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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 가능성' 이유로 2500만 생명 학살, 옳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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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 가능성' 이유로 2500만 생명 학살, 옳은가요?

[주간 프레시안 뷰]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의 대량 학살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설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그러나 설 연휴 동안 안녕하지 못한 생명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땅에 살고 있는 닭과 오리 같은 동물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설 연휴에 반가운 친지와 친구들을 만나고 음식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이 동물들은 생명이 끊어져 차가운 땅바닥 속에 묻혀야 했습니다. 바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Avian Influenza) 차단을 명분으로 이뤄지고 있는 '예방적 살처분'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이 전염병에 걸렸는데, 다른 사람에게 옮길 염려가 있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 허용될 수 있을까요? 게다가 한 마을에서 어떤 사람이 전염병에 걸렸다고 해서 그 마을 사람 전부를 죽이고, 반경 3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마을 사람들까지 모조리 죽이는 일이 용납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인간에게는 그런 일이 용납될 수 없다고 누구나 얘기할 것입니다. 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치료해야지, 사람을 죽여서는 되겠느냐고 얘기할 것입니다. 더구나 전염병에 걸리지도 않은 사람들을 '병을 옮길 수 있다'는 이유로 죽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얘기할 것입니다.

그런데 닭과 오리 같은 동물에 대해서는 이런 일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정부의 일방적인 명령에 의해 이런 일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 지난 1일 충북 진천군에서 두 번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감염 농가가 확인됐다. 2일 오후 진천군 이월면 한 오리 농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을 위해 오리를 몰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17일 전북 고창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병한 이후 농림축산식품부와 지자체들은 병이 발생한 농가로부터 반경 500미터 또는 3킬로미터 지역 내의 모든 닭과 오리들을 예방 차원에서 죽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67만 마리 이상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중 실제로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개체 수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병에 걸렸는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예방 차원에서 죽인다는 것입니다.

과거부터 따져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동물 보호 단체들에 따르면, 국내에서 2003년 AI가 처음 발생한 이후 2003년, 2006년, 2008년, 2010년까지 약 10년 동안 죽임을 당한 가금류는 2500만 마리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AI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가금류는 121개체에 불과하다고 하니,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비과학적인 대량 학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 [단독] 8년간 애꿎은 닭·오리 2500만마리 살처분)

동물도 생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식의 대량 살상은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동물 보호 단체들의 주장은 이런 상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만약 전염병이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반경 3킬로미터 이내에서 무차별적인 살처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발병 농가에 대해서만 살처분을 하거나, 품종과 농장의 입지 조건, 사육 환경 등에 따라 살처분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뤄지는 살처분은 가축전염병예방법에 근거해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법률의 조항들은 너무 허술합니다. 정부에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가축전염병예방법상 살처분 권한은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기초지방자치단체장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과잉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지자체나 정부는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에 대한 문책을 당하거나 비판을 받을까 봐 무조건적인 살처분 명령을 내리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관료주의가 팽배해 있는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합니다. 그래서 3킬로미터 이내에서는 무차별적으로 죽인다는 '예방적 살처분'이 당연한 것처럼 행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대량의 죽임은 많은 문제를 낳습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의 생명이 희생됨은 물론 침출수 등 환경 오염 문제를 낳고, 정부의 예산이 과도하게 사용됩니다. 지금까지 이뤄진 '예방적 살처분' 보상금 등에 소요될 예산만 하더라도 600억 원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살처분 보상금은 중앙정부가 80%, 지자체가 20%를 부담하게 되어 있습니다. 2011년 이전까지는 살처분 보상금은 전액 국비로 보상했지만, 정부가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령을 개정해 살처분 보상금의 20%를 지자체가 부담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에 갈등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충북 진천군의 경우에는 중앙 정부의 살처분 명령에 지방자치단체가 불복할 움직임도 있다고 합니다.

(☞ 농림부·진천군 닭 40만 마리 예방적 살처분 '이견')

현장에 투입되는 공무원들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미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잘못된 정부의 정책 때문에 죄 없는 공무원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 "악몽 시달린다" AI 살처분 '트라우마')

그래서 지금은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 정책의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구제역이나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장식 축산'을 동물 복지 축산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이번 조류 인플루엔자를 철새 탓으로 돌렸지만, 동물 보호 단체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도 홈페이지에서 야생 조류가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의 주된 원인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FAO는 "고병원성 AI는 야생 조류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으며 야생 조류들이 공중을 날아다니며 ​​AI를 전파할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는 입장입니다. 관련 기사를 <미디어오늘>에서 썼습니다. 아래에 링크를 붙입니다.

(☞ UN식량농업기구 "고병원성 AI, 철새 아닌 가금류가 원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이렇게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좁은 구역에서 밀집 사육이 이뤄지는 '공장식 축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염병에 취약하고, 전염병이 확산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조류 인플루엔자나 구제역이 발병할 때마다 대량 학살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동물 보호 시민단체 '카라'와 녹색당은 공동으로 공장식 축산의 문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국회에 동물보호법 전면 개정안을 제안했습니다. 개정안에는 공장식 축산을 동물 복지 축산으로 전환해 나가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어 있지만, 제대로 심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이번 조류 인플루엔자를 계기로 근본적인 대책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동물도 생명이고,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뤄지는 것은 '살처분'이라는 행정 명령이 아니라, 생명을 대량으로 죽이는 '학살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책상에 앉아서 학살 명령을 내리는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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