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대기업에 쏠린 부의 편중 현상을 법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헌법으로, 우리나라 헌법 119조 1항에 는 '대한민국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유명 수험서에 적혀 있는 '경제민주화'의 정의다. 경제민주화란 구체적으로 "부의 편중 현상"을 "법"을 통해 완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1987년 '경제민주화 조항'이 헌법에 포함된 후, 1988년 국회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재벌의 금융 독과점 실태가 공개됐다. 농촌은 수조 원의 빚에 허덕이는데 재벌 기업이 금융을 독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에도 경제 민주화는 재벌이 갖고 있던 부의 독점을 깨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 후 3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경제민주화는 일부 진보 정치세력의 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었다. 그러나 2012년부터 있었던 총선과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의 상징적 구호처럼 돼 버렸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공천 빚'이 없는 당내 비주류,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이 지난 2013년 4월 16일 화끈한 고백을 했다. 그는 "경제민주화는 대선 때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며 "새누리당은 경제를 살리려 경제민주화를 한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고백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이 끝난지 4개월도 채 안된 때였다. 선거를 앞둔 보수 정당이 '파격'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는 6월, 또 한번의 선거가 예정돼 있다.
경제민주화 공약, 구체성은 떨어지고 모호함만 늘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8월, 당내 경선을 마친 후 후보직 수락 연설을 통해 "경제민주화는 국민 행복의 첫걸음입니다"라는 말을 선언처럼 내놓았다. 보수 여당 대표로 18대 대선에 나선 후보 본인이, 자신의 브랜드로 경제민주화를 흡수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시장주의자'인 이한구 당시 원내대표 등이 김종인 전 수석과 벌인 당내 '경제민주화 논쟁'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 발언에 대한 의심은 부정됐다. 박 대통령은 이후 대선 공약 발표 회견을 통해 '경제민주화 실천을 위한 35개 과제'를 내놓았다. 구체적 실행 계획이 나온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공식적으로 발간된 대선 공약집의 실행 계획은 애초 발표와 달리 축소돼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18대 대선 공약집 146페이지의 제목은 '경제민주화'다. 총 5개 영역, 18개 '약속'으로 이뤄져 있다.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5개), 공정거래 관련법의 집행 체계 개선(3개), 대기업집단 총수일가의 불법 및 사익 편취 행위 근절(3개), 기업 지배구조 개선(4개), 금산분리 강화(3개)다.
언론이나 학자마다 셈법은 다르지만 박 대통령의 공약은 대체적으로 당초 목표(35개 과제)에 비해 축소되는 과정을 밟아왔다. 실행 과제가 합쳐지고, 또 새로 분류되는 과정에서 계획의 구체성은 점차 떨어져갔고, 개념의 모호함은 되려 증대했다. 그 무렵 김종인 전 수석이 강조했던 정책의 일부가 빠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 전 수석과 당내 친박계 의원들 간 갈등은 다시 불거졌다. 이는 언론 지면을 통해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논란은 대선 결과와 함께 다시 잦아들게 된다. 그리고 2013년 2월 25일 제 19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제 만 1년이 지났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정책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김종인 전 수석은 지난 12월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 1주년 기념일 즈음에 결국 당을 뛰쳐 나왔다.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100점 만점에 20점 짜리 '경제민주화' 성적표
선거 구호는 화려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경제민주화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난 2013년 4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1호 법안'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하도급법) 법안이 통과된 후 일련의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한 논의는 힘을 받는듯 했었다. 같은해 6월 국회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및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공정거래법), 가맹점주의 권리 강화(가맹사업법), 부당특약 금지(하도급법),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 지분 소유 규제 법안(은행법)등이 '내용이 후퇴했다'는 논란을 안고 줄줄이 처리됐다.
그리고 7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사 간부과 오찬 자리에서 "경제민주화 중점 법안 처리,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35개 중 6개를 처리하고 "거의 끝"을 선언한 셈이다. 이후 박 대통령의 행보는 그의 발언을 뒷받침했다. 8월 28일 박 대통령은 10대 그룹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정기국회에서 신규순환출자 금지 법안(공정거래법)이 통과된 후,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아예 빼버렸다. 이는 국정 운영의 주요 목표에서 경제민주화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 대통령 취임 후 8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경제활성화' 등 낯익은 '성장 구호'가 경제민주화가 빠진 곳에 새로 자리잡았다. 대기업 규제 입법에 미온적이었던 정부는, 입법이 필요없는 시행령을 무더기로 개정해 의료를 포함한 각 분야 대기업의 '손톱 밑 가시'들을 뽑아내고 있다.
최초 대선 공약 기준으로 35개 실천 과제 중 7개 법안 처리. 단순 수치 계산으로 20% 달성이다. 100점 만점에 20점 짜리 경제민주화 성적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경제민주화 공약 35개 중 통과된 것은 공정거래 관련 7개 법률 뿐이어서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본다"며 "앞으로 박 대통령 경제민주화 공약의 성패는 금융 관련법과 상법 개정에 달렸다"고 했다. 아직 과제는 많다. 그러나 진정성이 문제다.
잊혀진 것 같았던 단어, 경제민주화가 지난 4일 집권 여당 대표의 입에서 다시 흘러나왔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는 대한민국 경제의 전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두 개의 수레바퀴"라며 "경제민주화의 중단없는 실천"을 공언했다. 6월에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경제민주화는 더욱 모호해졌고, 집권 세력의 말과 행동은 눈에 뜨일 정도로 분리된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경제민주화는 무엇이었을까. "경제민주화는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이라는 김용태 의원의 발언은 여전히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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