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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에 본 아빠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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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에 본 아빠의 얼굴

故 최종범 씨 노제, 24일 삼성전자 본관서 열려

서른 둘. 죽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의 젊은 남성 영정이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삼성전자 본관 앞에 놓였다. 본관 앞에는 빈 관광버스 5대와 경찰 버스 3대가 주차돼 건물을 가로막고 있었고, 뒤편에는 의경들이 삼삼오오 모여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꺼냈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 10월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최종범 씨의 노제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열렸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침묵을 깬 라두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제가 아는 종범이는 평범한 젊은이였고, 죽도록 일만 했던 동료였습니다"라면서 "종범이가 죽음으로 항거한 지 55일째인 오늘, 이제 그를 보내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라 수석부지회장은 "생목숨을 끊으면서 종범이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의 꿈과 희망"이라며 "고인은 삼성의 노예, 기계로 살다가 노조 활동을 통해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회사, 기계나 노예가 아닌 노동자로서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에 다니는 동안 "너무 힘들었고 배고파 못 살았다"던 고인의 영정 앞에는 대추며 밤이 놓였다. 고인의 뜻을 이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조사가 이어지는 동안 유족은 말없이 흐느꼈다.

고인의 아내 이미희(30) 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아빠 없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하고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대신 고인의 형인 최종호(36) 씨가 "종범이가 목숨 바쳐 한 싸움을 많은 분이 이어준 것에 대해 유가족과 종범이를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전했다.

최종호 씨는 "동생으로 인해 삼성을 향한 싸움에서 최초로 승리를 얻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승리의 크고 작음을 떠나, 최초의 승리가 나중에는 최대의 승리가 되기를 바란다"며 "종범이의 동료가 삼성 같은 재벌 자본으로부터 보호받고, 이 땅의 소외당하는 노동자들이 보호받는 사회가 이뤄지는 데 유족도 미약하나마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조사가 끝나고 모인 동료들은 하나둘 고인의 영정에 국화꽃을 헌화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한 살 난 아이 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아버지 영정에 꽃을 놓았다. 토끼 모양 모자를 쓰고 온 아이는 천진난만한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엄마 품을 벗어나자 울음을 터트렸다.

노제가 끝나고 유족과 조문객들은 고인이 묻힐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조문객이 모두 떠난 것을 확인한 경찰 버스 3대가 의경들을 태우고 삼성전자를 떠났다. 뒤이어 본관을 가로막고 있던 빈 관광버스 5대가 차례로 떠났다. 모두가 떠난 삼성전자 본관 앞에는 삼성전자 보안 경비 직원 몇몇만이 남아 빈 고요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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