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핵발전소를 둘러싼 불안감이 부쩍 커졌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핵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핵발전소가 인류가 제정신을 잃고 있었던 제2차 세계 대전의 와중에 등장한 원자폭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런 자각은 늦은 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서 핵발전소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목소리가 커지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바로 핵융합 에너지입니다. 핵융합 에너지는 우라늄 원자핵이 분열할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핵발전소와는 달리, 이름 그대로 수소 원자핵이 결합해서 헬륨 원자핵으로 변할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합니다.
사실 핵융합 에너지에 대한 과학자의 열정은 비행기를 개발한 라이트 형제의 그것과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면서 인간을 태우고 나는 탈 것(비행기)을 꿈꿨던 라이트 형제처럼, 과학자들은 태양을 보면서 핵융합 에너지의 꿈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태양과 같은 별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방식이 바로 핵융합 에너지거든요.
물론 핵발전소와 마찬가지로 핵융합 에너지도 그 기원은 냉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냉전 시기 원자폭탄에 이어서 등장한 수소폭탄이 바로 핵융합 에너지를 이용한 것이니까요. 수소폭탄은 원자폭탄을 1차로 터뜨려 얻은 고에너지를 이용해서 수소 원자핵과 수소 원자핵을 결합할 때 나오는 에너지를 무기로 이용한 것이죠.
이런 수소폭탄을 보면서, 러시아의 안드레이 사하로프(1921~1989년) 같은 과학자들은 핵융합 에너지를 무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용할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1950년대부터 핵융합 발전이 등장한 것이죠.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핵융합 발전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요? 잊을 만하면 언론에 등장하는 '인공 태양'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핵융합 반응이 가능하려면 수천만 도, 아니 수억 도까지 온도를 올려야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또 그런 고온의 핵융합 반응은 도대체 어디서 이뤄질까요? 그런 고온을 견딜 수 있는 물질이라도 개발된 것일까요? 수소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얻는 핵융합로는 정말로 꿈의 에너지일까요?
우리가 핵융합 에너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핵융합 연구에 박차를 가해 왔죠. 박근혜 정부도 매해 1400억 원대, 2035년까지 총4조7000억 원을 핵융합 연구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핵융합 에너지의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필수 교양입니다.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위한 비전"을 찾는 <크로스로드>와 함께하는 '과학 수다'는 이번에 핵융합 에너지의 이모저모를 살핍니다.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토카막 플라즈마를 연구하는 장호건 박사가 기꺼이 가이드로 나섰습니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부산대학교), 천문학자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 강양구 기자가 독자를 대신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태양 에너지의 비밀
강양구 : 오늘은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 에너지를 놓고서 수다를 떨어 보겠습니다. 우선 핵융합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는 게 순서겠네요. 사실 핵융합 에너지를 놓고서 기자들이 가장 즐겨 쓰는 비유는 '인공 태양'입니다. 2007년에 한 신문에 나온 기사 제목이 아직도 생생한데, 제목이 이랬죠. "1억 도 인공 태양 핵융합로 세계 6번째 뜬다." (웃음)
장호건 : 일단 제가 말문을 열죠. 핵융합의 원리는 물리학에서 제일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등식 E=mc2에서 나왔습니다. 그 얘기를 더 하기 전에 시야를 아주 넓혀서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을 되돌아보죠. 빅뱅 직후 우주에는 원자 번호 1번인 수소(H)밖에 없었어요. 여기서 곧바로 질문이 이어지죠. '그럼, 수소 이외의 다른 원소는 어떻게 생겼나?'
여기서 과학자는 수소 원자들이 결합해서 헬륨(He)과 같은 새로운 원소가 만들어질 가능성을 검토하게 됩니다. 이런 가설은 나중에 사실로 밝혀졌죠. 그러니까, 간단히 설명하면 양성자 1개를 가진 수소의 원자핵 2개가 결합해서 양성자 2개를 가진 헬륨의 원자핵이 되는 거예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원자 번호 2번인 헬륨이 탄생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소가 결합해서 헬륨이 되는 과정에서 질량이 약간 작아져요. 바로 이 질량(m) 차이에 빛의 속도(c)의 제곱을 곱한 만큼이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나오죠(E=mc2). 이 에너지가 빅뱅 이래로 태양을 비롯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별들이 빛을 낼 수 있는 원천이고요.
강양구 : 그럼, 지금도 태양에서는 수소들이 계속해서 핵융합을 통해서 헬륨을 만들어내고 있겠군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나오는 거고요.
장호건 : 그렇죠. 그런데 태양 전체가 다 그런 핵융합 반응을 하는 건 아닙니다. 태양 중심부의 핵에서만 그런 핵융합 반응이 진행됩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 반응 속도가 굉장히 느립니다.
