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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예산-예산 부수법안 사실상 단독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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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나라, 예산-예산 부수법안 사실상 단독 처리

무기력한 야당, '형님 예산', '물길 예산' 저지 실패

284조5000억 원의 2009년도 예산안이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청와대의 입김을 등에 업은 172석의 '공룡 여당' 한나라당은 예산안 협상 내내 우위를 지키며 사실상 '단독 처리'를 강행했다. 12일 처리 시한을 하루 넘겼지만 한나라당에겐 만족할만한 결과다.

예산안 처리에 앞서 종부세 개정안 등 예산 부수 법안도 이날 아침과 새벽에 각각 열린 본회의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이 기권한 가운데 통과됐다. 정부의 당초 수정 예산 정책 기조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평가다.

예산안 표결에 한나라당과 함께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일부 의원이 참석했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참석하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한 채 단상 주변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날 예산안 및 예산 운용 기금안은 재석 188명 중 찬성 184명, 반대 3명, 기권 1명으로 처리됐다.

한나라당은 '무력한 거대 여당'이라는 평가는 피했으나 야당과의 합의처리에 실패함으로써 원활한 정국운영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1000억원 삭감을 주장한 '4대 강 정비 사업 예산'과 '형님 예산'을 고수했고, 이는 여야 협상 결렬로 이어져 결국 '단독처리'로 이어졌다.

결국 청와대의 가이드라인 제시, 한나라당의 강행 의지, 민주당의 무기력한 방관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예산안-쟁점법안 분리' 처리 방침도 전략적으로 먹혀들었다. 이에 동의한 민주당 입장에선 '경제 발목잡기'라는 비판에 신경쓴 나머지 스스로 협상의 무기를 버린 격이 됐다.

예산안 처리라는 큰 짐을 덜어낸 정부 여당은 앞으로 남은 임시국회에서 민주당이 '반민주 법안'이라 규정한 '이념 법안'과 경제 관련 'MB 개혁 입법' 드라이브를 위해 전열을 정비할 수 있게 됐다.

반면 민주당은 '지도부 교체설'이 나도는 등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을 '실패'로 규정하는 분위기다. 감세법안을 너무 쉽게 양보했다는 말이 나오는 등 향후 'MB 개혁 입법' 저지를 위한 당내 분위기 추스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박 2일'협상 과정에서 한나라 결국 사실상 단독처리

예산안 처리에 앞서 12일부터 '무박 2일'로 이어진 예산안 처리 과정도 녹록치 않았다. 한나라당 소속인 이한구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12일 오후부터 종적을 감춘 것.

이날 4차례 원내대표 회담 과정에서 여야의 SOC 예산 삭감 범위 조정을 위해 참석하기로 한 이 위원장은 사전 연락 없이 '잠적'해 한때 "예산안 협상이 결렬될 것"이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결국 이같은 말은 사실이 됐다.

이 위원장은 이날 8시 20분 경 국회에 들어왔고, 여야3교섭단체 회동에서 "'물길 예산'과 '형님 예산'에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1000억 원을 삭감하지 않고 보류하겠다"고 밝히자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등 상황은 악화됐다. 이 위원장은 연락이 끊긴 6시간 여 동안 4대 강 정비 사업, 포항 인근 지역 SOC 예산 삭감과 관련해 정부와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길 예산', '형님 예산'과 관련해 이 위원장과 한나라당이 원안을 고집하자 민주당이 "정부 여당의 군사 작전", "12.12 예산 쿠데타"라고 반발하며 협상은 결렬됐다. 결국 '물길 예산'은 원안대로, '형님 예산'은 불과 160억 원이 깎인 채 채 13일 새벽 계수조정소위를 통과했다.

한편 이 위원장이 나타나지 않자 민주당은 "한나라당 소속인 이 위원장이 더이상 협상 하지 않고 한나라당 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고의로 협상 및 예결위 회의를 지연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저녁 8시 경 예결위 회의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혹시 모를 한나라당의 '강행처리'에 대비해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 200여명이 스크럼을 짜는 등 전운이 감돌기도 했다.

