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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과한 정몽준 진심일까

[기고] 2월 14일 분신 자결한 박일수 열사 10주기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 지난 12일 “2600여 명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24명이 목숨을 잃은 쌍용차 사태에서 근로자와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새누리당은 대선 전에는 쌍용차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이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국정조사 실시와 회계조작을 한 회계법인 및 금감원에 대한 처벌까지 요구했다.

1조 7000억 원의 재산을 가진 국내 최상위급 부자인 그가 서울시장 새누리당 후보 경선을 앞두고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걱정하는 선거용 발언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정 의원 측은 지난해부터 당 회의에서 여러 번 했던 말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이 선거용이 아니라 진심이라면 쌍용차처럼 그가 최대 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에서 ‘일자리를 잃고 목숨을 잃은 근로자와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 19대 국회가 개원하던 재작년 5월 30일, 새누리당은 불법 파견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구제하는 기존 법을 무력화하는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사내하도급법)'을 '민생법안 1호'로 내놓기로 했다. 노동계는 새누리당이 정몽구 현대차 회장 보호법을 내놓았다며 즉각 반발했다.

정몽준 일자리 잃고 목숨 잃은 근로자에게 사과한다고?

언제부터인가 연인들의 사랑의 날로 여겨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경기도 교육청은 이날을 안중근 열사의 사형 선고일로 기억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 날은 달콤한 초콜릿의 기억이 아니라 쓰디쓴 죽음을 기억하는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1994년 2월 14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는 선박 건조장에서 자신의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분신 자결했다. 그는 “하청 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태어나면서 귀족 노동자, 하청 노동자로 태어나지 않았다. 내 몸을 불태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열악한 환경 속에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겼다.

1998년 구제금융사태를 이유로 정리해고와 파견법이 도입되고, 조선소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제조업 생산 현장이 정규직 노동자 대신 사내하청 노동자를 채워지기 시작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조선소에서는 차츰 정규직 숫자보다 비정규직 숫자가 많아졌다.

2000년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업체에서 일하다 2002년 3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인터기업에 들어가 일하던 박일수 열사는 ‘한마음회’라는 모임에서 활동을 하며, 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동료 직원들의 연월차와 퇴직금 등 임금 체불을 맡아 진정서를 제출하는 활동을 해왔다.

그러자 현대중공업은 2003년 12월 해고통지서도 보내지 않은 상태에서 박일수 열사의 모든 전산 자료를 말소하고 강제 해고를 시켰다. 현장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박일수 열사는 2004년 2월 14일 새벽 분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어용 노조였던 당시 현대중공업노조 집행부는 박일수 열사의 의로운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노조 간부들이 장례식장을 때려 부수는 사건까지 벌어져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으로부터 제명당하기에 이르렀다.

박일수 열사의 의로운 죽음 이후 전국 곳곳에서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현대하이스코, 기륭전자, 지엠대우, 기아자동차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사내하청 노동 운동이 무기력해진 정규직 노조 운동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월 14일만 되면 달콤한 초콜릿 상자를 든 연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때 쓰라린 박일수 열사의 추모제를 준비해왔고, 이제는 10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2월 14일 달콤한 연인의 날이 아닌 쓰라린 추모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2013 조선자료집’에 따르면 정몽준 의원이 실제 주인으로 있는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 중에서 사내하청 비율이 66%를 넘는다. 배와 해양플랜트 노동자의 3분의 2가 정규직이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라는 것이다.

배를 만드는 노동자의 69%가 사내하청 노동자이고, 석유와 가스를 추출해내는 차세대 사업이라고 불리는 해양플랜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무려 83%가 사내하청 노동자다. 결국 현대중공업이 만드는 일자리는 모두 비정규직 사내하청인 것이다.

이 자료집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조선 부문 사내하청 노동자는 1만 762명, 해양 부문은 5990명이었다. 2년 사이에 조선과 해양 분야에서 8500명의 노동자가 늘어났는데 모두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구분

사무직

기술직

기능직

총계

기능직중

사내하청비율

직영

사내하청

조선

751

3013

7112

1만5960

2만3072

2만6836

69.17%

해양

385

1325

1908

9282

1만1190

1만2900

82.94%

기타

1750

2901

6147

4274

1만421

1만5072

41.01%

2886

7239

1만5167

2만9516

4만4683

5만4808

66.05%

▲ 현대중공업 2012년 인력 현황. ('2013 조선자료집'(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자료 재분석)


구분

2010년

2012년

증가

조선

1만762

1만5960

5198

해양

5990

9282

3292

1만6752

2만5242

8490

▲ 현대중공업 2010~2012년 사내하청 노동자 증가 현황. (출처 위와 같음)


현대중공업 생산 현장이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워지면서 하청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이 급증했다. 지난해 노동부 울산지청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고발한 산재 은폐 의혹과 관련, 접수된 40건을 조사한 결과 산재 은폐로 확인된 것이 19건에 이르렀다.


현대중공업의 재해율은 0.66으로 조선업 평균 재해율인 0.69보다 다소 낮았지만 하청업체의 재해율을 감안한 환산재해율은 0.95로 1000대 건설업체 환산재해율 0.43의 2배 이상이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해에만 3명의 노동자가 추락, 협착, 작업차량에 의한 교통사고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재산의 97%가 현대중공업 주식이고, 주식 배당금으로 올해에만 154억 원을 받아가는 정몽준 의원이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에게 사과했던 것처럼 일자리를 잃고 목숨을 잃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와 가족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을까?


정몽준이 목숨 잃은 현대중공업 비정규직에게 사과할 수 없을까?


“먼저 박일수 열사의 영전에 현중 노조 위원장의 이름으로 무릎 꿇고 사죄드립니다. 박일수 열사가 2004년 2월에 분신 자결한 이후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열사가 남긴 숭고한 외침을 왜곡했습니다. 열사가 자기 몸을 불태워 항거했던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기는커녕 깎아내리기 급급했습니다.”


“열사의 정신을 왜곡한 행위는 그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입니다. 박일수 열사가 몸을 살라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났습니다. 늦었지만 현대중공업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앞으로는 열사 정신을 계승하여 민주노조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 현대중공업 노조 내부 소식지.
현대중공업 노조 정병모 위원장이 지난 12일 발표한 반성문이다. 지난해 10월 어용노조 12년 사슬을 끊고 당선된 민주노조 위원장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처우 개선을 위해 하청지회와 머리를 맞대고 풀어갈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2014년 2월 14일 낮 12시 30분, 박일수 열사가 돌아가신 지 10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함께 분신 장소인 4·5 도크문에서 추모제를 지낸다. 이어 오후 6시부터는 울산의 노동자들,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박일수 열사 추모 및 정신계승 결의대회’를 열고 그의 뜻을 기린다.


박일수 열사는 돌아가시기 전 2003년 7월 22일 공장에 배포한 선전물에서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에 “직영 노동자의 잔치에 하청 노동자의 죽음과 피와 땀이 얼마나 희생되었는가를 알고 있는가?”라며 “노동자는 하나라는 진실을 외면한 채 타락되어 가고 있는 현중 노동조합을 보면서 하청 노동자의 박탈감, 울분, 분노를 알아야 할 것”이라고 썼다.


박일수 열사가 대기업 정규직 노조 위원장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무릎 꿇고 보낸 통렬한 반성문을 보며 이제는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까?


* 이 글은 <레디앙>, <오마이뉴스>, <참세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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