이명현 : 태양의 핵융합 반응은 효율이 굉장히 낮아요. 사람의 몸속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반응의 3분의 1에서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굉장히 천천히 일어나는 반응이에요.
장호건 : 다행스러운 일이죠. 만약에 태양에서의 핵융합 반응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일어난다면, 태양이 빨리 타버릴 것 아녜요.
이명현 : 맞습니다. 태양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은 사실은 자신을 태우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 40억 년 정도 더 태울 거고요. 그 다음에는 헬륨으로 바뀌는데, 이런 헬륨이 핵융합 반응으로 다른 원소로 바뀌는 시간은 굉장히 짧거든요. 탄소, 질소, 산소 등이 연쇄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 태양이 결국 죽죠.
강양구 : 그럼, 우리가 보는 태양 빛의 근원은 상당히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봐도 되겠군요.
이명현 : 약 6000도의 태양 표면에서 나온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시간은 약 8분 20초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 빛의 근원이 되는 에너지는 수백만 년 전에 태양의 중심부에서 핵융합 반응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우리는 수백만 년 전에 만들어진 에너지가 빛으로 바뀐 걸 보고 있는 거죠.
플라즈마, 제4의 물질 상태
장호건 : 플라즈마는 보통 '제4의 물질 상태'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고체를 끓이면 액체가 되고, 액체를 끓이면 기체가 되잖아요. 이 세 가지가 우리가 아는 물질의 상태죠. 그런데 이렇게 고체, 액체, 기체로 물질이 변하는 이유가 뭔가요? 바로 열을 가하는 것, 즉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잖아요.
그럼, 기체 상태의 물질이 더 많은 에너지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온도 이상이 되면 원자(원자핵+전자)를 구성하는 전자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수소를 놓고 보면, 이 상태에서 수소는 전자가 떨어져나간 양전기(+)를 띠는 수소 이온(H+)과 음전기(-)를 띠는 전자가 뒤얽힌 모습이 됩니다.
당연히 양전기와 음전기를 띠는 이온과 전자가 뒤얽혀 있으니 이들은 상호 간에 당기고, 밀어내는 전기적 상호 작용을 하겠죠. 바로 이런 상태가 플라즈마입니다.
이명현 : 우리가 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이온화'라는 단어를 배웠잖아요. 전기적으로 중성 상태인 원자가 전자를 잃으면 양이온이 되고, 전자를 얻으면 음이온이 된다는. 그것과 플라즈마 상태는 어떤 관계인가요?
장호건 :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이 공간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물질이 기체 상태로 있겠죠. 그런데 그 물질 중에 어떤 것은 이미 전자가 떨어져 나가거나 덧붙어서 양이온이나 음이온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이곳의 물질 상태를 플라즈마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플라즈마는 이 공간의 모든 기체가 이온화될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상태겠죠. 이곳의 모든 기체가 다 이온화가 되려면 최소 섭씨 20만 도 이상의 온도가 필요할 거예요. (웃음)
김상욱 : 보통 사람들이 플라즈마가 무엇인지 감을 잡기 쉬운 예가 있어요. 바로 불입니다.
강양구 : 불이요?
김상욱 : 어렸을 때 양초에 불을 붙이면서 이런 질문 안 했어요? 양초는 고체고, 거기에 불이 붙으면 양초가 녹아서 액체가 되고, 결국 기체가 되잖아요. 그런데 불은 도대체 뭘까요? 바로 그 불이 플라즈마예요. 고온 상태에서 기체에서 전자가 떨어져나가서 이온과 전자가 뒤얽혀 있는 모습이 우리 눈에 불처럼 보이는 거지요.
장호건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엠페도클레스가 4원소설을 주창했잖아요. 만물이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 원소로 이뤄져 있다는 가설이요. 직관적으로 세상의 진실을 간파한 거죠. (웃음) 흙은 고체, 물은 액체, 공기는 기체, 불은 플라즈마. 아무튼 태양이 바로 플라즈마 상태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태양 내부의 에너지가 아주 높으니까요.
강양구 : 그런데 플라즈마 상태의 특별한 특징이 있나요?
장호건 : 일단 에너지가 높아요. 그러니 지구상에서 플라즈마 상태는 흔치 않죠. 그렇게 높은 에너지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는 없잖아요. 반면에 보이는 우주 공간의 거의 99%는 플라즈마 상태래요. 특히 태양 같은 항성과 항성 사이에 존재하는 성간 물질이 바로 플라즈마 상태로 존재하죠.
아까 플라즈마 상태에서 양이온과 전자는 전기적 상호 작용을 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 상호 작용이 이뤄지는 거리가 상당히 길어요. '쿨롱의 힘' 들어봤죠. 전기적 성질을 띠는 두 물질 사이에 작용하는 힘인데요. 이 힘은 아주 강한 힘이에요. 그리고 이 힘은 양쪽 물질 사이의 거리(r)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당기거나 밀어내죠.
