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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노조 타락, 하청 노동자의 '지옥'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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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노조 타락, 하청 노동자의 '지옥'을 만들다

[2014 진짜사장을 찾아·②] 조선소에서 파업이 어려워진 이유

10년 만에 공장 출입한 비정규직

세계 1위 조선소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014년 새해를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비정규직을 탄압하다 민주노총에서 제명당한 현대중공업에 12년 만에 민주노조가 들어서고, 공장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내하청 지회장과 조합원들을 노동조합 이·취임식에 초대한 일이었다. 공장에서 쫓겨나 용역 경비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10년을 살아왔던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지난 12월 3일 초대장을 들고 당당하게 공장으로 들어왔다.

감동적인 장면은 현대중공업 민주노조가 사내하청 하창민 지회장을 현대중공업 사장, 민주노총 위원장과 무대 위 의자에 나란히 앉게 하고, 임직원을 상대로 연설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현대자동차노조 역사에서도 없었던 사건이었다.

현대중공업 민주노조는 비정규직을 외면한 역사가 담기 영상을 상영하며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했고 제20대 정병모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그는 “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당연히 같은 권리, 같은 복지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박일수 열사의 10주기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준비하고 있다.

오는 2월 14일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선박건조장에서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분신 자결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조선소에서는 처음으로 사내하청노조를 만드는 일에 앞장섰고,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정규직노조에 분노하면서 2003년 7월 22일 자신의 이름으로 발행한 선전물에 이렇게 물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최○○과 집행부 일행은 직영노동자의 잔치에 하청노동자의 죽음과 피와 땀이 얼마나 희생되었는가를 알고 있는가? 너희들이 노동자의 대변인이라고 나설 수 있는가? 노동자는 하나라는 진실을 외면한 채 타락되어 가고 있는 현중노동조합을 보면서 하청노동자의 박탈감, 울분, 분노를 알아야 할 것이다.”

박일수 열사는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태어나면서 귀족노동자, 하청노동자로 태어나지 않았다. 내 몸을 불태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열악한 환경 속에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겼다.

10년이 지난 지금,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노조에 다시 묻고 있다. 직영노동자들의 잔치에 하청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얼마나 희생되었는지, 하청노동자들의 울분과 분노를 알고 있는지, 정규직노조가 타락하고 있지 않은지 묻고 있다. 10년이 흐른 지금, 정규직노조는 뭐라고 대답할까?

▲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전 노조간부 이운남 씨의 영결식이 지난 2012년 12월 26일 현대중공업 정문 근처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규직노조, 분신노동자보다 자녀 취업이 우선인가

노동조합의 역사가 50년이 넘는 기아자동차지부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민주노총을 이끌어가는 주축이다. 1996년 12월 26일 새벽 김영삼 정권이 정리해고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시켰을 때 가장 먼저 공장을 멈춰 세우고 거리로 나온 노조다. 비정규직의 손발을 묶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기아차는 정규직노조 중에서 가장 먼저 비정규직을 노조로 받아들여 1사1노조를 만들었다.

지난 해 기아차는 광주공장에서 62만 대 증산을 위해 신규 채용 공고를 냈다. 300여명 모집에 3만2000여명이 몰렸다. 기아차에는 3000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고, 광주공장에도 534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지만, 회사는 10년 동안 기아차를 위해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라는 비정규직노조의 요구를 거부했다.

4월 12일 기아차 노사는 ‘신규 채용 시 정년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직계자녀 1인에 한해 채용 규정상 적합한 경우 우선 채용함을 원칙으로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적용한다’며 △서류 전형 우대 25% 할당 △면접 적용 우대 5% 가점 부여 △총 동점자 우선 채용을 합의했다.

신규 채용 인원의 25%를 정규직 자녀들에게 할당하고 면접까지 가산점을 부여해 정규직 자녀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합의서였다. 2011년 현대자동차지부에서 회사에 요구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합의하지 못했던 정규직 자녀 우선채용을, 기아차에서 합의한 것이다.

고용 지옥의 시대에 정규직 자녀 우선 채용은 로또에 가까운 대기업 정규직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일이다. 회사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충성심을 높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깨뜨리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합의서가 탄생한 것이다.

‘사내하청 우선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두 달 넘게 천막 농성을 벌이던 기아차 광주공장 사내하청노조 조합원들은 분노했고, 4월 14일 김학종 조직부장은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 자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3만 명이 넘는 조합원을 자랑하는 기아차 정규직노조는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 요구는 ‘특별교섭’으로 분리시키고, 치료비와 생계비 문제를 서둘러 타결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정규직화 교섭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김학종 조직부장은 한강성심병원에서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

노사합의로 사내하청 인정?

지난해 7월 23일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노사 간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9만2000원 인상과 성과 격려금 1000만 원을 따냈다. 회사의 장기 발전 전망과 인위적인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고용 안정 협약과 주간 연속 2교대제 실시에도 합의했다.

별도 요구안으로 사회 연대 기금 10억 원 출연과 사무직 연봉제 폐지, 비정규직 관련 조항들도 합의했다. 무쟁의와 주식을 맞바꾸거나 노사 뒷거래로 만든 성과가 아니라 생산직과 사무직 노동자들이 뭉쳐 투쟁을 통해 얻어낸 성과였다.

