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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미혼모의 작은 외침에 귀 기울여 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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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금은 미혼모의 작은 외침에 귀 기울여 줄 때

[기고] 제인 정 트랜카의 '아기 국자 시대, 이젠 끝내자'를 읽고

나는 2003년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여 10년간 현장에서 근무한 사회복지사이다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세월속에, 팍팍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시쳇말로 볼 꼴 못볼 꼴 다보며 울고 웃으며 보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처음 받은 월급은 12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가정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한번도 박봉을 원망해본 적이 없다. 추운 겨울 옷깃을 여미며 가정방문을 다닐 때에도, 연일 계속된 야근에 링거를 맞으며 출근하면서도 한번도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막 10년 차 사회복지에 접어드는 요즘. 그 어느때 보다 깊은 회의와 절망의 한숨이 자주 스며 나온다.

 

20156월이 되면 미혼모와 그들의 자녀를 지원하는 미혼모자시설의 절반가량이 사라진다. 현재 임신한 미혼임산부를 돕는 시설은 전국에 33. 그중 절반인 16개 시설은 단지 운영법인의 정관에 입양사업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홀트아동복지회의 경우 단순히 입양기관이 아니며 장애인복지, 지역사회복지, 장학사업 등을 다양하게 펼치는 종합적인 사회복지법인이다) 시설의 문을 닫거나 더 이상은 임신한 미혼모를 도울 수 없는 타시설로 전환하여야 한다.

 

나는 200721일부터 미혼모자시설 '아침뜰'에서 근무했다. 그동안 854명의 미혼모를 만났고 그중 239명은 직접 상담했다. '아침뜰'에 입소하는 미혼모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기구한 사연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를, 아니 우리를 울게 하기 충분했고 그들이 웃으며 사회로 복귀할 때 그동안의 눈물은 보람이 되어 돌아왔다.

 

2010년도에 한부모가족지원법의 개정 움직임이 있을 때 우리 사업의 정당성을 소명하는 수많은 자료를 준비하면서 설마 이렇게 비상식적인 법령이 통과될 수 있을까 반문하며 자료제출에 시간을 들이며, 그로 인해 아침뜰 산모들에게 온전한 정성을 기울이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였다.

 

2011년도에 법의 개정소식을 전해 듣고도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실 법령개정과 같은 거대한 사건은 그것이 현실의 우리에게 미칠 결과의 막대함이 어쩌하던지 현장의 우리들은 우리 앞에 걸어 오는 한 미혼모, 나이에 비해 굴곡진 삶을 살아온 그들을 마주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2014년 현재, 아침뜰에는 30명의 엄마와 10명의 아기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입양숙려제 등으로 인해 열흘 남짓 보호되다 가는 아기들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 아침뜰에 생활하는 혹은 앞으로 아침뜰에 입소할 엄마들에게 이제 개정법령은 발등의 불이 되었다. 물론 시설 직원인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산모들과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올 한해. 나는 산모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한해를 시작하였다. 일개 사회복지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나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여 전문가로서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고, 결국 개정 법령대로 더 이상 우리시설에서 미혼모들을 돕지 못한다한들 주무당국이 적절히 대처해 미혼모들에게 피해는 없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제인 정 트렌카 씨의 기고문(관련기사 : '아기 국자' 시대, 이젠 끝내자!)을 읽고 이렇게 침묵하는 것만이, 앞으로 닥칠 사건을 애써 외면하고 나의 본분을 다하며 책임감을 지키는 것이 함께 사회복지의 길을 걸어가는 동료들을 위해, 지금 16개 미혼모자시설에서 생활하는 미혼모들을 위한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양기관의 미혼모시설을 비판한 TRACK의 대표인 제인 정 트렌카 씨를 비롯하여 현 상황을 극단적으로 호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의 분노로 발생된 현 사건의 화살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그들이 모범답안으로 제시한 입양률 20%인 단 한기관에서 생활하며 입양을 생각한다는 이유로 비정한 엄마로 손가락질 받고 우리 시설로 옮겨와 아픈 가슴을 달래던 입양모인가? 아니면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혹시라도 인생을 포기할까봐 전전긍긍하던 우리 16개 시설들인가? 아니면 입양기관 미혼모시설에서 낮에는 아기를 돌보고 밤에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어린 엄마들인가? 이제 곧 그 엄마들은 아기와의 마지막 둥지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입양기관의 미혼모 시설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아기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법이라는 그들의 왜곡된 진실은 지금 내가 실천하고 있는 진실과 다르다. 세상에 완전히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방적으로 상대편만의 진실을 듣고만 있자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격이 되어가는 것 같아. 이제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먼저 제인 정 트렌카 씨가 지적한 입양기관에서 운영하는 미혼모자 시설이 그렇지 않은 시설에 비해 3배나 입양을 더 많이 보낸다는 자료(2008년 국정조사 자료)는 가장 입양율이 낮은 비입양기관의 한 사례와 입양기관 미혼모 시설의 수치를 비교하여 사실을 과장하였다. 2011년 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자료에 따르면 2010년 전국 기관의 입양비율조사결과 입양기관의 입양율은 평균 70.5%, 비입양기관은 58.0%로 입양기관이 12% 높을 뿐이다. 특히나 개별 기관을 비교했을 때 비입양기관이 입양기관보다 높은 입양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아침뜰을 기준으로 하면 비입양기관 15개 시설 중 7개시설이 아침뜰보다 높은 입양율을 보였다.