바로 여기서 플라즈마의 고유한 특징이 나옵니다. 양전기를 띠는 양이온 주변에는 음전기를 띠는 전자가 모이겠죠. 그런데 이 양이온이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요? 양이온을 따라서 음전기도 따라서 움직일 거 아녜요? 그런데 플라즈마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양이온과 전자가 모여 있는 거잖아요? 그럼, 전체적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플라즈마의 전체적 움직임은 유체가 움직이는 것과 흡사해요. 그런데 물이 흐르는 모습이 굉장히 복잡하잖아요? 외부의 작은 자극에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꾸고, 또 장애물을 만나면 어떤 방향으로 휘감아 돌아갈지도 모르고. 이런 유체의 다양하고 복잡한, 비유하자면 도깨비 같은 성질을 플라즈마가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김상욱 : 끈적이고 걸쭉한 하지만 흐르는 죽과 같은 상태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웃음) 이게 참 재밌어요. 고체가 온도를 높이면 액체가 되고 온도를 더 높이면 기체가 되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온도를 더 높이면 다시 유체는 아닌데 유체와 비슷한 성질을 띠는 이상한 상태가 되잖아요.
장호건 : 대충 유체라고 생각해도 무방해요. (웃음) 물론 외부 자극이 없으면 플라즈마 상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에요. 안정적이라고 해봤자 에너지가 굉장히 높잖아요? 그러니 실제로는 자기들끼리 끊임없이 상호 작용을 하겠죠. 하지만 그런 상호 작용이 일종의 동적 평형 상태를 이루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안정적으로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일단 아주 작은 외부 자극이 오면 이런 동적 평형 상태가 깨지면서 굉장히 복잡한 형태의 운동을 하면서 반응을 합니다. 물론 이 외부 자극은 주로 양전기나 음전기를 띠는 전기적 자극이죠. 사실 이런 운동은 플라즈마가 다시 새로운 동적 평형 상태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겠죠.
강양구 : 그럼, 사실 플라즈마 상태의 태양이나 별은 굉장히 안정한 상태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핵융합 반응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가 별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김상욱 : 굉장히 안정된 상태죠.
이명현 : 일단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이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태양과 같은 별이 중력에 의해서 쪼그라드는 걸 막아주거든요.
10억 도까지 올려라!?
장호건 : 아, 우리가 지금 핵융합 얘기를 하고 있었죠. (웃음) 아까 가장 기본적인 핵융합 반응은 수소 원자핵과 수소 원자핵이 결합해서 헬륨 원자핵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죠? 그런데 수소 원자핵은 양전기잖아요. 아까 쿨롱의 힘 얘기했죠? 똑같은 양전기를 띠는 수소 원자핵끼리 결합을 하려니 얼마나 밀어내는 힘이 크겠어요.
그런데 그런 밀어내는 힘을 극복하고서 두 수소 원자핵이 결합을 해야 헬륨 원자핵이 만들어집니다. 두 수소 원자핵이 반발력을 극복하면서 계속해서 다가가 충분히 가까워지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둘이 합쳐지는 현상이 나타나요. 그런데 이런 현상이 가능하도록 두 원자핵 사이의 반발력을 이겨내려면 굉장히 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김상욱 : 다시 한 번 설명해 볼게요. 앞의 과학 수다에서도 몇 차례 반복해서 나오긴 했지만 우주에는 네 가지 힘이 존재합니다(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중력).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전자기력과 강한 핵력이에요. 전기를 띤 두 원자핵이 멀리 있을 때는 전자기력(쿨롱의 힘)이 작용하죠. 당연히 서로 밀어내죠.
그런데 이 두 원자핵이 어떤 기준치 이상 가까워지면 강한 핵력이 작용을 하면서 에너지를 내놓으며 결합합니다.
강양구 : 그 강한 핵력은 전자기력보다 강하죠? 대충 정리해 보면 이런 식이죠. 강한 핵력>전자기력>약한 핵력>>>중력.
장호건 : 맞아요. 방금 얘기했듯이 일단 강한 핵력이 작용하는 곳까지 두 원자핵을 근접시키려면 고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이런 고에너지 상태에서는 원자핵과 전자의 결합이 끊어져서 플라즈마가 되겠죠. 그러니 핵융합과 플라즈마는 떼려야 뗄 수 없죠. 고온 핵융합 반응은 플라즈마 상태에서만 가능할 테니까요.
강양구 : 이제 여기서 본격적으로 핵융합 에너지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죠. 우선 수소 기체를 밀폐된 공간에 집어넣고 플라즈마 상태를 만드는 게 첫 번째인가요?
