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직권상정을 통해서라도 분양가 원가공개와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학법 재개정과 관련해선 기존의 완강한 태도에서 한발 물러선 기류가 감지됐다.
한나라당은 사실상 모든 법안을 사학법과 연계시키는 전술을 다시 들고 나왔다. 여야 각 당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분양원가 공개 등 부동산 관련법 처리에 대해선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두 가지 쟁점 법안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입장이 반영된 후퇴안이 나오거나 2월국회에서 처리가 무산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우리당 "모든 수단을 동원해 주택법 처리"
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추진모임은 상임위원장 직권상정을 통해서라도 주택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정세균 우리당 의장은 26일 "2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주택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임시국회 내에 처리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정 의장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값아파트 공급을 주장하던 한나라당이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주택법 개정을 왜 저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겉 다르고 속 다른,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정당"이라고 맹공했다.
정 의장은 "2004년 총선 때에도 우리당이 공공주택 분양원가의 공개를 검토한다는 입장을 정하자 한나라당은 민간아파트까지 전면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며 "그러나 며칠 지나고 나자 '일부 의원의 주장'이라며 딴 소리 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했다.
김영춘 최고위원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국회의 명확한 후속 입법 없이 그냥 넘어가면 이번 대선정국에서 포퓰리즘적인 정책 공약이 남발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홍재형 최고위원도 "28일 건교위 소위원회가 또 무산되면 건교위원장이 직권상정해서라도 전체회의에서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우 공보부대표는 "오는 28일 건교위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법사위에서 신속하게 처리할 방침"이라며 "시간상 문제가 있다면 임시국회 회기를 일주일 정도 연장해서라도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탈당파인 통합신당 추진모임도 한나라당에 대해 날을 세웠다. 최용규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집행회의에서 "한나라당이 임시국회를 식물국회로 전락시키고 있다"며 "민생법안에 대해서는 협력하지 않는 정파를 빼고 강행처리를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장경수 의원도 "28일 건교위 법안소위에서 위원장이 사회를 기피하거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에는 건교위원장 직권 상정을 통한 표결처리를 요구할 것이며 법사위 및 본회의 처리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5개 정당의 합의로 직권 상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 "쟁점은 주택법 아닌 사학법"…본회의 '동원령'
그러나 한나라당이 민간부문의 원가공개는 공급을 위축시켜 장기적으로는 집값을 상승시킬 것이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어 처리에 진통이 예상된다. 또한 한나라당은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제의 동시 시행을 2중 규제라고 보고 이 가운데 분양가 상한제에 한해서만 수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KBS 라디오 <라디오 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에 출연해 "정부의 주택법안에 대해 신중하고 철저하게 따지자는 입장"이라며 "공공부문에 대해서는 원가를 공개하되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분양가 상한제를 먼저 실시해 보고 원가공개 여부는 추후에 실시하자는 것이 한나라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주택법 개정안 대신 사립학교법 재개정에 당력을 집중키로 했다. 김 원내대표는 "주택법이 언론에 의해 부각돼 있지만 2월 국회의 가장 큰 쟁점은 주택법이 아닌 사학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주택법, 국민연금법, 이자제한법 등 각종 입법 현안을 사실상 사학법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지난주부터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재개정에 협조하면 여당이 주장하는 사법개혁법안 등을 처리할 수 있다"면서 '빅딜 방침'을 공공연히 밝히면서 국회 운영위원장 및 상임위 의석 조정에도 전향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특히 김충환, 신상진, 이군현 의원 등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3인은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삭발식을 갖고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재개정에 즉각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삭발식 직후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정부여당은 지난 번 날치기 사학법 개악으로 사학에 족쇄를 채웠다"면서 "(개방형 이사제를 통해) 불순한 정치세력이 사립학교를 탈취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지금의 사학법은 사학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건학이념을 부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를 사학법을 재개정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이러한 간절한 뜻을 행동으로 표시하기 위해 삭발로써 결의를 다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병석 원내수석부대표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계속 열린우리당과 협상을 하겠지만 협상의 전망은 어둡다"면서 "이번 본회의에서 표 대결을 통해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이룬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몰락으로 한나라당이 원내 제1당에 오른 만큼 적극적으로 표대결을 펼쳐도 승산이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런 가운데 김형오 원내대표는 사학법 재개정 표 대결 시점으로 예상하는 내달 5, 6일에 맞춰 '본회의 동원령'을 내리기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당 소속 의원들에게 보낸 공개편지를 통해 "3월5일과 6일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주기 바란다"면서 "주요법안에 대한 표대결이 예상된다. 일정이 있더라도 잠시 미루고 한나라당 127명 의원동지 여러분의 단합과 결속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27일 양당 원내대표 회동…후퇴냐 파행이냐
사학법 재개정안 처리에 대한 한나라당의 완강한 태도 앞에 열리우리당 지도부도 한발 물러선 기류가 감지됐다.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26일 "당 의장과 정책위의장 등 당 지도부가 사학법에 대한 여론을 폭넓게 청취 중"이라며 "이후 책임 있는 결론을 내릴 것이고 한나라당과 협상도 할 것"이라며 재개정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기우 공보부대표는 "다양한 그룹들을 상대로 의견을 수렴해 그 결과에 따라 재개정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의견수렴조차 소극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열린우리당이 선거를 앞두고 종교계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다만 우리당은 한나라당과 종교계의 재개정 요구를 받아들이더라도 사학법을 직접적으로 재개정하기보다는 시행령 개정으로 에둘러가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상으로는 "개방형 이사제를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회에서 추천한다"고 규정하되, 시행령 상에서는 종립학교의 경우에는 종단이 개방형 이사의 2분의 1를 추천하는 것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
그러나 우리당 내에서 국회 교육위 소속 의원, 개혁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고 한나라당이 이같은 절충안에 합의할지도 미지수다. 열린우리당의 구상이 현실화 될지는 알 수 없다.
일단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오는 27일 오전 국회에서 각당 원내대표와 정책위 의장이 참여하는 4인 회동을 열기로 했다. 이 만남에서 양당이 기존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면 2월 국회는 강대강 정면충돌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협상을 통해 돌파구가 마련되면 부동산 관련법과 사학법 개정안은 후퇴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
결국 얼마 남지 않은 2월 국회의 진로가 후퇴냐 파행이냐의 갈림길에 처한 셈. 내달 6일 회기종료일까지 본회의는 세 번(28일, 3월5일, 6일) 있다. 공휴일과 휴일을 제외하고 실제로 법안을 심의할 시간은 엿새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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