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숙이는 눈에 금방 뛰는 친구였다. 목소리 톤이 다른 친구들보다 한 옥타브 높았고, 얼굴이 하얗고 예쁘장하게 생겨서 한 눈에 쏘옥 들어오는 친구였다..
감각도 뛰어나고 감수성도 예민하다. 발랄하고 명랑한 10대 소녀의 자화상 그대로다. 그런 혜숙이는 가끔씩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오늘은 오감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어보자' '샘! 왜 그렇게 찍어야 되죠?' '헐...' '혜숙이 사진 참 좋다' '왜요? 어디가 좋아요?' '헐...'
할 말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늘 이런식이다. 왜요? 왜 그런데요? 왜 해야 돼요? 매사가 삐딱하지만 너무나 사랑스런 친구다. 나도 처음에는 곤혹스럽더니 이제는 수가 생겨 같이 삐딱해진다.
'오늘은 오감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어보자' '샘! 왜 그렇게 찍어야 되죠?' '그럼 네가 찍고 싶은 대로 찍어봐' '혜숙이 사진 참 좋다' '왜요? 어디가 좋아요?' '그래, 자세히 보니까 별로 안 좋구나'
내가 삐딱하게 나오니 되려 말을 듣는다. 명랑하고, 삐딱한 혜숙이는 제주도에 가서 가장 많은 양의 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찍은 사진은 머리 속에 기억되는 게 아니라 가슴 속에 화석처럼 새겨져 온다.
내 가슴속에 선명하게 새겨 놓은 혜숙이의 몇 가지 사진 중 가장 맘에 와 닿았던 사진이다.
넓은 들판을 향해 '나가는 곳'이란 표지판을 찍었다. 우연히 얻은 사진일까? 지금 딱 혜숙이의 마음 그대로를 담아낸 사진이다. 혜숙이의 마음 속 출구를 그대로 보여준 사진이라서 마음이 아려왔다. 다른 친구들은 풍경을 보면서 찍기에도 바쁜데 ' 나가는 곳' 표지판에 눈길이 갔던 혜숙이의 마음이 환히 보인다.
이 친구들의 사진은 잘 정돈되어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마음과 닮은 풍경을 찍으려는 흔적을 보여준다. 그렇게 찍고 생각하는 사이 아이들은 조금씩 달라져가는 또 다른 자신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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