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고 느껴집니다. 우리 정부의 무관심이 더 가슴 아픕니다. 정부와 기업이 정말 진심으로 사과해 줬으면…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재발에 대해 정부에서 책임을 져 줬으면 좋겠습니다. 하루빨리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힘을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2012년 2월,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교수들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한국환경보건학회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고자 방문조사를 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앞의 인용 글은 광진구에 사는 이 모 씨가 설문지 뒤쪽에 있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느낀 점'에 직접 적은 것이다.
믿고 산 마트 제품 때문에 딸 사망
2005년에 결혼한 이 씨는 이듬해인 2006년 7월에 딸을 낳았다. 산모와 아기를 위해 계속 난방을 했다. 방안의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가을이 시작되는 10월부터 가습기를 사용했다. 11월부터 집 근처의 대형 마트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해 사용했다. 롯데마트와 이마트가 있어 갈 때마다 다른 제품을 구입했다. 롯데마트에서는 자체상표인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를, 이마트에서는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이 씨는 '청결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 씨는 롯데마트 제품은 아직도 갖고 있고 이마트 제품은 영수증을 확보해 두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지 4년이 지난 2011년 1월, 이 씨는 기침과 호흡곤란으로 동네의 내과병원을 찾았다. 감기라고 했다.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4월 말 건국대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이 씨에게 원인 불명의 폐렴과 폐결핵을 진단하면서 폐 기능의 30%가 손상됐다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한 달 가량 입원치료를 했지만 차도가 없어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겼다.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은 이 씨의 폐 CT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폐에 섬유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이 씨의 피해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자택을 방문했을 때 그는 조사자인 필자에게 여러 가지를 보여줬다. 휴대용 산소 호흡기, 한 보따리의 약봉지, '홀스' 사탕 박스 그리고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 등이다. 이씨가 집안일을 하다가 숨이 차 힘들어 하면 6살 난 딸아이가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갖고 와 코와 입에 대준단다.
'홀스' 사탕은 이씨가 숨 쉬는 걸 힘들어하니까 대전에서 슈퍼를 하는 동생이 박스 채로 갖다 줬단다. 목을 시원하게 해주는 '홀스' 사탕을 먹으면 숨 쉬는 게 편해지는 듯하고 대화도 조금 수월해지는 것 같단다. 이 씨는 2012년 5월부터 광화문에서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대책 촉구 일인시위'에 여러 차례 나왔는데 그때마다 '홀스' 사탕을 가방에 넣고 수시로 꺼내 먹었다.
2012년 말 이 씨는 아산병원에서 딸아이의 폐에도 섬유화 흔적이 있다는 진단 결과를 들었다. 필자는 그의 집을 방문 조사할 때, 같은 방에서 식구 3명이 함께 잤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의 폐 상태도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었다. 이후 이 씨는 자신의 정기 검사를 위해 병원에 갈 때 아이를 데리고 가 폐 CT검사를 했다.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아이에게도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가 확인됐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박 모 씨는 2002년 6월, 5살짜리 딸을 잃었다. 그해 3월부터 아이가 숨 쉬는 걸 힘들어했다. 아이를 보내고 난 뒤 세브란스병원에서 뗀 사망 진단서에는 사망 원인이 3가지로 나와 있었다. 직접 사인은 심폐정지, 중간선행사인은 급성호흡곤란증후군, 전신캔디다증, 폐혈증, 폐기흉, 폐종격동 등 5가지였다. 그리고 선행사인으로 '폐색성 세기관지 간질성 폐렴'이라고 적혔다.
병의 원인을 모르는 병원은 아이에게 나타난 주요한 증상을 모두 사망 원인으로 적은 것이다. '발병부터 사망까지의 기간'으로 '60'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단 2달 만에 아이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갔다. 처참한 상황을 이겨내기 힘들었던 박 씨 부부는 친정집으로 들어가 2년을 살았다. 그리고 2004년부터 독립했는데 2006년 초에 박 씨 본인에게서 호흡 곤란과 심장이 답답한 증세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해 9월 3살짜리 둘째가 호흡 곤란으로 입원했다. 모세기관지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박 씨네는 친정에 들어갔던 기간을 빼면 늘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집 근처의 대형 마트인 이마트에서 '옥시싹싹', '애경 가습기 메이트',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 등 마트에 갈 때마다 눈에 띄는 제품을 샀다. 2012년 초 피해사례 조사차 박 씨 집을 찾은 필자에게 박 씨는 두개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꺼내 보였다. 하나는 이마트의 자체상품은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이고 다른 하나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었다. 2000년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박 씨는 환경보건시민센터로 접수된 피해 사례 중 가장 일찍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고 사망도 매우 일찍 발생한 경우다.
사람죽인 대형마트와 재벌기업, 사과는 언제?
앞서 소개한 두 피해 사례자들이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와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 두 제품은 모두 대형 할인점인 롯데마트와 이마트의 자체제품 즉 'PB상품'이다. PB(Private Brand)상품이란 자사등록 브랜드란 뜻이다.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마켓 등의 대형 소매 업체가 각 매장의 특성과 고객의 성향을 고려하여 독자적으로 만든 자체 브랜드다. 관련 연구 논문들은 PB상품이 19세기 말 영국 에서 시작되었고 20세기 초 미국에서 체인점들이 대규모화하면서 유통 업체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성화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국내 대형 마트에 PB상품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6년 이마트의 이플러스 우유였다고 한다. 대형마트에서 PB상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2013년도 국내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PB샹품의 비율은 생식품 56%, 가공식품 17%, 비식품 33%라고 조사되어 있다.
