의 선택을 따를 텐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그래 봐야 너만 손해다' 하는 것이 상식처럼 돼 있다. '모난 짓 해봐야 망치나 맞지 도움이 될 게 없다', 이것 아닌가. 권은희 과장, 임은정 검사, 채동욱 전 검찰총장처럼 불쑥불쑥 양심의 소리를 따르려는 사람들이 더는 번지지 않도록 그때그때 반응해 제동을 걸어야 유지되는 사회다. 거기에는 보수 언론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게 한국 사회의 아주 추악한 구조다.

내부 고발자를 평가하고 보호하고 장려하는 사회가 절대 아니다. 내부 고발자에게 배신자란 딱지를 붙이고 의리가 없다고 매도하는 분위기다. 국민의 의식 가운데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끊임없이 하는 게 보수 언론이다. 그 사람들로선 그런 누수 현상을 막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구조를 깨야 한국 사회가 선진 사회,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과거사 정리는 진실을 규명하고 그 과정에서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이다. 잘못을 한 사람이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면 그에 따라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사법부에서는 잘못에 따라 처벌하지만, 과거사 정리에선 책임(을 묻는 것)이 꼭 (법적인) 처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반성하고 시인하면 사회가 용서해 화해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니 (법무부 장관이던) 김기춘부터 (주임 검사이던) 신상규까지 일련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에 대해 솔직히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한다면 그 순간 한국 사회가 얼마나 업그레이드되겠는가.

프레시안 : 안타깝게도, 그럴 것 같진 않다.

안병욱 : 이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그걸 안 한다. 내부 고발자에 대해 한국 사회가 굉장히 오도된 의식을 가졌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과 똑같이, 그런 구조 속에서 그간 수많은 과거사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고 책임자가 드러났음에도 단 한 번도 한국 사회에서 과거에 잘못한 사람들이 잘못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고 반성하지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사회가 됐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고 안타깝다.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차동영 같은 예전의 고문 수사관들도 그렇고, 더욱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 시민들을 총으로 학살한 사람들도 그렇다. 총을 쏜 사람들은 어쩌다가 군대에 간, 우리 주위의 똑같은 사람이다.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총을) 발사했고 거기에 수백 명의 병사가 동원됐는데, 누구도 그날의 상황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지 않는다. (5.18이 나고 19년 후인 1999년, 계간 <당대비평> 겨울호에 5.18 당시 특전사 소속 진압군이던 이경남 목사가 당시 상황을 증언한 글이 실렸다.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그러나 시민에게 발포한 이들은 아직 고백하지 않았다. <편집자>)

그 사람들이 고백하지 않는 것을 통해 떳떳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얼마나 내적 갈등이 크고 고민이 많겠는가. 일부 문학 작품이나 영화 <박하사탕> 같은 것이 그 일단을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 생활에선 그런 얘기가 안 나온다. 왜 안 나오느냐 하면, 그것 자체를 누수 현상으로 보고 철저히 얽어매고 있는 부정직한 언론 구조와 관련 있다. 그런 속에서 위선과 거짓과 허위로 한국 사회가 지탱되고 있다. 그렇게 지탱했을 때 기득권 세력은 자기들의 기득권이 영원히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조작해 내는 것이다. 있을 수 있는 모든 불법, 편법을 들통 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 쓰고 있지 않나. (대선에 불법으로 개입한) 국정원 직원 김하영이 항상 마스크나 머플러로 (얼굴을 가리고) 두 눈만 동그랗게 내놓은 모습이 한국 사회를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역사학자 안병욱의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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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이름으로 자행된 일부 전문가의 횡포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목 놓아 외치고 있긴 한데, 무엇을 정상 혹은 비정상으로 생각하는 건지 의아하다는 사람이 많다. 예컨대 유서 대필 사건만 해도 23년간 지속된 대표적인 비정상인데,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안병욱 : 나 같은 사람이나 <프레시안> 같은 곳에서 '한국 사회가 이런 점에서 비정상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비판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게 왜 비정상이냐? 정상이지. (비판 세력이) 비정상이라고 하는 게 (사실) 정상적인 것이다'(라고 보는 것 같다). 나는 (박 대통령이 쓰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그런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노동 착취 논란을 일으킨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이사장이던) 홍문종 의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과 관련해 중국 정부와 민변의 커넥션 의혹 등을 제기한) 윤상현 의원 같은 새누리당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이나 김무성 의원의 '찌라시' 발언, 박 대통령의 유체 이탈 화법 같은 것을 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것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화의 모습을 볼 수 있나? 문자 그대로 우리 사회를 정상화하겠다는 모습이 현 집권 세력의 어느 부분에서 보이나?

철도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 전교조 법외노조화, 거대한 공안 정국, 이 모든 것을 보면 (집권 세력은) 똑같은 사물에 대한 인식을 하는 데 있어 정상적인 사람들의 인식이나 대책과는 항상 역으로, 기묘한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다. 그런 속에서 (나오는 비정상화의) 정상화 어법에 관한 현실적 해석은 바로 유신 정권과 5공 정권, 그것을 우리 사회가 극복하고 청산하자고 하는 논의에 대한 박근혜 식의 해답으로 '그건 정상적인 사회다'라고 하는 표현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유서 대필 사건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의 문제점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과수) 문제다. 사건 당시 국과수의 감정 결과 자체가 미심쩍다는 지적이 많았던 것을 넘어, 검찰 측의 유력한 증인이던 국과수 실장이 다른 사건에서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유서 대필 사건 재판 중 구속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도 당시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그와 달리,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는 과정에서 국과수는 사건 발생 당시와는 다른 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과학의 이름으로 이뤄진 이런 일련의 과정, 어떻게 보나.

