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 23기가 매년 배출하는 사용 후 핵연료는 약 700~800톤 정도이며, 1978년 고리 1호기가 가동된 이후 현재까지 배출된 1만3000톤 이상의 사용 후 핵연료가 핵발전소 부지에 임시로 보관 중이다. 향후 핵발전소들이 계획대로 건설된다면 2030년에는 경수로에서 4만8000톤, 중수로에서 1만9000톤의 사용 후 핵연료가 쌓이게 될 것이라 한다.
사용 후 핵연료에는 플루토늄 239와 같이 반감기가 수 만년씩 되는 방사성 물질과 세슘 137, 스트론튬 90과 같이 반감기가 30년 정도로 짧은 방사성 물질들이 전체 사용 후 핵연료 중 약 7% 정도 포함되어 있다. 반감기가 긴 장수명 핵종들의 경우 그 방사능 수준이 천연 우라늄 광석 수준으로 낮아지려면 최소 10만 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류는 우라늄의 핵을 분열시켜 그로부터 방출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은 알게 되었지만 핵분열의 부산물인 유독한 방사성 물질들을 안전하게 처리할 방법은 찾지 못했다. 독일이 핵 발전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도 사용 후 핵연료라는 방사성 물질을 안전하게 처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해결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일단 전기를 싸게 사용하겠다는 태도는 독일 국민의 윤리적 관점에서 용인될 수 없었던 것이다.
독일이나 이탈리아와 같이 탈핵을 결정한 나라들이 많지만 프랑스나 우리나라처럼 핵 발전을 주요한 전기공급원으로 계속 이용하겠다는 나라들도 일부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핵 발전을 해온 대부분의 나라들은 사용 후 핵연료의 처리 방법에 관망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 스웨덴이 최종 처분장 후보지를 결정한 상태에서 핀란드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하 500미터의 단일 암반 속에 최종 처분장을 건설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일 암반 속 최종 처분장조차 수천 년, 수만 년의 세월을 견뎌낼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는 상태이다.
2014년 1월 29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신고리 5, 6호기 핵발전소 건설에 관한 전원 개발 실시 계획을 승인하였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 신규 건설 승인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없는 상태로 핵발전소를 새로 건설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반윤리적이다.
현재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 위원회가 구성되어 중간 저장 시설 건설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최종 처분 방안을 유보한 상태로 핵발전소를 계속 건설하는 상황에서 이미 배출된 사용 후 핵연료의 중간 저장을 목표로 한 공론화 논의는 윤리적 관점에서 용인될 수 없는 행정 편의적 발상에 불과할 것이다.
한편, 방사성 폐기물 관리 법 시행령과 산업통상자원부 고시(방사성 폐기물 관리 비용 및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부담금 등의 산정 기준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산정되는 사용 후 핵연료 부담금(이하 '부담금')의 경우 사용 후 핵연료를 일정 기간 중간 저장한 후 최종 처분장에 동굴 처분한다는 가정을 토대로 부담금 액수를 산정하고 있다.
위 고시는 비용을 "기준 시점 이후 연도별로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사업(저장, 운반, 최종 처분 등)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을 기준 시점의 현재 가치로 각각 환산하여 합산한 총액"으로 산정하는데 2012년 기준 미래 사업비의 현재 가치는 경수로의 경우 18조3300억 원, 중수로의 경우 4조5975억 원(합계 약 23조원)으로 산정되었다.
부담금 적립 잔액이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징수한 부담금의 누적 액(해당 기금 운용 수익 액 포함)에서 매년 지출되고 남은 잔액을 말하는데 2012년 현재 경수로 3조5691억 원, 중수로 1조3056억 원이 적립되어 있다. 부담금이 총액으로 매년 3000~4000억 원 수준으로 부과되고 있지만 중간 저장이나 최종 처분에 관한 대규모 지출은 없으므로 부담금의 대부분이 기금으로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사용 후 핵연료 중간 저장 및 최종 처분에 관한 미래 사업비는 2012년 12월경 당시 지식경제부 산하 방사성 폐기물 관리 비용 산정 위원회가 외부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작성된 <방사성 폐기물 관리 비용 산정 최종 보고서>(이하 <보고서>)에 의거한 것이다. <보고서>는 미래 사업비를 중간 저장 사업비와 최종 처분 사업비로 나누고, 이를 다시 경수로와 중수로로 나누어 산정하고 있는데, 중간 저장 사업비의 경우 미국 전력연구원(EPRI)의 비용 산출 보고서를, 최종 처분 사업비의 경우 핀란드 POSIVA의 자료를 각각 참조하였다고 한다.