조합원들은 60%의 찬성으로 임금 협상안을 승인했다. 그런데 합의안을 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깜짝 놀랐다. ‘비정규직 관련’ 4가지 조항이 모두 불법 파견 논란이 있는 사내하청을 ‘합법 도급’으로 인정하는 합의서였기 때문이었다.

한국지엠 노사간에 맺은 합의서를 보면, “도급업체 및 도급업체 직원들을 회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동반자로 인식”하고, “도급계약 시 도급업체 직원들의 실질적인 작업환경 및 근로조건이 개설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정규직 채용 시 도급업체 발탁채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규직화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제공”한다고 나와있다.

정규직노조는 하청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정규직 채용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지엠(옛 지엠대우)이 어떤 곳인가. 지난해 2월 23일 대법원에서 조립, 도장, 차체는 물론 KD까지 모두 불법파견이라며 닉라일리 전 사장의 형사처벌을 확정한 공장이다. 이에 따라 창원공장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국지엠의 정규직이라는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대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정규직이라고 판결받은 현대자동차 두 명의 노동자가 296일 동안 철탑 고공농성을 벌였다. 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3500명 신규채용이라는 ‘발탁채용’에 반대해 파업을 계속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라는 자동 흐름 방식의 자동차 조립 생산 공정은 합법도급이 불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자동차에서 근무하는 사내하청은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사내하청 제도 자체를 없애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한국지엠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사내하청 문제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었다면 불법파견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어야 했다. 정규직 전환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노사 간의 힘의 역관계 때문에 어렵다고 하더라도 기아차처럼 ‘특별협의체’라도 구성해 이후 교섭의 근거를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지엠 정규직노조는 회사 내의 하청업체를 합법적인 도급업체로 인정해주는 합의를 했다. 한국지엠 현장조직 중에서 ‘좌파’로 분류되는 집행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20명이 넘는 교섭 위원 어느 누구도 이 위험한 합의서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정규직과 함께 일하고, 정규직이 하기 싫어하는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정규직노조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한국지엠은 지난 2009년 경제위기 때 자동차가 팔리지 않자 노사합의로 정규직을 비정규직 자리로 옮기게 하고, 비정규직 1000명을 공장 밖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2012년 11월 26~29일 대의원대회에서 정규직노조에 비정규직이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1사1조직 안건이 상정됐으나 찬성 72, 반대 90명으로 부결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 15년 만에 32%→86.5%

▲ 1997년과 2012년 조선소 사내하청 비율 비교표.(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2013 조선자료집' 재구성) ⓒ박점규

비정규직을 외면한 결과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현대삼호중공업(옛 한라중공업), 한진중공업 등 조선소 노동자들은 1987년 노조 민주화 투쟁의 주역들이었다. 1990년대까지 민주노조의 중심이기도 했다.

‘강성’이었던 조선소 노조들은 199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의 바람을 타고 야금야금 현장으로 들어온 사내하청을 막지 못했다. 조선소는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생산의 7~80%를 담당하게 됐다.

한국조선해양플렌트협회가 발행한 ‘2013 조선자료집’에 따르면, 1997년 조선소 생산직 직영노동자는 2만7348명이었고, 하청노동자는 1만2998명이었다. 비정규직 비율이 32%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5년이 경과한 2012년 조선소 생산직 직영노동자는 2만7109명이었고, 하청노동자는 7만4625명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73.3%에 달한다. 최근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있다는 해양플랜트는 직영 정규직 3639명에 사내하청 노동자는 2만3313명으로 사내하청 비율이 무려 86.5%였다.

지난 15년 동안 조선소 정규직 직영노동자는 도리어 240명이 줄었는데, 사내하청 노동자는 6배가 늘었다. 전 세계 조선산업의 1위부터 상위권을 휩쓸고 있고, 생산 물량은 어마어마하게 늘었지만 정규직은 전혀 늘리지 않고 사내하청 노동자만 늘어난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생산 현장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70% 정도 차지하고 있어 파업을 하면 선박 생산을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한 결과 정규직노조가 아무리 파업을 해도 선박과 플랜트 생산을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 대학살, 정규직의 안전을 보장하나?

한국지엠은 1월 23일 준중형 자동차 크루즈의 수출이 줄어들고 군산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주간연속 2교대에서 1교대제로 전환할 것을 노조에 제안했다. 지엠이 유럽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차세대 크루즈 생산공장에 군산공장이 배제됐기 때문이다. 1100명의 인원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군산공장에서 정규직과 함께 일하고 있는 10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1차 해고의 대상이었다. 1100명 해고설이 알려지면서 노조가 긴급 노사협의회를 요청했고,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27일 “회사 쪽이 군산공장 1교대제 전환 제안을 철회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회사가 원만한 노사 관계를 위해 1교대 시행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1교대 시행을 잠시 미뤄두었을 뿐 이미 현장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희망 퇴직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회사는 사내하청 희망 퇴직, 정규직 전환 배치, 순환 휴직 등 다양한 수법을 동원해 비정규직 우선 해고를 강행할 것이 뻔하다. 회사는 정규직 고용 안정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노노간의 갈등을 유발할 것이고,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비정규직 대학살은 시시각각 다가오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고용 안전판이 아니라 순망치한의 관계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릴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다음 차례는 정규직이다. 한국지엠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을 노조에 가입시키려다 실패했던 1사1조직 규정 개정을 다시 시도해 비정규직을 품에 안고 같이 싸울 수는 없을까?

* 이 글은 <레디앙>, <오마이뉴스>, <참세상>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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