안병욱 : 꼭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2000년부터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 국정원 과거사 위원회, 진실화해위 활동을 쭉 하면서 정말 분노를 느낀 부분이 (일부) 전문가들이 하고 있는 추악한 범죄적 행위다. 전문가로서 소신에 따라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데, 전문가임을 내세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깔아뭉개면서 (전문가라는 지위를) 추악한 기회주의적 무기로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지금 얘기했던 국과수 감정 문제다. 특히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 국과수의 감정이 그랬다. 의문사 사건에서 (일부) 법의학자들의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람들이 전문가로서 권력자의 편을 들어 얘기하면, 권력자가 그것을 근거로 사건을 조작하는 식이었다. 그런 것 중 또 하나는 영사 보고서 문제다. 최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도 영사 관련 보고서가 문제가 됐는데, 예전에 재일 교포 관련 간첩 사건에서도 영사 보고서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아무런 증거가 없었고 유일한 유죄 판결 증거는 일본 영사 보고서였는데, 그 영사는 당시 안기부 직원이었다. (안기부) 본부나 검찰의 요청에 의해 보고서를 써서 오자, 재판부는 그걸 증거로 채택해 간첩으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안기부 직원인) 일본 영사의 보고서라는 점에서 그걸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걸 재판부가 몰랐겠나. (1986년에 발생한 김양기 씨 간첩 조작 사건이다. 김씨는 간첩으로 몰려 징역 7년, 자격 정지 7년형을 받았지만, 재심을 거쳐 2009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편집자>)

이런 식으로 전문가를 내세워 일종의 횡포를 부린 것이다. 학자들의 경우에도 그런 게 있다. 1986년 금강산 '평화의 댐' 사건이 대표적이다. 평범한 국민을 현혹하는 것은 어용 보수 언론뿐만 아니라 그 보수 언론의 손에 놀아나는 어설픈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학자가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최종적으로 학자로서 소신에 따라 발언하기보다는 서너 푼의 지식을 가지고 권력의 주구 노릇을 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4대강 사업에 동원된 관련 학자들도 그렇다. 그런 식의 전문가 노릇을 할 것이면, 나는 그 사람들은 학자 역할을 하면 안 된다고 본다. 반면 예전 황우석 사건 당시 조작을 밝혀낸 건 브릭(BRIC)에 모인 이름 없는 과학자 집단이었다. 한국 사회엔 그런 사람들도 존재한다.

프레시안 : '평화의 댐' 사건, 유서 대필 사건 등에서 부당한 권력과 함께 움직인 일부 학자나 언론을 보면 '저걸 어떻게 감당하려 저러나' 싶다가도 '그간 그 책임을 감당한 적이 없으니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병욱 : 전문가라기보다는 완전히 기능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권력이 나를 보호해 준다. 권력에 맞섰을 때 나는 끝난다' 하는 지극히 즉물적인 사고방식 외에는 가치관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나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수많은 의문사 사건이 끊임없이 반복된 데에는 법의학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끝나지 않은 유서 대필 사건…"반성하고 교훈 얻어야 도약한다"

프레시안 : 안타깝게도, 유서 대필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안병욱 : 불행히도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20세기 한국 사회의 본질적 성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역사의 지적으로 황폐화된 풍토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21세기 들어 10년 넘게 지났음에도 그러하다.

그러나 재판부의 이번 판결에서 드러나듯이, (조작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대세에 따라 수구 세력이 점차 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희망과 욕심대로면 단칼에, 획기적으로 정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강고한 수구 보수 세력의 권력 아래 있다. 그럼에도 아침에 해가 뜨는 걸 누구도 막지 못하는 것처럼,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이번 판결과 이 문제를 바라보며 느낀다. 해가 떴을 때 어둠의 세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21세기 한국 사회가 그렇게 되리라는 꿈은 우리가 잃으면 안 된다.

프레시안 : 무죄 판결 후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 의미가 잊히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안병욱 : 이 판결이 잊히면 우리가 굉장히 중요한 교훈을 놓칠 수가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불행한 역사지만, 그 불행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다면 이것에서 굉장히 중요한,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요소를 끌어낼 수 있다. 이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일어난 만큼 이걸 반성하고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것에 따라 한국 사회가 업그레이드하고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하지만) 어영부영하다는 그걸 놓치고 지나갈 수 있다. 재판 이후 과정을 보면 일회성으로 흘러가는 측면이 있다. 나도 그 점에 있어 굉장히 절박하다.

이걸 가지고 국민 보고대회를 하고, 대통령도 사과하고, 국회에서 이에 따르는 특별 결의를 하거나 입법 운동을 하는 움직임이 대대적으로 일어나도 아쉬울 판이다. 그런데 일회적인 것으로 보도하고 사람들 머릿속에선 사라진다? 여기서 특별히 교훈을 얻어내지 않아도 좋을 만큼 순리적이고 정상적인 사회면 한때의 악몽이라고 하고 갈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니지 않나. (예전 정권에서 있었던 국가 폭력 등에 대해 현 정권에서 국가를 대표해 사과하는 것은 전례가 있는 일이다. 예컨대 노무현 전 대통령은 4.3사건 당시 국가 폭력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극이 벌어졌던 베트남전쟁 당시 상황에 대해 사과했다. 두 사건은 각각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때 벌어진 일이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한 걸음 나아가는 데 기여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에 더해, 유서 대필 사건의 주역으로 거론되는 이들이 박근혜 캠프에 모였다는 점도 박 대통령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다. <편집자>)

1991년 상황과 2014년 상황이, 적어도 위선적이고 허위가 존재하고 비정상이 판친다는 측면에서는 거의 비슷하다. 그러니 더더욱 강기훈 사건을 계기로 삼아 현재의 문제점들을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가진 의미를 우리 사회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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