경수로에 관한 미래 사업비를 살펴보면 중간 저장 사업비 18조4973억 원, 최종 처분 사업비 26조6697억 원, 합계 45조1670억 원이고, 이를 현재 가치로 할인한 금액이 앞서 살펴본 18조3300억 원이다. 사업 기간은 중간 저장 시설의 경우 2024년부터 2124년까지 100년 동안 운영하고, 처분 시설은 2050년부터 2124년까지 74년 동안 운영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일본 원자력위원회는 2012년에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비용 및 최종 처분 비용을 각각 추정하여 발표하였다. 그 결과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한 후 최종 처분하는 비용(재처리를 하더라도 부피가 줄어들 뿐 최종 처분은 여전히 필요하다)은 한화로 250조 원, 재처리 절차 없이 직접 지하에 영구 처분하는 비용은 한화로 185~195조원으로 산정되었다. 40년 가동을 전제로 100만 킬로와트 용량의 핵발전소 1기가 배출하는 사용 후 핵연료의 최종 처분 비용은 한화 3조1400억 원으로 산정되었다.
위와 같은 일본의 계산을 바탕으로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전의 드러나지 않은 비용>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중간 저장 및 최종 처분 비용을 현재 가치로 추정한 결과 대략 7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 보고서가 산정한 중간 저장 및 최종 처분 비용의 현재 가치 약 23조 원은 일본 원자력위원회가 산정한 현재 가치와 비교할 때 31.9% 수준에 불과하다. 핵발전소 1기당 최종 처분 비용 역시 우리나라는 1조 원 정도인데 일본은 3조1400억 원이다.
<보고서>의 경수로에 관한 미래 사업비 항목들을 살펴보면 1) 중간 저장 사업비의 경우 건설비 1940억 원, 운영비 14조993억 원, 운반비 9784억 원, 연구 개발비 1600억 원, 예비비 3조 656억 원이고, 2) 최종 처분 사업비의 경우 부지 조사비 1조668억 원, 부지 평가비 5334억 원, 연구 개발비 6443억 원, 처분 설비비 2조4263억 원, 처분 용기 포장 및 연료 운반비 12조2331억 원, 처분 용기 처분 및 처분 동굴 밀폐비 1조7453억 원, 처분 시설 폐쇄 및 후속 처리 161억 원, 예비비 8조 44억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종 처분장을 밀폐하기까지의 사업 기간을 74년으로 하고, 처분 시설 폐쇄 및 후속 처리 비용으로 겨우 161억 원을 계상한 것은 수만 년 동안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할 사용 후 핵연료의 보관 책임을 감안하였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반윤리적 가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적으로 최소한 10만 년이 지나야 사용 후 핵연료의 방사능 수준이 안정화된다면, 원칙적으로 그 시점까지 최종 처분장을 안전하게 관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지금 핵발전 전기를 사용한 세대로부터 징수하여 적립하고, 해당 기금이 자자손손 전달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9만년 쯤 후의 우리 후손들이 우리가 지금 배출한 핵폐기물의 처리 비용을 우리가 전달한 자금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본 원자력위원회의 사용 후 핵연료 최종 처분 비용 산정 결과도 대략 500~1000년의 관리를 전제로 산정된 비용일 것이고, 할인율을 감안할 때 200년 정도 후의 미래 사업비는 현재 가치로는 사실상 제로(0)로 간주된 금액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에 비해 최종 처분 비용을 3분의 1 수준으로 산정하고 있어서 그 반윤리성의 정도가 훨씬 심하다.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생전 싸게 쓰고 후손들에게는 수만 년 동안 혜택은 전혀 없이 비용만 부담시킬 핵폐기물을 떠넘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반윤리적이다. 더구나 지각의 급격한 변동 등 예상할 수 없는 사태로 핵폐기물이 지하수나 대기권에 유출되어 생태계를 광범위하게 오염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상황에서 독일 국민의 수준을 뛰어넘는 윤리적 선택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당장 전기를 좀 더 비싸게 사용하더라도 미래 후손들을 배려하는 윤리적 선택을 한다면 그 가치는 훨씬 더 클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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