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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마음으로

[고현주의 꿈꾸는 카메라 2]<48>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 지났다.
여름 두 달 동안 여러 가지 정리도 하고 많은 생각도 오간 시간들이었다.
오늘 개학해서 다시 첫 수업이다.
한 학기마다 학생들이 바뀌는데 올해 수업은 1년을 같이 하기로 했다.
그렇게 수업하는 게 아이들에게도 더 좋고, 나도 아이들을 더 깊이 알 수 있어서
좋을 듯해서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못 본 듯했다.
매주 보다가 2달 동안 안 보니까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런 마음에 아침 일찍 서둘러 갔다.

책을 내고 여러 가지 심경의 변화로 사실 힘이 부치긴 했다.
쉬는 내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도 해보고, 본질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고민을 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인지도 느꼈다.
서운한 마음도 있었고 여러 가지 맘이 무거운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작업했던 일.
작업하면서 조금씩 친구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
조금씩 커져갔던 생각들.
두 달 동안 그런 생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난 다시 처음 마음을 갖지 않으면
이 친구들을 이제 평생 만나기 힘들 거라는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관계란 이처럼 힘든 것이다.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다 드러내 보이기도 힘들며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기만 기다리는 것도 힘들다. 서로 솔직해지지 않으면 많은 오해와 많은 편견이 생기기 쉽다.
어떤 관계도 다 그렇다.

아이들을 만나러 안양에 왔다 갔다 한 시간이 이제 4년이 넘어간다.
처음의 나를 생각해본다.
내 삶에서 가장 초라했을 때 난 이친구들을 만나러 왔고, 이 친구들과 사진에 대한
막연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다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버리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친구들과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나의 욕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보니 자꾸 일이 커져 갔고, 전시기획도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나는 싫었다.
다시 처음 시작했던 소박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아마 이 일은 처음부터 진심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난 처음부터 나를 냉정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지 아는 까닭이다.
남의 인생에 내가 개입이 되 있는 일이라 책임감이 우선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무얼 만들고, 무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친구들을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과연 난 그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가르친다면 나는 그 동안 무엇을 가르쳤는지...

사진은 그저 매개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변사람들이 아니라 이 친구들과 나와의 관계이다.
난 그것을 놓치고 있었다.
주변에서의 술렁거림, 혹은 칭찬, 혹은 비난, 혹은 애정에 대해 너무 민감했고 흔들렸다.

이제 그런 것들에 대해 담담해지려고 한다.
이제 그런 감정의 휩쓸림에 꿋꿋해지려고 한다.
이제 주변의 눈에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내 어린 친구들과의 관계이다.
이 관계가 더 굳건해지지 않으면 나머지는 다 허상이고 허망한 일이다.

처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소년원친구들을 찾아간 4년 전의 구월을 생각한다.

그 날,
오늘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햇빛은 따사로웠다.

사진가 고현주씨는 2008년부터 안양소년원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소년원 아이들이 찍어낸 사진을 소개하고 그 과정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청소년예술지원센터 '(사)꿈꾸는 카메라'를 통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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