2013년 4월 9일에 발표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 사례의 제품별 정밀분석' 보고서는 장하나 의원실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받은 357건의 피해신고자들이 사용한 제품을,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이 분석한 것이다. 보고서를 보면, 피해 신고자가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전체 20종류 중 12종류이고 그중 사망자가 사용한 제품은 7종류다.
앞서 소개한 피해 사례의 경우처럼 서로 다른 2개 이상의 제품을 사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 전체의 23.5%인 78사례가 그랬다. 제품별로 사용자를 분류하니 모두 423사례였다. 환자와 사망을 포함한 전체 피해자의 사용 제품별 순위를 보면, 1위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 236건(55.8%, 사망 78건)을 차지했다. 2위는 롯데마트의 PB상품 와이즐렉으로 전체의 46건(10.9%, 사망15건), 3위는 애경 가습기메이트로 전체의 43건( 10.2%, 사망5건), 4위는 인터넷으로만 판매된 세퓨로 전체의 30건( 7.1%, 사망 14건), 5위는 홈플러스의 PB상품 홈플러스로 전체의 29건( 6.9%, 사망3건)이었다.
그 뒤로 알약제품으로 약국에서 판매된 엔위드(10건), 이마트 PB상품 이플러스(9건, 사망3건), 코스트코의 PB상품 '가습기 클린업'으로 (9건), 아토세이프 (4건), GS리테일의 PB상품 '함박웃음'(3건), 다이소의 PB상품 '산도깨비'(3건), 하이지어(1건) 순이었다.
이 보고서는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회사들을 '대형 할인점 PB상품', '외국인 기업 및 수입 제품' 그리고 '재벌 기업 관련 상품' 등으로 분류했다. 환자와 사망자를 발생시킨 12개 가습기 살균제 제품 중에서 대형 마트의 PB상품은 롯데마트의 외이즐렉, 홈플러스의 홈플러스, 이마트의 이플러스, 코스트코의 가습기클린업 그리고 GS리테일의 함박웃음 등 모두 5종류다. 이들 제품을 사용하다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된 건수는 모두 96건으로 전체의 22.7%다. 이중 사망은 24건으로 전체 사망의 18.3%다.
'외국인 기업 또는 수입 제품'은 모두 5개로, 피해 신고 사례가 288건으로 전체의 68.1%이고 이중 사망 94건으로 전체의 71.8%를 차지했다. 영국계 종합 생활 용품 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최근 RB코리아로 이름을 바꿨다)의 옥시싹싹, 미국계 코스트코의 가습기 클린업, 일본계 다이소의 산도깨비 등 3개 제품이었다. 수입 제품으로는 덴마크산 세퓨와 아일랜드산 엔위드 2개 제품이 해당된다.
이 보고서는 '재벌 기업 관련 상품'이 5개이며, 피해 신고 사례가 130건으로 전체의 30.7%이고 이중 사망 37건으로 전체의 28.2%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제품과 제조 회사는 SK케미칼의 SK그룹, 롯데마트의 PB상품을 제조한 롯데그룹, 홈플러스와 관련있는 삼성그룹, 이마트의 신세계그룹, GS리테일의 GS그룹 5개 재벌그룹의 관련 대기업이다. 그런데 최근 SK그룹의 SK케미칼이 수입 제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내 제품의 원료를 공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재벌 기업 관련 가습기 살균제 피해 상품'은 모두 10개이고 피해도 전체의 90%가 넘는다.
이처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들이 사용한 제품들은 중소기업 제품을 제외한 10개 제품들은 국내 재벌그룹이 만든 원료로 제조된 것이다. 5개 재벌그룹의 대형할인마트나 5개 외국인기업 및 수입제품들이었다. 중소기업제품 2개를 사용한 피해자는 환자만 5명이고 사망자는 없었다.
최근 여수에서 발생한 GS칼텍스의 기름 유출 사고를 둘러싸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가 다시 사회적 의제로 거론되고 있다. 기름 유출량을 축소해 발표하면서 '자신이 1차 피해자'라고 우겼다. 자신이 주문한 기름을 싣고 들어오던 배가 자신들의 원유 기지 시설과 충돌하여 그 곳에 들었던 기름이 흘러서 사고가 난 사건인데도 그렇게 주장했다. 웃기게도 해양수산부 장관이 기업의 주장을 국회에서 그대로 말했다가 결국 해임되고 말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문제와 관련지어 말하는 것조차 헛되다.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사용하던 남녀노소의 소비자 수백명이 죽고 다쳤는데 어느 기업 하나 자신들의 제품이 잘못됐다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적반하장이라고 '화학 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여 다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화평법(화학물질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을 '기업 죽이기'라며 반발하며 시행령과 시행 규칙을 약화하는 데 물타기 했다.
'싸고 믿을 수 있다'는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하여 만든 국내 재벌그룹들의 대형마트 자체브랜드 PB 가습기 살균제 상품은 하나같이 살인 제품이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이 살인 기업들이 하나같이 피해 책임과 대책을 나 몰라라 하며 법정 뒤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의 입을 통해 이 살인 기업들은 '우리 제품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잘못이 없는데 시장에서 퇴출당하여 장사를 못 하게 되었으니 '사실상 내가 1차 피해자'라고 우기고 있는 꼴이다.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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