장호건 : 맞아요. 일단 어떤 공간에 수소 기체를 넣습니다. 아까 얘기했듯이 그 수소 기체 중에는 평소에도 이온화가 되어서 양전기를 띠는 수소 이온과 전자가 분리된 게 있겠죠. 여기에 강력한 전기장을 걸어줘요. 그럼, 전자가 가속을 받겠죠. 그렇게 가속된 전자가 중성 상태의 수소 원자를 때려서 이온화를 시켜요. 거기서 튀어나온 전자가 또 다른 수소 원자를 때리죠.
이런 반응이 연쇄적으로 반복되면 최종적으로 수소 이온과 전자가 분리된 플라즈마 상태가 만들어집니다. 이미 이 상태에서도 온도가 상당히 높아져요. 당연한 일이죠. 콘크리트 바닥에서 아이가 넘어지면 화상이 생기잖아요? 바로 콘크리트와 피부가 마찰하면서 생긴 열 때문에 생긴 화상이죠. 수소 이온과 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수소 이온과 전자가 서로 충돌하는 공간은 아수라장일 거예요. 그렇게 서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저항이 발생하고, 그 저항만큼 에너지(열)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올릴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왜냐하면, 온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수소 이온이나 전자가 사방으로 돌아다닐 테고 그러다 보면 만나서 충돌할 확률이 낮아질 테니까요.
강양구 : 온도가 얼마나 올라갑니까?
장호건 : 이렇게 올릴 수 있는 온도는 약 1000만 도, 잘해야 2000~3000만 도 정도예요. 그런데 이 정도 온도로는 전자기력을 극복하고 두 원자핵이 충돌할 만한 고에너지 상태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요.
김상욱 : 핵융합 반응이 가능하려면 온도가 몇 도까지 올라야 하는데요?
장호건 : 핵융합 반응의 원료에 따라서 달라요. 중성자가 없는 보통의 수소(양성자 1개+전자 1개)로는 핵융합 반응을 유도하는 게 불가능하고요. 가장 낮은 온도에서 핵융합 반응이 나타나는 건 중수소(양성자 1개+중성자 1개+전자 1개)-삼중수소(양성자 1개+중성자 2개+전자 1개) 반응이죠. 그런데 삼중수소는 방사성 물질이라서 함부로 실험을 할 수 없고요.
김상욱 : 보통의 수소로는 왜 불가능한가요?
이명현 : 아까도 얘기했잖아요. 태양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이 보통의 수소끼리 결합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효율이 인체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교해도 3분의 1에서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그렇게 수소끼리 핵융합 반응을 시키는 건 사실상 현실성이 없죠.
김상욱 : 그럼, 핵융합 반응의 원료가 자연 상태에 널려 있다는 얘기는 과장된 거군요.
장호건 : 중수소는 무한하죠. 바닷물 1리터(1000그램)에 약 0.03그램이 들어있어요. 우리나라의 핵융합로(KSTAR)는 중수소와 중수소를 이용해서 핵융합 실험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핵융합 장치의 온도를 10억 도까지 올려야 합니다.
강양구 : 10억 도요? 그렇게 온도를 올리는 게 가능해요?
장호건 : 일단 들어보세요. (웃음) 방금 얘기했듯이 전기장을 걸어줘서 올릴 수 있는 온도는 잘해야 3000만 도 정도예요. 그래서 온도를 더 올리려고 아주 무식한 방법을 계속 사용합니다. 우선 뜨거운 물을 부어요. (웃음) 비유를 한 건데요, 바깥에서 고에너지로 가속된 중성자 빔을 쏴주는 거예요. 따지고 보면 찬물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것과 비슷한 일이죠.
또 다른 건 전자레인지랑 비슷해요. 전자레인지의 원리가 전자기파를 쏴줘서 먹을거리 안에 들어있는 물 분자를 진동시키는 거잖아요. 그렇게 진동할 때 나오는 운동 에너지가 열로 전환되면서 먹을거리를 데우는 거고요. 비슷합니다. 외부에서 전자기파를 쏴줘서 플라즈마 상태의 수소 이온과 전자를 진동시켜서 계속해서 운동 에너지를 내놓도록 만드는 겁니다.
정말로 무식한 방법이죠? (웃음) 개인적으로 인간이 고전 역학을 이용해서 만든 장치 중에서 제일 무식한 장치라고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웃음)
강양구 : 정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군요. 많은 에너지를 투여한 다음에,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얻겠다는…. 그런데 그렇게 무식한 방법을 써서 올릴 수 있는 온도가 몇 도인가요?
장호건 : 현재까지는 1억 도 정도예요. 중수소와 중수소가 핵융합 반응을 하려면 10억 도까지 온도를 올려야 하는데 아직 그 10분의 1 수준인 거예요.
강양구 : 그럼, 핵융합 반응이 불가능한 건가요?