12일 11시 30분 경 열려 13일 새벽까지 이어진 본회의에서는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한 예산안 부수 법안은 민주당이 불참한 가운데 통과됐다. 이날 통과된 법안은 종부세, 소득세, 상속세 및 증여세, 법인세법 개정안 등 13개 감세법안이다.

'부자 감세 저지'를 외치며 본회의 단상 점거에 들어간 민노당 의원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저지로 3분 여만에 단상을 내려와야 했다. 민주노동당이 법사위를 점거하는 등 '행동'을 통해 상정을 반대한 농어촌특별세법 폐지안은 이날 직권상정되지 않았다.

본회의 이후 열린 계수조정소위에 단독으로 참여한 한나라당은 일사천리로 예산 심사를 마무리했다. 민주당은 '물리력으로 저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회의장 주변에서 밤샘 농성을 벌였을 뿐이다.

민주당이 주장해 막판에 쟁점이 된 6500억 원 규모의 남북교류협력기금 삭감 불가와 일자리 창출 예산 등 4조3000억 원 증액 주장도 무위로 돌아갔다. 남북교류협력기금은 3000억 원 삭감됐다. 증액 부분도 노인 일자리 예산 등 복지 부분에서 약 600억 원이 늘었을 뿐이다.

이날 새벽 계수조정소위를 거친 후 예산 부수법안에 이어 예산안도 결국 한나라당 사실상 단독 심사 절차를 밟았고 오전 10시에 열린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당 의원 30여 명은 본회의장에 들어가 단상을 둘러싸고 "의회 민주주의 현장을 유린하고 있다"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헌정유린", "날치기"라며 한나라당을 비난했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반대 토론을 통해 "절차적으로 정부가 제출한 수 만개의 사업을 2주일에 심사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여당은 국가 예산 심의를 12일로 목표 잡고 군사 작전을 전개하듯 했다"고 비난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도 "500억 원 깎기로 합의한 대운하 의심 예산은 어떻게 된 거냐"고 말했다.

표결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김형오 국회의장은 사퇴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역시 통한 청와대의 '예산안 처리 시점' 가이드라인

비록 법정 기일인 2일을 넘겼지만 올해 예산안 처리 시점은 2008년도 예산안이 통과된 12월 28일에 비해 대폭 앞당겨졌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국회가 조바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청와대의 입김도 만만치 않았다.

여야가 본격적인 예산안 전쟁에 돌입한 것은 지난 1일 국회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부터다. 종합부동산세 세율 0.5~1%로 대폭인하 등 정부의 감세안을 고집한 한나라당에 반발한 민주당이 불참 선언을 한 것.

예산안 법정 처리 시점이던 지난 2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예산이 9일까지 통과돼야 하는 이유는 예산 통과 다음날부터 바로 예산이 집행돼야 할 정도로 하루하루가 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주문'이 있은 후 계수조정소위가 파행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홍 원내대표는 5일 "9일까지 합의되지 않으면 의법처리하겠다"며 강행처리를 시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민주당은 계수조정소위에 참석했고 사실상 청와대의 입김과 맞물린 한나라당 지도부의 '강경대응'이 통했다는 증거를 보인 꼴이 됐다.

민주당이 계수조정소위에 불참한 일수는 총 3일. 이는 예산안 처리 시한을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주장한 9일에서 12일로 사흘 미루게 된 근거가 됐다. 민주당이 제시한 '15일 처리 카드'는 거부당했고 결국 김형오 국회 의장의 중재안인 '12일 처리'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처리 시점이 사흘 미뤄졌지만 "예산 선집행을 위해서는 조속한 예산안 처리가 필요하다"던 청와대의 의지는 결국 관철된 것이다.

지도부의 성급한 감세안 합의에 민주 '부글부글'

16조 원에 달하는 감세 규모와 20조 원에 달하는 국채 발행으로 귀결된 올해 예산안에서 끝까지 쟁점으로 남은 것은 지방 재정 손실을 예고한 1조5000억 원의 종합부동산세 감세와 25조 원에 달하는 지방 SOC 예산.

