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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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제맛은 역시 선거 경쟁인가 봅니다. 선거 당일의 승패보다는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여러 정치 세력들의 경쟁이 특히 별미입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선거 경쟁이 한국 정치에도 나름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그리고 안철수 신당(새정치신당) 간의 경쟁이 그 열기를 더 해가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때 보여주었던 것만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시 진화를 시작했습니다. 중진급 정치인들의 출마 가능성을 높였고, 사회적 시장경제와 적극적 불평등 해소, 여야 대연정 정신, 지방정부 혁신 등의 전략적 담론을 내놓았습니다. 민주당은 안철수 신당 바람에 대처할 요량으로, 정치 혁신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당내 논란을 추슬러 국회의원 특권 폐지와 일하는 국회로 개혁 등을 골자로 한 '김한길 혁신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경쟁이 갖는 힘은 놀랍습니다. 정당들이 스스로 혁신하고 진화하게끔 만듭니다. 혁신과 진화 경쟁에서 뒤처지는 세력은 패배합니다. 단지 일시적인 선거 패배만이 아닙니다. 영국의 자유당과 일본의 사회당처럼 소멸하기도 합니다. 혁신하고 진화할 수 있는 능력을 정당 이론에서는 정당의 '환경 적응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 능력을 보유하고 발휘한 정당들만이 소멸하지 않고 생존합니다. 그리고 생존에 성공한 정당들만이 정권을 차지해 자신들의 정책을 펼칠 수 있습니다.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독일의 사민당, 프랑스의 사회당,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등 서구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유서 깊은 정당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이 100여 년이 넘는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창당 시의 이념과 정책을 굳건히 고수하고 고정 지지층에게만 의존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령 독일과 프랑스의 기성 정당들이 68혁명으로 상징되는 사회운동과 그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당들의 도전을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선거를 계기로 평화, 생태, 성 평등과 같은 새로운 의제와 담론과 정책을 점차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정당 쇠퇴 혹은 정당 위기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정당 정치가 지속되고 있는 것을 비롯해 기성 정당들이 아직도 집권당 혹은 제1야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환경 적응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새로운 정치 세력의 도전을 막아내기 위해 정치 자금 제도와 선거 제도 등을 동원해 진입 장벽을 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정당들은 민심은 물론이고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환경의 변화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선거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강력한 독재 정당마저도 그러합니다. 몰락의 길을 걸은 소련과 동구 유럽의 공산당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권력을 쥐고 있는 정당 마음대로 사람도 세상도 영원히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실 권력은 홀로 쥐고 있을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권력은 기본적으로 관계적입니다. 특정 시기 동안에만, 그리고 상대적으로만 타자(경쟁 정당, 국민)에 대해 우위를 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타자의 일정한 동의에 기반해야 합니다. 강제력에 기대어 있을 때조차 그러합니다. 즉, 타자의 이해와 요구에 어떤 식으로든 부응해야 합니다. 강제력을 동원해 타자의 이해와 요구를 억누르는 것만으로는 통치를 할 수 없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하면 일을 그르칩니다. 저항에 부딪히고 결국은 망합니다. 제한적 수준이라 할지라도 주기적인 자유 선거를 통해 복수의 정당들이 경쟁하는 정치 체제에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것이 포악무도했던 전두환 독재 정권에 기대어 패권 정당 노릇을 하던 민주정의당이 결국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인 까닭입니다. 이들은 6.29선언으로 직선제를 받아들인 연후에 전열을 가다듬어 적진의 분열을 조장하고 이용해 합법적 절차를 통해 정권을 다시 획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망하지 않고 정권을 재창출해 살아남기 위해선 먼저 변해야 했던 것입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문제 많은' 정당들이지만, 합종연횡과 이합집산 속에 당명을 바꿔가며 수십 년간 한국 정치를 주도해 오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으니까요.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경제 민주화를 주창한 것도 다 그런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겠지요. 특히 새누리당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명명하고 절치부심하며 집권에 대한 열망을 키웠으니 민심과 시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더욱더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대통령 후보 시절 이명박 대통령은 다른 어떤 후보보다도 진취적이라는 평가를 얻어냈고,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를 가장 잘 수행할 것이라는 평가를 얻어냈습니다. 1997년과 2002년의 연이은 대선 패배 이후 선거 경쟁력에서 꾸준히 진화해왔던 것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다시금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울시장 후보를 구하지 못해 난관에 부닥치는 것 같더니, 최근 정몽준 의원과 김황식 전 총리의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실제 출마할 것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만만치 않은 후보가 될 것입니다.