 

아침뜰의 상담원 및 모든 직원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입양을 유도하지 않으며 미혼모의 결정을 존중한다. 내가 일하기 시작한 이후 법개정 움직임이 있기 수해전부터 매년 아침뜰에 입소한 양육미혼모의 수는 증가했으며 이들에 대한 기관의 지원 폭 역시 넓어졌다. 아침뜰은 개원 후 받은 두 차례의 한부모가족 시설평가에서 최우수등급(A등급)을 받았으며 2012년 평가에서는 평가점수 상위기관에만 지급되는 인센티브까지 받는 등 미혼모에 대한 적합한 지원을 객관적 지표로 인정받은 우수한 시설이다. 이제 그 우수한 시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사라질 수도 있으며, 시설에서 생활하는 40명의 입소 미혼모와 아기, 전국적으로는 354명의 미혼모들과 아기들이 둥지를 잃게 되고, 이들을 위한 대체시설은 아직도 마련되지 않았다.


나는 입양기관에서 헌법소원을 낸 것을 제인 정 트렌카 씨와는 다른 이유로 지지한다. 헌법소원의 사유는 직업결정의 자유 침해이다. 이것을 두고 개인의 선호와 아동의 인권을 비교하며 마치 기관 종사자의 밥그릇 챙기기로 폄하한 것이 내가 장문의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에게 이 직업은 밥그릇이 아니다. 나의 신념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꿈이다. 이 신념과 가치를 맞바꿀 정도로 시설사회복지사의 밥그릇은 황금밥그릇도, 철밥통도 아니다. 법령개정 후 불현 듯 억울한 심경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나를 옹호하는 것은 깊은 상처와 분노를 가지고 우리를 비난하는 이들을 역으로 공격하고 상처내는 일이 될까봐 조심스럽기만 하였다. 나는 나를 그리고 우리 기관을 옹호하는 것이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미혼모와 아기의 복리를 향상하고 나아가 인권을 보호하는 첫 번째 방법임을 이제야 깨달았고 때문에 우리를 옹호하는 헌법소원을 환영한다.


목소리 큰사람이 이기는 사회에서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지금의 나도 현 상황에 분노의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결국 소통과 화해는 사라지고 우리 모두에게 남은 것은 감정적인 분노일 뿐이다. 나는 그런 분노만이 가득한 사회를 바라지 않는다. 때문에 낮은 목소리로 외쳐본다. 이번 헌법소원은 단지 직업선호의 개념이 아닌 우리의 신념과 자존심을 지키고 피땀 흘려 견고히 다져가고 있는 미혼모자지원 서비스체계를 지키는 마지막 방법이며 더 이상 아침뜰 양육방에서 잠들어 있는 아기천사들을 입양기관이 취득한 아동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로 표현하며 그들이 우리를 비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기를, 정처 없는 분노가 화살이 되어 매일매일 미혼모들과 함께 전력을 다해 뻐근하게 삶을 살아가는 시설 종사자들의 가슴에 내다 꽂히지 않도록 왜곡된 인식을 탈피하여 진정한 진실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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