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동북아를 배회하는 전쟁의 유령, 한국의 앞날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동북아를 배회하는 전쟁의 유령, 한국의 앞날은?

[정욱식 칼럼] 한반도, 소극적 평화에 안주할 것인가?

“현재 아시아는 19세기 유럽의 상황과 흡사하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략) 중국과 일본 관계의 긴장 국면이 격화하면서 전쟁이라는 유령이 아시아를 배회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외교의 현인으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가 한 말이다. 중·일 간에 센카쿠 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 釣魚島)을 둘러싼 갈등을 방치할 경우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이다. 뒤이어 새뮤얼 라클리어 태평양 사령관은 “견해 차이가 큰 두 경제, 군사 대국이 서로 대화하지 않고 있고, 갈등 국면을 외교적으로 풀 전망도 불확실하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위험 요인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중국과 일본 간) 어떤 물리적 충돌이나 분쟁이 갑자기 발생할 수 있다. 영국과 독일은 끈끈한 무역 관계를 갖고 있었지만 1914년 전쟁의 시작을 막지 못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자 중국 외교부는 “1차 대전 직전의 영국과 독일 관계까지 갈 것 없이 일본 지도자는 2차 대전 때 일본이 일으킨 군국주의 전쟁을 비롯해 갑오전쟁(청일전쟁), 조선 식민화, 러일전쟁부터 반성하라”고 쏘아붙였다.

▲ 센카쿠 해역 일대에서 대치중인 일본 해안경비선(위)과 중국 해양감시선(아래) ⓒAP=연합뉴스

이처럼 올해가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과 조우하면서 중국과 일본 사이의 설전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고, 국제사회에선 ‘이러다가 정말 두 나라가 한판 붙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긴장은 고조되는데 상호간에 대화는 없고 각자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불확실한 것도 우려를 부채질하고 있다.

동북아 : 열전의 60년, 불안한 평화 60년, 앞날은?

동북아로 시야를 좁히면, 올해는 청일전쟁 발발 1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 120년은 열전의 60년과 불안한 평화 60년으로 역사 구분을 해볼 수 있다. 청일전쟁은 동북아에서 처음으로 해양세력이 대륙세력을 제압하면서 세력 전이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동북아의 전쟁과 평화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동북아는 이러한 청일전쟁을 시작으로 러일전쟁, 일본의 조선 침탈, 만주사변, 태평양 전쟁, 중국의 국공 내전, 한국전쟁 등으로 이어지는 60년간의 전쟁의 시대를 겪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멈춘 이후 60년 동안에는 이렇다 할 전쟁이 없었다. 동북아의 역사와 영토 문제, 한반도의 적대적 분단 상황, 양안 문제 등을 고려할 때, 분명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물론 지난 60년 동안에도 한반도와 양안에서 간헐적인 무력 충돌이 있었고, 전쟁 위기도 있었으며, 평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상태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동북아의 상황은 전쟁이 없었다는 점에서 ‘소극적 평화’는 누려왔지만,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요인은 상존한다는 점에서 ‘적극적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북아는 어떻게 전쟁 없는 60년을 보냈을 수 있었을까? ‘전범’ 일본의 평화헌법 체제는 중요한 축이다. ‘치욕의 세기’를 복수보다는 자강(自强)에 방점을 둔 중국의 평화발전론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강력해진 미국 주도의 동맹 체제 역시 동북아에서 강력한 억제력으로 기능해왔다. 한반도에선 평화도 아니지만 전쟁도 아닌 정전체제도 공고해졌다. 동북아 국가들 사이에서 경제적 상호의존과 민간 교류가 활성화된 것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 억제 요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하나둘씩 흔들리고 있다. 우선 ‘전쟁을 포기’했던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하고 있다. 경제력과 군비지출에서 세계 2위로 급부상한 중국의 대외 정책은 공세적인 성격이 역력해지고 있다. 이러한 중국을 포위․봉쇄하려는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혹은 ‘재균형(rebalnce)' 전략 역시 동북아의 불확실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핵의 위력을 앞세워 정전체제를 무력화하려는 북한과, 평화체제 구축에 소극적으로 돌아선 한미동맹의 흐름이 맞물리면서 한반도 정전체제의 불안정성 역시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한미 양국 내에서는 북한 급변사태 대비론이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동북아 역내 국가들의 역사와 영토 분쟁이 격화되고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그나마 양안 관계가 많이 안정화된 것 정도가 동북아 정세의 긍정적 변화로 뽑을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열전과 세력균형의 최전선에서 평화의 허브로

이처럼 전반적으로 볼 때, 동북아에선 전쟁을 억제해온 요소들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에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은 커지고 있다. 그런데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하나는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에 대해 관련국들 사이에서 인식의 공유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아베 신조의 발언은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아시아 패러독스’와 일맥상통한다. 키신저 및 라클리어의 발언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국도 이러한 역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아태·세계전략연구원은 올해 1월 <2014년 아태지역 발전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그 보고서의 핵심 요지 가운데 하나는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협력에 비해 안보협력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고 안보 갈등이 경제협력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차원에서도 ‘코리아 패러독스’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 있다. 경제협력과 민간교류에 비해 군사안보 문제 해결이 더디었고, 이는 보수 진영이 햇볕정책을 공격하는데 핵심적인 소재였다. 북한 역시 “총포탄이 오가는 속에서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마음 편히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이제는 군사안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자의 속내와 그 해결 방안은 다를 수 있지만, 동북아 주요 국가들이 경제 협력과 안보 불안 사이의 불안한 동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공유는 문제 해결에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또 하나는 한반도야말로 60년간 동북아 전쟁의 격전지였었고 60년간 불안한 평화를 유지해왔던 세력균형체제의 최전선이라는 점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동북아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의 패권경쟁 구도에서 한반도가 ‘가교’와 ‘완충지대’를 동전의 앞뒤 관계처럼 품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연유한다. 동시에 동북아가 불안한 평화를 넘어 공고한 평화로 가기 위해서는 한반도 문제 해결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확인시켜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시아 패러독스’가 격화되고 있는 오늘날, 문제 해결의 중요한 방향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혹은 지리군사적 딜레마를 지리경제적 기회로 전환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한반도가 품고 있는 지경학적 기회는 핵문제와 정전체제와 같은 군사안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유실되기 십상이다. 60년간 전쟁이 없었다고 해서 정전체제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공고한 평화체제로의 전환에 대해 능동적인 태도를 가져야 할 까닭이다.

이를 통해 동북아 안보 갈등의 핵심 요인을 해소하고 평화와 번영의 장에 주변국들을 초대할 수 있을 때,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동북아와 세계를 위해 창출할 수 있는 최고의 공공재(public goods)에 해당된다.

* 이 글은 <내일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