장호건 : 그건 아니에요. 핵융합 장치 안에 있는 중수소의 상태를 통계적으로 보면 정규 분포 곡선을 그려요(⌒). 즉, 1억 도에서 대부분의 중수소는 핵융합 반응을 하지 않지만 끄트머리에 있는 일부는 1억 도에서도 핵융합 반응을 하거든요. 물론 온도를 더 높이면 정규 분포 곡선이 더 벌어져서 핵융합 반응을 하는 중수소의 숫자가 늘어날 테고요.
이명현 : 말이 쉽지 엄청 어려운 작업이죠?
장호건 : 그렇게 정규 분포 곡선을 한 번 벌릴 때마다, 온도를 높이는데 수백억 원이 든다고 합니다.
1억 도의 물질을 어디에 담을까?
강양구 : 들으면 들을수록 그 스케일이 상상을 뛰어넘는데요. 그런데 지금까지 1000만도, 3000만 도, 1억 도 심지어 10억 도 등 상상을 초월하는 온도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상에 도대체 이런 고온을 견딜 수 있는 물질이 존재하나요? 도대체 플라즈마를 어디에 가둬놓나요?
장호건 : 과학사를 살펴보면 굉장히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가 나중에 엄청난 난제가 된 경우도 있고, 또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 상대적으로 쉽게 해법을 찾기도 하잖아요. 일단 핵융합 반응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후자처럼 보였어요. 바로 자기장을 이용해서 고온의 플라즈마를 밀폐된 공간에 가두는 겁니다.
김상욱 : 자기장!
장호건 : 맞아요. 전기를 띤 물질의 이동 경로에 자기장을 걸어주면 원래 이동 방향과 수직으로 자기력이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도넛 모양의 터널을 만들고 그 바깥에 자기장을 걸어주면 어떻게 될까요? 도넛 모양의 터널 안을 전기를 띠는 플라즈마가 빙빙 돌겠죠. 굳이 1억 도, 10억 도와 같은 고온을 견디는 물질을 찾을 필요가 없죠.
김상욱 : 고온의 플라즈마는 터널 안을 빙빙 돌 뿐 벽에 닿지 않겠죠.
강양구 : 대단한데요. 정말 손쉬운 해결책을 찾았군요.
장호건 : 처음에는 그렇게 보였어요. (웃음) 그런데 도넛 모양으로 플라즈마를 가뒀더니 자꾸 갇혀 있지 않고 밖으로 튀어 나오는 거예요. 플라즈마가 자기장을 가로질러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거예요. 바로 여기서부터 플라즈마와 과학자 사이의 끝이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시작됩니다.
김상욱 : 자꾸 플라즈마를 생명체처럼 말씀을 하시네요. (웃음)
장호건 : 요즘에는 정말로 생명체처럼 보여요. (웃음)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게 도넛 모양의 자기장에 의한 불안정성의 발현이에요. 도넛 모양을 실로 감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안쪽은 실이 촘촘하고 바깥쪽은 실이 듬성듬성하겠죠. 실이 곧 전기장을 발생시키는 전기가 흐르는 코일이거든요. 당연히 도넛의 안쪽은 코일이 조밀하니까 자기장이 세고, 바깥쪽은 코일이 느슨하니까 자기장이 약하겠죠. 이런 자기장 차이가 플라즈마를 구성하는 입자의 불안정성을 낳겠죠.
아무튼 도넛 모양의 밀폐 장치로는 플라즈마를 가둘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이 되었어요. 그 이후에 과학자들이 골머리를 앓다가 고리 모양으로 나선형 자기장을 형성하면 입자가 표류해서 플라즈마가 불안정해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그래서 만들어진 핵융합 밀폐 장치가 바로 '토카막(TOKAMAK : TOroid KAmera MAgnit Katushka)'입니다.
김상욱 : 이 토카막이 개발된 게 언제입니까?
장호건 : 1950년대 중반이에요. 이미 러시아 과학자들이 1956년에 토카막을 만들었고요. 'TOKAMAK'도 러시아 어에서 유래한 거고요. 1968년에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회의에서 토카막을 공개해서 미국, 유럽으로도 전해졌죠. 그 이후에 토카막이 핵융합 밀폐 장치의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플라즈마와 과학자의 힘겨루기
장호건 : 아까 생명체 얘기를 했었죠? (웃음) 처음에는 해결이 된 것처럼 보였죠. 심지어 토카막 개발을 진두지휘한 러시아 과학자 레프 아치모비치(1909~1973년)가 있어요. '토카막의 아버지'로 불리죠. 이 과학자가 죽기 직전인 1973년에 이렇게 말했죠. "사회가 원할 때, 핵융합은 준비된다(Fusion will be ready when society needs it)."
김상욱 : 그런 얘기를 할 때, 러시아의 토카막은 플라즈마의 온도를 얼마나 올릴 수 있었나요?