아직은 박원순 시장이 여론조사 등에서 정·김 두 사람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시정 활동에 대한 최근 평가도 '잘한다'는 평가가 60%를 넘어 높은 편입니다(2014년 1월 23일 <뉴스1>). 하지만 빅매치로 불리는 '정 vs 김' 당내 경선이 흥행을 거두고 새누리당이 당력을 집중해 박 시장에 대한 공격을 본격화하면 어찌 될지 모릅니다. 안철수 신당 후보의 출마도 큰 변수입니다. 안철수 신당 후보가 출마할 경우, 박 시장은 정 의원(40.3% : 32.4%)과 김 전 총리(41.3% : 30.1%)에게 각각 7.9%P, 11.2%P 앞설 따름입니다(2014년 1월 29일 <한겨레>). 이때 안철수 신당 후보로 꼽히고 있는 장하성 교수는 정 의원 출마 시에는 15.1%, 김 전 총리 출마 시에는 15.3%를 얻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를 두고 <한겨레>는 박 시장이 새누리당 후보를 "멀찍이 따돌렸다"고 했습니다. 이는 과장된 표현입니다. 현직 프리미엄과 정·김·장 세 사람 모두 출마 의사를 밝히지도 않은 상태임을 고려할 때 결코 큰 격차가 아닙니다.
후보 단일화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천명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신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낼 가능성은 실제로 높지 않으리라고 봅니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지방선거 이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 재편이 이루어질 때를 안철수 신당의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박 시장과 지금 각을 세우는 것은 별로 이롭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야권 연대 혹은 후보 단일화에 대해 비판적 여론이 높다 해도,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에는 박 시장 재선이 맞다고 여기는 야권 지지자가 많은 만큼 새정치신당(가칭)이 후보를 내기에는 그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따라서 박 시장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미 한국사회여론연구소와 <시사인>이 1월 18일~21일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원순 vs 정몽준' 1:1 구도에서조차 정 의원은 43.3%, 박 시장은 43.0%를 얻어 초박빙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2014년 2월 3일자 <시사인>). 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다른 조사 결과와 사뭇 다르게 나왔지만, 투표율과 투표자의 이념, 세대 성향별 비중, 캠페인 전략과 효과 여부에 따라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결과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 정치에서 4개월은 꽤나 긴 시간입니다. 후발 주자가 선발 주자를 따라잡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또 박근혜 대통령에 가려 크게 조명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황우여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보면 새누리당 진화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불통, 독주 등 박근혜 정권 1년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의식한 듯 소통과 협치(協治)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경제 민주화에 이어 또다시 진보와 야권의 의제-담론-정책이었던 사회적 시장경제와 적극적 불평등 해소를 전면에 내세운 것입니다. 후퇴 혹은 폐기 논란이 있는 경제 민주화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다시 천명하였습니다. 그것이 실제 이루어질 것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또다시 속도 조절론 등을 내세우며 완급 조절에 들어가거나 내용상으로 변형을 하겠지요.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경제 민주화 관련 입법처럼 제한적인 수준에서나마 하기는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2013년 12월 31일 현재, 박근혜 정권이 지난 대선 시기 발표한 13개 주요 경제 민주화 공약(법안 기준) 가운데, 입법화가 완료된 법안이 5개인 것처럼 말입니다. 꼭 입법화 등과 같은 제도화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선 레토릭(수사)의 수준에서 새누리당이 민심과 사회 현실에 여전히 눈을 맞추고 있다며 박근혜 정권을 위해 선도적 방어 역할을 수행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방정부 혁신을 제기했다는 것입니다.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서울, 인천의 수도권과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충남과 충북의 광역단체장이 민주당 소속임을 고려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김한길 혁신안'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야성 회복과 정권 심판론을 주창하며 박 정권과 각을 세워야 한다는 민주당 일각의 '강경파'들 입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 혁신을 우선순위에 놓고 그 방법으로 제도 개혁에 초점을 맞춘 것이 과연 효과적일 것인가에 대해 다소 회의적입니다. 안철수 신당의 도전을 견제하고 이겨내는 효과에서도 제한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별성 희석화를 넘어서서 수권 가능성을 담지한 제1야당으로서 위상 '회복'에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새 정치'는, 맞고 옳다고 생각되는 민주주의 원리와 '제도를 도입하는 정치'가 아니라 틀리고 그르다고 여겨지는 이들(반공 보수주의자?)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삶을 지켜주는 정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한적이고 변형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대선 득표율에 해당하는 과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의 진화가 도드라지는 이유입니다. '중앙 정부 심판론-박근혜 정부 심판론'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정치 전문가들의 전망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김한길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민생 살리기와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강조했고, 을을 위한 정치의 성과를 내세우면서 향후 지속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을을 위한 정치'를 더 위로, 최상위 과제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새누리당의 진화(進化)를 진화(鎭火)하기 위해서라도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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