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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23년 만에 무죄…"김기춘·검찰,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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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강기훈, 23년 만에 무죄…"김기춘·검찰, 사과하라"

서울고등법원, 13일 유서 대필 사건 재심에서 무죄 선고

1991년 발생한 유서 대필 사건의 재심에서 법원이 23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 10부(부장 판사 권기훈)는 13일 오후 2시에 열린 이 사건 재심 선고 공판에서 자살 방조 혐의로 3년간 옥살이를 한 강기훈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내린 지 22년 만에 법원 판결이 바뀐 것이다.

이로써 사건 발생 직후부터 '유서를 대신 써주며 동료의 죽음을 부추긴 파렴치범'으로 몰렸던 강 씨는 23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됐다. 더불어, '유서도 제 손으로 못 쓰는 사람'으로 치부된 고 김기설 씨의 명예가 회복될 길도 열렸다.

무죄 선고 후 강 씨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검찰의 유감 표시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재판부가 유감의 표시도 하지 않는군요'라는 게 첫 생각"이라며 "재판부가 과거 잘못을 바로잡는 기회이고 검찰은 잘못을 반성할 기회로 삼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씨는 "재판부가 저를 세워놓고 징역 1년, 자격 정지 1년을 선고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겸허하게 얘기할 때 권위가 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부분이 재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징역 1년, 자격 정지 1년의 형을 별도로 선고했다.

강기훈, 천신만고 끝 무죄…"검찰의 유감 표시를 바란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 대필 사건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공안 조작 사건으로 꼽힌다. (관련 기사 : 강기훈 23년 짓누른 검찰…정의는 있는가)

이 사건은 1991년 5월 8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고 김기설 씨가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 후 투신 자살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계기는 그해 4월 26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중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분노한 시민들이 "살인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정권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이에 더해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 박창수가 5월 6일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경찰이 이틀 후 영안실 벽을 뚫고 시신을 탈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김 씨가 투신한 그날, 정권 차원에서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노태우 정권은 치안 관계 장관 회의를 열고 연이은 분신에 배후가 있다며 이를 수사하기로 결정했다. 검찰은 전담 조사반을 편성해 수사에 돌입했다. 이는 정권 비판 세력 전체를 겨냥한 조치로 해석됐다. 친정권 세력도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박홍 서강대 총장)며 정부에 힘을 실어줬다.

그 직후 유서 대필 사건이 터졌다. 전민련에서 김 씨와 함께 일하던 강기훈 씨가 김 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부추겼다는 이야기가 검찰에서 흘러나왔다. 상당수 언론이 이를 그대로 보도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김 씨와 강 씨의 글씨체를 비교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이하 국과수)의 미심쩍은 감정 결과 이외에 다른 물증은 없었다. 그러나 강 씨는 재판 전에 이미 파렴치범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정권 차원의 조작 의혹을 각계에서 제기했지만, 상황을 반전시킬 수는 없었다. 유서 대필 사건은 정권에 꽃놀이패였다. 불리했던 정국을 일거에 뒤집었을 뿐만 아니라 눈엣가시이던 정권 비판 세력 전체를 패륜 집단으로 몰아세울 수 있었다.

재판부도 강 씨의 무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91년 12월, 1심 재판부는 강 씨에게 징역 3년, 자격 정지 1년 6월을 선고했다. 1992년 7월, 대법원은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재판에 증인으로 나섰던 국과수 인사의 뇌물 수수 및 허위 감정 의혹이 제기됐지만,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후 종교계와 인권 단체 등에서 강 씨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 씨는 그렇게 파렴치범으로 몰린 채, 꼬박 3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1994년 8월 만기 출소한 후 강 씨는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했으나, 그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억울함, 분노, 생활고에 더해 중병까지 강 씨를 괴롭혔지만 진실을 향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2005년 '경찰청 과거사 진상 규명 위원회'에서 유서 대필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하면서 진실의 문이 조금씩 열렸다. 고 김기설 씨의 지인이 이 위원회에 강 씨의 무죄 주장을 입증할 새로운 증거를 제출한 것. 이를 계기로 사건을 재조사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2007년 유서 대필은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재심을 권고했다. 그 후 강 씨가 신청한 재심에 대한 판결을 13일 서울고등법원이 내린 것이다.

▲ 재심 선고 공판 후 밖으로 나서는 강기훈 씨. ⓒ연합뉴스

검찰을 비롯한 국가 기관과 김기춘 등 관련자 책임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재심 권고 후 새해를 7번이나 맞이하고서야 재심 판결이 나온 것은 검찰의 완강한 태도와 관련 있다. 검찰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재심 권고 후에도 과거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2009년 9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자 검찰은 재항고했다. 이로 인해 재심 개시 결정이 나오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린 것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재심 권고로부터 3년여가 지난 2012년 10월이다.

강 씨가 유서를 대필한 게 틀림없다는 검찰의 고집은 재심 과정에서도 계속됐다. 이는 유서 대필 사건이, 검찰이 전면에 나선 대표적인 공안 사건으로 꼽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이와 관련, 한국 현대사 전문가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유서 대필 사건은 군과 정보 기관이 퇴조한 가운데 검찰이 체제 유지의 주력 부대임을 과시함으로써 대한민국을 한동안 '검찰 공화국'으로 만든 획기적인 사건"(<한겨레>)이라고 분석했다.

23년간 이 사건에 짓눌린 강 씨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시선은 이제 검찰로 쏠리고 있다. 검찰이 이번에도 불복하는 무리수를 두며 대법원으로 사건을 끌고 갈 것인지,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제1차 인혁당 사건, 울릉도 간첩단 사건 등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연이어 상고한 바 있다.

검찰이 재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검찰 개혁론이 다시 거세게 일 수도 있다. 뇌물 검사, 성 추문 검사, '해결사' 검사 같은 특정 검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검찰 조직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13일 재심 판결 직후 논평을 통해 "오늘은 진실과 정의가 승리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국가 기관의 공식적이고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시는 국가 폭력과 사건 조작에 의해 개인이 희생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경우, 검찰은 이 사건에 관여한 이들에 대한 처분을 내려야 하는 처지다. 유서 대필 사건 수사 후 영전한 검사들에 대한 인사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사건 당시 주임 검사였던 신상규 대검 사건평정위원회 위원장의 거취 문제도 관심사다. 사건평정위원회가 무죄 판결이 난 사건에서 검사의 잘못을 평가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박근혜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주목할 만하다. 유서 대필 사건 수사에 관여했던 검사들 중 상당수는 2007년과 2012년 박근혜 후보 주위로 모였다. 수사 책임자였던 강신욱 전 대법관, 수사 검사였던 남기춘·윤석만 등이 그들이다.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 수석도 이 사건 수사 검사 중 하나였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도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 실장은 사건이 터진 그달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해 활약했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가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23년의 시간 동안 강 씨를 짓누른 비정상을 바로잡는 후속 조치를 취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와 관련, 심상정 정의당 원내 대표는 논평을 통해 "강 씨의 무죄가 사법부에 의해 명명백백히 밝혀진 만큼 희대의 공안 조작극을 총지휘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김기춘 비서실장은 강 씨에게 사과하고 이번 판결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트위터에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사람들… 당시 수사 검사 강신욱 전 대법관, 당시 법무부 장관 김기춘 현 청와대 비서실장, '죽음의 굿판xxx' 떠든 박근혜 지지 선언 김지하"라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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