장호건 : 지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았죠. 그 당시에 플라즈마의 온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아까 얘기했던 세 가지 중에서 마찰을 이용한 것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플라즈마를 확실히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럼, 이제 온도를 올리는 일만 남은 거잖아요. 그래서 그 때부터 핵융합 밀폐 장치의 덩치가 커지기 시작합니다.
김상욱 : 가장 간단한 해결책을 선택했군요.
장호건 : 그렇죠. 다른 조건이 똑같다면 핵융합 밀폐 장치의 덩치가 커지면 더 많은 수소 기체를 집어넣어서 오랫동안 가두어 둘 수 있기 때문에 플라즈마가 장치를 빠져나가기 전에 핵융합 반응 확률을 높일 수 있죠. 그리고 일단 핵융합 반응을 해서 점화가 되면 그건 성공이죠. 점화가 되면 수소만 계속 공급해 주면 되니까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런 식의 접근은 큰 벽에 부딪쳤어요.
김상욱 : 가장 큰 원인은 뭔가요?
장호건 : 플라즈마를 너무 얕잡아 본 거죠. (웃음) 우선 마치 난류와 같은 요동이 플라즈마 내부에서 발견이 됩니다. 그럴 만했죠. 핵융합 밀폐 장치 안에 들어있는 플라즈마는 동적 평형 상태가 될 수 없죠. 끊임없이 가열하면서 외부 자극을 주잖아요. 당장 토카막 안쪽은 1억 도인데, 바깥쪽은 상온이에요. 엄청난 온도의 기울기가 있잖아요.
그런 기울기가 플라즈마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그런 상황에서 아주 작은 규모의 난류가 플라즈마에서 발생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난류에 의해서 에너지가 자꾸 외부로 새 나가는 현상이 반복됩니다. 이렇게 외부로 에너지가 새 나가기 시작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죠. 그래서 1980~90년대에는 이 플라즈마 난류의 원인을 찾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죠.
김상욱 : 하이젠베르크가 그랬잖아요. 신을 만나면 자기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도대체 난류가 왜 생기나요?" (웃음) 플라즈마 난류 문제는 해결이 되었습니까?
장호건 : 쉽지가 않았죠. 1980년대 들어서 마찰이 아닌 다른 방식의 가열 방법이 도입되었죠. 아까 얘기했던 외부에서 중성자를 쏴 주거나(뜨거운 물 붓기) 전자파를 쏴 주거나(전자레인지)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이렇게 외부의 에너지를 동원해서 온도를 두 배 올려주면 외부로 새 나가는 에너지는 네 배가 되는 거예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심지어 회의론이 대두되기도 했어요. 플라즈마의 에너지를 높일 수 없으면 핵융합 반응은 불가능하잖아요. 그런데 바로 이 때 독일의 과학자들이 전혀 엉뚱한 방식으로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웃음) '지금까지 에너지를 '10'씩 공급했다면, 아예 '100'을 넣어 보자.'
이명현 : 온도를 훨씬 더 높여 본 거군요.
장호건 : 네, 그랬더니 갑자기 토카막에서 에너지가 밖으로 새는 현상이 줄어든 거예요.
김상욱 : 온도를 두 배 올려주면 에너지가 네 배로 샜는데, 아예 수십 배를 올려주니 새는 에너지가 극적으로 줄어든 거군요. 왜 그런 거죠?
장호건 : 거기에 대해 많은 이론이 있지만 그러한 변화의 궁극적 이유는 아직 잘 모릅니다. 그래서 아까 생명체, 이런 얘길 한 거예요. 지금도 정량적으로 잘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강양구 : 어쨌든 플라즈마가 가장 좋아할 만한 최적의 상태를 우연히 맞춘 셈이네요. (웃음)
장호건 : 그렇죠.
이명현 : 일종의 창발(emergence)이네요. (웃음) 특정한 조건에서 플라즈마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잖아요.
김상욱 : 그런데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모르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을 텐데….
장호건 : 이 문제는 핵융합 플라즈마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합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많은 이론이 나왔으며 저희도 그걸 계속 연구하고 있어요. 그걸 여기서 다 소개할 수는 없고요. (웃음) 아무튼 이 H-모드가 토카막을 살렸습니다. 지금 유럽연합,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 우리나라 등이 공동으로 프랑스에 짓고 있는 ITER(International Thermalnuclear Experimental Reactor, 이터)도 바로 이 H-모드 모델이에요.
핵융합로가 등장할 시점은…
강양구 : 지금까지 얘기를 정리해 볼게요. 핵융합 에너지는 수소 원자핵이 결합해서 헬륨 원자핵을 만들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해서 물을 끓인 다음에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죠. 그런데 똑같은 양전기를 가진 수소 원자핵이 서로 밀어내는 전자기력(쿨롱의 힘)을 극복하고 결합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고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하죠. 첫째, 그런 고에너지 즉 높은 온도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
일단 양전기를 띠는 수소 이온과 음전기를 띠는 전자가 종횡무진 부딪치면서 나오는 마찰에 의한 에너지가 일차적으로 온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죠. 그리고 1980년대부터는 끓는 물을 외부에서 붓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성자를 밖에서 공급하거나 혹은 전자레인지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전자파를 쏴 주는 방법이 고안되었죠. 하지만 여전히 1억 도 정도에 머무르고 있어요.
