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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기 중독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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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기 중독자'가 아닙니다!"

[초록發光] '에너지 시민'을 찾자!

난데없는 이야기일는지 모르겠지만, 대개 전문가들이란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니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적어도 에너지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은 이런 평가에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들은 대략 공학이나 경제학과 같은 분야에서 훈련을 받은 탓에, 이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겠지만, 에너지 정책을 논하면서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고 고려하는데 익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원, 기술, 시장으로만 에너지 정책을 다루는 경향이 강하다.

'에너지의 가격 탄력성'이란 개념이 있다. 주로 에너지 가격의 변동에 따른 소비량의 변화를 경험적으로 산출해낸 계수를 의미하는데, 쉽게 말하면 전기 가격을 인상하면 사람들이 전기 소비를 얼마나 줄이는가 하는 학술적, 정책적인 질문에 답을 주기 위한 개념이다. 즉, 전기가격을 요만큼 올리면 전기 소비가 얼마나 줄어들까에 대해서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 개념의 전제는 사람들은(혹은 기업과 같은 조직들은) 합리적인 계산자로서 가격 상승에 따라서 소비 행위를 조정할 것이라는 가정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전기의 가격 탄력성은 생각보다 높지 않고 (즉, 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량 축소가 크지 않고) 사회마다 상당히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학을 배경으로 한 전문가들은 낮은 가격 탄력성을 대체로 전기의 대체재 유무, 이와 관련된 정보의 제공과 학습 시간 등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이런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회학의 시각에서 보면 만족스럽지는 않다. 어쨌든 낮은 탄력성(그리고 소득 계층에 따른 역진적인 속성)에도 불구하고, 전기 가격의 인상은 급증하는 소비를 잡기 위한 주요한 정책적 수단으로 사고되고 있다.

이는 정부 측이나 시민 사회 진영의 전문가들에게 모두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정부 측은 핵발전소 확충 등으로 공급 여력이 증가하면 전기 수요 증가가 가능하도록 가격 인상을 중단(혹은 재인하)할 수 있다는 생각이고 시민 사회는 더 이상 전기 수요를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그런 합의는 일시적인 것이다.

가격 탄력성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주류적인 에너지 정책이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이야기하려는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계산자로서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인데, 사실 이런 관점은 인간을 탐욕스러운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언제든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다.

"감히 전기 가격을 올려서 국민들의 원성을 살 일"만을 걱정하는 정부 측 전문가의 고민이 그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국민"은 무엇보다 먼저 값싼 전기료로 배를 불리고 있는 대기업들일게다. 그러나 서울 등의 대도시 주민들도 포함될 거다. 이들을 고리, 삼척, 영덕, 밀양, 청도, 여수 등에서 일어나는 핵 발전과 송전탑에 얽힌 '에너지 부정의(不正義)'에 눈감은 탐욕스런 '전기 중독자'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을 합리적 계산자, 나아가 탐욕스런 전기 중독자로서 바라보는 관점만을 완강히 고수한다면, 사회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담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면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말이 어느 시인의 멋진 시구가 아니라 누군가의 데모 팻말에 조악하게 쓰인 구호라는 사실에 놀랄 것이고, "밀양의 눈물로 만든 전기를 쓸 수 없다"는 대도시 주민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기회를 줘봐라, 당장이라도 핵 발전 전기를 끊어 버릴 이들이 많다.

당연히 보상금도 필요 없고 그냥 예전처럼 살게 해달라는 밀양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절규도, 제 돈 내고 밀양 희망 버스를 타고 데모하러 간다는 것도, 아파트 베란다에 미니 태양광 발전기를 달아서 조금이라도 에너지 자립을 하겠다는 신혼부부의 노력도, 서울 동작구의 성대골처럼 동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절전소와 에너지 슈퍼를 만들고, 은평구의 주민들처럼 협동조합을 만들어 에너지를 생산하겠다고 나선 일도 이해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들, '에너지 시민'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도, 이를 알아보는 전문가들이 많지는 않는 듯하다. 지금까지 보던 방식대로 세상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과 활동가들 스스로 자신의 새로운 존재를 깨닫고 있다.

'에너지 시민'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앞서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가격에 의해 움직이거나 타인의 고통에 눈감는 냉혹한 소비자로서 사람들을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밀양의 눈물로 만든 전기를 쓸 수 없"는 이들은 더 이상 그런 소비자가 아니다. 플러그에 전기 코드를 꼽고 전기 요금만 납부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 전기가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전달되며 그 과정에서 누구의 희생이 따른다는 점을 자각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이들이다. 이를 요즘 유행하는 '윤리적 소비자'로 묘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비자와 다른 정체성의 차원이 존재한다. 소비를 재조직하면서 불의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공간에서 이를 토론하고 개입하는 '시민'의 영역이 존재한다. 그들은 "탈핵 에너지 전환"이라는 정치적 목표에 동감할 것이며, 그런 정치인과 정당을 위해 투표할 준비가 되어 있고 심지어 그 스스로 그런 정치 세력의 일원이 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단지 정치인들을 갈아치우는 것에만 갇혀 있지 않다.

'에너지 시민'은 자신들을 끊임없이 중독된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거대한 중앙 집중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해체하고, 자신이 스스로 통제하는 에너지 시스템을 직접 만들고 운영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지금 전국 각지에서 만들어지고 준비 중인, 17개 이상의 에너지 협동조합이 그 조그만 새싹 중에 하나일 것이다. 에너지 시민은 스스로 '에너지 생산자'이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그 길은 이미 독일과 덴마크 그리고 영국 등에서 외국의 동료, '에너지 시민'들이 걸어간 길이다.

우리는 '탈핵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 정부나 한국전력 등과 맞서 싸우는 중이지만, 우리가 전문가들의 합리성 기준에 부합하기 때문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출현하는 '에너지 시민'의 합리성이 전문가의 제한된 합리성을 넘어섬으로써 승리하게 될 것이다. '에너지 시민'을 찾고 조직하는 것만이 우리의 승리 비결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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