감세안에서 여야는 종부세 이외에도 소득세, 상속증여세, 부가세 등을 두고 맞붙었지만 한나라당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9일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현행 세율 유지'안을 0.5~2%로 대폭 축소하는 등 한나라당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면서 "이 정도라도 지켜야 했다"고 소회를 토로했다.

당시 민주당과 '부자 감세 철회'를 기치로 공조를 강화하던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의 반응은 싸늘했다. 민노당은 10일 협상장을 기습해 시위를 벌였고 시민단체는 정세균 대표를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이날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도 지도부의 졸속 협상을 성토하는 자리가 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 부자감세 졸속 처리에 들러리를 서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일 세법심사와 관련한 전체회의가 예정된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하는 등 물리력까지 동원했던 민주당 의원들의 허탈감이 반영된 것. 이 날은 18대 국회 들어 첫 몸싸움으로 기록된 날이기도 했다. 다음 날인 6일에는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이같은 방해를 '방해'하기 위해 회의장을 점거, 격한 몸싸움을 또 벌여야 했다.

민주당이 정기국회 내내 중점적으로 밀어붙인 부가세 30% 인하안도 '용두사미'로 끝났다. 다만 일부 생필품 부가세 면세 등 세부 사안을 관철시켰을 뿐이다.

'감세안 협상 굴욕' 민주, 세출 협상 막판엔 '2조 원 증액 요구'

감세안의 사실상 타결 이후 세출 부분에서는 지방 SOC 예산이 쟁점이었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 인근 지역에 추가 배정된 4400억 원과 대운하 사전 작업으로 의혹을 사고 있는, 총 14조 원이 배정된 4대 강 정비 사업에서 여야는 치열한 대치를 이어갔지만 결국 민주당은 사실상 한 푼도 깎지 못했다.

초반에 민주당은 감세와 재정적자 폭이 너무 큰 것을 우려했지만 협상 막바지에 "재정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일자리 창출 법안 등 2조 원을 추가로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고 오히려 증액을 요구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도 보였다. 세출 삭감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민주당에겐 '성과'가 필요했던 것.

결국 이같은 주장은 소득을 얻지 못했다. 민주당이 "건설 사업 확대가 경기부양으로 이어지지 않고 되려 거품을 키울 것"이라고 우려한 지방 SOC 예산은 결국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5000억 원이 삭감됐다. 민주당은 처음 3조 원 삭감을 주장하다가 1조 원, 6000억 원으로 계속 양보했지만 결국 한 푼도 삭감하지 못한채 협상을 결렬시켰다.

한나라당에서도 민본 21 등 개혁 성향 의원모임 등이 주도해 재정적자 축소를 요구한 바 있지만 청와대의 입김에 진압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4일 16개시도지사 간담회를 통해 "적자재정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 자리에서 시도지사들은 '4대강 정비 사업'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메시지에 홍 원내대표가 연일 "일자리 등 복지 관련 문제도 SOC 사업으로 해결된다"고 화답하면서 당내 분위기는 일사천리로 정리됐다. '청와대의 힘'이 재확인된 것이다.

눈에 띤 소수정당의 "몸부림"

민주노동당은 소수정당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지만 원내 5석의 '미니정당' 치고는 실익을 챙겼다는 평가다. 강기갑 대표가 "대의 정치를 위한 몸부림"이라고 표현했듯 민노당은 8일부터 예산안 처리가 이뤄진 12일까지 기습시위, 법사위 의장석 점거 등 '행동'을 통해 존재감을 알렸다.

이들은 8일 여야3교섭단체 원내대표의 비공개 회담 장소를 찾아 기습 시위를 벌여 '예산안 세출부분 합의문 작성'을 무위로 만들었다. 이어 9일엔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세법안 상정을 저지했고, 내친김에 다음날 까지 밤샘 농성을 벌여 결국 농어촌특별세 폐지 보류라는 과실을 얻어냈다.

'선진과 창조의 모임'의 자유선진당은 소수 정당임에도 교섭단체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협상 과정에서도 민주당의 '한나라당 2중대 발언'에 반발해 회담을 지연시키는 등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협상에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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