둘째, 1억 도가 넘는 플라즈마를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 이것은 자기장을 이용해서 플라즈마가 용기에 닿지 않고 용기 안을 도는 토카막과 같은 핵융합 밀폐 장치가 고안됨으로써 일단 하나의 벽은 넘었죠. 하지만 여전히 그 밀폐 장치를 유체처럼 흐르는 플라즈마를 완벽히 통제하는 데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단 거칠게 정리하면 이렇죠?
장호건 : 네, 정말로 거칠게 정리하면 그렇습니다. (웃음)
이명현 : 방금 ITER 얘기도 나왔습니다만, 이제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한 번 따져보죠.
장호건 : 아까 우리나라의 KSTAR에서는 방사성 물질로 실험하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에 중수소를 원료로 사용한다고 했었죠? ITER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원료로 사용하고 있어요. 중수소와 삼중수소는 가장 낮은 온도에서 핵융합 반응이 가능하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 2억 도 정도요. 우선 2020년쯤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강양구 : 그런데 여기 기사 제목을 한 번 읊어 볼게요. 한 신문의 기사인데요. "인공 태양, 핵융합로 세계 6번째 뜬다"(2007년 9월), "한국 인공 태양 'KSTAR' 첫 불꽃"(2008년 7월), "한국도 '핵융합 반응' 성공했다"(2010년 10월). 이런 기사만 보면 핵융합 반응이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런데 또 2012년에는 플라즈마 상태를 17초간 유지했다 하고.
김상욱 : 최근에는 중국에서 플라즈마 상태를 30초 동안 유지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죠. 도대체 이런 기사의 정확한 의미는 뭔가요?
장호건 :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의견을 말씀드릴게요. 저는 가끔 핵융합 관련 언론 기사를 볼 때마다 과장된 표현이나 과학적으로 맞지 않은 내용에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있는데 위 기사에서도 그런 내용이 보이네요. 이런 점은 언론과 연구자 모두가 같이 노력해서 올바른 정보를 줘야 한다고 봅니다.
핵융합 장치를 인공 태양이라고 불러왔기 때문에 KSTAR 장치를 우리나라의 인공 태양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기사는 KSTAR 장치가 완공되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 기사는 KSTAR에서 최초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는 중수소 반응을 하기 때문에 실제로 큰 핵융합 반응은 일어나지 않지요. 물론 중수소 반응에도 핵융합은 일어나지만 그건 아주 미미해요.
세 번째 기사는 바로 이 중수소 핵융합 반응이 KSTAR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중수소 검출기로 검증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KSTAR나 중국의 EAST 장치의 목적은 핵융합 반응 자체보다는 나중에 중수소-삼중수소 핵융합로의 운전 모델을 실험해 보는 거예요. KSTAR의 17초, 중국의 30초는 모두 H-모드 모델을 실제 핵융합로보다 훨씬 작은 규모에서 실험해본 거예요.
그러니까 H-모드로 플라즈마 상태를 몇 초간 유지했다는 겁니다. 만약 실제 핵융합로라면 17초, 30초 같은 게 큰 의미가 없죠. 왜냐하면 우리가 원하는 건 연속적인 핵융합로(reactor) 운전이잖아요. 현단계는 그러한 연속 운전을 위한 첫 계단을 밟은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강양구 : 네, 필요한 건 핵융합 반응을 통해서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그걸로 물을 끓일 수 있어야죠.
장호건 : 여기서 중요한 건 지속성과 통제 가능성이에요.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운전을 하다가, 필요하면 쉴 수도 있어야죠. 현재까지 H-모드 모델이 핵융합 반응을 시험할 만한 상태로 플라즈마를 유지하는 데는, 다른 모델에 비해서 가장 합격점을 줄 만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플라즈마를 유지시킬지는 잘 알 수 없거든요.
그래서 바로 그 지속성을 실험하고 있는 거예요. 즉, 지금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하는 것은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만한 플라즈마 상태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 실험하는 거예요. 17초, 30초 이런 뉴스는 다 그런 실험에 의미를 부여해서 발표한 거고요. 그러니까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 것은 아니에요. (물론 중수소 반응에 의한 미미한 양은 제외하고요.) 2020년쯤에 가동할 ITER에서는 진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게 목표죠.
강양구 : 그럼, ITER 전에는 수소폭탄을 제외하고 지구상에서 핵융합 반응을 인공적으로 일으킨 적이 있었나요?
장호건 : 있었어요. 1991년에 영국의 JET가 처음으로 중수소-삼중수소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고요. 1초 정도? JET는 1997년에 1초간 16메가와트의 열도 내놓는 기록도 세웠죠. 미국의 TFTR도 일단 핵융합 반응에 성공은 했고요. 그런데 둘 다 H-모드 모델을 채용한 것은 아니라 그 성능은 그다지 좋지 않았죠. 더구나 이렇게 1초 정도 된 걸로 핵융합로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
강양구 :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인공 태양'은 없었군요.
장호건 : 인공 태양은 그냥 KSTAR 장치를 지칭하는 것이니…. 그것보다는 아직은 중수소-삼중수소 핵융합 반응이 없다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네요.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게 많아요. 예를 들어, 수소 원자핵과 수소 원자핵이 핵융합 반응을 하면 헬륨 원자핵이 생기잖아요. 헬륨 원자핵이 바로 알파(ɑ) 입자예요. 이러한 고에너지 알파 입자가 핵융합로 안에 가득 차 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직 잘 모르거든요.
김상욱 : 사실 ITER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도 핵융합 에너지의 과학적, 기술적 타당성 검토거든요. 헬륨 원자핵, 즉 알파 입자에 열에너지를 가하면 우리가 몰랐던 어떤 이상한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죠. 들으면 들을수록 고온의 플라즈마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장호건 : 일단 ITER는 진짜 핵융합 반응을 하는 플라즈마 상태를 약 400초 정도 지속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거든요. 만약에 이 정도 시간 동안 고온의 플라즈마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면서 핵융합 반응까지 일으킬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의미가 있어요. 그 정도면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때의 조건을 따져볼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거든요.
강양구 : KSTAR는 2022년까지 3억 도 이상에서 300초 이상의 플라즈마 상태를 유지하는 걸 목표로 하더군요.
장호건 : 그 정도만 되면 대성공이죠.
이명현 : 아까 ITER는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를 연료로 사용하잖아요. 그런데 바닷물에서 분리할 수 있는 중수소와 달리 삼중수소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야죠?
장호건 : 그것도 ITER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죠. 리튬을 이용해서 삼중수소를 뽑아내는 값싸고 효율적인 방법을 개발해야 하거든요. 제 관심사가 플라즈마 물리학이라서 그 얘기를 따로 언급 안 했습니다만, ITER에서 플라즈마 물리학만큼 중요하게 취급되는 게 바로 그 과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김상욱 : 이런 상황에서 지금 핵융합 발전이 언제쯤 가능한지를 물어보는 건 참 무의미한 질문이군요. 2020년쯤 ITER의 가동 결과를 보고 나서 얘기해야겠는 걸요.
장호건 : 개인적으로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핵융합 발전이 언제 가능할까요?' "아, 그건 바로 저 같은 물리학자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질 때 핵융합 발전이 가능합니다." (웃음) 그러니까 핵융합 반응을 둘러싼 물리 현상을 속속들이 파악해서 더 이상 물리학자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비로소 핵융합 발전이 가능한 시점이라는 거예요.
강양구 : 멋질 말씀인데요. (웃음) 그나저나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정부 차원에서 핵융합 연구를 지원했잖아요. 우리나라의 수준은 얼마나 되나요?
장호건 : 제가 그런 평가를 함부로 할 만한 위치는 못 되고요. 그냥 평소 가지는 개인적인 생각만 얘기하죠. 일단 실험 쪽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핵융합 반응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계속해서 있어 왔죠. 예를 들어, 독일에서 고안한 H-모드, 미국의 I-모드, 일본과 미국의 ITB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외국에서 고안한 모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강양구 : K-모드 같은 게 나와야 한다는 거죠?
장호건 :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려면 그렇다고 해야겠지요. 그리고 이론 쪽에서는 대가가 나와야죠. 대가라고 하니까 외국의 과학자들이 인용하는 논문을 많이 쓴 과학자만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전통적인 관점을 가진 기존의 과학자들은 전혀 생각지 못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혹은 해법을 제시한 과학자야말로 진정한 대가죠.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아직 한국에서는 그런 대가가 없습니다.
아마 공학 쪽에서 핵융합 연구를 하는 분들은 저랑 생각이 약간 다를 텐데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전제하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양구 : 장호건 선생님께서 더 이상 핵융합 연구에서 손을 뗄 때, 비로소 인공 태양이 가능하겠군요. (웃음) 오늘 정말로 궁금한 게 많이 풀렸습니다.
김상욱 : '물리학자가 관심을 끊을 때, 비로소 그것이 현실이 된다.' 정말로 울림이 있는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오늘 어려운 자리에 나와서 솔직히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장호건 :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걸 전제하고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웃음) 저도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명현 :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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